July 27, 2003

Memory's fragile power

언제였던가 기억이 안난다. 분명 종로 2가에 있는 코아아트홀에서 일포스티노(il postino)를 봤는데, 언제 봤는지 또 이 영화를 볼 때 옆에 누가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며칠 전에 시내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 놨다가 오늘 밤에서야 시간을 내서 다시 봤다. 영화가 워낙 감동적이었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내용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냥 오랫동안 이 영화에 딸린 <영화음악 (ilpostino.mp3)만 좋아서 가끔 듣고 있었을 뿐이다. 내용상으로는 막연히 반체제 시인과 우체부의 진한 우정이야기로만 남아 있었고...마지막에 시인이 암살 당한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다..하지만...기억은 여지없이 나를 실망시켰다. 결국 마지막에 죽은 사람은 시인이 아니었으니까....내가 인간 메모리를 연구하는 사람 맞는지 모르겠다. 정말 슬퍼진다.

이제 웹로그를 쓰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기억에 배신당해 슬퍼할 일은 없겠군..자세히 기록해두자...
영화는 물론 아내와 다시 봤다. 날짜는 여기 남을테고...

ilpostino1.jpg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사랑하면 시인이 되는구나...."그리움"이라는 것은 시대와 세대와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이다. ... 순박한 사람일수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큰 것 같다. ....그리움의 관계는 때로는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자정리가 인간사의 본질이기 때문에, 살면서 우리는 늘 누군가를 떠나고, 또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나는 일을 겪는다. 하지만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은 더 오랫동안 그 추억을 안고 사는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은 쉽게 그 추억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 섬에 ...아마 이태리 시실리 섬이 아닌가 싶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섬에 대해 가장 좋은 것을 녹음기에 대고 이야기 해보라는 시인의 말에, 마리오는 베아뜨리체 루소라고 사랑에 빠진 여인의 이름을 말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마지막 장면...시인 파블로가 베아뜨리체의 그 inn에 들어갔을 때, 조그만 사내 애가 나오고, 그 뒤에 베아뜨리체가 "파블리또"라고 부르는 목소리...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마리오가 존경하는 파블로 시인의 이름을 따서 파블리또라고 하자고 했지만, 베아뜨리체는 "떠난 후 우리를 기억도 못하는 그런 사람" 이름을 왜 붙이느냐고 반대의사를 보였다....결국...
인생은 아름다워와 별 연관이 없는데, 같은 이태리 영화라 그런지, "인생은 아름다워" 마지막 장면에 미군 탱크를 타고 멋모르고 가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함께 오버랩되면서 내 눈가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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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2, 2003

증인들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연재 1]

연재를 시작하며: Zerodie님의 블로그에서 영화 라쇼몽에 관한 정보를 보고, 도서관에서 대출해다가 4일간 밤에 짬을 내 영화를 다 보았습니다. 4일간 봤다는 말은 정말 재미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거지요? 저는 이 영화 무척 재미없게 보았지만, 그래도 고전이라니까 한 번 고전답게 해석을 해 봐야 할 듯 하군요. 지난 번 "Google은 검색엔진의 MS가 될 것인가"를 연재한 경험을 살려 이번엔, 증인들의 증언에 관련된 인간 기억의 문제에 대해 연재를 해 볼까 합니다.

Akira Kurosawa의 고전 Rashomon은 하나의 폭력적 장면을 두고 네명의 증인이 서로 다른 증언을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네명의 증인들 모두 같은 사건을 봤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각 증인들이 하고 있는 살인 장면에 대한 묘사는 서로 아주 다르다. 문제는 이 영화에서 각 사람이 만들어내는 기억이 특별한 편견 혹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 자신의 기억은 절대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우긴다. 결국 Kurosawa의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지각한 내용이 결국 기억단계에서는 심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지각과 기억에서 오는 정보의 손실이나 왜곡은 단순히 어떤 정보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잊혀지는 문제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지 심리학자들과 사회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 왔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는 이른바 법정 심리학 (forensic psychology)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중요한가? 우리가 범죄 용의자를 죽 늘여 세워두고 증인에게 범인을 고르게 하는 경찰서의 lineups이나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와 누가 사람을 찔렀는가를 증언하는 문제는, 단순히 우리가 어떤 영화에 관한 글을 Gatorlog에서 읽었는지, 아니면 씨네 21에서 읽었는지를 헷갈리는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화 Green Mile에서 우리의 착한 흑인 주인공은 흑인에 대한 특별한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의 희생자가 되어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한 흉악범으로 사형대에 서야 했다.

심리학을 그리 존중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이런 전문적인 심리학 분야에도 천재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그 천재 중 한 명이 U of Washington의 Elizabeth Loftus박사이다. 로프터스 여사는 1970년대에 심리학자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위대한 연구 몇 편으로 심리학계에 한 획을 그었고, 이른바 법정 심리학의 대모로서 언론에도 아주 자주 등장하는 스탠포드 출신의 대학자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4: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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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3, 2003

증인들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Sniper가 찬 타는? [연재 2]

이 글은 순전히 제 기억에 의존해서 써진 글입니다. 기억에 관해 글을 쓰니까 기억을 시험해 보는 뜻에서 말이죠^^. 혹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2002년 미국 수도 Washington D.C.에서는 연쇄 총기 저격범, 이른바 Sniper로 인해 온 도시가 공포속에 떨어야 했다. 결국 범행 한 달여 만에 흑인 한 명과 그의 의붓 아들 (미성년자)이 잡힘으로써 사건은 종말되었지만, 그 여파는 만만치가 않았다. 이 와중에 내가 주목해 본 것은 바로 목격자들의 증언 문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사건 발생 장소도 여러 곳이었기에 당연히 몇 명의 목격자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두가지 문제가 쟁점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Sniper의 얼굴을 보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Sniper가 숨어서 저격을 할 때 찬 타가 어떤 차였는가였다.

범인이 잡히기 전 연일 방송에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려주었다. Sniper는 히스패닉 계이고, 그들이 찬 타는 Astro Van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계속 이를 지지하는 증언들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당시 Forensic Psychology의 권위인 Elizabeth Loftus여사는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살벌하고 엄청난 장면에서 목격자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문제제기를 했다.

오늘 숙제입니다. 결국 Sniper가 잡혔을 때 그들이 탄 차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범인의 인종은? 검색 엔진을 통해 정답을 맞춰 보세요....다음 번 연재에서는 Loftus여사가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 내세운 이론을 소개합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8:2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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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5, 2003

증인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Weapon focus effect [연재 3]

그렇다면 Loftus박사가 지난 해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Sniper의 연쇄 저격 사건에서, 목격자들의 증언들에 너무 신빙성을 두지 말라고 자문했던 배경은 무엇인가? 간략히 먼저 답부터 말하자면....이른바 무기 집중 효과라는 것인다. 누가 총기로 사람을 겨눌 때 사람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얼마나 그곳에 멈추는가에 대한 인지적 반응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정서적인 긴장이나 고조, 흥분을 만들어 내는 상황에서는 그런 긴장감을 자아내는 곳으로, 사람들의 주목 (attention)이 좁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감정적 자극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그 자극을 유발시키는 자극적 물건들, 이를테면 살인 장면을 목격할 때는 범행에 쓰인 총이나 칼에 주목이 간다는 것이다. 이때 다른 주변부에 있는 자세한 정황들은 잘 주목을 받지 못함으로써 나중에 기억의 실패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1987년 실험에서 로프터스 부부(남편도 같은 대학 심리과 교수임)는 두 그룹의 실험 집단을 만들어서 Fast Food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각기 다른 슬라이드 쇼를 보여주었다. 이 중 한 집단은 고객이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고 점원의 얼굴에 총을 겨누고 그 점원은 금전 출납기에서 돈을 꺼내 건네 주는 아주 전형적인 권총 강도 사건 장면을 보여주었다. 다른 집단이 본 슬라이드는 고객이 점원에게 수표을 건네고, 그 점원은 고객에게 잔돈을 주는 전형적인 패스트푸드점의 장면 묘사 슬라이드였다. 연구자들이 여기서 측정했던 것은 피실험자들의 눈동자가 어디에 고정되고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에 고정되었는가하는 문제였다. 실험 결과는? 피실험자들이 수표보다 권총에 더 오래 시선을 고정했음은 물론이고, 권총 슬라이드 쇼를 본 피실험자 그룹에서 고객을 가장한 그 강도의 생김새를 다른 슬라이드에서 수표를 건네던 고객의 모습보다 덜 기억함을 밝혀냈다.

여기서 이른바 무기 집중 효과라는 게 제기되는데, 바로 "어떤 위협적인 장면을 목격할 때 사람들의 지각은 그 사건의 중심부적인 특징에 쏠리게 되어 있어서, 다른 주변부 상황들은 훨씬 덜 기록된다는 것이다. 덜 기억한다는 게 아니고, 바로 사건을 입력할 당시 우리 지각에서 위협적 장면의 핵심에 우리의 주목이 빼앗겨, 주변적인 정황들은 미처 기록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Loftus, E. F., Loftus, G. R., & Messo, J. (1987). Some facts about "weapon focus". Law and Human Behavior, 11(1), 55-62.
Christianson, S.-Å. (1992). Emotional stress and eyewitness memory: A critical review. Psychological Bulletin, 112(2), 284-309.

최근 이런 weapon effect에 관한 새로운 연구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한 여자 대학원생의 스토커에 관한 비디오를 보게 된다고 먼저 피실험자들에게 설명했다. 실험은 마치 Scream의 첫 장면을 연상케 할만큼 긴장된 비디오 장면에서 시작된다. 한적한 도시의 대학내 건물 지하에 있는 오피스에서 한 예쁜 여대생이 밤늦게 공부를 하고 있다. 친구와 전화로 수다도 떨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도 치고 email도 보낸다. 그러다가 밖에서 현관문 소리 닫는 소리가 나자 누구냐고 소리를 크게 내고 그래도 아무런 답이 없자, 조심스럽게 복도로 나갔다. 이 장면부터 각기 다른 실험적 상황이 나오는데, 한편의 비디오에서는 남자가 권총을 들고 있고 다른 비디오에서는 음료수 캔을 들고 있다.음료수 장면을 본 실험자는 여자가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짓는 장면을 통해 남자가 여자의 boyfriend인데 여자를 놀라게 해 주려고 들어온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권총 장면에서는 여자의 놀란 표정과 뒤이은 동작을 통해 남자가 스토커이거나 의도적 침입자임을 연상케 만들었다. 실험 후 연구자들은 여러가지를 측정했다. 하지만 weapon효과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측정은 바로 남자의 생김새이다. 결과는? 권총을 들고 있는 남자의 생김새에 대해 전체적으로 (음료수를 들고 있던 남자의 생김새보다) 인식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Pickel, K. L., French, T. A., & Betts, J. M. (2003). A cross-modal weapon focus effect: The influence of a weapon's presence on memory for auditory information. Memory, 11(3), 277-292.

물론 라쇼몽은 일단 살인장면에 대한 기억이 각자의 주관적 의도에 의해 변질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위에 이야기한 weapon focus effect와는 다르다. 다음번에는 이런 우리 인간 지각의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기억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보다 본래 라쇼몽에 관련해 해석할 수 있는 주관적 해석에서 비롯된 기억의 왜곡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Posted by gatorlog at 03:4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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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7, 2003

증인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Schema theory [연재 4]

1932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Bartlett 경(Sir)은 심리학계에 길이 기억될 책을 남기는데, 책 제목은 Remembering이다. 이 책에는 그가 유령들의 전쟁("The War of the Ghosts")이라는 오래된 인디언 전설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재구성"하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학생들의 기억에서 나온 기록들을 보면 처음 그들이 들었던 이야기와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 (사실 나도 지금 그 이야기를 이야기하라면 잘 생각이 나지 않고, 엉뚱하게도 Shrek이 피요나 공주를 구하기 위해 드래곤이 있는 성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오르는 형편이다).

바틀렛 경이 발견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이 처음 들었던 이야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끝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존 이야기에 꿰맞추어 다시 이야기를 풀어 낸다거나, 아니면 어떤 기억의 단서 (cue)를 바탕으로 거기에 따라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옮겨진 이야기는 원래 있던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창작물이 되고 만다는 데 문제가 있다.

Bartlett, F. C. (1932). Remembering; a study in experimental and social psychology.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아하! Bartlett경은 바로 메모리라는 것이 최초에 입력했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내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기존 지식이나 경험, 신념, 또는 다른 선입견에 의해 "재구성"해내는 것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기존 지식이나 경험을 심리학적 용어로 스키마 (schema)라고 하고, 바틀렛 경이 주창한 이 스키마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기존 스키마에 맞도록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라쇼몽에서 증언을 했던 각각의 등장인물들 (아내, 산적 등)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은 따라서 다름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바로 각각의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완전히 날조했다기 보다는, 어떤 중요한 장면을 바탕으로 중간에 연결되는 (그렇지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유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결과가 아닐까? 물론 이 영화에서는 한가지가 더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한다는 점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하는 예는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건 어른들이건 싸움이 있고 나서 왜 싸웠냐고 묻는다면, 서로 싸움이 전개되는 과정을 다르게 그려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 그 중 거짓말에 가까운 사람도 자신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두 자동차가 부딪히면, 운전자들은 바로 뛰어나와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찰이 도착해서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어떻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지에 놀랄 것이다. (동생이 a cop입니다...).

또 지난 번에 쓴 글과 연관지어 생각하자면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우선 보는 각도나 시점에 따라서 사건이 입력되는 내용도 달라지겠지만, 지난 번에 이야기 했던 대로 누구를 칼로 찌를 경우에는 인지적 주목이 그쪽으로 쏠려, 다른 정황들은 잘 머리속에 담을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산적이 남편을 칼로 찌를 때라든지, 아니면 산적이 여자를 겁간하는 장면들은, 심한 감정적 자극을 가져오기에 그 배경이나 앞뒤의 연결장면들은 목격자들의 지각속에는 들어 갔을지라도 입력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에 기억이 안 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가진 기존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그리고 신념이나 필요에 의해 왜곡되어진다. 바로 여기서 인간 기억의 죄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 심리학자들이 제일 경계하는 증인은 누구인가? 바로 모든 장면을 비디오 카메라로 담아 놓은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는 증인이다. 특히 사건이 감정적인 자극을 자아내는 정도가 클 때, 증인이 주변적 상황을 정확히 묘사한다면 일단 증인이 잘못된 기억을 말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오늘 후기: 대학때 브레히트의 희곡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일고 감상문 써 낸 숙제 이후, 처음으로 어떤 작품에 대해 이렇게 불필요한 해석 작업을 하는 듯 합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3:4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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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5, 2003

과학보도, 과학 저널리즘

내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구독하는 몇 가지 이유는 단 몇 명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기 위해서다. 사실 그 칼럼니스트 글외에는 거의 정독하지 않고 대충 보고 버린다. 아깝긴 하다. 그래도 그 쟁쟁한 필진에는 내가 자주 언급하는 Walter Mossberg(gatorlog에서 인용한 글들)나 월요일날 Portal면에 고정 칼럼을 쓰는 Lee Golmes, 그리고 금요일날 Science에 글을 쓰는 Sharon Begley(gatorlog에서 인용한 글)의 글을 읽기 위해서다.

그 중에서도 과학면을 맡고 있는 Sharon Begley는 정말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늘 심리학계의 핫이슈와 최근 연구동향을 잘 포착해서 시의적절하게 에세이를 낸다. 한 편의 글을 위해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할 때는 늘 그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고 가장 관련성이 큰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글의 짜임새도 있고, 글의 내용도 알차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오도할 위험성을 크게 줄임으로써 과학 보도의 신뢰성을 높여준다.

오늘 사이언스 동아의 이충환 기자의 글은 본래 글을 쓰게 된 동기(최면하의 기억이 신빙성이 있는가?라는 주제)와는 달리 몇가지 상당히 다른 영역에 놓여 있는 메모리에 관한 이론들을 소개함으로써 글이 산만하게 흐른 감이 없지 않다. 과학 보도의 문제를 짚어 보기 위해, 이충환 기자가 쓴 글이 어떤 영역들을 다루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먼저 시작은 법정 심리학에서나 다룰 억압된 메모리(repressed memory)에서 출발한다 (gatorlog관련 글들). 그리고 그 다음 가톨릭대의대 신경정신과 채정호 교수의 인용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전혀 다른 곳으로 글이 흐르면서, "최면하의 증언을 믿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의 초점을 벗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기억 상실증 환자에게서 살아 있는 implicit memory 이론 (압정의 아픔을 잠재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기억상실증환자 이야기), 고전적인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 이야기(short-term memory vs. long-term memory), 그리고 Endel Tulving의 encoding specificity principle (회상시에 입력 당시의 기억과 비슷한 단서를 제공할 경우 기억이 촉진된다는 이론), 그리고 골프 등 운동에 필요한 procedural memory체계가 있다는 이론 등 서로 다른 이론 몇 가지가 글의 서문과는 다르게 전개됨으로써, 글이 산만하게 된 느낌이 있다.

과학 저널리즘에 서 있는 기자들은 해당 과학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슨 학위를 딸 정도의 전문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 해당 분야의 개론서를 완벽히 이해할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기자를 위해서가 아니고, 혹시 독자에게 과학의 이름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오늘도 그 기사만 보고 사람들은 "아 최면이 기억을 끄집어 내는데 유용한 것이구나"하고 오해를 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뛰어난 과학 저널리즘은 그래서 해당 분야의 이야기를 주제에 맞게 전개하고, 또 가장 알맞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는데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심리학 박사라고 모든 내용을 아는게 아니잖은가? 교육 심리를 전공한 사람이, 또는 사회 심리를 전공한 사람이, 또는 기억 상실을 전공한 뉴로사이언티스트(neoroscientist)가 법정 심리에 대한 코멘트를 해 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나 저나 오늘부터 Memory라는 카테고리를 하나 신설했다. 이미 몇개의 카테고리는 사장시켜야 할 듯 하다.....

Posted by gatorlog at 11: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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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라운드의 골프

얼마 전에 어떤 한의사가 골프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써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기사 요약을 보니까, 정통 심리학에 기본한 책은 아니다. 무슨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무슨 내장의 기능이 어떻고 저짜고 해서 뒷땅을 친다느니 하는 그야말로 골프장에 회자되는 우스개 소리를 모아다가 나름대로 신체 기능에 적용시켜 본 것일 뿐이다.

동아 사이언스의 이충환 기자가 쓴 글을 보니, 역시 서울 의대 강은주 교수(심리학 박사)가 골프에 관련된 운동이나 기술 관련 기억(procedural memory)이 기억 상실증 환자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을 인용한 게 보였다. 물론 그 심리학 박사가 언급한 사례는 현존하는 기억 연구의 굵진한 이름 중 한 명인 하버드 대학교 인지심리학과의 Daniel Schacter박사의 필드 실험 (field experiment)결과에 근거한다. 기억 연구의 주류인 토론토 학파에 속하는 Daniel Schacter박사는 지난 번에 언급한 기억 연구의 대부 University of Toronto의 Endel Tulving의 수제자 중 한 명이다.

1980년대 초 쉑터 (Schacter) 박사는 우리의 기억은 단일한 체계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발전시키는 와중에 있었다. 지난 번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80년대 인지 심리학계는 Endel Tulving에 의해서 제기된 뛰어난 이론인 두개의 메모리 체계, 즉 "시맨틱 메모리(semantic memory)"와 "에피소딕 메모리(episodic memory,)"외에도 우리가 기술을 배우고 어떤 반복된 과정에 숙달되게 하는 이른바 "procedural memory"를 포함한 세개의 기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때였다. 시멘틱 메모리는 이를 테면,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이다"처럼 우리가 언제 어디서 기억을 형성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두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지식 메모리다. 에피소딕 메모리는 "1997년에 나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에펠탑 앞에서 그녀와 사진을 찍었다"라는 "시간과 장소"개념이 함께 결합된 이벤트 메모리다. procedural memory는 우리 두뇌에서 운전하는 기술을 저장하는 메모리 체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81년 Schacter박사는 U of Toronto의 기억 장애 실험실로 찾아 온 Frederick이라는 환자를 만난 때를 잊지 못하고 있다. Frederick은 심한 뇌 손상으로 치매 (Alzheimer's disease)초기 단계에 있었다. 쉑터 박사가 아주 쉬운 단어나 그림을 보여줘도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하고, 어제 무엇을 했냐고 물어도 멍하니 다른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프레데릭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쉑터 박사는 이 사람이 30년간 골프를 쳐 왔던 열렬한 골프광이었음을 발견했다. 역시 열렬한 골프광이기도 한 Schacter박사는 자신의 취미를 기억 연구에서 널리 인용되는 중요한 필드 실험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관심은 치매 환자의 초기 단계에서 보이는 기억의 상실은 어떤 메모리 체계에 해당하는가였다. 이를테면 semantic memory가 상실되었다면, "par," "birdie," "wedge"같은 골프 용어를 기억할 수 없을 테고, 에피소딕 메모리가 상실되었다면 어디서 티샷을 했는지, 혹은 이번 홀에서 몇 타를 쳤는지를 기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procedural memory가 상실되었다면, 아예 골프를 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프레데릭과 함께 쉑터 박사는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두 라운드의 골프를 쳤다. 한 라운드는 그에게 친숙한 골프장에서, 다른 한 라운드는 그에게 아주 생소한 골프장에서...결과는?

놀랍게도 치매형 기억 상실 초기 환자였던 프레데릭은 두 라운드의 골프를 모두 완주했다. 그리고 골프에 사용되는 전문 용어들(jargon)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birdies, doglegs, 그리고 finesse shots를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레데릭은 골프에 필요한 규정과 에티켓의 아주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홀에서 멀리 있는 사람부터 볼을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상황에 맞게 클럽을 바꿔서 공을 치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린에서 경사가 있을 때 퍼팅을 잘 함으로써 그린의 경사를 읽는 기술도 살아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물론 쉑터 박사는 이 모든 것을 녹음기에 녹음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프레데릭의 볼이 쉑터 박사의 볼과 홀 사이에 놓여 있는 상황이 왔다. 프레데릭은 일반적인 골프 에티켓을 알고 있었기에, 동전 하나로 자신의 볼을 마크했다. 그리고 쉑터 박사가 퍼팅을 마쳤는데, 자신의 퍼팅(putting)을 마무리 하지 않고, 클럽을 챙겨서 유유히 그린을 벗어나가는게 아닌가? 그는 방금전에 볼을 마크했다는 것과 자신의 퍼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쉑터 박사는 또 다른 실험을 했다. 18홀 중 9홀은 쉑터박사가 먼저 티샷을 하고, 프레데릭이 나중에 함으로써 그가 바로 공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다른 9홀에서는 그에게 먼저 티샷(tee shot)을 시키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끌다가 쉑터 박사가 두번째 티샷을 했다. 그래서 그가 티샷하고 공을 찾는 사이까지는 약간의 시간차를 둔 것이다. 놀랍게도 첫번째 조건에서 그는 쉽게 공을 찾은 반면, 두번째 조건...즉, 시간의 경과가 있은 다음에 골프공을 찾게 했을 때는 한 번도 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업 기억 (혹은 단기 기억: working memory or short-term memory)이 버텨줄 수 있는 시간의 범위내에서 그는 공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작업 기억이 "시간의 경과"나 "다른 방해 요소 (쉑터 박사가 자신의 티샷 전에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작업기억이 지니는 기억을 저하시킴)"로 사라질 때는 앞에서 자기가 친 공이 어디로 갔는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에피소딕 메모리의 실종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매번 그린에서 다음 티샷 장소로 이동하면서 쉑터 박사는 프레데릭에게 지난 홀에 쳤던 tee shot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프레데릭은 한 번도 자신이 앞에서 쳤던 티샷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함을 발견했다. 즉 에피소딕 메모리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다. 골프 경기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음료를 마시며 경기에 대해 구체적 묘사를 해 보라고 요청했지만, 그가 한번도 생생한 묘사를 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쉑터 박사는 우리 메모리는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치매 환자와의 골프 실험을 통해, 그는 치매 초기 환자가 에피소딕 메모리는 크게 훼손되는 반면, semantic memory나 procedural memory는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메모리의 다른 기억 체계를 입증해 보인 것이다. 휼륭한 케이스 연구(cast study)이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다.....놀라운 것은 다음 대목이다. 첫번째 골프 경기를 하고 일주일 후, 쉑터 박사는 그와의 두번째 경기를 하기 위해 그를 태우러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골프 클럽을 챙기고 나오면서 프레데릭은 쉑터 박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글쎄...나는 골프를 잘 못쳐요....거기다가 지난 몇 달 간 골프장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더 심각한 발언은 그가 쉑터박사와 처음 경기를 하기 대문에 약간 긴장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쉑터 박사는 마음이 아파, 그에게 지난 주에 함께 골프쳤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Schacter, D. L. (1983). Amnesia observed: Remembering and forgetting in a natural environment. Journal of Abmormal Psychology, 92, 236-242.
Schacter, D. L. (1996). Searching for memory : the brain, the mind, and the past (1st ed.). New York: Basic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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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8, 2003

섬광기억 (Flashbulb memory) [연재 1]

인간의 기억은 정말 불완전하고 깨지기 쉽다. 그런데 그 불완전하고 파편화되기 쉬운 기억가운데 비교적 오래 살아 남는 기억이 있다. 만약에 만약에 여러분이 아끼는 그 누군가가 불의의 큰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에 어느 날 신촌 사거리를 가는데, 휴대폰을 타고 여러분이 아끼는 사람이 큰 일을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고 해 보자. 피가 멎는 듯한 충격, 그리고 복받치는 설움 속에서,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 년이 지나도 당신은 아마 그 말을 전해 들었던 바로 그 순간 신촌 사거리 무슨 상점인가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 silver bells가 울리고, 건너편 그랜드 백화점 앞 횡단보도에는 구세군이 서 있었고, 하늘에는 송이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쉽게 지워졌을 이 주변 정황들은 당신이 그 충격적인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의 뇌리 속에 그 충격적 비보와 함께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된다. 바로 심리학계에 인지적 패러다임의 물결을 열어 주었던 저명한 인지심리학자 Ulric Neisser교수의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에 대한 설명이다.

이런 일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은 다음과 비슷한 예를 생각해 보시라. 만약에 말이죠. 당신이 정말 Deux의 골수 팬이었고, 김성재 오빠를 외치던 오빠 부대의 일원이었는데, 김성재의 죽음을 들었다면? 내 경험을 이야기 해 보자. 사실 몇 년도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어느 해 겨울 ... 홍대 앞 거리에서 시간 보다 약간 늦게, 동생 SH와 함께 나온 친구SY이가 씩씩거리면서 "너 그것 들었어? ......"라고 흥분하던 그 때, 그리고 그 길거리를 잊을 수 없다. 그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김광석은 도저히 용서가 안돼. 왜 자살을 했냐고, 왜?"

그래서 다른 기억들은 쉽게 소멸하고, 쉽게 변질되고, 쉽게 파편화되는데 반해, 이렇게 자신이 깊이 사랑하던, 혹은 자신과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떴다는 그런 충격적인 비보를 들을 때, 사람들은 그 소식을 전해 듣던 주변적 배경을 잊을 수 없다고 종종 증언한다. 꼭 사람 뿐이 아니다. 이를 테면, 우리가 Larry King을 들을 때, 래리 킹이 뉴욕과 관련 있는 출연자 (저명인사)들에게 "그 때 (9/11쌍둥이 빌딩 폭파) 뭐하고 있었죠?" 하고 물으면, 출연자가 아주 자세하게 당시 배경을 묘사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야!! 참 기억력 좋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처럼 미디어가 우리의 기억을 생산하고 지배하는 요즘은 미디어에 의해 보도되는 충격적인 뉴스들이 우리에게 섬광 기억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메모리 연구 학자들은 현대인들이 J. F. Kennedy의 암살이나 다이애나 왕비의 교통사고에처럼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혹은 매개되는) 충격적인(traumatic) 뉴스를 들을 때, 바로 그 때 자기가 있던 공간, 주변 정황들을 선명히 기억한다는 가설을 검증해 왔다. 인간 기억에 관심이 많은 나도 당연히 이 섬광 메모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나는 이 섬광 메모리조차,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질되고 파편화되고 그리고 사람들의 스키마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언젠가 한 번 증명을 해야겠지만...)

오늘 글의 제목을 flashbulb memory1으로 잡은 이유는 다음에 최소 한 번은 이 섬광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 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을 쓸 때, 기억을 돕기 위해 기억의 끈을 여기 남겨 둬야 겠다: titanic증언, Neisser교수와 Babe Ruth 대한 반박, 그리고 최근 JFK 섬광 기억에 대한 논란...

어제 밤,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문세의 별밤에 고 김광석씨와 김국진씨가 게스트로 나왔던 방송분을 mp3로 들었다. 김광석씨가 통키타로 외사랑을 불렀는데...참 이상한게...내 기억속의 시간적 순서로는 김광석씨는 김국진이 뜨기 전에 저 세상으로 간 것 같은데....그만큼 우리 기억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언젠가 김광석과 안치환이 학전 공연에서 부른 듯 한데, 내 기억으로는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김광석이 죽고 난 한 참 후에 나온 노래 처럼 느껴지니 말이다....우리의 기억은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불완전하고 파편화되어 있다.
Update: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2006년 4월 2일]

Posted by gatorlog at 04:2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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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07, 2004

Internet & rumor

언젠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말은 세계의 절반을 여행할 수 있다"(A lie can travel halfway around the world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구에 담긴 진리대로 거짓 정보의 전파 속도는 진실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그런데 모든 루머가 다 의도적인 장난에 의해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Allport와 Postman의 기념비적인 저서 "the psychology of rumor" (관련 글: a theory of rumor transmission)에 나오는 고전적인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평범한 정보도 보는 사람들의 선입견, 주관적 편견, 그리고 스키마에 따라 변질되어 루머로 전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Allport의 실험에서, 백인 손에 들려 있던 이발용 면도날이 연속적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 마지막 수신자는 흑인 손에 들린 면도날로 전해 듣게 되는 것이다. 흉기는 흑인이 쥔다는 스테레오타입이 빚어낸 유언비어의 형성 과정의 예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일본 관련 루머가 빨리 확산되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도 일정 정도는 이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본인에 대한 심리적 태도가 반영되는 게 아닐까 싶다.

최근 읽고 있는 Pratkanis 박사의 Age of Propaganda라는 책에 보니, 루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심리적 요구(need)를 반영한다고 되어 있다. 그 심리적 요구 중에 하나가 우리의 근심거리나 걱정, 불만족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9/11 테러는 부시의 자작극이며 그 증거로 이스라엘인은 한 명도 건물에 없었다는 루머를 생각해 보라. 이 책에 보니, 루머는 통상적으로 "비밀 음모" (secret conspiracies)나 "알아들을 수 없는 지식"(esoteric knowledge)에 근거해서 나오기 때문에 사실임을 입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누가 9/11은 부시의 자작극이라는 "비교적 설득력있는 음모 이론"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겠는가?

Posted by gatorlog at 08:4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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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7, 2004

Biased organism

총선에 많은 관심을 쓰면서 다소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특성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도 됐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이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아집에 따라 똑같은 사물(object)이나 현상들(phenomena)을 얼마나 다르게 보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bias, stereotype, prejudice같은 태도 관련 컨셉들이 대부분 세상 현상을 설명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얻었다. 그렇다면 편견과 스테레오타입이라는 것은 사회적 존재와 존재들간의 상호작용에서 형성된 후천적 태도일까?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그 생각을 떨칠 수 없다.


click to enlarge the image
image 출처: franknernest

그러나 사회적 환경과 주관적 경험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면 메모리 연구자들이 서운해 할지 모른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같은 장면을 지각하고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생리학적 반응 (physiological response)을 보인다. 어떤 사람은 심장의 박동수가 증대하고 어떤 사람은 그대로다. 어떤 이는 울부짖고 어떤이는 히히거린다. 어떤 사람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어떤 이의 피는 차가워진다. 어떤 사람은 평상심으로 돌아오려는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이 강한 반면, 아거같은 이는 평균대에서 균형을 못잡고 허둥대지 않았던가?

결국 다윈의 순수진화론, William James의 pragmatism, 혹은 Leon Festinger의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나 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적 접근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뇌(brain)의 작용과 기억의 오류를 파악하는게 역시 중요하겠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Hughlings Jackson에서 시작한 split brain 연구가 많은 것을 밝혀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각기 다른 정파나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동일한 object에 각기 다른 뇌의 반응을 보인다는 증거는 잡히지 않고 있다. 인간 기억의 일곱가지 죄악(Seven sins of memory)을 주장한 쉑터박사의 이야기를 더해야 한다.

편향된 생물 유기체(biased organism)로 부를수 있을까?

Posted by gatorlog at 06:2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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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30, 2004

굿바이 레닌(Goodbye Lenin)을 보고: 자서전적 기억 (Autobiographical Memory) 첫번째 이야기

기억은 자아(自我: self)가 있고나서야 존재한다 (가끔 아기 때 일을 기억한다는 사람 이야기를 듣다보면 "참 자아형성이 빨리 되신 분이구나" 하고 경탄(?)해 마지 않을수 밖에 없다). 다시말해 기억이란 하나의 "자아(自我)"가 자신의 목표(goal)에 따라 지각하고 경험한 일들이 이미지나 감정, 그리고 다른 구체적인 감각으로 재현되는 것을 말한다 (Conway, 2002, p.54). 역(逆)으로 자아(自我) 역시 기억의 반영이다. 즉 한 인간의 자아(自我)는 시간의 흐름속에 일부 퇴색하거나 흐릿해지고 일부는 재구성되어 남아 있는 기억의 집합체이다. 어느 경우에도 정확한 기억은 없다. 많은 부분은 죽고, 형체가 쪼개지며, 설령 남아 있더라도 개인의 스키마에 따라 재구성되어 남게 된다. 한마디로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다.

기억과 자아가 서로 엉켜있다는 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정신분열이나 망상(delusion)은 자아와 기억이 분리되고 서로간에 엉켜 있어야 할 타래가 풀리는 것을 말한다 (Conway, 2002, p.56). 예를 들어 예전에 언급했던 영화 Beautiful mind에서 그려지는 스끼쩌프리니어(schizophrenia) 라는 병은 "자아(自我)가 뒷받침해주지 않는 기억에 지배당하는 정신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기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메모리를 크게 두가지로 구분한다는 걸 소개한 적이 있다. 자아(自我) 던지기에서 설정한 목표(goal)에 따라 기록되는 블로그 역시 자아(自我)의 기억을 담는 곳이 된다. "4월 16일 롯데월드에 가서 그녀와 바이킹을 타고 맛있는 스파케티를 먹었다"처럼 시간과 장소를 안고 있는 기록을 에피소딕 기억(episodic memory)이라고 한다면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고 냉전수구골통이다"라는 사실(fact)에 근거한 기록은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다"라는 기억과 마찬가지로 semantic memory를 구성한다.

그리고 어느 개인의 자아는 이벤트에 바탕을 둔 에피소딕 기억(episodic memory)이 누적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고 수구골통들이다"라는 객관적 사실(semantic memory)에도 불구하고 어느 개인이 한나라당 사람들과 같은 아이덴티티를 갖는 이유는, 그 사람이 기억하는 에피소딕 기억(episodic memory)이 한나라당과 같은 뿌리를 가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차떼기 지지자들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쉬운 예로 H당 J모의원측이 꾸며놓았을 가능성이 높은 거짓말 에피소드("우리 며느리가 들었다 카더라. 남편이 국회의원 하면서 도둑질해서 재산 모았다 카대. 첩 데리고 선거운동 한다 카대. 집만 얻어놓고 잠도 안 잔다 카대")가 이들의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에피소딕 메모리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오늘부터 몇차례에 걸쳐 나눠 쓸 예정인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episodic memory가 시간의 흐름속에 저장된 것을 자서전적 기억이라고 부른다. 이 자서전적 기억의 특징은 압축된 혹은 재구성된 이미지 형태로 저장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지는 없더라도 어떤 단어를 들으면 특정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도록 우리의 감각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녹내장으로 고생한다는 어떤 사람의 기사를 읽고는 느닷없이 같은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던 아버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수없이 수술을 받고도 그 불치의 병에 시달리며 안압을 떨어뜨리기 위해 여러가지 약을 투여하시던 아버님 생전 모습이 압축된 형태로 떠오른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자서전적 기억의 작용이다. 이런 이미지나 감각 역시 쪼개지고 파편화된 상태로 남기 때문에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되는 이미지 기억의 연속 장면'은 영화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자서전적 메모리를 구성하는 주요 기억의 성분들중에 전에 한 번 언급했던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이라는게 있다. 기억이 자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자아(自我)와 깊게 관련된 기억들은 더 강하게 각인되고 더 오래 남게 된는 것이다. 또 이 자아(自我)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벤트)과 함께 기록된 기억은 더 오래 남게 된다. 영화 굿바이 레닌에서 어린 알렉스가 동독 최초의 유인 우주인이 떠나갈 때 아버지의 서독 망명으로 말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했던 것은 "동독 최초의 유인 우주인 Sigmund Jähn"의 모습이 너무나 극적이었기에 그 주변에 있던 모든 기억들이 섬광기억으로 함께 남았기 때문이다. 즉 어린 알렉스는 어머니가 말을 잃었던 이유가 아버지가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철이 들지 않았던 나이였다. 다만 우주선이 발사되는 평생 잊지 못할 "극적인 장면"에서 어머니를 쳐다봤는데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있었다는 것이다. 극적인 장면과 함께 옆에 있던 주변적 장면들이 함께 기억된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처자식을 버리고 갔다는 것을 알 정도로 철이 들었을 때 다시 그 장면을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어머니의 말없음은 아버지의 서독행으로 연결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기억을 재구성한 셈이다.

영화 굿바이 레닌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독일 격변기를 알렉스라는 한 청년의 자서전적 기억을 통해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알렉스라는 자아의 눈에 투영된 그리고 그의 자서전적 기억속에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그의 자아속에 담긴 독일 통일에 대한 매개된 기억(mediated memory)을 함께 공유하는 셈이다. 만약에 고문 기술자 정형근같은 이의 자서전적 기억을 바탕으로 효자동 이발사를 그렸다면 우리는 당연히 정보부 지하실에서 물고문 전기 고문으로 김근태씨를 고문하고 깔깔대던 악마의 기억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포탈들이나 신문들의 영화평에서처럼 "거짓말 프로젝트"라는 말로 이 영화를 소개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단순한 사고처럼 보인다. 물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이 영화에서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플롯에 따라 영화가 전개된다. 하지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단순히 "거짓말 프로젝트"에 기반한 코미디가 아닌 것처럼 "굿바이 레닌" 역시 가벼운 코미디는 절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갑자기 자서전적 기억이라는 해석으로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Reference:
Conway, M. A. (2002). Sensory-perceptual episodic memory and its context: Autobiographical memory. In A. D. Baddeley, M. A. Conway & J. P. Aggleton (Eds.), Episodic memory: New directions in research (pp. 53-70).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osted by gatorlog at 09: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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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05, 2004

왜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는가?

예외적인 경우(flashbulb memory등)를 제외하고 인간의 자서전적 기억은 근시안(近視眼)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기억은 희미해지는가? 이는 우리가 뇌속에 기록하고 저장하는 새로운 경험들과 일들이 과거에 기록되고 저장된 기억의 회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기억의 간섭, 방해가설에 따르면 동일한 혹은 비슷한 경험이나 사건들일수록 최근 기억에 방해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Schacter, 1996, p.76).
1년전 집에서 밥먹었던 것 기억은 그 이후 수없이 똑같은 반복적 밥먹기에 의해 방해를 받기 때문에 잘 생각 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 1년전이라도 평범한 밥상이 아니고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 이를테면 생일상이었다면 -- 그 기억은 1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비단 에피소딕 메모리(episodic memory)뿐만 아니다. 컴퓨터 작업이나 전화번호 누르기, 스틱차를 모는가 오토차를 모는가 하는 동작(혹은 운동)기억과 관련된 작업 기억(procedural memory)에서도 "최근 기억"은 "과거 기억"을 방해한다. 맥(Mac)으로 바꾸기 전 십수년간 PC를 사용할 때 나는 수천번을 Ctrl + C를 이용해서 어떤 내용을 복사 하고 이를 다시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맥으로 바꾼 뒤에는 (command) + C를 해야 복사가 되고 + V가 붙이기가 된다. 한동안 Ctrl + C의 반복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번번히 실수를 했다. 하지만 일단 Mac에 익숙해진 이후로는 반대되는 경험을 한다. 가끔 PC앞에 앉으면 Mac의 자리에 해당하는 PC키를 눌러서 이상한게 떠오르곤 한다. 망각(forgetting)에 대한 연구로 한 획을 그은 Anderson과 Neely(1996)의 설명으로는 이런걸 "같은 반응군에서 나온 예전 기억 억누르기(Response-set suppression)"라고 한다 (p.256).

예전 기억과 현재 기억 상호간의 간섭과 방해는 컴퓨터 파일 덮어쓰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컴퓨터 파일이야 한번 덮어쓰면 (일반적으로) 재생이 어렵지만, 인간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일생의 기억과 망각이라는 분야에는 크게 두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일은 우리 뇌에 영구히 기록되어 있어 설령 어느 순간에 어떤 기억을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기억에서 영구히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학파의 주장은 어떤 적절한 "기억 살리기" 기법을 이용하면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같은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해 준다거나 기억의 단서가 될만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학설은 어떤 경험이나 사건은 우리 기억속에서 영구히 사라져서 결코 회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Loftus와 Loftus(1980)가 미 심리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기억 연구 학자들중 84%가 "우리 기억은 모두 저장되어 있고 적절한 기법이나 조건이 주어지면 복원할 수 있다"는 학설을 지지했다. 물론 이 놀라운 사실은 인지심리학계의 대부인 Endel Tulving 박사의 이른바 기록시점 구체화 원칙(Encoding Specificity Principle)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고 있다 (gatorlog관련글). 이 "기록시점 구체화 원칙"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기록 시점과 기억을 끄집어 내는 회상 시점에 똑같은 상황, 구체적 단서가 주어질 때 복원력이 높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5년전 스쿠버 다이빙을 갈때 내가 오른손에 수중 카메라를 들었던 장면을은 긴 세월의 흐름속에 지워진 듯 했다. 그런데 오늘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는데 누군가로부터 수중 카메라를 맡았을 때 불현듯 잊혀졌던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어제 인디애나에서 차를 몰고온 JW이 부부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또 우리는 기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서로 망각했던 기억들이 많았는데, 누군가 구체적인 기억의 단서를 주면 "아 맞아 맞아..그때 우리 연수들어갔을 때 뭐 가지러 보문동에 갔잖아..." "그래 맞아 맞아..." 다른 기억들도 모두 그렇게 구체적 단서를 통해서 누군가 상황을 재연해 주면 놀랍게도 회상이 되는 것이었다... "그때 속초에 갔을때, 술먹은 다음에 우리가 ST형한테 개겼잖아...그때 ST형이 무슨 말해서..말이지.." "아 맞다 맞다...." 영원히 지워진 기억은 없다.....

이 이론을 잘 이용하는게 보통 법정 싸움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변호인은 당시 정황을 세밀히 묘사하고 심지어는 비슷한 분위기의 모형까지 들고 나와서 증인에게 기억을 되살려 볼 것을 요청하곤 한다.

  • Anderson, M. C., & Neely, J. H. (1996). Interference and inhibition in memory retrieval. In Bjork, E. L., & Bjork, R. A. (Eds.), Memory. New York: Academic Press.
  • Conway, M.A., & Rubin, D. C. (1993). The structure of autobiographical memory. In A. F. Collins, S. E. Gathercole, M.A.. Conway, & P. E. Morris (Eds.), Theories of memory (pp.103-137). Hillsdale, NJ: LEA.
  • Loftus, E. F., & Loftus, G. R. (1980). On the permanence of stored information in the human brain. American Psychologist, 35, 409-420.
  • Schacter, D. Searching for memory: The brain, the mind, and the past. New York: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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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06, 2004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아픈 사랑의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짐 캐리와 Kate Winslet이 주연한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은 기억에 관한 이야이다. 지우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아픈 사랑의 흔적들...바로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겪었을법한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코미디 형식으로 그린 영화다. 코믹한 에피소드들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후에도, 그 사랑했던 기억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을만큼 괴로워하는 짐 캐리(영화속 Joel)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어쩌면 웃을수만도 없는게 이 영화의 소재가 지니는 아이러니다.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Kate Winslet이 클레멘타인(Clementine)역을 맡는다.

영화는 서로 사랑의 아픈 기억을 지운 Joel과 클레멘타인이 다시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한다.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관객은 Joel과 Clementine은 예전에 연인 사이었음을 알게 되고 이 두사람이 사랑을 만들어갔던 기억은 모두 어떤 특정한 기억의 단서에 감정적으로 깊숙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클레멘타인은 자기 이름 가지고 놀리지 마라고 했지만, 이들이 처음 연인으로 만났을때, Joel은 클레멘타인 song(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채...)을 불렀던 기억이 있다. 처음 만났을때 클레멘타인은 빨간색으로 염색한 머리였으나 기억을 지운후에는 파란색 염색 머리다. 그리고 이 지울수 없을만큼 아픈 사랑의 기억들은, "심한 술마시고 깨어난 다음날 정도의 고통으로 아픈 기억을 지워드린다"는 Lacuna Inc..의 "한밤중의 기억지우기" 작업속에서 생생히 묘사된다. 그리고 Joel의 기억을 지우던 작업을 하던 밤에 Lacuna Inc의 비서 Mary (스파이더맨의 여주인공 Kirsten Dunst)는 Lacuna Inc.의 사장 Dr. Howard Mierzwiak와 불륜에 빠진다. 하지만 사장 부인이 이 현장에 오게되고 Mary역시 예전에 Dr. Mierzwiak과의 불륜의 아픔을 지웠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감정적 기억을 영원히 지우는게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Emergence의 저자 Steve Johnson은 이 영화는 "현재 뉴로사이언스의 기술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특정 기억을 지운다는 소재를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간의 두뇌가 진한 감정이 들어간 기억들을 구성하는가에 대해서는 올바른 이해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바로 인간의 뇌는 감정적인 기억들과 비감정적인 기억들을 다르게 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좋지 않았던 기억은 세세히 기억하는데 반해 좋았던 기억은 단지 일반적인 느낌으로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와 함께 갔던 제주도 유채꽃밭의 기억은 아련히 좋은 감정으로만 남지만, 그와 심하게 다퉜던 날의 기억은 비교적 세세한 것까지 기억을 한다는게 "감정과 결부된 기억"의 일반 법칙이다.

슬픔의 深路
 
낙엽이 외로이 떨어지는 건
두 사람이 헤어지는 건
슬프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요 두 사람이 흘려요
우린 헤어질 수 없기 때문에
  창 밖에는 비가 내려요
두 사람은 우산도 안 썼네요
헤어지기 마음이 아파 비를 맞아요 고개를 숙여요
우린 둘만이 사랑하기 때문에 
이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햇살이 비추면
온 마음을 열고 나그네가 되어요
뜨거운 마음으로 눈물을 적셔요 슬픔을 적셔요
이젠 뒤돌아 서서 고개를 들어요
때론 슬픔이 아파 어쩔줄 모르고
이룰 수 없는 순간들을 그렸어요
정다웠고 정다웠던 지난날의 이야기 속에
우리 이제는 떠나야 하나요
   이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햇살이 비추면
온 마음을 열고 나그네가 되어요
뜨거운 마음으로 눈물을 적셔요 슬픔을 적셔요
     이젠 뒤돌아 서서 고개를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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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6, 2004

정당 지지를 뇌의 작용으로 볼 수 있는가?

한나라당과 같은 수구 보수에 목숨거는 사람과 열우당 혹은 민노당을 지지하는 사람의 뇌 작용을 관찰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fMRI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뇌의 작용을 직접 촬영함으로써 그동안 인지 심리학자들이 제시했던 수많은 가설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졌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두뇌는 무신론자의 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달라이 라마등 명상으로 단련된 사람들의 뇌 작용은 일반인들과 어떻게 다른가?" 등이 현대 뉴로사이언티스트들의 새로운 관심 영역이다.

정치 학자들이 이런 인지 심리학계의 새 경향을 이어받고 있다. 지난 4월 뉴욕 타임스에서는 U.C.L.A. 연구팀의 "정치 두뇌 프로젝트"를 소개한 적이 있다. 연구의 기본 아이디어는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과 공화당 지지자들간에 정보 처리 과정에서 뇌의 작용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1964년 daisy girl 정치 광고를 보여주면서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의 뇌를 MRI 촬영했다.

지난 일요일자 뉴욕타임스는 Steve Johnson의 The political brain이라는 에세이를 게재했는데, Steve의 이 에세이는 지난 4월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U.C.L.A.연구팀의 연구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적어 놓았다. 일단 Steve Johnson은 2002년 미국 공화당 다수당 원내 리더이자 전 경제학 교수였던 Dick Armey가 내뱉었던 "liberal들은 적어도 영리한 사람들이 아니다. 리버럴들은 심장의 작용을 받고 보수주의자들은 두뇌의 작용을 받는다"라는 문제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이 비과학적이고 오류 투성이의 말은 사실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은 자기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냉혈동물이다"라는 말로 바꾸면 더 그럴 듯 할지 모른다. 어쨌건 민주당 지지자들이 daisy girl광고나 기타 인간의 감정과 관련된 메시지에 공화당원들과 다른 뇌의 반응을 보인다는 가설이 입증된다면 정치적 선택은 각기 다른 뇌의 작용의 결과라는 이론이 앞으로 힘을 얻을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맑시즘에서 제시하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보편 타당한 명제에 어긋나는 정치적 선택 행위 -- 이를테면 블루 컬러 노동자이면서 한나라당을 찍는 사람이나 BMW를 몰면서 민노당을 지지하는 사람 -- 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설명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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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9, 2004

디지털 기억도 퇴색한다

디지털이 테크놀로지의 주류로 등장하기전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란 영화에서처럼 실연의 아픔을 견딜수 없었던 연인들은 함께 찍었던 사진과 수첩의 메모, 편지등을 찢거나 불태우면서 아픈 기억을 지워야 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이제 연인들은 이메일 박스의 보관함에 담긴 지나간 메일을 점검하면서, 사이월드의 1촌 관계를 정리하면서, 아니면 블로그에 올려진 기록들을 삭제하면서 슬픈 추억을 남겨주는 단서를 없애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 저장 매체가 빠르게 변하고 (5¼-inch floppy플로피 --> 3½-inch diskettes --> 하드 --> zip (미국의 경우) --> CD, DVD & Flash Drive --> 웹 서버) 정보의 복사가 쉬운 만큼 정보의 유출과 보존도 최초 정보 생산자 혹은 저장자의 의도와는 다른 형태로 남아서 이 세상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디지털 정보라는게 쉽게 눈에 띄는게 아니어서, 십수년이 지난 어느날 예전에 지웠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우연히 백업 시디에 남아 있다가 다시 그 기억을 되살려 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디지털 정보는 영원하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이다.

많은 문서들이 디지털화되면서 문헌 정보학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의 기억을 영구히 보존하는 방법을 찾는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날이 더 많은 정보들과 문헌 기록들이 디지털 버전으로 저장되어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디지털 정보를 담는 저장 매체들은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생각과는 달리 영원히 똑같은 정보의 질을 보관해 주지 못한다. 일례로 CD버너로 구운 CD가 지나치게 습하거나 높은 온도에서 보관되면 5년도 못되 정보를 잃는다고 한다 (read more). 물론 그보다 더 쉽게 정보가 망가지는 경우는 CD나 DVD표면에 생채기가 나는 (be scratched) 경우다. DVD나 VHS나 가격이 같기에 같은 영화라면 DVD를 사 모았는데, 아들이가 어려서 DVD를 가지고 놀다가 지문을 많이 묻히거나 방바닥에 굴러다니면서 긁힌 경우에는 DVD가 부분 부분 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요즘은 영화 DVD를 사더라도 꼭 세단계를 거쳐 backup DVD를 구워둔다 (DVDbackup --> DVD2one --> Toast에서 DVD굽기).

내 돌 사진(사진은 아거의 돌 사진) 결국 영원히 보관되는 디지털 매체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들은 그 때 그때 새로운 매체 (새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 새 CD 또는 DVD)에 자주 옮겨서 저장해 두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는 저장 공간의 혁명이라는게 언제 현재의 주류 저장 매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새로운 저장매체를 주류로 내놓을지 모를 일이다. 몇 년 전 노트북의 배터리를 더 이상 시장에서 구하기 어렵듯이 언젠가 자신의 Zip disk나 3.5 인치 플로피의 정보들을 읽어내는 컴퓨터를 주변에서 구하기 힘들 날이 올지도 모른다.

또 하나 여전히 아날로그로 된 기록들이 현재로서는 디지털 보다 오래 보존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이전에 인화된 사진들은 75년 정도를 심한 퇴색 없이 보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나온 인쇄용지로는 200년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디지털로 이 정도 보관할 수 있는 수단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재 주류 디지털 사진 포맷(이를테면 tiff, psd, jpg나 gif)이 1세기 후에도 주류 포맷이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Posted by gatorlog at 11: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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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8, 2004

Components of creativity

Another important cognitive component of creativity is the ability to use different mental models. Shifting mental models means being able to shift from one understanding of a concept to a new and different perspective. Chi suggests that metaphors aid the shift of perspective and are thus an important form of creativity. Numerous other researchers have discussed the role of metaphor in creative problem solving (Kogan 1983, described in Dacey and Lennon 1998; Gardner 1982). Metaphors are useful because they call attention to two seemingly unrelated things. [pdf]

Posted by gatorlog at 05:0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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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7, 2004

"링컨은 게이(gay)였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든 생각

미 공화당의 등불로 받들어지는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이 게이였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한 The Intimate World of Abraham Lincoln이 출간되면서 링컨의 게이 논쟁이 -- 어쩌면 전쟁이 -- 다시 시작되었다. 저자는 1975년 The Homosexual Matrix라는 책으로 동성애에 관한 학계와 사람들의 그릇된 생각 - 동성애는 personality 장애에서 비롯된다는 프로이드 학파의 주장 -- 을 바로잡는데 크게 공헌했던 임상심리학자 C. A. Tripp이다. 이 책은 C.A. Tripp박사가 타계하기 이주일전에 탈고된 책으로 방대한 문헌에 실린 증언을 바탕으로 링컨이 게이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가장 표준으로 꼽히는 링컨 전기의 저자로 알려진 하버드의 역사학자 David Herbert Donald는 이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이 논란의 와중에 Donald박사의 한 제자이며 링컨 부인 전기를 썼던 Jean Baker박사가 스승에 맞서 C. A. Tripp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이 책의 서문까지 쓰게 되면서 관련 학계의 논란이 거센 듯하다. 오늘 전하려는 것은 이 논란의 요지보다는 어제 뉴욕타임스에 인용된 Baker박사의 말이다. 링컨이 동성애자였다면 왜 이런게 지금와서 논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Baker박사는 19세기 도덕적 비난의 대상은 자위였지 동성애가 아니었다. 자위가 차라리 더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증언했다.

...the focus of 19th-century moral opprobrium was masturbation, not homosexuality. "Masturbation was considered more dangerous," she said. "For homosexuals, there was a cloud over them, but it seldom rained." People, she noted, "were accustomed to these friendships between men."

지금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지만,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 한 시대의 보편적이고 지배적인 생각이 다른 시대에서도 늘 보편타당하게 맏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과도 맥을 같이하는 이 진리를 통해,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나 인식도 한 세기가 지나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동성애가 성격 장애에서 온다는 프로이드 학파의 주장도 75년 C. A. Tripp박사의 책이 나오기전까지는 주류 학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가?

Posted by gator at 04:1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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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7, 2004

cryptomnesia

crypt- 혹은 crypto-로 시작하는 단어는 그리스어 kruptos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hidden 혹은 secret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여기에 amnesia(기억상실)라는 단어를 더해서 cryptomnesia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일전에 언급한 정보원 기억 상실 (source amnesia) 현상에서는 정보 자체는 남아있고 누가 말했는가를 잃어버리는 경우지만, cryptomnesia의 경우에는 아예 자신의 두뇌속에 남아있는 기억이 자신의 독창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정보원에 대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cryptomnesia에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타인의 창작물에서 나온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기억하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이전에 자신이 이미 발표했던 내용을 새로운 내용으로 기억하는 두가지 경우이다. 그래서 의도적인 표절(plagiarism)과는 달리 cryptomnesia에는 이른바 무의식중의 표절(inadvertent plagiarism)이라는 꼬리표가 달리지만, 역시 표절은 표절이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논문을 쓴 Brown과 Murphy(1989)는 실험실적 상황에서 무의식의 표절을 증명해 보였지만 아직도 나는 무의식의 표절이 과연 존재할까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세간의 일화에는 이런 예들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헬렌 켈러, 조지 해리슨, 니체(Nietzsche), 그리고 프로이드(Freud)등이 이에 연루되었다. 간혹 인지 심리학자들중 최면하(hypnotized)에서 이런 무의식의 기억이 존재함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약이나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살지 않는 이상 정신이 뚜렷한 창작자들이 무의식의 표절을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cryptomnesia 사례와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여옥의 표절은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이미 여론의 법정에서는 명백한 표절로 밝혀진 이 경우 아직도 전여옥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성을 내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한편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세계 우표 디자인 공모대회 일반부문 최우수상 수상자의 경우는 명백한 표절로 보인다[관련 글: 이게 표절이 아니라구?]. 문제의 당사자는 표절 의혹을 부인하면서 "평소에 디자인 관련 책을 많이 보는 편이라 작품을 구상하면서 기존 작품과 비슷한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는데, 이 역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변명에 불과하다.

Posted by gatorlog at 03: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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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5, 2005

블링크 1

1983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J. Paul Getty Museum으로 Gianfranco Becchina라는 이름의 예술작품 딜러가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B.C.6세기로 거슬러가는 Kuouros라는 젊은 청년을 새긴 대리석상을 소장하고 있는데 대략 $10million 정도되면 작품을 팔겠다고 했다. 게티 박물관측은 물론 아주 신중했다. U of California의 한 지질학자가 이틀간 고화질 입체 현미경으로 조사했다. 그리고 그 대리석상의 무릎 바로위의 조그만 샘플을 가지고 전자 현미경, 분광계, X-ray등을 통해 들여다본후 Thasos섬에 있는 고대 Cape Vathy 채석장에 있는 백운 대리석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14개월동안의 조사를 거쳐 결국 Getty박물관측은 이 대리석상을 사기로 잠정 결정을 내렸다. 86년에 이 작품이 처음으로 전시되었을때 뉴욕타임스는 1면에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나서 이번에는 Getty박물관 이사회에 있던 몇 몇 사람들이 초대를 받았다. 이들을 안내하던 큐레이터가 대리석상에 씌어진 보호 가운을 벗겼다. 이때 이사회의 임원이던 이태리 예술사학자인 Federico Zeri씨는 순간 대리석상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그리고 뭐라 말할수는 없지만 "뭔가 석연찮다"라는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그 옆에는 그리스 조각의 손꼽히는 전문가인 Evelyn Harrison씨가 있었다. 이사 임원들을 안내하던 큐레이터가 "아직은 우리 것이 아니지만 몇 주안에 우리 박물관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Zeri씨는 "그 말을 듣게 되다니 참 유감스럽군요"라고 한마디를 내던졌다고 회고한다. 그녀 역시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Getty박물관측은 구매를 보류하고 몇 달 뒤 뉴욕 Metropolitan museum of art 관장이었던 Thomas Holving씨를 데리고 왔다. 그는 예술작품을 보면 바로 그의 머리속으로 지나가는 생각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걸로 유명한 분이다. 그런데 이 kouros라는 대리석상을 보자마자 그의 입에서는 "fresh"라는 말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세상에...B.C.6세기 작품을 보고 "fresh"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반응이 아니잖은가? 그런데 Holving씨는 Getty박물관 큐레이터에게 "이 작품 돈주고 샀나요?"라고 물었다. 당황해 말을 못하고 있던 큐레이터에게 Holving씨가 던진 말은? "이미 돈주고 샀다면 money back을 받아야겠네요." 결국 Getty박물관측은 이 작품을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보내 진품인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아테네 고고학협회 회장이던 Dontas씨는 이 작품을 보고 바로 가짜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 작품을 첫눈에 보고 어떤 "직관적인 반감"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결국 앞에서 이 작품을 보고 첫눈에 "뭔가 문제가 있다"라고 느꼈거나 "직관적인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맞았다. 처음 2초간 한눈에 보고 느꼈던 그 반감이 14개월동안 이 작품을 가지고 온갖 과학적 조사를 했던 팀들의 조사보다 훨씬 정확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처음 "2초"에 관한 책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인데, 마침 내일 발행될 뉴욕타임스 일요 매거진에 이 책의 서평이 올라왔다. DAVID BROOKS는 이렇게 그의 서평을 시작한다.

MALCOLM GLADWELL has written a book about the power of first impressions, and every review, including this one, is going to begin with the reviewer's first impression of the book.
Mine was: Boffo.

Posted by gatorlog at 08:0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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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5, 2005

브랜드에 중독된 뇌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일전에 정당 지지에서 뇌의 역할에 대한 fMRI 연구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처럼 첨단 의학장비를 이용해서 뉴로사이언티스트들은 이제 종교적 신앙, 정치적 당파성, 그리고 경제적 판단과 소비행태등에서 나타나는 개인간 차이를 뇌의 작용으로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특정 브랜드를 보여준 후 이 브랜드에 아주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에 뇌의 작용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보는 실험이 있었다. 실험 결과 브랜드 중독이 강한 이들의 뇌에서는 우리 감정을 전달하는 감각적 통로인 amygdala가 아주 왕성한 활동을 보였음을 발견했다 [관련기사 보기].

인간의 경제적 선택 행위가 비합리적인데 기반하고 있다는 연구로 주류 경제학의 기존 전제를 엎어버린 Daniel Kahneman --- 프린스턴대의 인지심리학자이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음 --- 은 바로 "감정(emotion)"이라는 것이 인간 경제 행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인이라고 설명해왔다.

David Pogue는 언젠가 iPod mini의 대히트를 목격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비합리적 경제 행위의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250를 주고 1000곡을 넣을 수 있는 iPod 미니가 나왔을때, 테크 전문지들은 한결같이 당연히 실패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생각해보라. $50만 더 주면 4배의 용량을 지닌 iPod을 살 수 있는데, 누가 미니를 사겠느냐고? 그러나 결과는? 공급이 수요를 따를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없어서 못팔지 않았던가?

100만원짜리 핸드백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두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게는 짜가에 100만원짜리 브랜드를 붙여놓고 다른 그룹에게는 진짜 브랜드를 짜가라고 알려준뒤 뇌속을 들여다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언스지에 실리지 않을까? ㅎ ㅎ

Posted by gatorlog at 05:5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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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05, 2005

왜 a77ila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을까?

붐비는 파티장을 연상해보자. 사람들이 북적대고 파티장에는 경쾌한 재즈음악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칵테일 잔을 들고 둘 셋씩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연히 왁자지걸하다. 여기에 내가 칵테일을 들고 어떤 사람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하자.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두명의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그들의 이야기 가운에 "아거가 말이죠..."라면서 내 이름이 들린다고 하자. 나는 순간 그쪽으로 시선을 들여다 본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나는 내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결국 이는 내가 실제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단지 나는 뭔가 내게 의미가 있는 중요한 뭔가가 있을 때 주목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를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하고, Colin Cherry라는 영국의 심리학자가 발견한 이 문제(pdf)는 이후 청각적 주목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물론 이론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갑자기 뜬금없이 칵테일 파티 효과를 들고 나온 이유는 바로 사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보면서다.

뉴스리더기로 블로그라인스와 NNW(브라우저 내장)를 쓰는데, 여기서 정보 스캔은 거의 순식간에 이뤄진다. 새로운 글이 있으면 잠시 제목에 눈길을 주고 별 관심있는 내용이 없으면 바로 다음 글로 이동. 김중태님이 매일 쏟아내는 장문의 진실추구 탐사보도를 읽은데 할애하는 시간은 별도로 한다면, 한 200여개의 한글, 영문 RSS스캔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에서 한시간 사이이다. 그 가운에 이렇게 a77ila라는 작은 글씨가 눈에 띄거나, "엔비 닷 컴 CEO 박수만을 만나봐야 한다"는 코멘트에 남겨진 글들이 빼곡한 글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에 링크가 달렸는데 보지 못하는 것 역시 주목의 문제다. 단위 시간내에 우리가 보고 읽고 듣는 정보에서 자극물이 전하는 인풋(input)중에서 우리의 주목을 받고 다시 기억으로 연결되는 것은 몇%나 될까?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 신체의 감각 채널들(눈, 귀, 코등)을 통해 지각 (perception)되는 정보는 그게 청각 정보건 시각적 신호이건 모두 우리 인지적 처리 용량의 한계에 의해 제한적인 주목을 받는다. 앞에서 말한 칵테일 파티 효과는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수많은 신호와 소음 가운데 특정 신호만을 선별해서 듣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호와 소음 다 합쳐져서 동일 공간내에서 발생하는 음파는 모두 우리 귀에 100% 들려야 하는데, 이중에서 우리가 듣는 신호는 겨우 몇 개 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귀에 들리는 아주 일부의 신호는 바로 우리의 주목(attention)을 받는 신호이다.

마찬가지로 위에 보이는 한장의 사진을 100여명에게 약 2초씩 들여다보게 하고 무엇을 봤는지 물어본다면 모두 각기 다른 답을 만들어낼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해커라는 단어를 기억할 지 모르고, 어떤 사람들(디시 폐인들)은 fain을 봤다고 대답할 지 모른다. 나는 a77ila를 봤다. a77ila를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5000여명에게 물어보자. 과연 몇 명이 나는 "a77ila"를 봤다고 대답할까?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게 바로 인지 심리학자들이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린스턴대학의 인지심리학자 Kahneman이 평생한 연구는 주목(attention and effort)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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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attention)에 대해

이 글은 왜 a77ila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을까?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살면서 "주목"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우리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려고 하고, 주목을 주는 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선생은 학생들에게, 군대 상관은 부하에게 모두 주목을 요청한다. 주목은 대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뿐만 아니라, 매스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광고하는 사람은 잠재적 소비자의 주목을 받고 싶어하고, 홍보하는 사람들은 좋은 지면에 자신들의 기사가 나가기를 원한다.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 기타 온갖 유명인들의 일상은 남들에게 주목을 받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주목의 개념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에 자주 모습이 잡히면 주목받는 것이었다. 지금도 물론 그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주목은 링크에 의한 주목이라는 점이 다르다. 과거의 게이트키핑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던 소수의 개인에 의해 좌우되었지만, 인터넷 시대의 게이트키핑은 검색엔진의 알고리듬에 의존한다. 인터넷 시대 검색엔진에 의한 게이트키핑은 일단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보다 주목해야 하지 않아야 할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뺏기는 역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상어로서의 주목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어떤 대상(사람, 사물, 메시지등)에 쏟는 주목의 정도는 우리에게 할당가능한 시간과 우리의 관심정도이다. 인지 심리학자들에게 주목(attention)이라는 용어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사람의 지각(perception)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주목"은 평생의 연구과제다. 주목에는 수많은 이론 (pdf: visual attention)이 있다. 인지심리학계의 주요한 패러다임중 하나인 인간의 지각작용과 정보 처리에 관한 연구들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인지적 처리 용량(cognitive capacity)은 제한되어 (limited)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감각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자극물의 양은 일정하다. 그리고 무의식의 상태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때 지각하는 기본 값은 일단 100%여야 한다. 하지만 인지적 처리 공간의 한계때문에 여기서 어디에 관심과 초점을 맞추고 어떤 것이 걸러내지는가는 전적으로 수용자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주목하는가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복잡한 장면 구성을 가진 스타워즈같은 영화라도, 졸지않고 화면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면 스크린속에 펼쳐지는 모든 장면들과 등장인물들은 우리의 지각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야 하고 모두 기억에 남아야 한다. 한데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소품들, 배경 장면들 중에서 당신이 주목하고 기억하는 것은 과연 몇 %나 될까? 구체적 장면과 detail한 정보를 모두 빠짐없이 주목하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 것이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간에도 주목해서 보게 되는 장면은 다른다. 때로는 아이들이 더 세세한 것들을 잘 기억한다. 어른들은 생각이 복잡해서다. 인지적 처리 용량은 제한되어 있는데, 어떤 장면에서 뭔가 다른 생각을 하면 그 장면의 주목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주목에는 기대 반응성이라는게 있다. 파드메가 입었던 소품이 어떤 것인지 기억하냐고 물어보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파드메가 입었던 의상과 소품들이 우리나라 한복의 컨셉에서 나왔다고 사전에 정보를 보고 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 의상에 더 많은 주목을 했을지 모른다. 물론 인지적 처리 용량은 제한적이므로 그 의상에 신경쓴 사람은 또 같은 장면에 나오는 다른 부분에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옷에 주목하느라고 대사를 제대로 못봤다든지...

파드메의 의상의 경우에서 주목의 반응성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파드메의 의상은 기모노의 컨셉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자극물에 대한 기대 반응은 우리의 언어적 추론, 이미지에 대한 상상, 그리고 이어지는 기억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파드메의 의상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게 기모노의 이미지를 봤다고 대답할 지 모른다. 주목 연구의 초기 학자중에 Gibson(1941)같은 학자는 지각자의 사전 준비와 이에 대한 반응이 주목과 뒤에 나오는 대상에 대한 기억의 수정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동물에 관한 단어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고 실험참가자들에게 일련의 단어들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오타난 단어같은 것을 몇 개 보여준다. 이를테면 sael같은 것이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본 단어들을 적어보라고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seal이라고 응답한다. 다음 집단에는 배와 관련된 단어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고, 그 배 관련 단어 중간에 sael을 넣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sail을 봤다고 응답을 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연구는 뒤에 스키마를 연구하는 인지학자들도 응용했다.

칵테일 파티 효과같은 관찰에 영향을 받은 인지심리학자들(Broadbent)은 주목이란 감각할 수 있는 정보들(sensory information)이 우리 신체내의 감각 기관(sensory channel)들의 제한적 용량(limited capacity)에 의해 걸러지게 되는 이른바 "선별적 필터(selective filter)"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 학설은 한동안 지각과 주목을 연구하는 지배적인 이론이 되기도 했지만, 후에 이를 비판하는 다른 학설들이 나오기도 했다. Deutsch & Deutsch(1963)등은 이런 선별적 필터링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우리의 주목을 받는 것은 결국 지각자가 부여하는 "중요도의 무게"라는 주장을 했다. 즉 어떤 대상에 주목을 주는 것은 그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나와 관련이 있는가, 또는 그 정보와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즈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후자의 학설에 더 많은 호응을 할 지 모른다. 내가 주목하고 안하고는 '내게 그 input이 얼마나 중요하고 관련되어 있는가,' 또는 '나와 그 input이 얼마나 상호작용을 많이 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은 참 그럴 듯 하다. a77ila같이 외우기도 힘들고 복잡한 닉네임이 깨알같은 글씨로 써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보보다 더 눈에 먼저 띄였다는 것은, 또 enbee나 suman같은 단어들이 수많은 영어 단어들틈에서 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a77ila과 suman이라는 이름에 대해 내가 부여하는 "중요도의 무게"가 다른 것들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지심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이는 사회 심리적 요소이다.

그렇다고 Broadbent등이 주장한 선별적 필터 가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과학자 그룹내에서 이 인지적 처리의 제한적 용량 가설은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생리적 반응 (physiological responses)을 재는 기술과 최근 뉴로사이언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의 주목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이 인지적 용량의 한계에서 오는 이런 생리적 필터링을 증명해 왔다.

이 두가지 학설은 물론 영국 옥스포드 출신의 여류 심리학자 Treisman -- 프린스턴에서 종종 Kahneman과 공동 연구로 주목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켜옴 --- 에 의해 절묘하게 통합이 되었다. Treisman은 선별적 필터링을 약화된 필터링(the attenuation filter)으로 바꾸면서,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주목받지 못한 input들은 완전히 차단되어지는게 아니라 살아는 있지만 단지 약화된 정보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 인지처리 과정중에서 이른바 "dictionary units"들이 약화된 정보와 약하지 않은 정보 모두를 다시 처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로 우리가 이들 정보에 부여하는 중요성, 관련성, 상호작용성, 상황적 해석등의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상이 60년대말, 그리고 70년대 초까지 이어진 주목에 관한 학문적 발전 과정이다. 이 주목이라는 것이 너무나 큰 연구 영역이라 블로그 글 한꼭지에 정리하기는 무리가 있다. 거기다가 내 주경기 종목도 아닌데, 수영하던 사람이 달리기장에 뛰어 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다만 최근 내가 우연히 주목하게 된 한두가지 에피소드속에서 "사람들은 왜 주목을 하고 어떻게 주목을 하는가"에 대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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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9, 2005

탐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사이비 과학을 제거하라?

"과학이 종교가 되면 이는 Scientism이 된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 말미에 인용된 이 멋진 말은 과학 근본주의자들을 비꼬기 위함이다.
[이미지: The New Yorker July4,2005]
그런데 진짜로 과학의 이름을 내세워 종교를 만든 그룹이 있다. 이른바 Scieontology그룹이다. 사이언톨로지는 전세계에서 가장 시선이 집중되는 사람중의 한 명을 선교사로 두고 있다. 바로 탐 크루즈다. 탐 크루즈는 최근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 치료 약물 복용을 했다고 밝힌 브룩 쉴즈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브룩 쉴즈가 필요한 것은 비타민과 운동, 그리고 종교(=사이언톨로지)에 귀의하는 것"이라고 말해 브룩쉴즈의 감정을 건드린 바 있다. 그리고 엊그저께는 미국 NBC TV의 간판 프로그램중 하나인 Today쇼에 나와, 이 쇼의 진행자 Matt Laurer를 향해 아주 공격적이고 논쟁적인 어조로 정신치료학(Psychiatry: 주로 정신의학으로 번역됨)을 비판했다. 지켜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탐 크루즈가 이성을 잃고 화가 난 표정이었다는 인상을 가질 정도로 아주 격렬한 공격이었다. 탐 크루주는 "정신치료학은 사이비 과학(pseudoscience)"이다라면서 "그녀(=브룩쉴즈)는 정신치료학의 역사를 이해못한다. 그녀는 바로 Matt 당신 (=Today쇼 진행자 Matt Laurer)이 정신치료학을 이해못하는 것과 똑같이 정신치료학이 뭔지를 모른다"고 다소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했다. 그가 분을 참지 못했던 대목은 바로 정신과 의사들이 hyperactivity와 attention-deficit disorder 를 보이는 어린이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Adderall과 Ritalin에 대한 말이 나오면서다. "Matt, 당신이 Adderall이 뭔지 알어? Ritalin이 뭔지나 알어? 지금 Ritalin은 일종의 마약이란 말이야. 알기나 하냔 말이지? Matt, Matt, Matt, Matt, Matt, Matt, 당신은 말이지.......당신은 말만 번지르하지 알맹이는 없어 (You're glib). 당신은 심지어 Ritalin이 뭔지도 모른단 말이야.... 당신이 화학적 불균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말이야, 그런 이론들이 어떻게 제안되었는가에 대해 연구 논문들을 읽고 평가할 줄 알아야 하는데.....Matt 오케이? 바로 내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이미지: The New Yorker July4,2005]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는 신도의 수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 자체가 하나의 컬트(cult)라고 보는 나로서는 과학을 빙자한 종교에도 거부감은 없다. 또 솔직히 말하자면 "예수 믿으면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라는 말보다, "비타민을 많이 섭취하고 운동 열심히 하면 우울증을 고칠 수 있다"는 탐 크루즈의 말이 내게는 약간 더 신빙성있게 들린다. 그리고 psychiatry는 유사과학이다라는 탐 크루즈의 주장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정신치료학은 과거에는 모든 것을 유사과학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의존해서 환자를 대했던 관행에서 탈피 점차 뇌의 구조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마치 과학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를테면 2000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에릭 캔들 (Eric Kandel)박사의 경우도 정신치료학에 입문한 것은 유사과학인 정신분석학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현재는 뇌 세포상 분자의 변화가 인간의 기억과 학습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이른바 뇌 해부학적 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정신치료학에 이바지하려고 한다 [비즈니스윅 인터뷰 2004년: 1달러 뇌 스캔 시대를 그린다는 Eric Kandel박사]. 워싱턴 포스트의 특집기사들MIND AND CULTURE: Psychiatry's Missing Diagnosis를 잘 분석해 보면 정신치료학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정신치료는 객관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10명의 정신치료사에게 한 정신병 환자를 보여주면 10가지의 진단이 나온다는 자조적인 농담도 하는게 바로 정신치료학계이다. [...] (아직도 뉴로사인언스에서는 연구가 진행중이지만) 정신과 의사들에게 두 개의 다른 fMRI 스캔한 뇌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떤게 건강한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스키조프레니아 (schizophrenia)나 우울증 혹은 기타 수많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것을 구분해보라고 하면 구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 크루즈의 최근 행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탐 크루즈의 언행에서 보여지는 비이성적이고 근본주의적 사고때문이다. 남녀노소,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좋아할 인상을 가진 이 매력적인 명배우 -- disclosure: 탐쿠르즈는 탐 행크스, 짐 캐리, 잭 니콜슨, 로빈 윌리암스에 이어 내가 다섯번째로 좋아하는 미국 남자 배우임 -- 도 사이언톨로지라는 종교의 전도사 명함을 내밀때는 신들린 무당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종교의 폐해이다. 아시다시피 사이언톨로지의 궁극적인 미션(mission)은 이 땅에서 정신치료사가 행하는 모든 영역에 사이언톨로지의 깃발을 꽂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결코 과학의 영역을 대체할 수 없다. psychiatry는 사이비라기보다는 현재로서는 유사과학이다. 더더구나 현재까지의 psychiatry는 백인 남성 환자들에 치우친 학문이며, 약물 치료 의존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이언톨로지보다 psychiatry는 앞으로 더 정신병 치료에 공헌할 잠재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일단 학문으로 정착되었고, 동료들이 평가하는 학술 저널들을 발간하며, 마지막으로 가장 반가운 것은 이른바 이야기에 의한 정신치료(narrative pscyhiatry)등 점점 긍정적인 학문의 세분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치료학이 완벽한 과학이 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차라리 정신치료학은 유사과학임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출발하는게 나을 듯 싶다.

Update:
브룩 쉴즈가 탐 크루즈를 비판하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올렸습니다. 산후 우울증을 너무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어 조금 거부감이 들기는 했지만, 어쨌건 고통스러운 병을 앓았다가 재활한 사람에게 자신만의 치료법이 최고고 네 치료법은 비과학적이라는 식의 접근을 취했던 탐 크루즈는 꽤 비판받을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의 링크를 꼭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혹시 제 글이 정신치료학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브룩 쉴즈가 내 글에 반론을 쓴 것은 아니지만, 제가 어떤 특정 의견을 피력했기에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제 글에 대한 반론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War of Words By BROOKE SHIELDS Update:

There is no standard procedure for treating musical hallucinations. Some doctors try antipsychotic drugs, and some use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to help patients understand what's going on in their brains. "Sometimes simple things can be the cure," Dr. Aziz said. "Turning on the radio may be more important than giving medication." [Neuron Network Goes Awry, and Brain Becomes an IP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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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2, 2005

컨텍스토미 I: 앨 고어의 주목(朱木)나무

참고한 글: McGlone (2005); 다른 곳에 실린 같은 내용의 글을 pdf로 읽을 수 있습니다.

1998년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던 앨 고어는 느닷없이 1992년에 출판했던 책 Earth in the Balance로 세상이 시끄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필화에 휘말린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보수 칼럼니스트 David Ridenour라는 자가 Austin American-Statesman에 기고한 글에서 시작된다. Ridenour는 앨 고어가 기꺼이 "사람들보다 환경에 관한 정치를 우선시하겠다"는 요지의 글을 기록했다면서 급진적 환경주의자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Ridenour라는 자가 인용한 92년 발행된 앨 고어 책의 한 대목이다.

태평양산 주목나무(Yew Tree)를 베고 이를 가공해서 폐암, 유방암, 그리고 자궁암 환자의 치료를 위해 다소 유망한 치료 효과를 보인다는 Taxol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주목나무를 희생한다 (sacrifice the tree for a human life)는 것은 아주 손쉬운 선택처럼 보인다. 우리가 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세 개의 주목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말이다...(Earth in the Balance, 119 페이지)

의도적으로 고어 죽이기를 겨냥하고 쓴 칼럼이기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신문에 실린 글이었지만 이런저런 보수 논객들의 연결망을 타고 위에 인용된 문장은 하루도 안되서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보수파들의 앨 고어 죽이기 발언과 글들이 수도 없이 이어졌고, 1년 뒤에는 미 하원 환경 정책에 관한 토론에서 공화당의 매킨토시 의원은 "인간의 생명보다 세 그루의 나무를 중시하는" 미 부통령이라고 악의적인 프레이밍을 했다.

세 그루의 나무 대(對) 인간 생명, 세 그루의 나무 대(對) 암 투병을 하는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 이 대결에서 나는 명백히 인간의 생명을 선택할 것이오. 끔찍한 암이라는 병과 투병하는 개인과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생각해 보란 말이오. 나는 명백히 세 그루의 나무는 그 생명과 바꿀 가치가 있다고 말할 것이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세 그루의 나무를 희생시킬 수 있소. 그러나 누구에게나 명확한 이 원칙이 유독 우리 부통령에게는 명확하지 않은가 보구려...

그렇다면 당시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를 이처럼 곤혹스럽게 만든 문제의 글은 어떤 맥락에서 쓰여졌는가? 정말 고어는 암 환자 한 명을 고치기 위해 세 그루의 나무를 베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식의 글을 썼을까? 역대 미국 정치인 가운데 가장 smart한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앨 고어가 정말 그런 내용의 글을 책에 적었을까? 원문을 읽어보자. 분명히 보수파들이 인용한 그 문장은 앨 고어 책의 119페이지에 적혀 있다.

열대 우림에만 있는 대부분의 나무 종들이 현재 절박한 위기에 놓여 있다. 부분적인 이유는 이들 멸종 위기에 놓인 나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목나무를 생각해 보자. 온대 수목림의 한 종으로서 현재 태평양 북서부에서만 자라는 종이다. 태평양산 주목나무(Yew Tree)를 베고 이를 가공해서 폐암, 유방암, 그리고 자궁암 환자의 치료를 위해 다소 유망한 치료 효과를 보인다는 Taxol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주목나무를 희생한다는 것은 아주 손쉬운 선택처럼 보인다. 우리가 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세 개의 주목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것, 백년 이상이 된 그루들만 암치료에 효과가 있는 화학물질(Taxol)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주목나무만이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말이다. 갑자기 우리는 몇개의 어려운 질문앞에 놓인다. 우리 미래 자식들 세대를 위한 의학적 필요는 얼마나 중요한가? 오늘 이 지구상에 살아 숨쉬는 우리들은 주목나무가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그리고 그로 인해 미래에는 주목나무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해 진다고 해도 현재 우리들 중 몇 명의 생명을 위해 이 나무 모두를 벨 권리를 부여받았는가?

글의 앞뒤 문맥을 이어서 읽어보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편리와 생명을 위해 후손들도 영유해야 할 권리가 있는 귀중한 자원을 오늘날 모두 고갈시키는 자원 소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당연한 문제 제기가 아닌가?

[이 글은 이어집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1:5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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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8, 2005

그때나 지금이나

"그때는"을 읽으면서 그동안 블로깅 생활에서 느꼈던 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가 처음 블로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몇 해 전 우연히 누군가의 블로그에 있던 달력을 보면서다. 그 블로그 형식은 기억을 붙잡고 싶어하던 내게 너무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열심히 블로깅을 했다. 그때는에 적힌 것처럼 가장 큰 변화는 "뭔가 사물이나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사소한 일도 뭔가 쓰기 시작하면 중요한 일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다. 그러던 중 가상적 네트워크망에서 익명화된 혹은 보이고 들리지 않는 존재들과의 관계맺기나 글쓰기가 더 이상의 울림도 떨림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가온 이른바 블로그 권태기를 겪게 된다. 자연스럽게 가상공간에 내 디지털 아이덴티티(digital identity)를 갖고 매일 기억의 일부를 기록한다는 것이 내 인생에 별 중요한 의미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때마침 국내외 정세가 내 마음의 평정을 잃게 할 만큼 아주 요동을 쳤다. 나는 블로그 공간이 두려워져서 떠나려는 시도를 했다.

그렇지만 떠날 수 없었다. 블로그는 결국 자극이고, 관계고, 약속이다. 그러나 역시 다시 기억의 문제로 돌아온다. 블로그는 기억이다. 아픈 사랑의 기억이고, 내 젊은 날의 초상이며,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기억이며, 충격적인 일을 당했을때 생생한 장면묘사를 담아내는 섬광기억이고, 때로 내 스키마대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왜곡된 증인의 기억이다. 블로그속에서 나는 몽상가이며 문상객이고, 성난 군중의 한 명이며, 엉뚱한 제안자이고, 관찰자이며, 매뉴얼 작성자이면서 트렌드세터(trend-setter)이다.

어느 순간이 넘어가면서부터 GatorLog를 기록하는 목적은 하나가 되었다. 될 수 있으면 내 인생에, 내 career에 도움이 되는 기억만을 담아내자는 것이다. 에피소딕과 시멘틱 기억 사이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시멘틱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끔씩 에피소딕 기억을 남긴다. 그게 블로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에는 내 젊은 날의 초상에 대한 구체적인 스케치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 다시 말해 내 자서전적 기억을 남기지 않을 뿐이다.

최근에는 글 한 편 한 편 쓰는게 두려워졌다.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기억을 남겨주지나 않을까 싶어서이다. 얼마전에 내게 이메일 보내 온 어느 블로거의 편지 일부다.

이번에 설치형 블로그를 처음 사용하려는 초보 블로거입니다. ^^; 툴로 태터와 워드프레스 중 무엇을 사용할까 고민하다 워드프레스가 더 마음에 들어 사용하려고 하는데요, 워드프레스로 작성하는 포스트 중 공개는 되나 RSS 피드에는 수집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런지요. 일상신변잡기 같은 내용까지 feed로 내뿜어서 정보 공해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보니....

정보 과부하 시대의 정보 엔트로피 관리에 관심이 있는만큼, 내 자신도 가끔 이런 정보 공해 유발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또 다른 두려움은 바쁜 시대에 괜히 남들 머리아프게 만들고 있지나 않나 하는 두려움이다. 지인들중에 내 블로그를 아는 사람은 몇 안되지만, 그 중 가끔 의견을 주는 이가 내 블로그는 너무 어렵고 재미없어서 읽지 않는다고 한다. 20대에 이 모든 생각을 남기신 그 분을 생각하며 늘 내 어리석음과 생각의 짧음, 잡글의 남발을 반성하는 가운데 그런 말을 들으면, 역시 내가 글을 남길 사람은 아니구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음 세가지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을 하기에 나는 오늘도 역시 블로그에 이런 기록을 남기게 된다.

세계와 접촉기간이 짧은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플라톤의 문제)“많은 양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그렇게 아는 것이 없는가?”(오웰의 문제) “수많은 인간의 신비와 인식론의 경계 밖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데카르트의 문제) [위선의 성채를 깨부수다]

Posted by gatorlog at 03:5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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