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08, 2003

피그말리온 효과 1

우리나라에서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coach)이란 직책은 바람잘 날 없는 자리이다. 역대 축구 국가 대표 감독을 맡았던 사람들은 찬사보다는 모진 마음 고생을 하고 자리를 떠났던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던 히딩크는 예외다. 히딩크의 영웅 등극 신화를 지켜보면, 논란이 많은 이른바 "기대효과"의 타당성에 대해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U of California at Riverside의 저명한 심리학자 Robert Rosenthal은 "기대는 자기 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rsy)"이 된다는 이른바 기대효과 (expectation effect)를 제시해서 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로도 알려진 이 자기 수행적 신념(self-fulfilling belief)의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바라보거나 판단하는가에 따라, 그 대상자의 행위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새로 오신 선생님이 뛰어나다는 기대를 가질 경우, 그 기대를 받은 선생은 기대에 부응하는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또 새로 부임한 코치가 팀을 잘 이끌어 월드컵 4강에 들게 만들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경우, 이 코치는 이 기대에 부응하는 선전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 효과는 일반적으로 위에서 예시한 것보다는, 주로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기대효과에 종종 더 초점이 맞춰진다. 이를테면 학교 선생이 특정 학생에게 기대를 갖고 있을 경우, 그 기대를 받는 학생이 더 우수한 능력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교사의 기대효과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비과학적인 이 자기 수행적 예언의 이면에는 비교적 타당한 논리가 숨어 있다. 바로 그 기대효과에 따라 기대를 주는 사람들이 기대를 받는 사람에게 암묵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은 고전이 된 유명한 실험에서, Rosenthal 과 Jacobson(1968)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무작위로 선발한 일군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효과를 증명해 보인다. 학기 초에 어떤 선생님에게 한 학급 학생 중 특별히 4명의 학생이 어떤 능력 테스트에서 다른 학생들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고 전체 학생 중에 위에서 말했던 4명의 학생들의 IQ성적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더 낳았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 놀라운 결과는 전 미국 교육 심리학계의 교과서에 기록이 되고, 이 결과가 주는 함의가 계속해서 논의가 되어 왔다. 바로 기대를 갖는 대상에 대해 기대를 주는 사람이 보여주는 태도는 다른 대상에 주는 태도보다 "더 우호적이고, 더 이해의 폭을 넓게 해 주고, 어떤 행동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며, 차별화된 피드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대효과는 단지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한 실험에서 12명의 사람에게 생쥐 5마리를 할당해 주었다. 6명의 사람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쥐가 다른 쥐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주고, 다른 6명에게는 이 쥐들이 다른 쥐보다 멍청하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이들 쥐들은 똑같은 종에서 추출했고 오직 차이는 그들을 훈련시키는 학생들의 기대치에만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 12명의 학생들에게 5일간 그들의 생쥐를 미로에서 훈련시키는 일을 하게 했다. 결과는? 역시 좋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던 학생들에게서 훈련 받은 쥐들이 미로를 통과하는데서 더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Rosenthal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은밀하게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 (covert communication)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기대치를 높게 가진 학생들은 쥐들의 행동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좀 더 편안하게 대해 주었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열등한 쥐라고 들었던 학생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쥐들이 어떤 부족한 행동을 보이면, '이 멍청한 놈의 쥐'라는 식으로 쥐들을 자극하고 스트레스를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glossary.jpg피그말리온 신화에 대해: 시프루스 섬에 살았던 Pygmalion 이라는 뛰어난 조각가는 여성 혐오자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일지라도 조금씩 부족함이 발견되는 것을 못마땅했던 그는 결혼하지 않기로 작심한다. 그리고 그의 천재성을 통해서 완벽한 조각 여인, Galatea가 탄생한다. 그는 일순간 그의 창조물과 사랑에 빠지지만, 조각품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조각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애절한 사랑에 감동한 여신 비너스는 이 여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결국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과 결혼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Rosenthal, R., & Jacobson, L. (1968). Pygmalion in the classroom: Teacher expectations and pupils' intellectual development.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
Rosenthal R. (2003). Covert communication in laboratories, classrooms, and the truly real world.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2, 151-154.

Posted by gatorlog at 02:24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2)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November 10, 2003

피그말리온 효과 2: 자기 실현적 예언

1927년 Bertrand Russell은 과학 세계의 동향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joke를 던진 적이 있다.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동물들은 엄청난 기운을 과시하며, 주어진 일에 거침없이 덤벼들어, 결국 (실험자들이)요구하는 결과를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 낸다. 반면 독일인들에 의해 연구된 동물들은 차분히 앉아 생각을 함으로써 내적인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원하는 해법에 도달하게 된다." Russell이 한국인들의 행동 유형을 관찰했다면, 어떻게 "한국인 과학자들에 의해 관찰된 동물들은..."이라는 생각을 보였을 지 궁금하다. 어쨌건 러셀의 재치있는 유머 역시 지난 번에 이야기한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과 일맥상통하는데가 있다.

self-fulfulling prophesy의 기본은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에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타인에 의해 가진 적대적 생각이나 태도는 타인의 나에 대한 적대적 생각이나 태도를 낳는다는 것이다. 물론 집단간, 혹은 민족간 갈등이나 협력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미국 부시 정권이) 변명을 한다고 해도, 미국 내 부시를 비롯한 공화당 편견주의자들이 가지는 아랍권과 이슬람 문화를 무시하는 태도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통해, 부메랑이 되어 반미감정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과정을 관통하는 것은 역시 Rosenthal박사가 설명했듯이, 스테레오타입, 냉대, 차별, 무시의 감정이 암묵적인 커뮤니케이션(covert communication)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시 사람대 사람간(interpersonal) 상호 작용으로 관점을 좁혀 self-fulfilling prophecy를 이야기 해 보자. 이성간, 혹은 배우자 간 문제가 아마 적합한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 테면 갑돌이가 여자 친구를 기대하는 방식에 따라, 여자 친구 역시 기대하는 믿음에 근접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자신의 배우자를 부정한 사람으로 의심하면, 어쩌면 진짜로 자신의 배우자가 가정 파탄에 이를 행동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는 섬뜻한 가설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의 Mark Snyder (1977, 1984)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한 번 형성된 social world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다른 사람들을 그 믿음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77년 유명한 실험에서 Snyder와 그 동료들은 실험집단의 남학생들을 상대로 여자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난 후, 전화를 통해 그들이 사진에서 본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여성 혹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전화 통화를 하게 했다. 전화 통화 후 실험 집단의 남자학생들과 통화를 했던 여자 실험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코멘트 분석 결과, (남학생들에 의해) 매력적인 여성으로 생각되었던 여자들이 매력없는 여성들로 생각되었던 여성들에 비해 더 우호적이고 상냥하게 이야기했음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남학생들의 잘못된 믿음들이 self-fulfilling prophecy가 되어, (아름다운 여성이 더 원하는 여성이라는 남성들의 스테레오타입을 확인시키는 쪽으로) 그 여성들이 남성의 기대를 실현시켜주었을 (fulfill)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Snyder는 이를 behavioral confirmation이라고 했다.

아직 Computer Mediated Communication (CMC)에 이를 적용시킨 연구는 없다. 그렇지만 Web-based communications에서는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막연한, 혹은 어떤 몇가지 단서들에 근거한 "기대"를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belief confirmation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를테면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를 통해 만나는 이성, 혹은 friendster.com같은 곳에서 만나는 이성 혹은 사이버 친구들간에, 그리고 블로그 공간에서 만나는 블로거들간의 만남에서도 이런 belief confirmation 혹은 self-fulfilling prophecy의 가능성은 크다고 하겠다.

Snyder, M. (1984). When belief creates reality. In L. Berkowitz (Ed.),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vol. 18, pp. 248-306). New York Academic Press.

Snyder, M., Tanke, E. D., Berscheid, E. (1977). Social perception and interpersonal behavior: On the self-fulfilling nature of social stereotyp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5, 656-666.

Posted by gatorlog at 01:46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November 13, 2003

Characteristics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1 [Psychology of the Web]

일찌기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다른 인접 학문을 연결하는 사회과학의 교차로에 설 것임을 예언했던 Wilbur Schramm (1963)의 말 속에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우리 생활의 기본이라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communication is a -- perhaps the - fundamental social process. Without communication, human groups and societies would not exist. One can hardly make theory or design research in any field of human behavior without making some assumptions about human communication. (p.1)."

물론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 등 자존심이 강한 중심부 학문에서는 애써 대수롭지 않게 보려고 하겠지만, 미디어가 점점 진화해 가면서, 특히 이제 그 진화의 주류가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Schramm이 진단한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중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 가운데 더 특별한 경향은 인간 커뮤니케이션(human communication)연구의 부활이라는 점이다. 1950년대 이후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흐름은 이른바 mass communications에 있었다. 신문, 라디오,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이 인류 문화의 한가운데 주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로 자리잡으면서, 학문으로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당연히 매스 미디어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였다. 물론 1970년대 "수용자가 미디어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지만, 그래도 "미디어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패러다임은 오랫동안 주류 커뮤니케이션 연구 진영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인터넷이 몰고 온 미디어의 혁명은 이제 human communications도 아니고, mass communications도 아닌, 바로 computer-mediate communications(CMC)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낳고 있다. 이 CMC는 예전처럼 미디어의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향하고 제한적 피드백에 국한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현상과는 사뭇 다르다. CMC는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의 분류법대로 보자면 매스 커뮤니케이션 보다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더 근접해 있다. 여기서 인간 커뮤니케이션이란 가족이나 친구간에, 혹은 교사와 학생간에, 혹은 더 크게는 기업의 초청 강연에 온 연사와 수많은 청중간에 행해지는 커뮤니케이션을 말한다.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 (CMC)은 엄밀하게 광범위한 분야를 안고 있다. 이를 테면, email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도 CMC이고, 온라인을 통한 chatting 행위도 CMC이다. 블로깅(blogging) 역시 CMC의 특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 왜 이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혹은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CMC는 꼭 인터넷을 매개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화상회의도 컴퓨터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Schramm, W. (1963). Communication research in the United States. In W. Schramm (Ed.), The science of human communication (pp. 1-16). New York: Basic Books.

David Gray 의 Babylon이 마지막 곡으로 올라감...

Posted by gatorlog at 06:43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November 16, 2003

Characteristics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2 [Psychology of the Web]

인터넷이 점점 미디어 진화의 중심축에 자리잡고 사람들의 삶에 깊숙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여러 분야의 사회과학자들은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 (CMC)의 특성들과, CMC가 개인, 그룹, 그리고 조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연구의 중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CMC가 암시하는 메타포(metaphor)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등장 이전에 CMC하면 주로 인간과 컴퓨터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가였다. 바로 Stanford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Clifford Nass가 주도하는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을 지칭하던 CMC는, 이제 "웹 상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과 인간간에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주제로 이동을 마친 상태다.

Gatorlog에서 연재하고 있는 글(Psychology of the Web)은 바로 변화된 메타포를 반영해 "웹 상에서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상호작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과거 이 분야에서 주류 연구들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컴퓨터 시대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문제의 중심 화두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기에,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연구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

Stanford 대학의 Nass와 그의 제자인 Steuer (1993)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자기와 타인에 대해 적용하는 사회적 규범을 컴퓨터와의 관계에도 적용하는가를 연구했다. 여기서 자기와 타아에 대해 적용하는 사회적 규범이란 이런 것이다. "타인에게서 받은 평가는 자기가 내린 평가보다 더 정확하다는 생각;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칭찬은 자신이 자기에게 한 칭찬보다 우호적 평가를 받는다; 자기 자신에게 내린 비판이 타인에게 내린 비판보다 더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Nass와 Steuder(1993)는 인간관계의 이런 법칙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데 반영되는가를 실험 연구 했다. 이들의 전제는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인간은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규범이나 인상 관리에서 적용되던 원칙들을 적용하지 않을 것인 반면, 컴퓨터 중독자의 경우 컴퓨터가 대체한 사회적 역할들 (이를테면, 컴퓨터 중독 치료사 역할을 하는 ELIZA라는 프로그램, 전화기의 자동 응답 서비스, 컴퓨터 tutor system, 컴퓨터 비서, 컴퓨터 체스 게임에서 사용자와 게임하는 컴퓨터 적수, 제한된 음성 인식 능력을 갖춘 로봇 Julie등등...)을 대하는 데 있어서, 인간들의 상호작용에 가까운 사회 법칙을 적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실험은 컴퓨터가 자아 개념이 없고, 자아적 동기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한 집단은 한가지 남성 목소리만을 들었고, 다른 집단은 두개의 남성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한 집단은 컴퓨터의 목소리에서 칭찬하는 소리(자찬, 다른 사람 칭찬)를, 다른 집단은 컴퓨터의 음성속에서 비판(자기비판, 혹은 다른 사람 비판)하는 내용을 듣게 한 후, 참석자들에게 컴퓨터에서 들었던 칭찬과 비판의 정확성, 공정성, 그리고 컴퓨터에 대한 호감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한 컴퓨터에서 한가지 목소리를 들었던 집단에 비해, 한 컴퓨터에서 두 개의 다른 목소리를 들었던 집단에 속했던 참가자들은 다른 목소리를 또 다른 정보 개체처럼 간주해, 마치 다른 의도와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사회적 법칙들을 적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비판: 이들 실험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실제로 컴퓨터에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모두 정상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는 점이다).

Reeves와 Nass (1996)는 Media Equation이라는 책에서 이 실험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실험실의 참석자들이 이 컴퓨터들을 하드웨어간의 의미없는 신호의 작용으로 간주하기는 커녕, 마치 사회적 상호작용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읽어 보면 상당히 난해하고 현실적 적용력이 떨어질 것 같은 이런 생각들에 굴지의 미국 기업들이 프로젝트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edia Equation을 보면 이런 비즈니스적인 적용이 예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어떤 회사의 소프트웨어는 두명의 재정 전문가의 이미지를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제품에서 그 두 명의 강사들은 서로 자신이 전문가라고 말하고, 나름대로 각자 자신들의 빵빵한 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이들 전문가들이 서로 상대방을 전문가라고 치켜 세웠다면 나았을 것이고, 소비자로부터 더 호감을 얻었을 것이다 (p.72)."

Nass, C., & Steuer, J. (1993). Voices, boxes, and sources of messages: Computers and social actors.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19(4), 504-527.
Reeves, B., & Nass, C. I. (1996). The media equation: How people treat computers, television, and new media like real people and place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Posted by gatorlog at 09:01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November 18, 2003

미디어는 기억이다 1

Marshall McLuhan이 미디어의 진화는 인간 기능의 기계적 연장 (The mechanical extensions of humans)라고 말했을 때, 그는 결정적으로 인간 "두뇌"(brain)의 연장에 대해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재 미디어가 진화하는 방향은 우리의 두뇌, 엄밀하게는 우리 "기억(memory)"의 연장이라는 궁국적 목적을 향해 달려 가고 있는 듯 하다. 이런 관점에서 미디어는 메시지(medium is message)라고 주장했던 맥루한의 대명제는 이제 미디어는 기억(medium is memory)라는 명제로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Brody, 1999).

인지 심리학계에서 기억(Memory) 연구의 거장으로 통하는 U of Toronto의 Endel Tulving (1983) 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메모리는 크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체계에 근거한 시맨틱 메모리(semantic memory)와 우리의 경험 체계에서 오는 에피소딕 메모리(episodic memory)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런데 컴퓨터가 열어 놓은 정보화 시대의 초기에, 사람들은 주로 "지식 체계"의 저장만을 생각했었다. 다시 말해 두가지 메모리 체계중에서 semantic memory의 연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저장할 수 없었던 우리 두뇌의 다른 기억 체계, 다시 말해 시공간적 정보가 함께 결합된 이벤트 메모리인 episodic memory를 컴퓨터가 대신 저장해 줄 것이라고 여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겠지만, 이게 어렵다고 본 이유는 바로 인공지능이라 할 지라도 어떤 이벤트에 얽힌 인간의 희노애락, 즉 감정(emotion)을 모두 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게 주 요지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에 기반한 경제가 "정보 생산의 혁명"으로 달려가고 있고, 그래서 "상품의 제조"(manafacturing goods)라는 산업 혁명 이후 경제의 중심 화두가 "정보 생산"(manafacturing information)의 패러다임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요즘, 우리는 이제 지식과 관련된 기억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벤트에 얽힌 기억까지도 컴퓨터에 의해 저장되고 심지어 불특정 다수에 의해 공유된다는 어찌보면 무서운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난 번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일어났던 한 이벤트를 상기해 보자. 한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의 야구팬은 시카고 컵스의 수비수가 잡을 수 있었던 파울 볼을 먼저 손을 내어 잡아, 결국 이날 경기 패전의 발단을 제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성난 시카고 컵스 팬들은 텔레비전 화면에 잡힌 이 사람의 모든 단서를 바탕으로, 이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의 가공한 정보 저장과 빠른 정보 흐름으로 그 파울볼을 잡은 사람은 다음 날 신문 가판대의 1판이 나오기도 전에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나락으로 떨어져야했다. 바로 그 사람이 입고 있던 옷에서 어떤 초등학교 야구단의 이름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단서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 내고, 여기에 근거해 이 사람의 신원을 금새 확보한 것이다.
View image

지난 번 한국 대선 때 부산 자갈치 시장 아줌마의 노무현 후보 찬조 연설에 대응해서 한나라당이 급조한 아이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던 평범한 주부 찬조 연설자는, 인터넷에 공유된 기억에 의해 순식간에 한나라당 보좌관임이 폭로되어 망신살을 산 적이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웹로그의 등장은 희노애락의 감정까지도 시공간적 묘사와 함께 영구히 남겨주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에피소딕 메모리"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이동 전화와 무선 인터넷이라는 모마일(mobile) 테크놀로지의 진화에 힘입어, 모블로깅이 열어 보여주고 있는 가능성들 (Rheingold, 2002; Katz, & Rice, 2002)은 미디어는 기억이라는 명제를 다시 한 번 입증시켜 주고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억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우리가 경험한 일이 서사체(narrative form)로 재구성되어 뇌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블로거들은 시공간의 흐름속에 남아 있는 이벤트에 얽힌 우리의 감정들을 온라인 상의 공유된 공간에 옮겨 놓음으로써, 컴퓨터라는 매체를 지식적 기억의 보관소를 넘어서, 인간 에피소딕 메모리의 연장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 시대의 기억은 한나라당원의 평범한 주부를 가장한 텔레비전 찬조 연설자 사건과 클린턴 스캔들에서 볼 수 있듯이, 거짓 증언과 거짓 기억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이다. 클린턴은 나는 그 여인과 결코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계속 부인했지만, 인터넷에 올려진 스타(Kenneth Starr) 보고서에 담긴 모니카 르윈스키의 적나라한 기억들은, 웹 이용자들의 기억속에 그대로 남겨 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인터넷이 가져온 인간 기억의 연장은 한편으로는 쓸모 없는 "기억"을 공유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컴퓨터 스크린에서 얻은 정보는 책을 보면서 얻어진 정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누구도 이 두 정보 획득의 차이를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인터넷 시대에 쌓여 있는 기억의 편린들은 이미 우리를 "정보 인플레이션"(information inflation)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정보 인플레이션 시대에 개별적 정보의 유용함은, 다른 무수한 정보의 양에 묻혀 가치를 잃게 된다. 기억하지 않아도 될 기억들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어떤 중요한 정보도 쉽게 마우스 클릭에 의해 trash can(휴지통)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로 닐 포스트만이 컴퓨터 시대가 열어놓은 정보 홍수를 비판했듯이, "우리는 정보를 일종의 쓰레기 형태로 가공하고 있다" (We have transformed information into a form of garbage). 한가지 문제는 좋은 정보들이 쉽게 쓰레기통으로 가는 반면, 정말 나쁜 정보들이 좋은 정보를 이기고 유통되는 이른바 데이터 가공의 "Gresham법칙"(Gresham's Law)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Baxter, 1999, p.146).

Baxter, C. (1999). Shame and forgetting in the information age. In C. Baxter (Ed.), The business of memory (pp. 141-157). Saint Paul, MN: Graywolf Press.
Brody, F. (1999). The medium is the memory. In P. Lunenfeld (Ed.), The digital dialectic (pp. 134-149). Cambridge, MA: The MIT Press.
McLuham, M. (196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New York: McGraw Hill.
Tulving, E. (1983). Elements of episodic memo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Rheingold, H. (2002). Smart mobs: The next social revolution. Cambridge, MA: Perseus Publishing.
Katz, J. E., & Rice, R. E. (2002). Social consequences of the Internet use: Access, involvement, and expression. Cambridge, MA: MIT Press.

Posted by gatorlog at 08:21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2)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November 20, 2003

미디어는 기억이다 2

미디어는 기억이다 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데이터화된 지식을 기억하는 것과 인간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은 명백히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컴퓨터가 연결해 주는 사이버 공간에서, 혹은 더 좁혀서 웹로그나 포럼, 게시판을 통해 무엇을 기억하는가? 데이터화된 지식인가? 아니면 다른 개인들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무엇을 했던 경험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인터넷은 경험만을 기억하는 공간이고, 우리의 지식은 오로지 책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왜냐면 어떤 경우에는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공유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지식을 읽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예는 "힐러리 회고록"처럼 회고록을 읽는 것이다. 회고록은 인간의 메모리가 불완전하다는 전제를 안고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불완전한 인간 기억의 잔영을 보여 주는 곳이다. 후자의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지식 검색을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분명히 블로그라는 공간에서, 혹은 인터넷 시대의 제반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통해, 우리는 기존에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우리에게 전해 준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의 색다른 경험들"을 기억하게 된다. 한가지 아이러닉한 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우리의 무의식적인 지각작용 사이로 잠입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 ...그것이 포탈이 링크하는 기사가 되었건, 아니면 다른 블로거가 쓴 글이건....은 우리의 인지적 처리 능력을 줄어 들게 하고, 우리가 "경험"을 창출할 시간을 대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의 중독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이벤트를 즐길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텔레비전이 주류 미디어이었던 시대에 -- 물론 지금도 우리는 많은 시간을 텔레비전을 통해 옥탑방 고양이를 보고, 대장금(이것 대단한 작품입니다)을 보고, 연예가 중계를 보는데 허비하고 있지만 ---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와 이야기하거나 뭔가 추억거리를 만드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결국은 텔레비전이 전하고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된 현실(mediated reality)"만을 현실로 기억하게 되는 것과 일맥 상통하다.

바로 오늘 당신이 World Wide Web에 접속한 것은 고현정 이혼에 얽힌 이야기를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떻게 어떻게 가다 보니 하이퍼링크라는 마수의 손아귀에 걸려 쓸데 없는 고현정 이야기만 머리속에 가득 담고 허탈하게 시간을 소모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고현정 잇단 구설수에 고부갈등"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삼성에서 본격적으로 고현정 죽이기에 들어갔구나"라는 음모이론을 생각하게 되고,이런 생각은 엊그저께 "고현정이 새벽 한강변에서 외제차를 도난당했다"는 사건도 뭔가 음모적인 냄새가 난다는 식의 엉뚱하지만 그럴듯한 기억의 연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앞의 주제로 돌아가서, 블로그에서 사람들이 기억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지식도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경험도 될 수 있다.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좁혀서 생각해 본다면, 바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집합적 메모리 (collective memory)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 집합적 메모리를 공유하게 해 주는 기능들이 바로 링크와 코멘트, 그리고 토론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론 (a theory)일뿐이다. 어떤 사람이 블로그를 자아 표출의 공간으로 본다면 그것도 하나의 이론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블로그를 관계 형성의 공간으로 본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이론이 될 수 있듯이, 블로그라는 것을 한 사회내의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생산하는 조그마한 공간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그마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매스 미디어가 전하는 공적 담론의 장보다는 규모가 작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는 과거 정보와 이슈를 만들어 냈던 소수의 특권적 정보 공급자의 힘은 줄어들고, 대신 기존에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목소리가 해방되어 분출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혁명적이다. 예를 들어 럼스펠드가 노무현 대통령과 만났을 때 그가 인사말로 했던 "thank you, I'm young"을 한국 기자들이 "thank you, 안녕"이라고 듣고 이게 의도된 불만의 표시인가로 설왕설래 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블로그라는게 집단적 기억의 창출 공간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미디어 논제(agenda)의 재해석 공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im_young.jpeg

이런 맥락에서 MIT대학의 Henry Jenkins가 묘사한 blogging의 힘을 다시 읽어보자.

Imagine a world where there are two kinds of media power: one comes through media concentration, where any message gains authority simply by being broadcast on network television; the other comes through grass-roots intermediaries, where a message gains visibility only if it is deemed relevant to a loose network of diverse publics. Broadcasting will place issues on the national agenda and define core values; bloggers will reframe those issues for different publics and ensure that everyone has a chance to be heard. (Rheingold, 2002, p.121에서 재인용).

같은 맥락에서 Sheila Lennon(2003)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If the news media's power is setting the nation's agenda, bloggers englarge that agenda by finding and blogging ideas and events until traditional media covers them in more depth. Good stories have that kind of energy; they behave on the Web as though they are alive, ready and eager to spread. If enough bloggers find something important and blog it, expressing opinions and linking to others' opinions, then the idea rapidly multiplies. Very quickly, the story has legs and often will enter into the mainstream media and bublle out to readers, listners and viewers. Perhaps some kind of action will result because of this news. But one thing is certain: More blogging about it will occur."; Sheila Lennon, (2003), Neiman Reports, p.77.

glossary.jpgCollective memory is a rubric used to describe how social group members know the past. It is distinguished from both historical and autobiographic memory. Whereas historical memory is the past stored and interpreted by social institutions and autobiographic memory is the memory of events people have personally experienced, collective memory is a remembering of the past informed by shared experiences and public narratives. That is, collective memory is socially constructed by group members and is their present interpretation of events, persons, and objects from the past. There is not a single collective memory; there can be as many collective memories as groups in society. It's a sociological framework rather than psychological one. (Motley et al., 2003).

Shapiro, M., & Lang, A. (1991). Making television reality: Unconscious processes in the 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Communication Research, 18, 685-703.
Shapiro, M. A., & McDonald, D. G. (1994). I'm not a real doctor, but I play one in virtual reality: Implications of virtual reality for judgments about reality. In F. Biocca & M. R. Levy (Eds.), Communication in the age of virtual reality (pp. 323-345). Hillsdale, NJ: Lawrence Erlbaum Associates.
Jenkins, H. (2002, March). Digital Renaissance. Technology Review. also available at [http://www.technologyreview.com/articles/jenkins0302.asp]
Rheingold, H. (2002). Smart mobs: The next social revolution. Cambridge, MA: Perseus Publishing.
Motley, C. M., Henderson, G. R., & Baker, S. M. (2003). Exploring collective memories associated with African-American advertising memorabilia. Journal of Advertising, 32, 47-57.

Posted by gatorlog at 05:47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1)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ecember 02, 2003

미디어는 기억이다 3

미디어는 기억이다 2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버스속으로 자살 폭탄을 안고 돌진해 승객을 숨지게 한 이야기를 얼핏 본적이 있다. 나는 "또 이스라엘에서 자살 폭탄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그 장면을 지나쳤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오후에 다시 CNN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뉴스를 보다가, 이게 이스라엘이 아니고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맨 처음에 이 뉴스를 접하고 내가 "그 사건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났겠지"라고 미리 단정 지어 생각한 것은 일종의 déjà vu에서 오는 정보 처리의 왜곡이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전혀 다른 두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러시아 사건이 예전 어디에서 마추졌던 사건처럼 생각하게 되고, 여기에 근거해서 잘못된 지각과 기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매스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어떤 데자뷰의 느낌을 받는 것은 일정 정도 미디어라는 것이 현재의 사건에 어떤 의미와 해석을 달아서 전해주는 일종의 신문의 편집장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만 (Dayan & Katz, 1992),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기존에 일어났던 미디어의 보도가 우리 머리속의 저장고에 누적적으로 쌓여서 어떤 사건에 대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Peri, 1999; Irwin-Zarecka, 1994).

그렇다면 우리는 미디어에서 어떤 사건들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게 되는 것일까? 미디어 비평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이 매일 보고 듣고 읽는 뉴스의 대부분은 우리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Bird, 2003). 특히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우리는 뉴스 보도의 상세한 내용을 기억한다기보다는, 어떤 정형화된 뉴스의 서사적 구조를 기억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자살 폭탄 사건의 내용을 기억에 담는다기 보다는, 세상 어디서인가에서 테러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서사적 프레임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미디어 형식에 담겨졌던 뉴스의 내용물들이 이른바 새로운 미디어나 새로운 형식에 의해 전해짐으로써 사람들이 기억하는 세상의 소식은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University of South Florida의 인류학자인 S. Elizabthe Bird 는 2003년에 간행된 The audience in everyday life라는 책에서, 텔레비전 토크 쇼, 타블로이드 뉴스 (가판에서 파는 저질 연예가 소식이나 루머를 전하는 주간지), 그리고 인터넷의 다양한 공간들의 등장이 우리가 뉴스를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 6하원칙하에서 작성되던 역피라미드 형식의 기사는 우리 기억 구조상 머리속에 잘 남지 않게 되는 반면, 이들 신종 소식 채널들을 통한 드라마틱하고 흥미성 개인 신변 잡기에 관련된 선정적인 기사들이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학적 근거로 그녀는 사람들이 시간적 흐름속에 기술된 서사체의 구조 (이를 테면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나 도덕적 질타를 받을 수 있는 내용물들, 그리고 기이한 상상의 산물들을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인류학적인 참여 관찰 방법을 이용해 다음과 같은 연구를 했다;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텔레비전판 타블로이드 쇼인 Unsolved Mysteries와 ABC 프라임 뉴스인 ABC with Peter Jennings(ABC뉴스 앵커인 피터 제닝스가 진행하는 프라임 타임 뉴스 쇼)을 보게 한 후 친구, 가족과 나눈 대화등을 녹취한 기록을 분석했다. 여기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인간적 흥미, 그리고 드라마적인 전개가 없으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클린턴 대통령은 언론에서 두가지 스캔달을 추궁당했는데, 하나는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달이고, 다른 하나는 화이트워터 스캔달(불법 선거 자금 모금에 관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오직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 뿐이다. 이유는 두번째 스캔들에는 인간적 흥미가 없고, 드라마적인 전개가 없다는 점이다. 또 2002년에 그녀는 신문사 뉴스 웹 사이트나 각종 온라인 게시판이나 포럼 (이를테면 Yahoo! 뉴스 게시판)에 올라온 사람들의 댓글 분석을 했는데, 한 뉴저지 상원의원의 스캔달에는 14,000개의 댓글이 달린 반면, 당시 정치적으로 심각한 이슈였던 보험, 실직, 그리고 경기 침체에 관한 댓글은 겨우 1000개뿐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인터넷 시대에 황색 저널리즘 (yellow journalism: 선정적 기사로 사람의 눈을 끌려는 싸구려 저널리즘)의 등장은 일정 정도 수용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용자의 관심이 그런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기 때문에, 인터넷 시대의 온라인 뉴스도 그런 수용자의 욕구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인류학자만 제기한 게 아니다. 자극 추구 이론(Sensation Seeking Theory)을 주창한 Marvin Zuckerman (1984) 이라는 심리학자는 미디어 수용자를 "뭔가 자극적인 내용물에 더 많은 노출을 즐기려고 하는 sensational seekers"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다시 말해 인터넷 시대에 집단적 기억을 지배하는 기사는 뭔가 "드라마틱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인간적 흥미성"을 끌어 올리는 서사적 이야기, 다시 말해 주로 스캔달이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부부 스와핑 같은 이야기가 각종 신문사의 게시판들과 각종 포탈의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참고문헌:
Bird, S. E. (2003). The audience in everyday life: Living in a media world. New York: Routledge.
Dayan, D., & Katz, E. (1992). Media events: The live broadcasting of histor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Irwin-Zarecka, I. (1994). Frames of remembrance : the dynamics of collective memory. New Brunswick: Transaction Publishers.
Peri, Y. (1999). The media and collective memory of Yitzhak Rabin's remembrance. Journal of Communication, 49, 106-124.
Zuckerman, M. (1984). Is curiosity about morbid events an expression of sensation seeking. Proceedings of the Conference on Morbid curiosity and the Mass Media, Knoxville, TN.

Posted by gatorlog at 03:36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ecember 15, 2003

imagined audience 1

일전에 Goffman의 자아 내보이기(Self-Presentation) 이론으로 블로그 현상을 이야기한 한 적이 있는데, 이 Self-Presentation의 핵심은 역시나 고프만이 말한 "관객" 의식이다. 관객은 실제 관객이 될 수도 있지만, 블로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보통 "머리속에 그려진 관객(imagined audience)"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관객을 설정한다는 것은, 한 개별 블로거가 글쓰기를 통해 어떤 상호작용 혹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세상에 자기를 던져 보일 때는 자아(self)를 정확하게 던져 보이거나 아니면 포장을 해서 던져 보이는 두가지의 동기를 생각할 수 있다. 정확하게 던져 보이는 것은 self-presentation이 아니다. 자아 반영(self-reflection)이라고나 할까...하지만 self-presentation에서는 일정 정도 전략적인 (strategic) 꾸밈이 들어가게 된다. "전략적"이라는 분석은 내가 제시한게 아니고 인상 관리 이론(impression management theory)라는 사회심리학의 이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이론 속에 담긴 용어이다. 전략적이라는게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의미에서는 전략적 presentation을 통해 자신이 타아와의 관계를 통해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타인 기만이 되서는 안되겠지만... 이게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 "사적인 영역" (private space)에서 이뤄지면 자아 속이기(self-deception)가 되는데, 공적인 영역(블로그나 홈페이지 같은 곳)에서는 자아 던져 보이기(self-presentation)가 된다.

Unix4Mac에서 iTunes의 곡 목록 공유가 그 사람의 성향을 노출할 수 있다는 글을 소개했다. 그런데 블로거는 자신이 지금 읽는 책, 지금 듣는 음악 등의 단서들을 통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자신의 personality"를 보여주는 "전략적인 자아 던지기 게임"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관련 글: (성격을 엿보려면). 음악을 (글을 쓸 때마다) 어김없이 올리다보니, 정말 자주 들리는 분들은 "아거"를 음악적 특성에 따라 categorization(범주화)시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음악을 올리는 블로거로서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올리는 음악이 내가 생각하는 imagined audience의 성향에 맞는 음악들일까?"하는 의문이다. 모르겠다....

오늘은 Bob Marley의 No Woman no cry를 Monty Alexander의 재즈 피아노롤 듣는다.

Posted by gatorlog at 02:39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1)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imagined audience 2: [psychology of the Web]

일전에 이글루스가 처음 출범할 때 누가 "그래 우리 솔직해지자"라는 글을 써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사실 앞 뒤 아무런 상황적 문맥 없이 "내가 몇 살 때 뭐 했고" 식의 이야기가 "솔직"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어제 자아 내 보이기(self-presentation)의 핵심은 솔직이 아니고 "전략적" 드러내 보임이라는 점을 언급한 연장선에서 그 글의 제목이 떠올랐다. 나는 한마디로 블로그에서 정말 "순수하게 100% 솔직한 글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아거"는 이 글을 정말 솔직하게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다 써놓고 생각하면 어쩌면 여기에도 뭔가 빼낼 것은 빼고, 문장이라도 다듬어 보려는 최소한의 꾸미는 작업이 더해졌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솔직한 글을 쓰고 있는데"라면서 억울해 할 블로거가 있을 지 모르겠다. 이건 솔직이라는 단어에 걸린 긍정적 연상 작용과, "전략적"에 걸린 기만적 연상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제 말했듯이 인상관리 이론에서 말하는 "전략적 드러냄"은 윤리적 도덕적인 범주에 해당하는 단어가 아니다.

어제도 말했듯이 블로그에서 전략적인 글쓰기라는 것은 누군가와서 내 글을 읽겠구나 하는 것을 의식하며 쓰는 글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략적인 드러냄을 위해 쓰는 글이 어쩌면 예의를 갖춘 블로그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남을 위한 배려를 조금이라도 한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블로그라는게 전적으로 사적 일기장(private diary)라고 하고 아무도 본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글쓰기는 전략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때는 어제 언급한 "자기 반영 (self-reflection)"식의 글쓰기가 된다. 하지만 오늘 내가 포스팅을 하면 누군가 와서 보겠지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 글은 일기장에 적는 글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올린 글을 몇 번 다시 읽어보고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도 하고 이런 사람들은 적어도 self-reflection보다는 self-presentation에 가까운 블로깅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점에서 본다면 블로깅을 정의하는 하나의 이론으로 Goffman의 self-presentation은 상당한 설명력을 갖는다. 이론적으로는 self-presentation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1) "현저하게 보이는 실제 관객" 2) "자신을 내던져 보이는 무대위에서 자신이 관객들에게 보여지기를 희망하는 이미지," 그리고 3) "이런한 목표를 구체화시켜주는 일종의 각본" 이다. 그리고 그 각본은 눈에 가시화되는 관객 (real audience)과 자신이 그려내는 관객 (imagined audience)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위에서 말한 일종의 "각본"은 스피카님이 정의한 "interactive narrative"와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보면 되겠다.

Posted by gatorlog at 08:02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ecember 21, 2003

imagined audience 3: information game [psychology of the web]

일전에 어느 개별 블로거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을 내 보이는 행위...고프만의 정의로는 self-presentation을 통한 인상 관리 (impression management)...자체는 전략적임을 언급한 적이 있다. 왜 전략적인가? 바로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우리가 무대위에서 바라보는 관객과 보이지 않는 관객들에게 우리의 인상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비쳐지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1차적으로 전략적이다. 그런데 또 전략적인 것은 self-presentation과정에서 개별 블로거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이 그렇게 인상을 관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주고 무대위에 올려진 바로 그 모습 자체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점에서 전략적이다. 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고프만은 자아 표출을 통해 인상 관리에 임하는 개별 배우(블로거)는 "하나의 정보 게임(an information game)"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여진 정보는 부분의 합보다 작다"는 것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6:57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2)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ecember 23, 2003

imagined Audience 4: Psychology of the Web

블로그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블로그에 관련된 현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블로그를 공적 공간(public space)에서 전략적인 자기 보여주기로 정의한다면, 모든 현상은 이 이론에 따라 분석이 가능하지요. 며칠 전부터 언급한 내용인데, 동기(motive)와 관객(audience:수용자이지만 self-presentation에서는 관객으로 간주)이라는 두개의 교차하는 축에서 self는 다음 네가지 형태로 보여집니다. 공적인 관객을 향해 개인적 이득을 위해 던지는게 바로 고프만이 이야기하는 self-presentation의 요체입니다. 만약에 공적인 관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면 자기 폭로가 되는 것이지요. 사적인 공간에서 자기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하는 행위는 자기 기만이 되는거고, 사적인 공간에서 정확성을 꾀한다면 자기 반영이 되는 겁니다.
images/selfpre1

다시 말해 블로그를 쓰는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현저하게 보이는 관객 (salient audience)혹은 자신이 생각하는 잠재적 관객(imagined audience)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입니다. 블로그식으로 이야기하면 늘 코멘트를 달아주고 트랙백을 달아주는 관객이 바로 현저하게 존재하는 관객(salient audience)이 되고, 코멘트를 달지는 않지만 내가 글을 포스팅 하면 이런 관심과 취미를 갖는 사람이 읽어 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바로 그 관객들이 상상속의 관객(imagined audience)입니다.

Holloblog를 따라 들어갔다 우연히 블로그 에세이라는 분이 올린"전문가가 블로그를 싫어 하는 이유" 가 눈에 띄더군요. 제 의견을 올립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블로그는 애초에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전에 저는 블로그의 활용이라는 글에서 블로그는 "전문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때도 말했듯이 거기서 말하는 "전문성"이라는 것은, "전문가"들이 지니는 지식과 자격 요건으로서의 전문성과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사실 누구를 전문가로 보는가에 따라 틀리지만, 위의 "public"과 "audience"의 분류 틀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전문가 집단이 아직 블로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특히 "체면을 중시 여기는 face-saving문화"에서 자신이 아무런 개인적 이득을 볼 수 없는 블로그 공간에 시간과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죠. 아무래도 그러기에는 블로그는 너무나 아마추어적이며, 공적인 공간에 self를 드러내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시 여기는 "연령"과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거지요. 쉽게 이야기해, "아니 *** 변호사님...블로그에 글을 쓰신다면서요?" 혹은 "*** 박사님...이번에 블로그 만드셔서 거기서 좋은 글을 연재 하신다면서요?" 이런 말을 들으면서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아이구 "*** 변호사님, 어제 MBC 2시의 뉴스 현장 인터뷰에서 디지털 시대 저작권 문제 이야기 하는 것 들었습니다" 혹은 "*** 박사님, 이번에 Psychological Review에 좋은 글 올리셨더군요" 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한마디로 자신의 글이 포지셔닝할 잠재적 수용자들이 블로그를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와도 통합니다. 이를테면 어느 특정 분야의 학자들의 경우, 자신들이 나설 공간은 유명한 학회나 학술지이지,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블로그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죠. 아주 세속적인 의미의 전문가로 우리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종종 들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른바 "사"자 들어간 사람들도 블로그에서 자신들의 고객을 만나는게 아니기 때문에 블로그를 쓸 필요가 없는 거지요. 변호사는 브로커를 통해야 하고, 의사는 자리를 잘 잡고, 시설을 잘 꾸며야 하며, 회계사는 인맥, 연줄이 중요하지요. 기타 불특정 대중과 관계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블로그라는 한정된 공간보다는, 대중적인 공간에 포지셔닝해야 "권위"를 인정받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왜 전문가들이 블로그를 쓰는 것을 종종 보는 것일까요? 바로 self-presentation과정에서 그런 "체면"을 우리보다는 덜 고려한다는 의미지요....우리나라보다 사회적으로 블로그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보다 인구가 많기 때문도 아니죠. 바로 스탠포드의 저명한 법학자인 Larry Lessig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만 누구도 이게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않지요. 하지만 우리 정서에서는 "대중"앞에 자기를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보수적 양반문화"와는 많이 상충되기도 하는데다가, 그것도 아직 검증이 안된 문화 현상에 금방 뛰어 들면 왠지 졸갑스럽게 보이기도 할 듯 하고...이건 엔터테이너로 등장한 텔리페서 (television + professor)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도 같을 겁니다.

블로그를 꾸준히 쓰는 사람으로서, 블로그의 의미를 격하시키려는 의도로 이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4:27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5)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ecember 28, 2003

관계적 스키마 1

볼드윈(Baldwin)의 관계적 스키마(relational schema)에 대한 92년 아티클을 본 후로, 이 "관계적 스키마"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볼드윈은 우리 인식 체계내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경험과 지식의 체계로서의 스키마라는 종래의 개념을 확장시켜, 사람들은 대인 관계의 경험에서 누적된 경험을 어떤 스키마적인 기억의 형태로 간직하고 이를 다른 비슷한 관계적 상황에 적용시킨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스테레오타입이나 편견 역시 관계적 스키마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아주 비근(卑近)한 예로, 군대에서 어느 특정 지역 상사에게 특별히 좋지 못한 기억을 형성했던 사람이 종종 사회에 나와 그 특정 지역 연고가 있는 사람에게 부정적 감정을 전이시키는 것도 이같은 관계형 스키마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타자들(significant others)과의 기존 관계에서 부정적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늘 경계하고 신뢰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모두 이 관계적 스키마에 기인한 방어적 기제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장인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하셨는데, 가족들에게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좁쌀 영감이었고 잔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집 장모는 남자가 말이 많은 걸 아주 싫어해서, 그 집 사위되는 사람은 장모가 가끔 찾아 오면 아예 돌부처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분의 직업이 교수인데, 그 장모되는 분은 "교수"라는 직업 자체도 학교 선생이라는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말이 많고 사람을 피곤하게 할 것"이라는 스키마에 따라, 애초에 결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기존 관계에서 형성된 경험적 관계형 스키마는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도 지극히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처럼 관계적 스키마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범주화시키는 행위는 매우 잘못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긍정적인 관계적 스키마는 사람들간의 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관계적 스키마는 종종 부정적인 쪽에서 돋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새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관계적 스키마에 따른 범주화 (categorization)를 피할 필요가 있다. 마치 우리가 어떤 현상을 판단할 때 선입견을 배제해야 하는 것 처럼,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관계적 스키마의 영향을 "최소화"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최소화"라고 말한 것은 누구도 관계적 스키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Baldwin, M. W. (1992). Relational schemas and the processing of social information. Psychological Bulletin, 112, 461-484.

Posted by gatorlog at 07:34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Relational Schemas 2 [Psychology of the Web]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서 얻은 관계적 스키마"는 웹 이용자들의 "사이버 상의 상호 작용 (interaction)"에 과연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런 주제아래 파생되는 연구 문제들은 숱하게 많을 것이다. 그 많은 문제거리중에서 블로거들을 위해 그 중 가장 적나라하고 구체적이고 솔직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오랫동안 나는 블로그의 핵심은 퍼스낼리티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 (관련 글: 앙꼬없는 찐빵; 온라인 아이덴티티에 관한 두번째 글; imagined audience 1) 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나는 역시나 블로그를 통해 어떤 퍼스낼리티를 엿볼 수 없다면 잘 방문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격을 읽을 수 있다고 모두 즐겨 찾는 것은 아니다. 어떤 블로거의 경우는 두드러진 개성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서 접근이 꺼려지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어떤 퍼스낼리티에 대한 호(好), 불호(不好)의 판단은, 우리가 사이버상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 경험적으로 쌓아 온 관계적 스키마에 근거하게 된다.

아마 모두들 이렇게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은연 중에 이런 관계적 스키마에 따라 어떤 블로거와는 적극적인 관계를 맺는데 비해, 코멘트나 링크를 통해 매번 조우하게 되는 어떤 다른 블로거들의 사이트는 잘 가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런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관계적 스키마는 인지적 분주함에서 생기는 잘못된 사람 인상 형성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다시 말해 비언어적 (nonverbal)그리고 언어적 (verbal) 단서들이 물리적 형상과 함께 합쳐져서 보여지는 현실 세계의 대인관계와는 달리 "블로그"공간에서의 인상 형성에 영향을 주는 단서들은 그리 복합적이지 않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이 말을 통해 던져 주는 인상은 그 사람이 말할 때 보여주는 제스처나 얼굴 표정, 그리고 억양등을 통해 복합적으로 전해지고 판단 역시 복합적인 단서들의 합일체로 나타나는데 비해서, 블로그를 통해 전해지는 블로거의 인상은 단지 텍스트나 사진 몇 장을 통해 전해지므로 종종 비언어적 단서의 영향 없이 무미건조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거처럼 이렇게 빼곡하게 "현학적인" 글을 올리면, 우선 읽어 보기도 전에 기피하게 될 지도 모른다....^ ^

직접 연관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도 이런 관계적 스키마의 연장에서 볼 수 있다: 1) 현실 세계에서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들은 사이버 상에서도 친구를 잘 만들 것인가? 2) 현실 세계에서 매력적인 퍼스낼리티의 사람은 사이버 상에서도 매력적인 퍼스낼리티를 보일 것인가? 이처럼 사이버 상에서 발견되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다 보면 관련된 현상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단 관계적 스키마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하나마 여기서 끝을 내고 싶다........

오늘 마지막 곡은 일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마그나 카르타의 seasons라는 명곡을 올립니다. 이 곡은 비발디의 명곡 4계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포크 뮤직의 4계라고 할 수 있지요. 파일 크기가 20.8 Mb이고 연주시간이 22분 31초이니 시간되는 분만 들어 보시길...

Reviewer: william robert (see more about me) from greer: "Seasons" uses basically the concept of Vivaldi's 4 seasons , but is a complete original folk creation . poems , songs ,warm voices & beautifull choirs , acoustic guitars &the discrete back arrangements from Tony Visconti ( Rick Wakeman from Yes , Davey Johnstone from Elton John's Band )bring you in a journey through the year. The perfect record to lesson , when wind blows , snow falls everywhere , sitting on your sofa whith the one you love in front of your chimney . I do that since 25 years without any deception . 아마존의 독자 리뷰

Posted by gatorlog at 08:18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anuary 16, 2004

Free expression in a cyberspace city 2

사실 EverQuest나 Sims Online혹은 리니지같은 인기있는 다자 롤 플레잉 게임(multiplayer role-playing game)을 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환상과 현실의 심리적 경계는 종종 흐려진다고 한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은 온라인 게임에 사용하는 사이버 머니가 실제 시장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는데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Ludlow교수는 쉽게 돈을 구할 수 없는 십대들이 가상공간에서 성을 파는 행위를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게임에 참여하는 기본 동기가 환타지의 세계에 빠져드는데 있는 이런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에서, 현실 세계의 실존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가상 세계의 행위들을 용인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논란이 있어 왔다. 예를 들어 EverQuest에서 다른 등장인물을 죽이는 십대 소년들의 행위를 인정한다면, Sims Online에서 십대 소녀들이 섹스 채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images/everquest

Sims Online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Ludlow교수의 계정 박탈과 자산 몰수는 선별적이었다는데 동의를 하고 있지만, 이 온라인 게임의 적극적 참여자 중에는 Ludlow교수가 보도한 내용이 믿을만한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Ludlow교수가 언급한 (사이버 머니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인) 17세 게임 플레이어가 신뢰할 수 없는 정보원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심지어 Ludlow 교수의 비판자들도 심스 온라인 게임이 10대들에게 가져올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입을 틀어 막는 행위는 이 가상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하지만 Ludlow교수가 Sims Online의 소유권자인 Electronic Arts회사가 자신의 탐사보도에 대한 보복으로 계정을 몰수했다는 증거를 내밀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그가 미국 수정 헌법 의해 보호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소송으로 갈 수는 없다는게 법학자들의 의견이다. 왜냐하면 전화 회사와는 달리 게임 회사는 일종의 사적 클럽으로 볼 수 있고, 이런 사적 클럽에서는 멤버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 세계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행위들이 현실세계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될수록, 이를 재단하는 사이버상의 법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사이버 상의 아바타를 강간하는 행위라든가, 이번 경우처럼 사이버 상의 자산을 몰수하는 행위는 어쩌면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유사 행위만큼 당사자들에게 정신적 물리적, 그리고 물질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gatorlog at 11:05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07, 2004

Internet & rumor

언젠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말은 세계의 절반을 여행할 수 있다"(A lie can travel halfway around the world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구에 담긴 진리대로 거짓 정보의 전파 속도는 진실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그런데 모든 루머가 다 의도적인 장난에 의해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Allport와 Postman의 기념비적인 저서 "the psychology of rumor" (관련 글: a theory of rumor transmission)에 나오는 고전적인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평범한 정보도 보는 사람들의 선입견, 주관적 편견, 그리고 스키마에 따라 변질되어 루머로 전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Allport의 실험에서, 백인 손에 들려 있던 이발용 면도날이 연속적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 마지막 수신자는 흑인 손에 들린 면도날로 전해 듣게 되는 것이다. 흉기는 흑인이 쥔다는 스테레오타입이 빚어낸 유언비어의 형성 과정의 예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일본 관련 루머가 빨리 확산되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도 일정 정도는 이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본인에 대한 심리적 태도가 반영되는 게 아닐까 싶다.

최근 읽고 있는 Pratkanis 박사의 Age of Propaganda라는 책에 보니, 루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심리적 요구(need)를 반영한다고 되어 있다. 그 심리적 요구 중에 하나가 우리의 근심거리나 걱정, 불만족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9/11 테러는 부시의 자작극이며 그 증거로 이스라엘인은 한 명도 건물에 없었다는 루머를 생각해 보라. 이 책에 보니, 루머는 통상적으로 "비밀 음모" (secret conspiracies)나 "알아들을 수 없는 지식"(esoteric knowledge)에 근거해서 나오기 때문에 사실임을 입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누가 9/11은 부시의 자작극이라는 "비교적 설득력있는 음모 이론"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겠는가?

Posted by gatorlog at 08:41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2)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y 02, 2004

뛰어난 cybertect가 되려면

지난 금요일에 받아들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Derrick de Kerckhove의 책을 어제 하루 종일 읽었다. 일반 brochure 크기의 고급 양장지에 인쇄된 총 93페이지밖에 안되는 책에 거금 11불을 쓴 셈이다. 그나마 그 조그만 크기의 책 매 페이지 하단 1/5은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시각디자인과 아트에도 탁월한 재주가 있는 양반같았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런 책이 부담도 없고 잘 읽혀서 좋았다. 이렇게 부담안가는 책 많이 만들어 낼 필요가 있겠다. 어차피 두툼한 책 받아 한 50여페이지 넘기다 던지고 이후 찾아올 무력감 혹은 패배감으로 고민하느니 짧지만 한 권 읽었다는 뿌듯함을 준다면 페이지 수가 문제랴?

분명히 이 자는 해롤드 이니스와 마샬 맥루한의 뒤를 잇는 기술문명 낙관론자다. 그리고 마샬 맥루한 미디어 센터를 이어 받은 사람답게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는 인간 기능의 연장"이라는 화두를 인터넷 공간으로 옮겨간다. 이를테면 마우스 포인터는 우리눈의 연장이라는 둥(p.38), 스크린위의 마우스와 포인터의 결합은 뇌의 명령이 눈에 전달되고 다시 손으로 연결되어 "땅을 파고, 물건을 집고, 밀고, 교체하고 지우고" 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같다는 둥의 메타포(metaphor)를 전개한다. 기술문명 회의론자이며 논리실증주의자 입장에서는 명확한 검증없이 멋진(?) 수사(rhetoric)만 채우는 사람들의 교양서를 구경한다는게 굉장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웹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아이덴티니(identity)나 인지(cognition), 지각(perception) 같은 심리학적 영역으로 확장해서 생각하는 사상가라는 점에서 일단 존중해 주기로 했다. 거기다가 Lessig를 상당히 많이 인용하고 기타 open web의 창시자들의 생각을 따라간다는 점에서는 환영할만하다. 물론 마샬 맥루한의 조교 출신답게 말 만들기에 많은 신경을 쓴 대목이 눈에 거슬렸지만....무슨 사이버를 앞에 가져다 붙여 만든 용어가 한 두 개가 아니다. Ascott를 인용한 cyberception(cyber + conception)에 영향을 받았는지, cyber+architect가 cybertect가 된다. 나도 하나 만들어 봤다: cybergnition (=cyber + cognitioon). ^^ 토요일 하루 꼬박 읽었더니 71페이지에서 멈춘다. 멈춘 대목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생각들이 전개된다.

the architecture of intelligence에서 Derrick de Kerckhove는 Web상에서 사람들을 연결하는 건축물을 짓는 사람은 다음 세가지 전문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p.71). 웹상에 건축물 짓는다는게 별게 아니고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혹은 애플포럼이나 서프라이즈같은 특정 온라인 포럼을 기획하는 것을 말한다.

  • 실제하는 공간과 가상 공간들 사이에 있는 분계점과 연결점을 명확히 아는 전문성
  • 사이버스페이스안에서 이용가능한 가상 환경들을 건설하는 것; 그것이, CAD, VR, CAVEs, VRML 안에서건 아니면 새로 시장에 나타나는 어떤 기술이 되었건간에.
  •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인지적 객체들이 사이버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할수 있도록 요구하는 단계의 정도를 파악해 이를 반영하는 연계된 사고의 공간을 건축하는 것

부연설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명의 사이버건축가(cybertect: cyber + architect)는 실제와 가상 공간사이 연결고리안에 창조된 임의의 환경들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인지적 세계에서 그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가까지를 고려해야 한다.

말이 굉장히 현학적이지만 풀어놓고 보면 간단하다. 예를 들어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사이버상에 임으로 만든 건축물(온라인미팅 사이트)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을 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들이 여기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머리속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가까지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블로그를 예로 들어볼까? 뛰어난 블로그 서비스 기획자는 블로그라는 사이버 공간내에서 블로거들이 어떻게 online과 offline을 연계하며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블로거들의 인지구조속에서 그들이 서로를 어떻게 연결짓고 있는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블로그 공간에 보이는 것은 결국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서로 다른 블로거들 머리속에 그려진 상호간의 친밀감과 유대, 그리고 적대감과 소외등의 관계를 예측하고 읽어낼 줄 아는 눈을 갖기는 어렵다. 왜 그럼 인지적 관계를 알아야 하나? 바로 인지는 우리 행위를 유발하는 잠재적 변수이기 때문이다.

한줄 서평: 여전히 말장난에 불과하다.....어쨌거나 de Kerckhove는 둘 중 하나겠지. b급 문학가 아니면 b급 사상가 ^^
빨리 집어던지고 A급인 러셀로 옮겨가야겠다.

Posted by gatorlog at 08:52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y 13, 2004

Gmail의 이메일 키워드 광고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글과 관련된 글: "기대가 커서인지 별로였다" 5월 28일 Cyflux 블로그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지 별로 였다. 추천으로만 쓸수 있게 했서(지금은 아닐지도) 사용할 때 땡잡은 느낌을 만드는 마케팅(?)은 마음에 든다. ...[read more]

오늘 뉴욕타임스 구글 관련 칼럼은 구글이 새로 선보이는 Gmail에 대해 자세하고 객관적인 리뷰를 제공한다. 물론 시작은 조금 삐딱하다. 구글의 성공을 보면서 우리가 새긴 교훈은 장사를 하더라도 "don't be evil" -- 사악한 자가 되지 마라 --는 것이었다. 즉 paid placement를 일반 검색 결과와 함께 보여주는 다른 업체들의 간사한(evil)한 발상을 뒤엎고 사업을 전개해서 굴지의 기업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구글이 Gmail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용자의 메일 내용을 검색해서 연관된 광고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생각에 대해 서 결국 구글도 간사한 방법을 쓰는게 아니냐는 문제제기다.

"구글이 블로그와 만났을때"라는 글에서 내가 보여준 예처럼, Gmail 역시 메일 박스안에 들어온 이메일 메시지를 따라 관련 업체 광고가 들어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음악연주기(music players)를 묻는 이메일을 따라서는 "iPod"을 파는 업체의 광고가 따라오고, 컴덱스같은 컴퓨터 쇼 관련 메시지 뒤로는 "Linuxworld link"광고가 따라온다. 결국 이메일 내용을 검색해서 그에 해당하는 키워드 검색 광고를 보낸다는 것은 사실이다.

번번이 말하지만 이런 주장이 Gmail이 가져올 순기능을 깍아내리자는 의도는 아니다. 그리고 오늘 칼럼에도 Gmail의 뛰어난 부분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광고도 다른 업체와는 달리 배너형태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 구글 검색시 유료 광고가 오른쪽으로 비켜나가있는 것처럼, Gmail에서 텍스트 광고 역시 오른쪽으로 비켜나가 있다. 결국 뛰어난 서비스이고 광고도 다소 지능적으로 한다. 우리의 신경을 거슬르지 않을 정도로... ㅎ ㅎ ㅎ

자...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이것이다. Gmail같은 뛰어난 서비스의 댓가로 이정도 광고보는 것쯤은 거래할 수 있다는 게 사람들의 심리라면......나는.....감히 이글루스 사업팀에도 이런 것 권유하고 싶다 -- 블로그 포스팅마다 오른쪽 한편으로 관련 키워드 검색 광고를 보는 것 역시 당연히 trade-off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미 구글의 Blogger가 이렇게 하고 있고, Gmail이 이렇게 하고 있다.

Posted by gatorlog at 02:27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8)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une 05, 2004

"빈 서판" 인용을 보고

Steven Pinker의 책 빈 서판 (원제 blank slate)를 읽고 계시는 세시아님의 인용 "집짓기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가끔씩은 주체할 수 없는 자기 표현의 충동을 느낀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언어와 이미지를 가지고 유희하게 만드는 이 충동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다. 보잘것없으면서도 광활한 이 무대 장치 안에 내 인지적 작용 혹은 감정적 두뇌(emotional brain)를 펼쳐 보이고 싶은 이 주체할 수 없는 충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열정에 빠질 때마다 나도 모르는 어떤 것과 연결됨을 느낀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내 기억속에 영원히 존재하게 만들고 싶다. 내 블로그 안에 링크하나라도 잘못 걸려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제자리에 연결시켜 놓아야 한다. ...... 가끔 다른 블로거들이 내 블로그에 찾아와 내 글에서 무언가를 느낀다면 행복한 우연이겠지만, 창작의 이유를 거기서 찾는다면 나에게는 모욕일 것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4:54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une 25, 2004

언론과 블로그의 차이: 기능론적 접근

1922년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자 사상가였던 Walter Lippman은 그의 명저 public opinion(책 전문)에서 신문이 세상에 대한 우리 머리속의 그림(pictures in our head)을 형성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실제 세계에 대해 반응하는게 아니고 바로 신문이 그려준 상(像)에 반응한다는 멋진 말을 했다. 1963년에 Bernard Cohen은 "신문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가(what to think)를 말해주는데는 성공적이 아닐지라도 독자들에게 "무엇에 대해 생각할 것인가(what to think about)"에 대해 말해주는데서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다고 말했다. 이 명언들에서 힌트를 얻어 70년대 초 현 텍사스 대학의 맥콤스 교수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쇼우 교수는 언론학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이론인 미디어의 논제설정 (agenda setting) 기능을 도출해 냈다. 이 어젠다세팅 이론에는 두가지 전제가 있는데, 하나는 언론이 세상을 거울과 같이 비쳐주는게 아니고 현실세계(reality)를 여과(filtering)하고 재구성한다(reconstructing)는 것이다. 두번째는 언론이 주목하는 소수의 이슈는 사람들이 그날 그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가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결국 언론이 사람들의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더라도 어떤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cognition)에는 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최근 저널리즘과 blogism에 대해 논의하는 사람들도 이 어젠다 세팅 이론을 염두에 두고 "언론과 블로그의 관계"를 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 언론이 공중들의 어젠다를 설정해 준다면 블로거들은 그 어젠다를 "확산"시킨다는 식이다. 라디오를 듣다보니 정부가 김선일씨 관련 참수장면 동영상을 유포한 블로그를 집중 단속할 것이라고 한 걸로 보아, 이제 블로그를 인터넷 문화의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블로그의 확산은 단순히 어젠다를 형성하는 차원이 아니고, 어떤 어젠다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how to think about it), 다시 말해 현안에 대해 어떻게 틀짓기(프레이밍:framing)하는가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틀짓기 이론은 Northwestern대학의 로버트 엔트만(Robert Entman)교수에 의해 주창되고 Stanford 대학의 쉔토 아이옌거(shanto iyengar)교수등에 의해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 있는데, 핵심은 "언론이 헤드라인, 단수, 사진등 가능한 형식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또 기사나 사설의 내용과 관점을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감"으로써 이슈에 대한 특정 프레임(틀)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언론은 객관적으로 세상 소식을 전하는게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틀을 형성할 수 밖에 없고 이 틀은 사람들이 이슈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개인의 주관적 의견이나 어떤 관점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블로그의 포스트 역시 저널리즘 이론을 들먹이자면 "어젠다 세팅"보다는 "프레이밍(framing)"에 더 가깝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글 마저 읽기: read more]

블로거들은 기사를 스크랩하고 포스팅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담게 되고, 이것은 다시 이 블로그의 영향이 미치는 다른 블로거에게 퍼지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기사는 더 부풀려지고 편향적으로 흐르게 된다.[Zodiac47님의 블로그를 통한 미디어의 흐름, 그리고 문제점들에서]

이 부분은 사실 적절한 관찰이지만, 이게 오히려 블로그의 매력이라고 본다. 전공이 저널리즘이지만, gatorlog에서는 종종 "편파"적이고 "과장"된 글을 올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편파 과장이라기보다는 어떤 틀짓기를 하는 것이고, 나약한 일개 블로거의 목소리를 좀더 높이기 위해 논리적 비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수 있는 것은 내가 저널리스트로 글을 쓰는게 아니고 블로거로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라면 "임종새"라는 타이틀을 뽑지도 않을거고 마찬가지로 "나그네 파전"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이야기할 정도의 분석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무슨 막걸리찬가인가라는 유치한 글도 쓰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문사 사설이나 칼럼은 잘 읽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꼴통들을 향해 전방위로 육두문자를 내던지는 늑호님의 사설(?)은 즐겨 읽는 이유도 어떤 이슈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진솔한 의견을 들을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게이트키핑과 광고주의 제약, 혹은 정보원과의 관계, 그리고 이른바 "객관성"과 "중립성"이라는 허울뿐인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저널리즘이 쏟아내는 비평은 무딜수 밖에 없다. 이런 통제와 이해관계에 초연한 블로거에게서 여과없는 신선한 혹은 통쾌한 목소리를 듣는다는게 또다른 블로깅의 즐거움이다.

지켜지지도 않을 "중립성"과 "객관성"이라는 언론의 신화를 흉내낸다고 하면 그것은 블로그가 아닐 것이다. 의견을 내는 블로거라면 "이쪽도 싫고 저쪽도 싫다. 모두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자포자기식, 혹은 현실도피식 반응들에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첨예한 이슈에 하나의 관점과 의견이라도 더해 줘야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블로거는 매직 대신에 자판을 두드리며 "인터넷 시대의 대자보"를 계속 붙여대는 "인지적 활동가(cognitive activist)"일 수도 있다. 그게 지속적이고 일관되며 소신있는 목소리라면 수구꼴통의 입장을 대변하건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건 모두 활동가이다.

하지만 과장, 편파적인 블로그 포스트를 올리더라도 블로거들은 세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먼저 정보를 왜곡해서는 안된다. 약간의 과장된 비유나 이데올로기적 편파는 있을수 있어도, 정보를 왜곡하거나 없는 말을 지어내서 다른 이를 공격해서는 안된다. 다시말해 자신이 비판하는 이슈에 최소한 올바른 링크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zodiac님이 지적한 냄비근성이다... 물론 냄비근성과 어떤 중요한 이슈가 있을때 집중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긴 하다. 이른바 만두 사태로 아우성을 치는 것은 냄비근성이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매일 마시는 수도물이 구정물이 되고, 매일 마시는 공기가 한국인 암 사망의 주된 원인이될 수도 있고, 매일 드나드는 식당의 맛있는 우거지 해장국이 돼지잡탕밥으로 둔갑할 수 있고, 매일 맛있게 끓여먹었던 라면을 다 토하게 할 만큼 충격적인 보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 아닌가?

그러나 어떤 "뜨거운 감자"가 있을때 이를 언급하는게 냄비근성이 될까봐 말 못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김선일씨 피살로 파병 반대 한 번 높이고 그 다음에 이게 지나가면 잠자코 있다면 냄비근성이겠지만, 자신이 일관되게 파병반대 목소리를 내온 분이라면 이렇게 점화된 (priming) 이슈를 둘러싸고 더 강한 목소리를 내주는것도 "인지적 활동가"인 블로거들에 필요한 근성이다. 또 그게 바로 블로그의 진정한 생명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고 개인에게 무차별적인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앞에서 언급한 스탠포드의 쉔토 아이옌거 교수는 언론이 어떤 이슈를 부각시킬때 구조적인 관점(thematic framing)보다는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프레이밍(episodic framing)을 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왔고,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언론의 프레이밍이 수용자의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인식과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고 지적해왔다. 이를테면 이라크 파병 관련해서 대통령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이런 잘못된 판단을 잉태한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파병논리 확산과 제국주의 전쟁을 부추기는 조선일보를 빠뜨리면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중권처럼 무슨 문제든지 "유시민과 노빠"로 시작하는 증오섞인 비난을 퍼붓는다면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 관련글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1

    Posted by gator at 01:55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7)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uly 22, 2004

    베타 테스터(beta tester) 열풍뒤에 있는 자아(self)의 심리학

    작은 규모로 긴밀한 관계에 의해 커뮤니티를 형성했던 인터넷 개발 초창기에 비해, 오늘날의 웹 환경에서 사용자들은 정형화된 틀없이 확산되면서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거대한 카오나시같은 존재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모른다.

    MIT의 Sherry Turkle교수는 오늘날 웹 사용자들이 베타 테스트에 그렇게 열광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바로 베타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누구고 자신이 속한 곳은 어디인가를 찾아내려는 심리적 동기가 깔려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탠포드의 Nass 교수 역시 "베타 테스트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테크놀로지에 대해 특별한 지식을 갖는 것이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read more]

    Posted by gator at 03:10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August 26, 2004

    애플 컴퓨터와 리얼 네트워크의 분쟁을 보면서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디지털 뮤직 산업에서 일어난 조그마한 분쟁 -- Apple computer vs. RealNetwork -- 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심지어 오늘자 뉴욕타임스 사설은 "a digital divide"라는 제목 아래, 이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를 분석하면서 조심스러운 제안을 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RealNetwork사가 Harmony라는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면서, 이게 iPod은 물론이고 현존하는 모든 디지털 음악 연주기에서 작동한다고 주장한데서 시작한다. 문제는 하모니라는 이 소프트웨어가 "애플 컴퓨터의 iTunes을 흉내냄"으로써 애플사가 iPod과 iTunes와 관련해 가지고 있는 특허 및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RealNetwork측은 "애플사가 현재 iPod에 접근할 수 있는 음악 소프트웨어를 독점하면서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사설은 이런 주장이 기껏해야 이기적인 발상(self-serving)이라고 꼬집으면서도, 애플측이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 요즘 즐겨 나오는 말은 애플 컴퓨터가 1980년대에 운영체계의 라이센스를 주지 않음으로 인해 빚은 똑같은 실수를 다시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당시 애플 컴퓨터가 라이센스를 허용했더라면 지금처럼 빌 게이츠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이 문제와 관련해 맥 전도사 P군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운영체제 licence를 주지 않을까라는 내 질문에 그는 예전에 애플에서 그렇게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시장에서 맥의 가치를 형편없이 만들어 버려서 다시 이를 철회했다고 했다. 진짜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iTunes for windows를 지원하는 것도 못마땅해하는 일부 흰사과교 교도들은 소수라도 정통성을 지키자는 쪽을 선호할 지 모른다.

    Posted by gator at 07:37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2)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ecember 06, 2004

    온라인 음악 파일 공유및 저작권에 대한 예술인들과 가수들의 인식

    냅스터 분쟁이 일견 음반협회의 승리로 끝난 듯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 로렌스 레시그 교수의 노력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Wired최근호가 Creative Commons 라이센스를 표기해서 이 운동을 지지하는 가수들의 편집 음반을 별책부록으로 넣어주는가 하면, 현재 각종 창작물의 출판에도 이 CC 라이센스가 확산되는 인상이다. 심지어는 오랫동안 Lessig를 적으로 간주하던 전 미음반협회 회장 힐러리 로젠씨(hating Hillary) 경우도 Wired최근호에서 "How I Learned to Love Larry"라는 글에서 조금씩 레시그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글에서 힐러리 로젠도 인정했듯이 대형 음반사 역시 최근 합법적인 선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계약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테면 일전에 가수 Prince는 소니 음반사와의 음반계약에서 자신의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자신의 음반을 나눠줄 수 있다는 조건을 싣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온라인 음악 파일 공유(file-sharing) 혹은 공정한 사용(fair use)에 대해 가수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몇해전 냅스터 분쟁때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나 Dr. Dre등이 음반협회의 목소리를 강하게 들고 나와, 냅스터를 지지하는 진영의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 가수들이나 창작인들의 집합적 인식이 궁금하던 차였다. Pew Research 센터 조사팀의 한 분과인 the Pew Internet and American Life Project는 최근 온라인 사용자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가수들이 온라인 뮤직 다운로딩및 저작권 일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해 의견을 물었다.[보도자료, 뉴욕타임스 보도]. 이들의 생각은 대체로 일반일들이 이 이슈에 관해 갖고 있는 인식과 태도와 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fair use에 관한 인식은 일반인들보다 더 관대하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또 하나 재미있는 질문과 답변은 "인터넷의 등장이 이들의 수입에 영향을 미쳤는가, 또 더 폭넓은 수용자에 접근할 기회를 주었는가, 음악 해적행위를 통제하는것을 어렵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다.
    [source: NYT]

    Posted by gatorlog at 04:13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ecember 20, 2004

    지식의 추구: 창세기에서 구글까지

    구글이 글로벌 가상 도서관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후, 인류가 영속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력인 지식과 정보의 축적과 저장에 대한 논의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A History of Reading이라는 책으로 명성을 얻은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Alberto Manguel가 뉴욕타임스에 "지식의 추구, 창세기에서 구글까지"라는 좋은 에세이를 남겼다. 여기에서 Manguel은 웹의 등장 이전에 인류사에서 지식과 정보를 모두 끌어안아보겠다는 노력을 했던 사례들을 몇 개 들려준다. 그리고 과거 세상의 모든 책을 모두 저장하겠다던 Ptolemy I세의 야심과 구글의 야심을 견주고 있다. 물론 저자는 이 야심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The practical arguments for such a step are irrefutable: quantity, speed, precision, on-demand availability are no doubt important to the scholar.[중략...] All we need to do is remember the corollaries to the arguments in favor of a virtual library: that reading, in order to allow reflection, requires slowness, depth and context; that leafing through a material book or roaming through material shelves is an intimate part of the craft; that the omnipresent electronic technology is still fragile and that, as it changes, we keep losing the possibility of retrieving that which was once stored in now superseded containers. We can still read the words on papyrus ashes saved from the charred ruins of Pompeii; we don't know for how long it will be possible to read a text inscribed in a 2004 CD. This is not a complaint, just a reminder.

    그리고 그는 우리가 늘 알고 있지만 항상 믿으려 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들려준다.

  • The accumulation of knowledge isn't knowledge.
  • The world encyclopedia, the universal library, already exists and is the world itself.
  • Posted by gator at 04:12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1)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ecember 29, 2004

    Pirates of the Cyberspace


    image 출처: Wired 01/2005. p.157.
    If you do the math, that means that you're spending an hour to download four songs that you could buy for under $4 from Apple, which means you're working for under minimum wage. CNN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 인터뷰에서 인용

    Posted by gator at 06:07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DRM 비판

    애플 뮤직스토어에서 음악을 가끔 산다. 물론 p2p를 이용하지 않고 뮤직스토어에서 사는 이유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 200%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는 즉시 보호된 AAC를 mp3로 깨지 않으면 완전한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에 내가 돈주고 구입한 그 파일들을 모두 표준 mp3파일로 바꿔왔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에 오랜만에 한곡을 사서 mp3로 바꾸려고 했더니, 그동안 잘 작동했던 hymn이 도통 듣지를 않는다. 물론 애플측이 iTunes 새 버전을 출시하면서 이게 작동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한 것이다. 거대음반사를 설득해야 하는 애플측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DRM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참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iTunes새 버전의 lock을 깨서 표준적인 mp3파일로 만들수 없다면, 앞으로 나는 Apple 음반가게에서 음악파일을 사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데 Wired 편집장 크리스가 올린 글을 봤더니 "왜 Wired지가 DRM에 대해 명백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개인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I just can't be bothered. More importantly, my wife really can't be bothered. The Media Center works great, is easy to use, [read more]

    물론 나도 아내도 심지어 우리 아들이까지도 애플의 보호된 AAC 파일로 성가신 일을 겪은 적도 없고, 애플 제품이 사용하기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의 생각이 잘못된 이유는 그 발상 자체가 너무나 이기적이라는데 있다. 크리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sony가 표준을 따르지 않는 것도 비판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The real question is this: how much DRM is too much? Clearly the marketplace thinks that the protections in the iPod and iTunes are acceptable, since they're selling like mad. Likewise, the marketplace thought that the protections in Sony's digital music players (until recently, they didn't support MP3s natively) were excessive and they rejected them. Indeed, we were one of the first to criticize Sony in a big way for getting that balance wrong.

    왜냐하면 애플의 AAC는 iPod을 제외한 다른 mp3 player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다른 회사의 음악 관리 소프트웨어에서 iPod로 음악 파일을 옮길수도 없게 만들었거니와, 이를 시도하는 회사에 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firmware 업데이트로 이런게 작동하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크리스는 대수롭지 않게 이런 해법을 툭 던질지 모른다: 애플의 iPod을 사고 iTunes으로 음악을 들으면 아무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DRM을 깨야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바로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iPod에 필요 이상으로 넋을 잃고 있는 동안, 애플은 소리소문없이 소비자를 기만해왔고, 대신 거대 음반사들의 기쁨조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iTunes을 통한 스트리밍을 제거했고,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통한) iPod을 통한 다운로드를 봉쇄하는 iTunes4.7 판올림을 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애플이 처음 자신들의 보호된 AAC파일을 가지고 10번 정도 다른 플레이리스트에서 구울 수 있다고 해놓고서는 iTunes 4.7을 내면서는 그 횟수를 7번으로 줄여버렸다고 한다 [read more]. 이는 마치 카드회사가 처음에 7%의 상품 구매 이자를 약속했다가 몇 개월 후 고객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카드율을 13%로 올린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7번이고 10번이고 아직까지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온라인 음악 시장의 독점이 지속되면 나중에는 아예 CD로 굽기를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보잉보잉을 읽지 않기 때문에 Cory Doctorow라는 이가 쓴 글을 처음 보았다. 크리스 글의 트랙백을 타고 들어가서 읽은 Cory글에 다음 대목이 나온다.

    DRM isn't protection from piracy. DRM is protection from competition. [더 읽기]

    즉 DRM이 evil로 간주되어야 하는 이유는 DRM은 경쟁으로부터 (특정 업체(들))을 보호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소비자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많은 이들이 evil empire로 간주하는 Microsoft의 발상에 근접해 있다고 본다.

    Posted by gator at 06:38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6)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anuary 04, 2005

    RSS traffic syndrome

    RSS 기술이 없었더라면 블로그의 성장추이가 지금처럼 빠르지는 않았을것이다.

    개인에 따라 배합의 차이는 있겠지만 블로그를 기록함과 더불어 rss aggregator (혹은 news reader)를 통해 블로그를 읽는 행위가 함께 따라줄 때 진정한 블로깅(blogging)이 이뤄지는 것이다. 자체 브라우저를 내장하고 그룹별 구독과 podcasting까지 지원하는 NNW 2.0 대 버전이 나온 뒤로 내 RSS 구독 역시 더욱 풍성해지고 빨라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RSS aggregator의 맹활약(?)으로 bandwidth 용량 초과를 호소하는 사이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트래픽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일부 사이트들도 실제 방문자수의 증가보다는 rss수집 갱신 주기의 잦은 설정에서 오는 이른바 "RSS 트래픽 신드롬"을 겪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블로그 시대에 웹 사용자들은 홈페이지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트래픽을 할당받고도 매번 트래픽 제한용량 초과라는 "영광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blogosphere에 "RSS 트래픽 신드롬"이 점점 확산될 때 웃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웹호스팅 회사들과 RSS Cache처럼 RSS bandwidth 초과 사용 솔루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들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gatorlog at 04:02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anuary 07, 2005

    찬사와 비난 사이

    일전에 iTunes과 iTMS의 D.R.M.에 상당히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올렸는데, 오늘 자신이 iTunes이용자라는 어떤 이가 애플 컴퓨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lleging Apple is guilt of violating federal antitrust laws and California's unfair competition law by requiring users who buy music from the iTunes Music Store to use an iPod if they plan to take their music on the road with them. Slattery's suit cuts to the heart of an ongoing issue related to Digital Rights Management (DRM) technology present in commercial downloaded music. [read more]

    작년 한해는 iTMS라는 온라인 음반상회와 iPod의 대성공으로 스티브 잡스 (Steve Jobs) 운수대통의 해로 마감했는데, 새해에는 이런 비판(애플 컴퓨터의 거만함)과 소송을 당하면서 별로 산뜻하지 못한 출발을 하고 있다.

    Posted by gatorlog at 03:30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도마위에 또 오른 빌 게이츠

    빌 게이츠의 CNET 인터뷰중에서 게임 관련 부분을 빼고 다음 부분만 읽었다: 블로그, 애플에 대한 견해, 웹브라우저, 마지막으로 저작권.

    블로그에 대해서는 그는 우선 "The decay rate of "I started and I stopped" or "I started and nobody visited" is fairly high...."라면서 blogosphere의 거품 현상을 지적하면서 운을 뗐다. 또 자신도 역시 시작했다가 지지부진할까봐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다고 말을 한다. (여기에 대해선 딴지걸 생각없음!!)

    하지만 웹 브라우저에 대한 의견에서는 그의 오만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고, 저작권 관련한 주장에서는 매카시적인 "딱지 붙이기(labeling)"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 Well, people get confused about browsers. You can have as many browsers as you want on your PC, just like you can have tons of music players and things like that.
    • In terms of our agility to do things on the browser, people who underestimated us there in the past lived to regret that.
    • There are fewer communists in the world today than there were. There are some new modern-day sort of communists who want to get rid of the incentive for musicians and moviemakers and software makers under various guises. They don't think that those incentives should exist.

    정말 그런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한가지 브라우저만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MS의 브라우저는 윈도우라는 운영체제에 질기게 붙어있는 강제 사양이다. 내 경우는 사파리라는 브라우저를 줄곧 사용하다 불여우를 병행해서 써보고 있는데, 두개를 사용하는게 너무 불편하다. 북마크도 그렇고, 새로운 기능이나 설정을 배워야 하는 것도 그렇고...답답해서 뭔가 하나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논리가 잘못되었다. 빌 게이츠는 "수많은 뮤직 플레이어등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사용자들이) 수많은 브라우저를 가질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말을 바로 잡아야겠다. 수많은 뮤직 플레이어에서 내가 즐겨사용하는 뮤직 플레이어가 하나이듯이, 수많은 웹 브라우저에서도 내가 즐겨 써야 하는 브라우저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과거에 IE를 얕잡아 본 사람들이 결국 살아가면서 후회하게 되었다"는데 이르러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Lessig등이 주장하는 C.C.L.을 염두에 둔 질문이 있었다. "소수의 사람에서 시작한 현실적이고 탄력있는 저작권 개혁 운동이 많은 지지자를 확보했다. 당신은 저작권을 개혁해야 한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빌 게이츠의 대답이다.

    There are fewer communists in the world today than there were. There are some new modern-day sort of communists who want to get rid of the incentive for musicians and moviemakers and software makers under various guises. They don't think that those incentives should exist.

    빌 게이츠의 논리대로 하자면 자신의 블로그에 C.C.L.을 같다 갖다 붙인 수많은 블로거들은 "여러가지 (논리의) 가면을 쓰고" 음악가나 영화 제작자, 그리고 소프트웨어 제작자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거하려는 "일종의 현대판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CCL 진영등을 "modern-day sort of communists"로 바라보는 그의 인식 수준의 천박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실 "멍청할 리 없는" 빌 게이츠가 그런 수준낮은 주장을 하는 것은 인식 수준의 가벼움에 기인한다기보다는 그의 두뇌 역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보편적 진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찌됐건 빌게이츠가 오랫동안 high tech업계가 가장 혐오하던 인물이었다는게 이해가 된다. update:
    글 올리고 NNW로 스캔해 보니, 몇 몇 블로거들이 빌 게이츠의 발언에 대한 견해를 내놓았다.

    Posted by gatorlog at 04:56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3)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anuary 13, 2005

    시장에서는 숫자로 말한다

    Firefox로 바꿔야 하는 10가지 이유에서 나를 매료시킨 것은 별로 없다. firefox 사파리 브라우저를 이용해왔던 Mac 사용자들은 이미 탭 브라우징이나 팝업창 방지, 툴 바에 북마크, built-in 구글 검색창 등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파리가 따라잡을수 없는 단 한가지 특징을 잡으라면 바로 검색창의 추가 연결기능이다. 사실 구글 검색만 가지고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아주 빈번하게 아마존 책 검색과 위키피디아 검색을 하는데, 할 때마다 북마크된 페이지를 열고 또 다른 검색을 위해서는 back버튼을 눌러야 하는 몇 단계를 거치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런데 불여우로는 아주 손쉽게 검색창간을 이동해가면서 검색을 할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한게 아니다. 나는 별로 이용하지 않지만 심지어 네이버 검색까지 연결할 수 있다.

    firefox그러나 나는 모질라 불여우가 IE(Internet Explorer)의 시장을 엄청나게 잠식하기를 희망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브라우저 시장이 비윈도우계 90, 윈도우계 10으로 재편되게 해달라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생각이다. 물론 최근 시작한 프로젝트도 Firefox 캠페인에 대한 기억과 태도에 관한 실험 연구다.

    그런데 솔직히 이렇게 내가 Firefox 풀뿔리 PR 캠페인의 단원(^ ^)이 된데는 내 이해관계가 강하게 깔려 있음을 고백해야겠다. 아시다시피 외국에 있으면 Mac으로 사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대권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셨던 존 케리도 맥 사용자 (사진)이고, 비운의 싸나이 앨 고어는 애플 컴퓨터 이사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애플 사용자이고,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왕재수 미국 대통령의 경우는 iPod사용자 (사진)라고 한다. 미국 학술 컨퍼런스가 열리는 호텔 로비에 앉아서 랩탑 비율을 보면 Mac이 이 세상의 주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powerbook이나 ibook이 많다. 그리고 현재 내가 구독하는 외국 (주로 미국)의 저명한 블로거들이나 테크놀로지 칼럼니스트들의 대부분은 Mac사용자들이다. 심지어 요즘 블로그 사업으로 재미를 보는 무버블 타입의 Six Apart 직원들 대부분도 Mac 매니아들이다. 미국에서 겨우 5%밖에 Mac인구가 없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애포(apple forum)의 대문 문구처럼 "괴로운 한국의 맥 사용자들"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떨어져 살고 있기에 나는 불편함이 덜 하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고민이 있다. 한번씩 친구, 친지들의 관혼상제에 마음을 전할 일이 있을 때마다 창고에 쳐박혀 있는 옛날 PC의 먼지를 후후 털어내야 한다. 바로 그놈의 인터넷 뱅킹이다. 사실 작년 이맘때쯤 신한은행 서비스 소식을 들은 이후로 내가 한국에 들어간 적이 없어 이런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바로 브라우저 호환성에 따른 접근성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껴야 한다. 이제 불여우라는 경험을 통해 특정 컴퓨터 운영체제나 비 IE계 웹 브라우저 사용자들이 차별적인 대우나 서비스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웅성거림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와야 한다. 특히 그게 국가 기관이나 공영업체, 혹은 금융, 통신업계등일때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소송등도 제기해 봄직하지만, 일부 개인이나 단체들의 운동으로는 효과가 없을 듯 하다. 결국 믿는 것은 시장의 힘 밖에 없다.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용자들이 IE가 아닌 특정 브라우저를 사용한다면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고 결국 시장의 논리에 따라 근본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읽었던 BusinessWeek의 "Mozilla is gaining on Godzilla"의 다음 대목은 내 생각과 일치한다.

    BEYOND BROWSERS. Still, analysts say Firefox could have an outsize impact on the Net's future. If Mozilla and the other non-Microsoft browser outfits hold their own or gain share, the 15% of Web sites that aren't completely compatible with non-Microsoft browsers will come under pressure to design their sites to open Net standards. That way, Microsoft won't be able to control how content is presented on the Web.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중에 아직도 Firefox(불여우)라는 웹 브라우저를 사용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10분 정도 투자해서 이를 시험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Posted by gatorlog at 12:47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7)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anuary 15, 2005

    [특종] ThinkSecret 에디터 얼굴을 드러내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500달러짜리 Mac과 플래쉬 메모리 내장 소형 iPod(나중에 이름이 iPod 셔플로 밝혀졌지만) 루머가 모두 사실로 확인되면서 과연 이렇게 쪽집게 예언(?)을 한 사람들은 누구인가에 일각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애플이 이를 미리 공표한 ThinkSecret과 관련 당사자들에게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과연 내부에서 밖으로 정보를 유출시킨 사람이 누군가를 찾으려는 목적이 강하다. 이 사건은 일전에도 잠깐 언급한바대로 블로깅 시대의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와 정보원 공개 문제"에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단 미국의 경우에는 수정헌법 1조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못박고있고, 연방법원의 판례에서도 정보원 공개여부를 저널리스트들의 특권으로 인식해줄만큼 정보원 보호[Cohen v. Cowles Media Co; HUSTLER MAGAZINE v. FALWELL]에 대해서는 확고하다. 미 오레곤 대학의 염규호 박사처럼 저명한 미디어 법학자들은 심지어 저널리스트의 정보원 보호 특권을 남용한 사례 (abuse of confidentiality)에까지 이런 정보원 보호 원칙을 적용해야한다는 주장을 최근 올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른바 정식 저널리스트가 아닌 이른바 블로거나 특정 사이트의 운영자들도 같은 보호를 받을수 있는가? 장담컨데 향후 1~2년내에 이런 사건들이 블로그계를 떠들석하게 만들것이기에 최근 애플 컴퓨터의 ThinkSecret 소송 사건은 주목을 받아야 한다.

    어제 워싱턴 포스트는 "10대 웹 에디터가 애플 컴퓨터를 소송으로 몰다(Teen Web Editor Drives Apple to Court Action)" [backup]라는 제목아래 특종을 건졌다. 현재 19살이며 하버드 대학 신입생인 Nicholas M. Ciarelli는 13살때 이미 이 애플 인사이더 소식을 전하는 웹사이트를 구축했고 16살때 파워북 G4버전이 나온다는 소식을 세상에 맨 먼저 알렸다. ThinkSecret에 있는 Nick dePlume라는 에디터 이름은 가명이며, 가명을 쓴 이유는 10대 소년이 에디터로 있다면 또 그만큼 공신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3년뒤 다시 500달러짜리 Mac이 나올것임을 세상에 맨먼저 알렸다. 특히 이번 경우는 "블로그계에서 소문은 지구의 자전속도보다 빠르다" (by 아거)는 것을 실감케 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자 이제 Ciarelli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I believe that like other reporters I am protected by the First Amendment.

    이제 모든 특종을 저널리스트들만이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블로그의 대중화가 확산될수록 그리고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블로그계로 더 많이 입문할수록, 혹은 특이한 관심을 가진 개인 전문가들이 블로그계로 더많이 진입할수록 이제 사회에 파장을 몰고올 수 있는 특종들이 블로그계에서 생산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ThinkSecret처럼 회사의 기밀을 혹은 다른 경우에는 정부의 주요 기밀을 전해 들은 블로거들이 이를 자신의 블로그에 실었을 때, 법원은 이들에게도 저널리스트에 준하는 정보원 보호쪽에 무게를 실어줄 것인가?

    법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법원의 판결까지 예측할 수 없다. 일단 저널리스트들의 정보권 비공개 특혜를 뒷받침하는 법리적 혹은 철학적 근거는 바로 "공중의 알권리"라는 이른바 공중의 이익 (public interest)을 위한다는 것과 "whistle-blower"를 보호하지 않으면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폭로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물론 미국에서는 이를 지나치게 보호함으로써 위의 링크에서 언급된 보수 언론인 Novak처럼 법으로 금지된 국가요원(C.I.A.)의 비밀 신분을 자신의 정략적 이해관계를 위해 폭로하고도 이를 언론인의 정보원 비공개 특혜라는 관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어거지를 쓰는 폐해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블로거들도 언론인에 준하는 표현의 자유와 정보원 비공개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는 참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법 전문가가 아니라 확실한 주장을 할 수는 없지만, 블로거들의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하고, "공중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에는 "정보원 비공개"라는 특혜를 블로거들에게도 확대 적용해주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블로거 역시 허위 과장된 글이나 중상모략으로 타인의 명예를 휘손했을 경우에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잠깐 그러보니 그동안 우리나라 어떤 언론 혹은 언론인들은 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했던 한마디로 眼下無人들이 아니었던가?]

    Posted by gatorlog at 12:34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5)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anuary 16, 2005

    디지털 시대의 필수 시험?

    디지털 시대에 그리고 블로그 시대에 "밀에서 왕겨 거르기"의 필요성에 대해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 토플, GRE, SAT등을 주관하는 ETS는 이제 The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literacy assessment라는 시험을 주관한다고 한다. 이 테스트를 개발한 동기는 역시 디지털 시대에 학생들이 넘쳐나는 정보속에서 어떻게 "밀에서 왕겨를 걸러내는가"(sorting the wheat from the chaff)를 측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The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literacy assessment, which will be introduced at about two dozen colleges and universities later this month, is intended to measure students' ability to manage exercises like sorting e-mail messages or manipulating tables and charts, and to assess how well they organize and interpret information from many sources and in myriad forms. [read more]

    Posted by gatorlog at 10:47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anuary 18, 2005

    "온라인 음악 저작권 논쟁에 관하여 생각해 보기"를 읽고

    한동안 블로그계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한 국내 블로그계의 반응들에 적잖이 놀랐다. 이번 개정안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짚어보려는 노력은 거의 전무했고 필요 이상으로 우리의 amygdalas를 자극해 공포감만을 조장하려거나 혹은 "올것이 왔군요"라면서 그냥 묵묵히 고개를 떨구는 연약한 반응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늑호님처럼 " 휴우~ 이제 소음공해에서 벗어나 쾌적하게 웹서핑을 할 수 있겠다"라는 약간 논점을 벗어난 그렇지만 뚜렷한 의견이라도 읽을때면 ㅎ ㅎ 하고 웃을수 있었다.

    a77ila's blog에 올라온 "온라인 음악 저작권 논쟁에 관하여 생각해 보기"라는 글은 이번 개정안에 담긴 의미와 그게 이른바 "권리의 일정 부분"을 특정 조건하에 자발적으로 풀어주자는 이른바 창조적 공용재(C.C.L.)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부분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작권의 전송권자를 확대함으로써) 이해당사자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런 형태 (=C.C.L.등)를 채택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괄호안은 옮긴이가 덧붙임]
    라는 부분에서 이번 개정안이 무얼 말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당연히 개정안 이전이고 이후고 블로그나 카페에 음악을 올리는 행위는 불법이었기에 이번 개정안때문에 특별히 우리의 목이 다른 방식으로 비틀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전이고 지금이고 우리는 마땅히 법의 테두리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확 달라진게 있다면 이들 음원과 전송권을 움켜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이 이제 기존 매체에서 블로그계로 확장해 오고 있다는 점뿐이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일전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음원 보호를 이유로 인터넷 재방을 막아버린 우리나라 음반 사업 관계자들은 이번에는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 특히 블로그에서도 삼엄한 경비를 할 태세라고 하니 이들의 근시안적이고 아메바적인 계산법에 나도 이렇게 똑같이 냉소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법으로 돌아와서, 우리 사회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인터넷 시대에 현실성 있는 저작권 논쟁을 잠깐 더 언급해 본다. 빌 게이츠같은 이는 이른바 C.C.L.등을 잘못 이해하고,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창작자의 "인센티브"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공산주의자같다고 묘사를 했지만, 이는 명백히 왜곡된 견해이다. Robert Boynton이 쓴 the tyranny of copyright (backup)을 보면 분명히 이들은 인센티브를 인정하는 바탕위에 있다. 한마디로 이런 copy left류의 철학을 관통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점점 "free"로 되는게 없어짐으로써 그리고 "불법 해적질"에 대한 지나친 단속으로 선의의 "접근"과 "이용"을 막는다면 "창작"을 견인할 수 있는 "생각"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Robert Boynton의 글을 꼭 읽어보시고 저작권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의견들을 한 번씩 정리해 보시기를...

    Posted by gatorlog at 03:18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5)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anuary 29, 2005

    iPod셔플과 엔트로피

    iPod셔플이 도착했다. 매일 조깅하고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아내에게 꼭 필요할 것 같아 주문을 내긴 했지만, FireWire를 통한 슈퍼 스피드 파일 전송(transfer)의 즐거움에 익숙한 기존 iPod사용자들에게 이번 iPod셔플은 모든게 불편하게 보인다. 우선 USB포트에 연결하는 부분이 너무 커서 eMac에 있는 USB포트에 맞지 않아 할 수 없이 pro keyboard(USB포트가 있는 애플 키보드)에 연결해서 충전을 해야 했다. 파워북의 USB포트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이걸 꽂으면 다른 포트 하나는 사용할 수 없다. 블루투스 무선 마우스를 쓴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화면이 없다는 것은 알았고 물론 곡목을 보는 사치는 별 중요한게 아니라는 점은 애초에 인정했지만, 배터리 상태를 보기 위해 뭘 눌러야 하고 그것도 양적인 상태를 보여주는게 아니라 점으로 표시된다는게 아주 못마땅했다. 음악 전송은 역시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40기가바이트 iPod을 FireWire를 통해 채우는게, 1GB의 iPod셔플에 780메가바이트 정도 채우는 것보다 더 빠르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참아줘도 결정적으로 리모트 컨트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연 이 정도 값어치를 하는가에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모든게 준비되고 음악이 귀에서 울렸을때 이 모든 불만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들으면서 일전에 스크랩해두었던 John Schwartz의 칼럼을 다시 읽었다. 시장에서 이미 뜬 Blink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메시지와 앞으로 뜰 iPod셔플이 표방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비교하면서 글을 풀어나가는데 참 잘 썼다.

    John Schwartz가 "예술가의 태도와 인류학자의 눈을 가진 애플"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확했다. 일찌기 애플이 rip-mix-burn이라는 혁신적인 catch phrase로 iTunes과 수십 기가바이트의 iPod을 시장에 던졌을때 인류는 디지털 시대의 자신들의 음악 소비 취향을 정확히 읽고 선도적으로 이를 시장에 반영시켜준 애플에 정직하게 반응해주었다. 그런데 왜 디지털 음반 시장의 中原을 평정한 애플이 자신들이 애초 거부했던 변방을 탐내는가? 이건 변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John Schwartz가 주장했듯이 수십억개의 웹 사이트, 수백만개의 블로그, 그리고 수십만권의 책들, 수백개의 텔레비전 채널에서 울리는 불협화음속에서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도 없고, 또 자신을 둘러싼 모든 소음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결국 정보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메타 사이트를 피하기도 하고,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양만큼의 블로그를 자신의 RSS 리더기에 조금 옮겨담아 구독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관점에서 iPod시장을 바라보면 40 기가바이트, 60 기가바이트 iPod이라는게 결국은 엔트로피의 증가와 다를 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애플의 Steven P. Jobs는 이제 "인생은 랜덤이다"를 들고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멋진 캐치프레이즈도 따지고 들어가면 "필요한 만큼만 덜어 먹으라"는 엔트로피 관리의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The basic concept of entropy in information theory has to do with how much randomness is in a signal or in a random event. An alternative way to look at this is to talk about how much information is carried by the signal. [information theory]

    Posted by gatorlog at 01:21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4)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02, 2005

    블로그롤과 관계적 스키마

    사회적 네트워크망에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에서 구성원들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머리속은 언제나 "철수는 누구와 친하지?" "누가 철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지?"같은 궁금증을 풀려는 동기감으로 충만해있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우리의 심리적 동기는 사회적 관계망속에서 바람직한 사회적 상황을 이끌어내려는 욕구에 기반을 하고 있다. 조직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성공적인 프로젝트팀을 구성하는 것, 인적자원을 適材適所에 배치하는 것도 다 이같은 관계적 스키마(relational schema)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입력하고 머리속에 또올리고 또 추측하는데 이용하는 두가지의 기본적인 관계적 스키마는 바로 균형과 선형적 순서이다. 균형은 철수가 만수와 친하고 만수가 백수와 친하면 철수는 백수의 친구다라고 생각하는 우리 인지의 틀을 의미한다. 관계적 스키마에서 선형적 순서라 함은 철수가 만수에게 영향력을 주고 만수가 백수에게 영향력을 주면 우리는 철수가 백수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대인간 커뮤니케이션이나 대인관계망에 관한 많은 연구들에서 이런 전형적인 삼자 관계의 모델이 입증되었다.

    문제는 사회적 네트워크망에서 이런 모델이 언제나 유효한게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철수와 백수가 친구가 아니고, 철수가 백수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그런 관계망이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수도 없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Janicik과 Larrick은 이런 모델을 "불완전한 사회적 네트워크(incomplete social network)"라고 부른다. 불완전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인위적으로 완전하게 만들수는 없다.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불완전한 관계(incomplete relations)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 불완전한 관계들은 구성원들간의 성격과 생각에 간극이 존재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직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은 실무자나 경영자들에게는 이런 불완전한 네트워크망을 좀 더 완전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몇가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최근 웹에 기반한 RSS구독기인 블로그라인스에 OPML의 일부를 내보내서(export) 테스트를 해봤다. 생각보다 휼륭하다. 워낙 데스크탑 기반 RSS리더기(NNW)에 익숙해져 있어서 계속 블로그라인스를 이용할지는 의문이지만, desktop 뉴스 리더기가 흉내낼 수 없는 뛰어난 세가지 기능이 있다: "bookmarklet"(sub with Bloglines), "블로그롤" 그리고 "추천" 기능이다. 아마존의 "이 책을 읽은 고객은 이 책도 읽습니다"라는 "독자 성향 분석" -- 전문 용어로는 collaborative filtering이라고 하는데 -- 이 웹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애플의 온라인 음반가게 iTMS가 그렇고, 블로그라인스도 그렇다. 블로그라인스에 OPML의 일부 그룹을 올려두고 보니까 "이런 블로그를 읽은 고객은 이런 블로그도 읽습니다"라는 추천이 뜬다. 그런데 그 추천을 보다 보니 역시 블로그롤에도 불완전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물론 사회적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질수록 철수와 백수가 친구가 되지 못하는게 철수가 만수 친구 백수를 네트워크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데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철수가 백수를 알고 있는데도 백수와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불완전한 네트워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왜 불완전한 네트워크가 존재하는가를 잘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웹의 심리다. 기존 사회 심리학에서 발견되는 모든 현상들이 그대로 웹에 존재한다.

    Posted by gatorlog at 09:10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04, 2005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검색

    블로거들에게 제일 고민스러운게, 글을 쓸때 그림이나 사진을 넣고 싶은데 저작권이 신경쓰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달리에 관한 글을 쓰면서 달리 그림 하나 넣고 싶은데, 왠만한 웹 사이트의 사진들은 모두 저작권의 엄격한 적용을 받는다. 물론 나같은 일개 블로거에게까지 엄격한 손을 뻗을까 싶어서 무턱대고 옮겨오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이런 경우 Creative Commons Search를 이용하면 의외로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나 글을 옮겨올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dali를 입력하고 format을 image로 해서 검색을 했더니 달리의 그림을 개작한 블로거의 작품이 제일 위에 뜬다. 당연히 옮겨와도 무방하다.

    심지어 상업적으로 이용해도 좋다는 조건에 클릭하고 검색을 하면 자신이 쓰고 있는 책이나 상업적 웹사이트 어디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니 이야말로 CCL 국제 연대가 가져올 수 있는 큰 장점중 하나가 아닐까? Firefox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물론 검색 툴바에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기때문에 더욱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CCL 검색에서 dalmation을 검색해보자..... 두번째로 gatorlog의 글이 보인다. 물론 달마시언 개 이미지를 구할 수 있다. ^ ^ 영어로 gator(악어)를 넣어보니 gatorlog에 있는 글이 가장 먼저 올라온다. ^ ^ 됐어..악어계는 평정한 것 같군... ㅎ ㅎ

    Posted by gatorlog at 11:30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3)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10, 2005

    블로그는 에피소딕 기억과 시맨틱 기억을 남긴다

    그동안 블로그와 저널리즘을 바라보는 내 기본 관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수많은 관찰을 통해 이제 내 자신이 블로그를 하는 목적과 블로그의 미래를 보는 내 견해도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GatorLog의 아거를 알던 몇 몇 지인들이 아거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이제 GatorLog는 자아 내보이기라는 화두를 벗어나서 블로그의 활용오픈 소스 저널리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미래라고 할 수 있는 두 아들 녀석들의 블로그를 따로 만들어 비공개로 돌린 이유도 거기 있다.

    나는 세상에 있는 블로그를 두가지 형태로 보고 있다. 하나는 에피소딕 기억을 남기는 블로그이고 다른 하나는 시맨틱 기억을 남기는 블로그이다[gatorlog관련 글: two rounds of golf]. 이렇게 말하면 "나는 자서전적 기억을 남기는데"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자서전적 기억이라는 것은 에피소딕 기억의 한 형태이다. 물론 현재 블로그계(blogosphere) 대부분의 블로그는 이 두가지 기억을 혼용해서 남기고 있다. 그게 바로 구독하는 블로그들을 임의로 두가지 분류에 따라 나누기 힘든 이유이다. 물론 당사자들도 때로 "어...나는 시맨틱 기억을 남기는데"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것 역시 아거라는 독자의 눈에 비친 즉석 판단 혹은 3초간의 첫인상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아거가 바쁜 가운데 인상 형성의 오류를 범한 탓일수도 있으리라. Blink의 저자 Malcolm Gladwell은 깊게 생각해서 내린 판단보다 이른바 즉석 판단(snap judgment)이 더 정확할 수가 있다고 했으니 이를 핑계삼아야겠다. 어떤 분들은 "나는 오늘부터 작심하고 좀 더 전문적으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 다시 말해 semantic 기억을 남겨보려 하는데 --- 그게 안된다....쓰다보면 집안 이야기도 나오고 자식들 이야기도 나오고....그래서 에라 모르겠다...그냥 아무런 목표 의식없이 써나가는게 블로그인가보다"라고 고백한다. 물론 100% 맞는 이야기다.

    사실 요즘 블로그계에 조금씩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려는 이른바 시맨틱 블로거들이 늘어나서 그렇지, 아직도 블로그계의 대다수는 이런 영역보다는 "에피소드 듣기 -- 즉 경험 공유하기" 혹은 "관계맺기"를 지향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블로그라는게 기본적으로 나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미디어이기에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그래 맞아맞아...언젠가 나도 그런 기억이 있어"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해 있으면 어떨까" "어쩜 저 사람은 내 생각과 똑같을까" "야..저 사람 나하고 관련이 많은 일을 하네" 라는 식의 자기 관련성이 있는, 혹은 개인의 상황적 맥락에 들어맞는 블로그나 블로그 글 읽기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atorLog는 이제 에피소딕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남이 보는 공간에 에피소딕 기억을 남겨놓으면 심리적인 불편함이 늘 존재한다. 글 쓰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글 올린뒤에도 자꾸 되돌아보고... 하지만 시멘틱 기억을 남겨놓으면 글 작성도 순식간에 할 수 있고, 글을 남긴 뒤에도 신경쓰일게 없다. 간혹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나 지식이 틀리면 읽는 분들이 수정도 해주니 거기서 배우는 것도 있고....두번째는 전에 블로깅의 즐거움이란 글에서도 적었듯이 "내 글을 몇 명이 읽냐"는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내 글을 누가 관심있게 지속적으로 읽는가"가 블로깅 생활을 이끌고 있는 動因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적 스키마에 따라 나 역시 "블로깅을 하는 목표(goal)와 글의 방향"을 현저하게 보이는 관객들에게 맞춰 나가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지식의 축적이다. 물론 최근에는 정보 저장및 가공을 위해 데스크탑 기반인 DEVONthink에 위키식 글쓰기를 즐기고 있지만, 시간날 때 시맨틱 기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다보면 의외로 관련 분야에 지식이 축적된다. 그게 바로 GatorLog Liked와 GatorLog for Macolyte를 만든 이유다. 읽는 독자가 한 명도 없어도 무방하다. 정리만 하고 있어도 점점 내가 모르던 분야에 눈이 떠져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물리적 위험 부담이 없다.. 예를 들어 최근 구글에서 해고된 Jen역시 문제는 에피소딕 기억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냥 구글 검색이 어쩌고 구글툴바가 어쩌고 하는 정보를 위주로 글을 썼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이게 내가 시맨틱 기억을 남기는 블로그를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에피소딕 기억을 남길 수 없는 블로그는 앙꼬없는 찐빵이다. 마치 개성없는 블로그라고나 할까..예전에는 이런걸 블로그로 보지도 않았는데, 나 자신도 이제 앙꼬없는 찐빵 블로그가 되어 간다. 내가 할 수 없기에 여전히 나는 이렇게 진한 에피소딕 기억을 들려주는 블로그를 우리 시대 최고의 블로그라고 꼽고 싶다. 에피소딕 기억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그래서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시맨틱 블로그가 범접할 수 없는 깊은 세계가 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위대하다:: Imagination is Greater than Knowledge. (아인슈타인).

    Posted by gatorlog at 05:43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2)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오픈 소스 저널리즘 1: 위키뉴스

    WikiNews는 엄밀한 의미에서 open-source journalism [블로그와 오픈 소스 저널리즘]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엄밀하게 오픈 소스 저널리즘은 취재와 편집에서 모두 열려 있는 저널리즘을 말한다. 우리나라 오마이뉴스의 형태를 이른바 "참여 저널리즘" 혹은 "시민 저널리즘"이라고 부를수는 있지만 오픈 소스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gatekeeper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이트키퍼가 존재한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게이트키퍼 저널리즘의 장점은 "뉴스 가치(news values)"를 보는 안목을 가진 게이트키퍼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게이트키퍼의 시각이 공익보다는 특정 이데올로기 혹은 광고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위키피디아의 열성적인 팬이고 위키뉴스의 취지와 임무에는 공감하지만 뉴욕타임스에서 인용된 바대로 위키뉴스는 위키피디어보다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은 듯 하다 [사진은 뉴욕타임스에서 사전 허락없이 가져옴]. 먼저 게이트키퍼가 없다는 점, 그리고 지면 배치가 없다는 점이다. 단편집이라는 기존 매체의 뉴스 경중 두기에 이미 우리는 너무 익숙해 있다. 인터넷 신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경성뉴스(hard news)보다 커뮤니티 뉴스, 혹은 피쳐 기사들을 다룰 경우에는 그런대로 매력이 있지만, 또하나 걸림돌이 있다. 바로 이른바 객관성 혹은 중립성의 신화를 흉내내고 있다는 점이다. Dan Gillmor도 언젠가 그런 이야기했지만, 이제 객관성 혹은 중립성이라는 허울뿐인 가치가 지배하던 시대는 가고 있다. 블로그와 RSS로 대변되는 새로운 시대에 단순 기사 전달을 하는 뉴스는 아무런 매력이 없다. 이를테면 어떤 신문이고 그냥 RSS를 끌어다가 제목만 검색해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대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른바 탐사보도 혹은 요즘 유행하는 노컷 뉴스, 혹은 기자들의 취재 뒷이야기가 신문의 전통적 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들로 보인다. 진정한 오픈 소스 저널리즘은 사상의 시장에 모든 의견이 자유롭게 유통되도록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이제 블로거들의, 블로거들에 의한, 그리고 블로거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오픈 소스 저널리즘이 필요한 때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6:23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1)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13, 2005

    블로그 방문자수의 파레토 법칙

    이태리 경제학자 Vilfredo Pareto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은 80-20 법칙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이탈리아 80%의 자산이 20%의 인구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를 경영학에 최초 적용한 사람은 Joseph M. Juran이었다고 한다. Juran박사는 이른바 중요한 소수, 대수롭지 않은 다수(vital few and trivial many)라는 이론을 통해 소수의 20%가 80%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때문에 이른바 질적 경영(quality management)이 필요함을 주창했다. 물론 이는 20%가 긍정적인 80%를 만들어낸다는 쪽으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20%의 불량품이 80%의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의 80-20에 적용시켜볼 수도 있다.

    블로그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로그 분석"이라는 분야에 거의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들여다 본다고 그게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 싶어 전문적인 로그 분석은 하지 않고 가끔 카페 24에서 제공하는 일일 전송량만 들여다 본다. 대신 누가 내 뒷말 하지 않을까 모니터링하려고 (^ ^) 블로거들 사이에 유명한 refer는 이용을 한다. (농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카페 24에서 추산하는 일일 방문객 수를 믿을 수가 없다. 사실이라고 해도 80%에 달하는 방문은 위에서 말한 사소한 방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 80%에는 검색을 통해서 해당 글을 클릭했다가 그냥 빠져나가는 일회성 방문자, 그리고 원치않는 불청객 스팸 로봇, 그리고....모르겠다.... 혹시 이 분야를 잘 아시는 분이 이 80% 사소한 방문의 예를 채워주시길...

    결론적으로 80-20법칙을 적용하자면 그 20%의 방문이 여러분의 블로깅 생활을 견인해 나가는 현저하게 보이는 관객이다. 이들 20%에게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Posted by gatorlog at 01:50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5)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블로거는 긴꼬리를 남긴다

    2006년 7월 26일 업데이트: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래 글을 읽은 후 "과연 롱테일이 웹을 흔드는가?"라는 글을 읽어보세요.

    사실 앞의 에서 농반 진반으로 20%의 독자들에게 감사하라고 했지만, 이는 디지털과 인터넷, 그리고 블로그가 가져온 변화하는 시대에는 그리 맞지 않는 발상일지 모른다. 파레토 법칙에 의한 경영이 귀족 마케팅이라면 지금 현재 Chris Anderson이 주창하는 이른바 긴꼬리 마케팅(롱테일 Marketing)은 파레토 법칙의 근본 가정을 역으로 생각하는 발상이다. 다시말해 시장에서 히트하는 20%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이는 독특한 분야의 수요를 창출하는 기나긴 행렬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나긴 꼬리, 기나긴 행렬....그렇다... 파레토 법칙하의 시장에서는 성공한 20%의 음반은 음반매장이나 유통업체 진열대의 맨 위를 장식하지만 나머지는 창고에 쳐박혀 햇빛을 보지 못했다. 즉 20%가 음반사와 음반 유통 업체에 80% 수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에 든 전체 20%의 책이 전체 출판업계의 등불이었다. 하지만 Chris Anderson은 인터넷 시대에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파레토 법칙에서 "사소한 다수 (trivial many)"로 간주되던 80%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긴꼬리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이것이다.

    작은 판매량을 가진 다량의 물건들이 모여 제법 규모의 시장을 형성한다
    a large number of products with low sales volume can collectively make up a sizable market. [Mercury News(free registration required)]

    아마존의 주수익원은 20%의 베스트셀러보다 예전에 동네 서점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이 구입했던 80%의 책들에서 나온다. 애플의 iTunes 디지털 음반 사업인 iTMS 역시 현재 힛트하는 앨범들 20%가 아닌 80%의 비인기 앨범, 지나간 앨범, 혹은 희귀 앨범들에서 나오는 수익을 무시할 수 없다. 여기까지 든 예에도 아직까지 이 롱테일 개념에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은 구글을 생각해보시라. 구글측이 자신의 투자자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Webcast의 10번째 슬라이드에 구글은 자신들의 성공에는 이른바 긴꼬리 전략이 주효했음을 밝히고 있다. (via The Long Tail 블로그). 즉 구글 광고의 주 수익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기존 광고 시장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중소업체들, 인터넷 신흥 벤처들, 심지어는 개인들까지 구글 검색광고의 주 고객이다. 바로 이들이 구글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긴꼬리 개미군단들이 아닌가?

    자 그렇다면 블로거들은 여기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블로그 방문자수의 파레토 법칙에 의해, 자신의 블로그를 RSS나 북마크를 통해 정기구독하고 피드백을 남겨주는 20%는 정말 현저하고 의미있는 관객들이다. 이 20%를 숫자로 따지면 적으면 몇 명에서 많아봤자 몇 백명이다. 그리고 잊혀지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올린 블로그 글은 구글 쥬스나 다른 링크를 통해서 들어온 80%의 랜덤 방문자들에 의해 다시 읽혀지고 다시 의미있는 정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80%를 배려하는 자세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를테면 예전 블로그 글의 링크 고유주소가 바뀌었다면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고, 자신이 올린 기록이 시간의 흐름속에 다른 형태로 발전하거나 변화된 상황이 있다면 친절하게 이를 갱신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자신을 위해서도 해야겠지만, 바로 80%의 긴꼬리 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될 수도 있다.

    짧지 않은 블로깅 생활에서 이 긴 꼬리의 중요함을 일깨워준 사례를 들면서 글을 마치겠다. GatorLog에서 인터넷과 저작권(원래 제목은 인터넷과 지적재산권)이라는 글은 2003년 8월 12일에 올려졌다. 이 글을 처음 올렸을때는 블로그계에 CCL에 대한 인지도나 반응은 물론이고 저작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지 않은 때였다. 아마 이 글을 처음 읽었던 분들은 대충 몇 십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히 1년 뒤 인기 블로거들인 LikeJazz님의 트랙백리드미님의 대문 링크를 통해서 그리고 "인터넷과 저작권" 키워드의 구글 쥬스를 마시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긴 꼬리가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었다. 그리고 그 긴 꼬리가 이어지면서 소중한 만남과 관계를 가졌다.

    update
    긴꼬리와 다양성이 혁명이 만났을 때 [통합버전]

    Update(March 12, 2006):
    In 2004, Wired magazine popularized the phrase "the long tail" to refer to the large number of specialized offerings that in themselves appeal to a small number of people, but cumulatively represent a large market that can be easily aggregated on the Internet. Plotted on a graph along with best sellers, these specialized products trail off like a long tail that never reaches zero. Indeed, the Internet's ability to offer an almost infinite selection is part of what makes it so appealing: people can find things that don't sell well enough to warrant shelf space in a neighborhood music store or video rental shop — think of the obscure books on Amazon.com. The ease of digital video production and the ubiquity of high-speed Internet connections are sending the long tail of video into the living rooms of the world, live and in color. [As Internet TV Aims at Niche Audiences, the Slivercast Is Born]

    Posted by gatorlog at 05:17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4)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15, 2005

    브랜드에 중독된 뇌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일전에 정당 지지에서 뇌의 역할에 대한 fMRI 연구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처럼 첨단 의학장비를 이용해서 뉴로사이언티스트들은 이제 종교적 신앙, 정치적 당파성, 그리고 경제적 판단과 소비행태등에서 나타나는 개인간 차이를 뇌의 작용으로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특정 브랜드를 보여준 후 이 브랜드에 아주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에 뇌의 작용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보는 실험이 있었다. 실험 결과 브랜드 중독이 강한 이들의 뇌에서는 우리 감정을 전달하는 감각적 통로인 amygdala가 아주 왕성한 활동을 보였음을 발견했다 [관련기사 보기].

    인간의 경제적 선택 행위가 비합리적인데 기반하고 있다는 연구로 주류 경제학의 기존 전제를 엎어버린 Daniel Kahneman --- 프린스턴대의 인지심리학자이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음 --- 은 바로 "감정(emotion)"이라는 것이 인간 경제 행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인이라고 설명해왔다.

    David Pogue는 언젠가 iPod mini의 대히트를 목격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비합리적 경제 행위의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250를 주고 1000곡을 넣을 수 있는 iPod 미니가 나왔을때, 테크 전문지들은 한결같이 당연히 실패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생각해보라. $50만 더 주면 4배의 용량을 지닌 iPod을 살 수 있는데, 누가 미니를 사겠느냐고? 그러나 결과는? 공급이 수요를 따를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없어서 못팔지 않았던가?

    100만원짜리 핸드백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두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게는 짜가에 100만원짜리 브랜드를 붙여놓고 다른 그룹에게는 진짜 브랜드를 짜가라고 알려준뒤 뇌속을 들여다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언스지에 실리지 않을까? ㅎ ㅎ

    Posted by gatorlog at 05:55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17, 2005

    블로그 시대의 spin doctor

    마이크로소프트 홍보맨 로버트 스코블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공중관계(Public Rrelaitons: 홍보로 번역하지 말자!!)는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마이크로소트트가 블로그를 통해 회사의 악마적(evil) 이미지를 개선할 목적으로 월급을 주는 그는 최소 하루 5시간은 블로그를 통한 테크 산업계의 컴퓨터 귀재들의 관심을 끄는데 보낸다. 확실히 그는 가끔 마이크로소트트가 금기시하는 것들을 언급해주는 간교한 스핀(spin)을 구사한다. 그 중에 가장 돋보이는게 바로 이런 것이다.

    불여우의 2천5백만 다운로드를 축하한다...
    [중략]...
    몇개월 안된 사이에 너희들의 어플리케이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윈도우 어플리케이션이 되었다.

    이 스핀 속에 숨어있는 그 기발함이란.... 직원들의 ipod사용에도 눈살을 찌푸리는 MS지만 스코블의 블로그 글에는 간섭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다. 사실 간섭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친구는 영악하다. 신뢰도가 낮은 정보원(a low-credibility source)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은 일단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것처럼 자신을 포장 하는 것이다. 스코블은 PR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다. 블로그 시대의 스핀 닥터는 그래도 예전과는 다른 면이 있다. 사실을 조작하고 둘러대는게 아니고 뭔가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7:07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18, 2005

    파드캐스팅(Podcasting) 증가와 신호와 소음 비율

    블로그계를 잘 관찰하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이 블로그계의 다음 번 빅뱅은 podcasting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RSS 구독자수 집계를 전문하고 있는 피드버너(feedburner)의 집계에 따르면 podcasting의 구독자수가 블로그 증가속도 못지 않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그널 감지 이론(signal detection theory)에서 나온 개념인 "소음과 신호 구분하기 비율(signal-to-noise ratio)"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podcasting이 증가하고 안하고보다 중요한 것은 증가하는 podcasting에서 내게 맞는 신호(signal)를 얼마나 많이 찾을수 있는가이다. 이를테면 Lessig이 podcasting을 실험한다고 하면 이는 내게는 신호이기에 당연히 다운받아 들을 용의가 있다. 아참 podcasting은 별것 아니다. 블로그에 글 대신 육성으로 녹음해서 mp3를 만드는 것이다. 올리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예전 mp3올리고 받듯이 할 수 있지만 이러면 뽀다구는 나지 않는다. ^ ^ Lessig도 아마데우스 2를 이용해 mp3를 만들었지만, 본문 중간에 mp3파일 링크하듯 시도했다 (물론 기술 습득에 빠른 그가 곧 엄밀한 의미의 podcasting을 할 것이라고 본다). 좀 더 전문적으로 녹음해서 올리면 파드캐스팅을 지원하는 뉴스리더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이 mp3파일을 자신의 iTunes에 자동으로 다운로드 받을수 있다. 그래서 iPod으로 쉽게 옮길 수 있기에 이를 iPod의 pod를 따서 파드캐스팅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찌됐건 나는 확신한다. 블로그의 증가로 소음이 많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역시 그만큼 진짜 신호도 많이 만났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신호의 증가 비율이 낮지만 언젠가는 내가 좋아할 신호들이 많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파드캐스팅이 성장할수록 엄청난 소음들 속에서 내가 잡고 싶은 진짜 신호도 계속 감지할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확신한다. 내가 신호로 여기는 것들은 시장에서는 모두 소음이고 내가 소음으로 여기는 것들이 돈되는 시장에서는 진짜 시그널임을.....시그널감지의 패러독스라고나 할까.

    Posted by gatorlog at 08:25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1)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20, 2005

    사고의 확장과 갱신을 위한 도구

    오랫동안 Wiki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몇개의 블로그 열어놓은 것 수습하기도 바쁜터라 선뜻 나설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ilovja님이 소개한 Instiki라는 것을 시도했다가 재미가 없어서 그만 뒀다. 웹브라우저에서 작동하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는 localhost에서만 굴러가는 것이다. 또 간단하긴 하지만 생소한 위키워드나 위키문법에 숙달해야 한다는 것도 귀찮은 노릇이었다.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쓰고 싶은 Wiki는 a77ila님이 소개한 MediaWiki지원을 받는 위키피디어 (Wikipedia)계열의 공개 위키가 아니다. 지난 번에 언급한대로 회사 인트라넷속에 하는 것 마냥 적절한 보안속에 적게는 나 혼자 혹은 나와 공동작업을 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정보를 생산하고 수정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리고나서 jotspot을 만났다. a77ila님이 먼저 테스트를 해주셨고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내 gatorlog 계정이 공식 초대되서 gatorlog.jot.com을 만들었다 (가운데 들어가는 jot을 한글식으로 읽으면 좀 이상하다). 최근 작업하고 있는 내용들을 옮기면서 이제 이놈을 아주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위키 초보지만 a77ila님이 JotSpot의 장점 소개와 더불어 펼쳐보인 이 멋진 생각에 정말 공감한다.

    역설적이지만, 인터넷에서 각광받았던 기술은 (http, blog, wiki...) 기술적 독자성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인지하는 용도에 맞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둘을 결합하는 문제는, 위와 같이 기술적인 트릭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어떻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조화시켜서 적절한 용도를 찾아내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blog나 wiki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많이 흡사하다. 블로그는 시간 순으로 기록을 하는 사람의 습성을 닮아 있고, 위키는 마치 mind map을 하듯이 뻗어 나가는 사고의 가지치기를 닮아 있는 것이다 (나는 위키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누구나"도 아니고, 단순화된 문법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BBCode를 생각해 보라). 오히려, 그 장점은 WikiWord를 사용함으로써, 뒷생각 하지 않고 일단 페이지 링크를 만들고, 나중에 링크를 따라가서 채워넣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html은 이 과정을 역순으로 강제함으로써 (즉 하위 링크를 먼저 만들고 윗 페이지를 만들도록 함으로써), 인간의 사고 과정과 반대의 과정을 강제하였던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시간순 정리라는 사고방식과 가지치기라는 마인드맵 방식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기술은 둘째 문제이다.

    물론 JotSpot이 이를 구현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JotSpot을 쓰면서 위의 생각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공감했다.....또 jot이 특별히 새로운 것도 아니다. 다만 소수의 매니아만을 확보했던 wiki가 다시 대중적인 부활을 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초점이다. 수많은 벤쳐자금들이 그리로 흘러간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새로운 기술의 수용과 전파를 촉진하는것은 얼마나 단순한가이다. 기술 문외한인 내가 몇 번 해보고 "야, 정말 쉽고 단순하고 재밌다"고 느꼈다면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WYSIWYG의 힘은 대단하다.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기술의 초기 채택자와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순으로 펼쳐지는 랜덤한 생각들을 붙잡는 기억의 공간으로 블로그를 활용했듯이, 이제 랜덤하게 엉클어진 사고를 확장하고 갱신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 위대한 사고의 도구 DEVONthink가 2%부족한 점을 나는 JotSpot에서 찾았다. 하이퍼링크를 이용한 웹상에서의 글쓰기가 아니면 생각을 전개하고, 정리하고, 갱신할 수 없는 나를 깨달은 순간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6:28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4)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23, 2005

    블로그와 brainstorming

    BBDO는 옴니콤(Omnicom)그룹계열의 세계에서 가장 큰 다국적 광고회사들중 하나다. (참고로 옴니콤 산하에는 BBDO, TBWA같은 대형 광고회사와 지난 번에 언급한 Ketchum같은 대형 PR회사가 있다). 이 BBDO에서 O는 Batten, Barton, Durstine & Osborn 4사람중 한 명인 Alex F. Osborn의 O를 땄다. 알렉스 오스본은 생애를 통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괴이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creativity와 imagination이라는 두가지에 몰두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두가지가 그의 취미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 1939년 그의 동료 Durstine때문에 위기에 빠졌던 회사를 구할때도 뉴욕으로 이사하지 않고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호텔에 머물면서 금요일 오후에는 200마일 떨어진 집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고 한다.

    어찌됐건 Osborn은 현대 광고계에 근무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조직 이론, 경영학등 수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친 "브레인스토밍"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바로 두뇌를 이용해 어떤 문제를 공격하는 것(using the brain to storm a problem)으로 간단히 정리되는 이 개념은 그가 회사의 회의석상에서 신입들이 잘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향을 지켜보면서 4가지의 규율을 제시하면서 나왔다고 한다. 그 네가지의 규율이란 ....

    1. 비판은 나중에 한다. 아이디어를 모두 듣는게 우선이다
    2. 아이디어를 개진할 때 어떤 제약도 없다. 아이디어가 거칠수록 더 좋다. 거칠더라도 아이디어를 내는 자체가 어렵지, 일단 밖으로 나온 아이디어를 길들이는 것(다듬는 것)은 이보다 쉬운 일이다.
    3. 아이디어의 숫자가 중요하다...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수록 더 유용한 아이디어를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
    4.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조합하고 개선하도록 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이 낸 아이디어와 결합이 되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가를 찾는게 중요하다.

    그는 회의석상에 참석하는 책임자가 모든 직원들에게 이 네가지를 준수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특히 비판을 나중에 하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했다.

    찬물과 더운물을 한 수도꼭지에 내면 미지근한 물밖에 안나온다. 아주 차가운 비판을 얻지도 못할 뿐더러, 그렇다고 아주 뜨거운 아이디어를 건지지도 못한다. 그래서 모든 비판은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세션이 끝날때까지는 잠가두는 것이 좋다.

    브레인스토밍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바로 사고의 체인 작용(chain reaction)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생각들을 개진해내는 그리고 또다른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체인 작용처럼 발생하는 블로그계의 생각들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규모가 큰 그룹의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브레인스토밍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같은 블로그롤(blogroll)에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일상의 생각들은 어떤 거대한 프로젝트를 향한 일종의 집단 브레인스토밍같다는 느낌이다.
    [Applied Imagination: Principles and Procedures of Creative Problem-Solving]

    Posted by gatorlog at 02:14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1)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24, 2005

    블로그와 독자 관여

    다른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블로그로서 독자의 관여 (involvement)를 고려하지 않고 쓰는 블로그는 폭탄 블로그로 불릴 수 밖에 없다. 블로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자 관여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이슈 관여(issue involvement)"와 "자아 관여(ego involvement)" 이다. 이슈 관여는 블로거 개인을 알아서라기보다는, 누군가의 글을 보고 링크를 따라서 들어왔다가 그 글에서 제기하는 이슈에 어떤 문제 의식을 느껴서 생기는 관여이다. 이 경우 대개는 논의되는 이슈에 대한 사전 태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에서 글을 읽으면서 관여를 형성해 나간다는 점에서 어떤 경우는 글에서 논의하는 대상에 대한 태도나 견해가 바뀌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반면에 자아 관여라는 것은 이른바 준거집단 관여에 해당한다. 자아 관여가 충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준거 집단의 의식과 경험을 공유하려는 동기 의식때문에 특정 블로그를 지속적으로 읽고 관계를 맺는다. 자아관여가 잘 반영되는 블로그 공간이 바로 블로그롤이다. 블로그라인스같은 곳에서 협업적 걸러내기 (collaborative filtering)에 의해 추천된 블로그들을 자신의 블로그롤에 추가하는 행위는 바로 자아 관여와 관련된 블로그 글 읽기에 해당한다.

    메타 블로그의 추천등이나 다른 블로그의 링크를 타고 읽는 블로그 글의 상당수가 이슈 관여형 글읽기라고 볼 수 있다. 이슈 관여로 방문한 독자가 자아 관여형 독자로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이슈를 제기한 블로거의 삶과 의식이 자신의 것과 맞아 떨어질 때, 즉 요즘말로 "코드"가 맞을때는 자아 관여형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생면부지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블로거의 글을 매일같이 가서 확인해주고 그럴 정성은 왠만해선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Posted by gatorlog at 11:43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2)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February 28, 2005

    필라델피아의 Wi-Fi 실험 그리고 GatorLog의 podcasting 실험

    이 글은 podcasting실험을 위한 mp3파일이 한개 첨부(enclosure)되어 있습니다. ipodderNNW등 podcasting을 지원하는 뉴스리더를 사용하시는 분들께서는 "itunes로 download"가 보일 겁니다. bloglines에서는 요약문 밑의 enclosure를 누르면 바로 mp3파일로 연결이 되더군요. podcasting에서 enclosure tag문제를 해결해 주신 unix4mac의 ilovja님께 감사드립니다.

    공익을 위해 국가(혹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때 그 이론적 토대는 이른바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상황입니다. 한두개의 업체가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완전 경쟁하의 파레토 효율에 의한 자원 분배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 역시 국가의 공공정책적 개입이 요구되는 때이죠. 물론 현실과 이론 사에에는 늘 벽이 존재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시는 약 천만달러를 들여 인터넷 브로드밴드에 소외된 도시의 50% 시민들을 위해 Wireless 네트워크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연말에 펜실베니아 주시사 Edward Rendell이 이런 정책이 다른 도시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법안에 서명을 한 모양입니다. 스팬포드의 법학자 Lessig는 Wired지 3월호에 "왜 당신의 브로드밴드가 엿같나? 라는 글을 통해, 한 두개의 업체만이 독점하는 미국 인터넷 케이블 망 산업 정책이 가격은 높이고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이른바 시장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가(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할 상황임데도 불구하고, 이런 당연한 정부의 역할을 이익집단의 로비때문에 희생시키는 주지사 Ed Rendell을 미국 텔리컴 산업의 딸랑이 (toady)라고 비웃습니다.

    Lessig선생이 최근 본격적으로 파드캐스팅(podcasting)을 시작하고 자신의 글을 직접 읽어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지식 장사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지식을 창조적 공용재(Creative Commmons)로 만들어주는 사람은 드문 시대에 참으로 귀감이 될 만합니다. 어쨌건 놀라운 시대입니다. 등록금 한푼 내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강의를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다로 그리고 또 멀리 제주도에서까지 들을수 있으니 말입니다. 어찌됐건 제가 위에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적었기에 mp3파일로 이 칼럼을 듣더라도 그리 어렵게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시작이 "여러분 지난해 말 펜실배니아주가 공산주의를 무찔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할 지 모릅니다. ..."는 일종의 풍자(sarcasm)이지요. 그 다음에 "slippery slope"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지난 번 gay brain 토론 코멘트를 보면 무슨 개념인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자유시장의 원칙에 위배되는 국가의 개입"을 인정하면 나중에는 결국 Karl Mark까지 들고 나올것이라는 자본가들의 논리비약을 비꼰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Lessig의 이번 주장은 커먼스에 대한 그의 일관된 생각들의 연장선에 놓여있습니다. 다시 말해 공익을 위해 어떤 재화(goods)나 권리(right)의 일부를 공공 영역으로 돌린다고 해서 시장의 질서나 힘이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번 Wi-Fi건을 예로 든다면 필라델피아시에서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공공 장소에서 무료 와이어리스 접근을 하게 한다고 해서 결코 시장에 있는 사적 수요가 죽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Lessig선생이 놓치고 있는게 있습니다. 진짜 가난한 사람들,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에서 못가진자에 속하는 사람들 -- 은 공공장소에 무료 Wi-Fi가 돌아다닌다고 해도 이걸 잡을 수단조차 없다는 거지요. 필라델피아시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비영리단체와 시가 손을 잡고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축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장비 지원등까지 이야기가 되는 모양입니다. 정책 입안시 소외받는 대상을 고려하고 그 정책의 실행도 자칫 가진자들에게만 혜택이 갈 위험이 있기에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게 바로 복지행정의 기본이겠지요. 그리고 이해집단의 방해가 들어올때 이를 견제하는 신망있는 목소리들이 분명히 들리는 것도 또 미국입니다. 그래서 멍청한 백인들이 아직도 많은 이 나라가 그나마 잘 돌아가고 있는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2:28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5)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rch 05, 2005

    웹사이트의 가짜 광고들

    update:
    김중태님의 글을 다시 읽고 거기 화면을 다시 보니 이건 광고가 아니라 윈도우 시작 프로그램에 국내 대형 포털들의 웹사이트를 촘촘히 박아둔거군요. 결국 이는 국내 대기업 포탈들의 지원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이런 파렴치한 작태때문에 다음 네이버 드림위즈 세이클럽(:전 이건 뭔지 모릅니다. 내 브라우저로는 아예 접근도 안되는군요) 같은 포털 업체들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높아지고 국내 시장에서 애들 코묻은 돈이나 뜯어 먹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닐까요?

    김중태님의 "파렴치한 사이트 - 없애고 싶은 사이트"에 보면 "새로이넷" (절대 들어가면 안됩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저도 들어가지 않고 글을 씁니다)"이라는 사이트에 대기업들의 광고가 붙어있나 봅니다. 만약 대기업들이 진짜로 이런 사이트에 돈을 대준다면 해당 기업들에 항의를 해야겠지만, 실제로는 이 파렴치한 웹사이트들이 소비자를 기만하기 위해 가짜 광고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런 파렴치한 신생 상업 사이트들이 가짜 기업 광고를 띄우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웹사이트의 신뢰도를 높게 보이게 하고 싶은 거지요. 유명 기업에서 후원한다면 아무래도 우리가 그 사이트에 대해 갖는 인상이나 태도가 조금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Persuasive Technology라는 책을 쓰고 수년간 웹사이트의 공신력(credibility) 문제만을 연구하고 있는 스탠포드 대학교 "설득적 기술 실험실(Stanford Persuasive Technology Lab)" 의 B. J. Fogg. 교수는 유명 기업의 광고는 방문자들이 해당 웹사이트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데 중요한 변수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런 파렴치한 사이트들이 다른 회사들의 광고를 유도하기 위한 술수로 이런 광고를 기만적으로 그리고 무단으로 게재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이유로 실제로는 광고주가 한명도 없어도 스스로 유명 기업들의 광고 링크를 거는 잔꾀를 부리는 거지요. 물론 해당 기업들로서는 공짜로 광고해주는 것이 전혀 기분나쁠리 없어서 그냥 방치해 둡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소비자 기만에 해당되기 때문에 반드시 척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해결책은 세가지가 있겠네요.

    • 네티즌들이 새로이넷같은 파렴치한 상업 사이트에 대기업의 광고가 있다면 해당 기업을 접촉해서 진짜로 그런 파렴치한 사이트에 광고를 줬는지 문의를 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해당 기업들이 이 파렴치한 사이트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등 위법 행위등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권유를 해야 합니다.
    • 이것은 진짜 심각한 사이버 테러입니다. 김중태님처럼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이런 파렴치한 사이트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청구해야 하고, 이런걸 판례로 남겨야 합니다.
    • 네티즌들이 인터넷 정책과 관련한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을 접촉해서 이런 가짜 광고 행위로 인해 소비자가 기만적인 판단을 하지 않도록 이를 방지하는 법안을 제정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또 이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역시 보안에 구멍이 뚫린 윈도우 IE (Internet Explorer)는 은행 업무등 꼭 필요할 경우에만 사용하고, 불여우(Firefox)를 자신의 기본 웹브라우저로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겠습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5:18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6)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rch 13, 2005

    블로그계의 빅뱅 파드캐스팅 [연재 3]: 왜 파드캐스팅을 듣는가?

    [블로그계의 빅뱅 파드캐스팅 [연재2]: RSS는 mp3를 싣고]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 연재 글을 읽으면서 파드캐스팅을 내보낼때 "첨부(enclosure)"가 달린 RSS는 어떻게 보내는지, 아니면 파드캐스팅을 잡아내는 뉴스 리더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등의 기술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소 실망스럽겠지만, 그런 기술적 문제들은 가장 나중에 다루고 싶다. 중요한 것은 역시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필요(needs)는 무엇이고 그런 기술적 진화와 그 구현체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논하는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는 이 '파드캐스팅의 세계'에 대한 의미가 여러분의 필요를 자극시켜줄 수 있다면 우리도 이제 파드캐스팅이라는 소리를 더 자주 듣게 될 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는 채택이 되지 않든지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우리를 찾아올지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파드캐스팅의 적극적 수용자가 되고 누가 되지 않을 것인가? 1) 케이블과 인공 위성이 열어놓은 다채널 다편성 시대의 컨텐츠도 내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할만큼 다양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미디어 소비자들이다. 다시 말해 기존 매체의 편집이나 편성이 너무 백화점식이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내 입맛에 꼭 드는 그런 소식을 전하는 매체가 없을까 두리번거린다면 당신은 파드캐스팅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여러분이 하루내 블로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머리속에 블로그계의 동향에만 레이더 주파수를 맞추고 싶다면 RSS 피드에 블로그계에 관련된 소식을 중계해서 그 바닥에서 명성을 쌓은 PR 블로그를 구독해 두면 된다. 그것도 모자라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이 블로그에 관해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다면 네덜란드 암스레르담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Skype로 연결해서 블로그와 PR에 대해서만 떠드는 파드캐스팅을 들으면 된다. 심지어 성(sex)에 관련된 이야기만 주절대는 파드캐스팅도 당연히 그리고 아주 성업중에 있다. 요즘 사람들의 터부를 깨는 수위를 봐서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내용을 주로 하는 파드캐스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미 연방 커뮤니케이션 위원회에서 약 오십만 달러의 벌금을 받은 하워드 스턴이 규제가 없는 인공위성 라디오로 옮겨갔는데, 어쩌면 어느날 파드캐스팅을 한다고 선포하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2) 두번째 유형의 파스캐스팅 수용자는 역시 온-오프라인 관계를 중시 여기는 이른바 사교적 오디언스 (social audience)이다. 이를테면 무명가수의 다이어리를 적어 나가는 블로그 기획자이자 유명 블로거인 와니님과 온-오프 라인으로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는 분이라면 파드캐스팅 쇼 아이엔왐을 들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파드캐스팅을 순전히 "관계"적 측면을 고려해서 들을 수 있을까? 글쎄...어떤 특정 블로거, 혹은 그 블로그에 대한 도메인 로열티(loyalty)가 왠만하지 않고서는 순전히 사이버 관계를 통해 다른 이들의 파드캐스팅을 들어주는 성의를 보이기는 힘들 것이다. 이건 하루의 일과처럼 들르는 싸이월드의 방명록이나 블로그롤의 제목 훑어보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3)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영어를 배우기 위한 도구 혹은 수단으로써의 파드캐스팅 청취다.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이 3번 유형의 청취 동기때문에 파드캐스팅이 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토익과 자녀 영어 교육 열풍이라는 대열에 아무 생각없이 뛰어든 지 오래기에 이 세번째 동기가 파드캐스팅 청취의 주된 필요(need)로 떠오를 지도 모른다. 대본까지 제공하는 On the Media같은 좋은 방송(파드캐스팅)에서 수준높은 정보와 토론을 접하고 이를 통해 분석력과 비판력을 키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파드캐스팅 활용은 없을 것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3:08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4)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rch 17, 2005

    오디오 북이 담긴 iPod셔플을 빌려드립니다

    넓은 땅 빼고 미국에서 부러운 것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커뮤니티 도서관 (주로 시립 도서관)이다. 대학의 도서관이야 물론 말할 수 없이 좋지만 수혜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돈(혹은 노동력)을 지불하기 때문에 그리 크게 부러워할 게 못된다. 미국의 커뮤니티 도서관들은 비영리 기관(nonprofit organization)이기에 영리적인 목적 그 자체를 위한 수익사업은 할 수 없다. 따라서 주된 재원은 정부 보조와 개인들(미국 기부문화의 중심은 기업이 아니고 개인임), 간헐적으로 다른 조직들(재단, 기업등)의 기부로 충당된다. 시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책이나 음반, VCR, DVD등을 모두 무료로 대여받을 수 있다. 물론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어도 똑같이 대접을 한다. (우리나라도 이럴 수 있을까? 동남아시아에서 취업차 온 사람들에게 똑같은 대우를 해줄까?) 다른 사람들이 대여중에 있으면 미리 예약을 해두면 해당 아이템이 들어오면 이메일로 연락까지 해준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에 지정된 시간에 들어오는 이동 라이브러리 서비스까지 해 줄 정도니 이 정도면 정말 원더풀을 외칠만하지 않은가?

    한달에 한 두번은 아들이 책과 내가 필요한 CD,DVD때문에 이용을 하는데, 4년만에 처음으로 반납한 책을 못찾겠다는 사고가 났다. 아들이가 본 pander곰 이야기책인데, 분명 돌려줬는데 못찾겠다면서 10달러를 내라고 한다. 내가 분명히 반납했다고 생각하고 도서관이 실수로 분실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돈 내라는 요구가 전혀 기분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그 금액의 2배 정도를 기부로 보탤 생각이다.

    뉴욕의 롱아일런드에 있는 South Huntington Public Library가 오디오 북 대출을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아이팟 셔플에 이 오디오 북을 담아서 대여를 해 준다고 하는 정말 놀라운 소식이다. 이 정도로 공익을 위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도서관이라면 정말 해마다 자발적으로 내 형편이 닿는 선에서 기부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Posted by gatorlog at 04:17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3)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rch 18, 2005

    재치있는 코멘트들

    뉴욕타임스 기사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해 보라면 3가지의 I (3Is)로 말하고 싶습니다: Informative, Intellectually Challenging, Interesting.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지적인 만족감을 주면서 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뉴욕타임스를 읽는 독자들의 코멘트 역시 informative하고 intellectually challenging하며 재치와 유머가 살아있습니다. 며칠전에 뉴욕타임스에 실린 우리 삶을 귀찮게 만드는 몇가지 것들에 대한 대처방법이라는 기사 역시 그렇습니다. Seth Shepsle씨는 스타벅스에 가면 grande대신에 medium을 주문합니다로 시작하는 이 멋진 기사에 대해 독자들이 보낸 코멘트 (to the Editor) 역시 informative하고 적당히 수준이 있으며, 재미가 있군요 (독자의 편지는 영구링크가 안먹기에 제 웹의 백업 링크를 겁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1:22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블로거 파워 3: 긴꼬리(롱테일)

    테크노라티 사장 시프리(Sifry)도 드디어 긴꼬리 패러다임에 합류하면서, 블로거 파워는 긴꼬리로 설명된다는 글을 올렸다. 친절하게 정말 긴꼬리를 그려가면서.... 요지는 세가지다: 1) 아직도 주류 미디어의 파워는 세지만, 링크를 걸수 없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영향력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2) 그 가운데 이른바 알파 블로거 혹은 테크노라티 100위안에 드는 A-list의 약진이 눈에 띈다 3) 개별 블로거의 힘은 미미하지만 전체 블로거들이 만들어 내는 긴꼬리의 뭉쳐진 영향력의 크기는 주류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영향력을 압도한다.

    the aggregate influence of all of the long tail far outstrips even the mainstream media. [더 읽기]

    하지만 역시 블로거의 파워를 테크노라티에서 괴력을 발휘하는 이른바 A-list에 둔다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블로그의 파워를 해석하면서instapundit이나 daily cos처럼 특정 이름을 거론한다거나 공화당주의자들이 자신들이 혐오하던 방송국 앵커 목 하나 날린 예를 들지 말자. 그런 것은 Dan Gillmor가 이야기하는 We The Media의 블로거 파워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 더 강한 파워는 바로 긴꼬리의 파워이다. 블로거가 영향력이 있을 때는 바로 시작은 미미하나 우리들의 긴꼬리가 만들어 낸 끝은 언젠가 창대하리라는 것을 믿고 블로거들이 사이버 공론장에서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해 줄 때다. 주류 미디어가 논하건 논하지 않건 블로거로서의 근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는 이렇게 헐크가 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의견이 어느 방향으로 가서 누구를 분기하게 만드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이버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공적 토론장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좀 더 참여적 민주 시민이 되라고 채찍질하는 것이다. 선거때 놀러가지 않고 이 매국반공세력들을 빨리 정치판에서 쓸어내겠다는 각오를 매일 다지고 또 다지는게 바로 블로거의 파워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3:58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1)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rch 19, 2005

    블로그식 토론에는 기본적인 예의가 있습니다

    아르님의 글에 대한 트랙백을 남기고 긴 휴가에 들어가야겠군요.

    정보공유라이센스 관련 당사자분에 대해 --- 사실 누군지 모릅니다 --- 두가지를 비판해야 될 것 같군요. 하나는 이렇게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둘러대기고 다른 하나는 블로그의 논의 방식입니다. 이 경우 뭐가 눈감고 아웅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있는 분들은 익히 짐작하실 수 있기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블로그식 토론과 피드백에 대한 것입니다. 저도 일전에 이 일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분이 제가 일전에 쓴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논의하면서

    아거라는 분은 CCL에 대해 긍정적인데다가 확산시켜야할 운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까? 웹에서 만나는 기술그룹들이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을 자주 보게된다. (진보적인 성향...은 부분적 사안에만 그치는 경우도 많다. 이 단어자체가 애매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쓴다.)
    라고 촌평한 것을 뒤늦게 다른 경로를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웹에서 만나는 기술 그룹들"에서 읽혀지는 어떤 뉘앙스와는 달리 기술에 "기"자도 모르는 내가 이 "중요한" 기술 그룹의 일원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 글의 당사자가 내가 쓴 글을 인용하면서 "아거"라는 사람이 CCL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확산시켜야 할 운동"( 그럼 이 글을 쓴 이는 CCL을 부정적인데다가 막아야 할 운동으로 이해할까?)으로 생각하는지 혹은 정보공유라이센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면 그 글 아래에 코멘트를 달 수도 있고 트랙백을 보낼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블로그식 토론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대면 접촉이 아닌 웹으로 전해지는 인상 형성의 오류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 글을 보고 "이 분은 이런 류의 사람이겠구나" 하는 인상 형성이 되어 그 글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일전에 아르님이 정성들여 진지하게 블로그에서 질문과 논의를 전개했는데 여기에 대한 답변을 관련 일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이 어디 게시판에 걸어두고 최초 논의한 분에 대한 대답을 한 걸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르님 글 아래 몇 줄 코멘트를 달 수도 있고 트랙백을 남길수도 있고, 아니면 최소한 글 아래 링크를 걸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좋은 동기와 소명의식으로 시작한 일이라도

    1) 절차가 투명하지 못하거나
    2) 공중을 대하는 방식에서 다가서려하지 않고 다가오라고 하거나
    3) 같은 일을 하는 단체의 존재와 의미를 폄하하려한다면
    공중의 신뢰를 얻을수 있을까요?
    블로그를 당분간 쉬겠다고 했는데,이 말은 하고 쉬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몇 자 적었습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2:09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3)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rch 20, 2005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저는 엊그저께 "정보공유라이센스 관련 당사자분에 대해 두가지를 비판해야 될 것 같군요"라고 글을 썼습니다. 분명히 당사자분에 대해 비판한다고 썼고, 제가 글을 쓴 논지는 그 운동이 잘못되었다는게 아니고 대중운동을 전개한다는 사람이 대중들과의 토론을 전개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음속으로 늘 존경하는 marishin님께서 이 글을 "CCL과 정보공유라이센스 사이의 갈등"으로 확대 해석해주셨습니다. 그 글에 그런 오해를 가질 문장들이 있었다면 제 필력을 탓해주시기 바라면서, 몇가지 지적해주신 문제에 대해 답글을 올립니다.

    marishin님 의견 :정보공유라이선스쪽과 커먼스쪽이 어떤 감정적 찌꺼기가 있는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왜 관심이 없느냐하면 이건 주도권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은 오버도 상당히 오버입니다. marishin님이 "커먼스쪽"이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어떤 조직이나 그 조직의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커먼스쪽이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은 아직 모습도 비치지 않습니다. CCL에 대해 논의를 전개했다는 이유로 해당 블로거를 커먼스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CCL에 대해 논의를 했던 분들은 해당 조직으로부터 급여를 받는 사람도 아니고, 회원도 아니며, 그 조직의 자원봉사대원도 아닙니다. 죄가 있다면 논의를 한 죄밖에 없습니다. "감정적 찌꺼기가 있는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라는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아닌밤에 홍두깨라고 왜 불쑥 "감정적 찌꺼기"가 튀어나오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찌꺼기"는 액체가 다 빠진 뒤에 바닥에 남은 물건이라고 국립국어원의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 무슨 격론이 벌어진 다음에 뭔가 남아 있는 앙금같은게 있어야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있든 할게 아닙니까? (저는 아니지만) CCL과 정보공유라이센스 양쪽에 관해 모두 관심있는 블로거들이 건설적인 논의 몇 번 한 걸 "감정적 문제제기"로 받아들인다면 정말 marishin님이 오버하신 겁니다. 주도권도 마찬가지지요? 이게 왠 홍두깨입니까? 그럴리야 없겠지만 주도권에 대해 정말 묻고 싶으면 "아거라는 분은 CCL에 대해 긍정적인데다가 확산시켜야할 운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분과 한국 CCL 운영을 한다는 한국정보법학회인가 하는 곳에 문의를 하셔야 할 일 같습니다. 저 역시 marishin님처럼 주도권이니 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행여 그런 기 싸움이 있다면 CCL이고 정보공유라이선스고 쳐다도 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보공유라이선스쪽이 못마땅한 이들이 꽤 있는 듯하다"라고 하셨는데,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직접 거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은 이 대목입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는 결과는 커먼스를 흉내냈는지 모르지만, 분명 1990년대부터 활동을 벌인 (제가 아는 것만도 1998년 이후부터) 아이피레프트의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한 교수가 제창해서 퍼뜨리고 있는 다른 운동이 먼저 라이선스를 내놨는데 왜 따로 만드냐, 왜 베낀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식의 주장은, 정보공유라이선스쪽에서 들으면 답답한 노릇입니다.

    인터넷상 어디에도 "한 교수가 제창해서 퍼뜨리고 있는 다른 운동이 먼저 라이선스를 내놨는데 왜 따로 만드냐, 왜 베낀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식"의 주장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보니 "베끼다"는 "글이나 그림 따위를 원본 그대로 옮겨 쓰거나 그리다"로 나와 있습니다. 아르님의 글 어디를 봐도 "왜 베꼈냐"고 타박하는 대목은 없습니다. 저 역시 "눈가리고 아웅이다"고 했을 때는 "아르"님의 CCL과 정보공유라이센스 관련 질문에 대해 그 일을 하는 당사자가 아무 필요도 없는 대답 -- "우리는 애초에 CCL이라는 것을 몰랐다" --- 이 누가 봐도 웃고 넘어갈 대목이라는 거지요. 'CCL이 사용하는 분류와 조항들을 벤치마킹했다는게 나쁘다', 혹은 '그걸 벤치마킹했으니 너희는 양보해라' 이런 식의 논의가 아니라는 점이죠. 사실 정보공유라이센스 측의 대답은 "CCL과 우리는 같은 영역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다른 대중운동조직이다" 이렇게 대답하는게 훨씬 시원시원하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외국에서 벤치마킹 하지 않은게 어디있습니까? 좌파들은 맑스의 원전을 놓고 공부하고, 한국의 현대 좌파들은 "촘스키"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지 예의주시합니다. 블로그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미국 블로그계 소식에 주파수를 맞춰놓습니다. 그래서 뭐가 잘못된 겁니까? 전혀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각설하고 결국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제가 썼던 그 비판의 글은 a77ila님이 지적하신대로 이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누가 내 등 뒤에서 헛소리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내 앞에서 내게 말하라! 특히 인터넷처럼 누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수 없는 곳에서는 기본적으로 남 이야기를 할 때는 트랙백을 걸어주는 것은 기본 매너이다

    다시 한 번 제가 문제삼았던 글 대목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아거라는 분은 CCL에 대해 긍정적인데다가 확산시켜야할 운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까? 웹에서 만나는 기술그룹들이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을 자주 보게된다. (진보적인 성향...은 부분적 사안에만 그치는 경우도 많다. 이 단어자체가 애매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쓴다.)

    이 글에서 글쓴이에 대해 제가 받은 인상을 몇가지 형용사로 표현하라고 하면, "오만하다" "권위적이다" "냉소적이다"입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을수가 있겠지요. 글쓴이가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닐수도 있지만, 내가 받은 인상에 대해 "아거씨 오버하시는군요"라고 비판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와 같은 자아 관여 상태가 될 수 없다면, 글에 대해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수도 있겠지요. "에이...아거님,...별 것 아닌것 가지고.." 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블로그식 토론의 문제제기를 한 겁니다. 과연 그 글을 쓴 이가 내 글에 트랙백이나 코멘트를 남길 정도로 자신있다면 그렇게 글을 끄적거렸겠는가 하는 의구심은 피할 수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내가 완전히 오해를 했다고 해도,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이처럼 어떤 해석이나 비평이 들어가는 글일수록 해당되는 분의 블로그에 논의를 해주는게 더 적합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CCL을 조직하는 사람들...marishin님의 표현을 빌자면 '커먼스 사람들' --- 도 비판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미 블로그계에서 자발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전개되는데도 이 커먼스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a77ila님 지적대로 조직체를 내일 출범하려한다는 사람들의 준비상태는 엉망이고 적극적인 홍보등의 열성도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제가 지적한 "공중을 대하는 방식에서 다가서려하지 않고 다가오라고 하는" 조직의 전형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아니면 인력이 부족해서 그런건지 알 수 없지만, 느낌에는 세계적인 저명 인사의 이름에 기대어 뭔가 하나를 잡아보려는 "고귀한 분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이래놓고 뒤에 "한국CCL에 참여한 저명인사들" 이름 걸어놓고 으시대고 뻐기고 폼잡으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다른 조직도 그렇게 하고 있더군요.

    또 정보공유라이선스가 뭔지 그게 언제 시작했는지 이런 걸 우리가 알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관련 책임자는 "거룩한 분들" 서명받으러 다니시느라고 바쁘신지 모르겠지만, 일반 블로거들의 질문에는 한참 뒤에 "정보공유라이선스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이라는 짧은 답변만을 게시판에 올려두는 그런 조직을 모르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진보의 "진"자도 모르지만, 최소한 그건 진보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취할 "진보적" 의식은 아닙니다.

    Posted by gatorlog at 12:54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4)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April 24, 2005

    가짜 블로그 (Flog),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미국 블로그계에서 이른바 비즈니스(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혹은 public relations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른바 가짜 블로그 (Fake Blog) 혹은 Flog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마치 블로그 초창기에 익명, 필명의 블로그에 대한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던 것처럼, 이제 블로그를 장사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과 블로그를 꾸려 아예 돈을 벌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서 가짜 블로그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명의 블로그는 문제가 없고 권장되기도 하지만, 가짜 블로그는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가짜 블로그의 정의부터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비즈니스윅은 flog(s)란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브랜드를 판촉할 목적으로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만든 블로그(들)"이라고 정의해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게 바로 맥도널드가 수퍼볼 광고후에 이른바 입소문을 내기 위해 만들었던 The Lincoln Fry Blog입니다. 링컨 대통령을 닮은 프렌치 프라이를 발견했다는 내용만 주로 올리는 이 가짜 블로그는 심지어 수백통의 코멘트도 가짜로 달아놓았는데 블로그계의 레이더망에 걸려 여지없이 망신을 당한 케이스입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캐릭터 블로그(character blogs)라고 해서 럼(Rum)주 회사의 Captain Morgan블로그가 이런 가짜 이벤트와 가짜 코멘트로 마케팅 유행어(buzz)만들기를 꾀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런 flog를 만들어내는 것도 자유지만, 과연 이들이 원하는 목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인 생각입니다. 일단 가짜 블로그 혹은 캐릭터 블로그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막연히 블로그가 뜨니까 마케팅 하는 사람들이 덩달아 이 악단차(bandwagon)에 올라탄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재미없지요? "블로그가 마케팅의 새로운 도구이다"라는 것은 현재 미국에서 테크놀로지 PR 혹은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컨설팅하는 사람들이 퍼뜨리는 화두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죠. 그렇다면 왜 마케팅의 도구가 되는가를 설명해야 하는게 바로 제가 할 일 같습니다. 저는 이걸 블로그의 특성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전환이다라고 보고 있지요. 그 패러다임은 "광고에 의한 설득"에서 "이야기를 통한 설득"으로의 전환입니다. 한동안 소비자나 유권자 설득을 꾀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던 커뮤니케이션은 이른바 30초 광고였습니다. 설득 연구하던 사람들이 처음부터 30초 광고를 연구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일찌기 설득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분야에 획을 그은 연구들을 했던 호블랜드 박사가 이끌던 예일 대학의 심리학팀이 처음 연구한 것은 30초 광고가 아니라, 영화였습니다. 영화라는 것은 일종의 이야기(narrative)입니다. 하나의 내러티브(narrative)를 구성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고, 거기서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주인공(protagonist)입니다. 광고라는 것도 처음에는 지금처럼 30초가 아니고 더 긴 시간속에서 narrative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매체의 광고비가 올라가고 수용자의 주목 시간이 짧아지면서 지금처럼 짧은 시간속에 할 말만 딱 전하는 형태가 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메시지의 홍수속에서 이제 사람들이 그런 광고에 대한 주목도 하지 않을 뿐더러 기술적으로도 TiVo같은게 나와서 광고를 안보게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광고가 현대 소비자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은데는 이른바 미국 경영대학원의 연구자들도 한 몫을 했습니다. 사실 영화나 TV드라마, 소설등의 내러티브(narrative)등이 우리 일상에서 훨씬 중요한데도 이런 기나긴 메시지로는 단기간내의 효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기에 대부분의 미국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은 TV광고나 TV정치광고등을 보여주고 어떤 효과가 나오는가에 몰두해 온 것이죠. 그런데 우리 일상생활에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은 광고가 아닙니다. 바로 이야기죠. TV연속극이고 영화고 라디오속의 이야기들입니다. 신문방송학자들이야 이런 연구를 했지만, 돈 버는데 관심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는 그 이야기보다 그 이야기사이에 끼워서 전하는 교묘하게 만들어진 상업적 메시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는 소리들이 매일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미국의 정론지 뉴욕타임스는 매일 수준높은 블로그 기사를 쏟아놓고, 비즈니스윅은 블로그가 당신의 비즈니스를 바꿔놓습니다라는 커버스토리를 만들어내고, Pew리서치 센터는 이들 밴드웨곤에 올라탄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조사를 해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뻥튀기 해줍니다. 수의 논리에 귀가 얇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앞뒤 안재고 블로그로 뭘 할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결국 만들어낸 것이 flog입니다.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이 가짜 블로그들을 보면 이야기체의 글(narrative)의 구성 요건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한가지만 빼고요... 이들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링컨 프라이 블로그는 "오늘 나는 링컨 모양을 한 프렌치 프라이를 맥도널드에서 봤다"라고 전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들어있고 이야기의 화자가 있지요. 캐릭터 블로그인 캡틴 마틴 블로그는 "나는 요즘 리얼리티 TV쇼같은 유치한 것을 보지 않는다. 그 시간에 밖에 나가 taco salad만들기 같은 의미있는 일을 즐긴다"라고 기록합니다. 모두 이야기를 전하지만 결정적으로 빠진게 있습니다. 바로 화자가 진짜냐 가짜냐 여부(authenticity)입니다.

    이곳 GatorLog에 글을 올리는 "아거"는 캐릭터(악어를 소재로 한 캐릭터)지만, 아거가 쓰는 블로그는 캐릭터 블로그나 flog가 아닙니다. 필명이지만 온라인을 통해 상호작용을 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거라는 사람이 로봇도 아니고 회사의 마케팅 부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바쁘면 자기 멋대로 휴가도 내고, 개천절 무렵에 온다고 했다가 갑자기 자신이 기록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휴가 도중에 불쑥 찾아오는 진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블로그의 진짜 화자란 바로 자신이 경험한 혹은 경험하고 있는 (주관적, 개인적) 역사를 사회적인 이야기거리로 바꿔놓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탈리반 치하에서 자신이 경험한 일을 전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블로거는 미국에 앉아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에 대한 칼럼을 쓰는 뉴욕타임스 기자보다 더 authentic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진짜 여부는 신뢰도와 관련이 있지만 반드시 신뢰도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Posted by gatorlog at 12:31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May 10, 2005

    Vlog (Video Blog) 뉴스, 과연 방송 뉴스의 미래일까?

    워싱턴 포스트가 "로켓붐은 TV뉴스의 미래일지 모른다" (Rocketboom' May Be Future of TV News)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는데, 사실 이 헤드라인은 Vlog (비디오 블로그)중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로켓붐을 흥미롭게 보도하기 위해 단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켓붐의 초기 시장 진출 성공(WP보도에 따르면 매일 2만 5천 다운로드)은 새로운 형태의 방송용 뉴스 모델에 대한 짧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Jay Leno나 David Letterman같은 텔레비전 심야 토크쇼에서나 볼 수 있는 짧고 재치있는 촌평을 달고 온갖 특이한 화제거리를 이야기하는 앵커우먼 Amanda Congdon은 사실 블로그가 뭔지 vlog가 뭔지도 모르는 여배우 지망생이었다. 다만 오디션에 합격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바로 "관점"이라고는 볼 수 없고, 어떤 의미에서 "태도를 보여주는 뉴스"를 진행한다. 여기서 "태도"라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이며,그 태도는 깔깔대고 웃거나, 조롱하거나 아니면 당황하거나 화난 표정을 짓는 표정 연기 등을 통해 나타난다. 진행자의 모습에서 가급적 프로적인 냄새를 배제하려고 하며, 취재 기자 연결과 이어지는 인터뷰도 모두 장난기가 넘쳐난다. 태도와 관점이 있는 뉴스만이 미래에 살아남을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로켓붐이 담고 있는 컨텐츠는 색다른 시도에 사람들의 관심이 반짝하고 몰리는 현상에 불과하다.

    Update: With Mr. Baron, 35, the designer who created the site and films the episodes, Ms. Congdon, 24, has fashioned a quirky, charming persona, with an inventive take on the news that is closer in spirit to Letterman than CNN. [TV Stardom on $20 a Day]

    Posted by gatorlog at 09:47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0)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Current TV와 앨 고어 세대 (Al Gore Generation): 방송 뉴스의 미래 2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은 금년 4월 미국 신문 편집인회 초청 연설에서 디지털 시대 신문 산업의 생존 전략을 이야기하면서 특이한 해법을 제시했다. 자신을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라고 밝히면서 자신처럼 디지털 시대에 소비자들의 뉴스 수용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먼저 젊은 세대들이 뉴스를 수용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8-34세 사이의 미국 젊은 세대들이 신문을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문을 신뢰하지도 않고 유용한 정보를 얻는 매체로도 꼽지 않는다는 수치를 언급하면서, 머독은 그렇다고 이런 경향이 젊은 세대가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들 젊은 세대를 "뉴스 매체에 지배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매체를 지배하기를 원하는 세대"로 규정하는 머독은 젊은 세대들이 뉴스를 안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뉴스를 주문해서 수도 없이 이를 업데이트하는 적극적 수용자임을 강조했다. 블로그의 예를 들면서 머독은 이들 젊은 세대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보다는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듣고 싶어한다면서, 젊은 세대가 원하는 뉴스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뉴스는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뉴스,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뉴스이다. 그들은 중동의 갈등이 미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보다는 그로 인해 주유소 앞에서 기름을 넣을 때처럼 그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더 관심있어 한다. 그들은 테러 뉴스 자체가 아니라, 테러가 발생해서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알고 싶어하고 그들이 이라크에 파병될 가능성을 듣고 싶어한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찾은 정보를 더 큰 커뮤니티안에서 이야기하고 논쟁하고 싶어한다. 더 나아가 그 공간에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때론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한다"

    종이 신문의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머독이 젊은 세대들의 매체 이용 패턴을 강조한 이유는 바로 이들을 통해 향후 100% 디지털 세대들의 뉴스 수용과 소비 패턴을 예측하고 이에 대처하라는 주문을 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머독뿐만이 아니다. 정보고속도로론을 주창하면서 미국 인터넷 보급과 확산에 큰 업적을 남겼던 앨 고어 부통령도 루퍼트 머독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Current TV라는 브랜드명을 달고 금년 8월에 공식 출범한 앨 고어의 방송은 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케이블 및 위성 방송이다. 사실 작년 4월 경 미국 자유 (liberal) 진영은 블로그와 라디오의 결합인 Majority Report등을 탑재한 AM 라디오 방송 채널인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의 출범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생존은 하고 있지만, 미국 FM 라디오 토크쇼 채널은 모두 우익 보수파들이 장악하고 있기에 에어 어메리카의 블로그 방송은 FM 신디케이트망을 통해서는 들리지 않는다. Air America가 어려운 재정속에서도 생존 가능성을 보여주던 당시, 또 한편에서는 비운의 대통령 후보 앨 고어가 우익 보수적인 케이블 뉴스 채널 Fox News가 내뿜는 이데올로기적 독극물을 해독하는 역할을 해 줄 자유(liberal) 진영의 새로운 케이블 방송을 준비중이라는 소문이 뉴욕타임스등을 타고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컨텐츠 산업은 막대한 자금줄을 바탕으로 치밀한 시장 분석을 통해 창출된다. 결국 소문대로 앨 고어가 방송 사업에 손을 댄 것은 맞지만, 1년여에 걸친 기획과 시장 조사 끝에 앨 고어 팀이 들고 나온 방송은 팍스 뉴스에 맞서는 리버럴 진영의 해독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 방송 시장에서 완전히 왕따가 된 리버럴 진영의 이데올로기적 해방구도 아니었다. 미국 방송계에 정통한 사람들이 (백인 보수층이 사회경제적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리버럴 시청자를 위한 시장은 없다"면서 고어의 애초 계획을 접으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4월 15일 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NPR)의 On The Media (mp3 파일) 인터뷰를 통해 이 회사의 목표 수용자가 분명해졌다. 루퍼트 머독이 강조했던 18세에서 34세의 젊은 층이다. NPR의 On The Media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이들의 기획 목표는 "MTV 뮤직 비디오 형태의 비디오 뉴스"이다. 다시 말해 MTV의 뮤직 비디오 자리에 젊은 세대에 초점을 맞춘(of), 젊은 세대를 위한(for), 젊은 세대가 만드는(by) 아마추어 비디오 뉴스가 들어가는 것이다. 뉴스의 생산 주체는 바로 뉴스의 소비주체인 젊은 세대들이며, 이들이 미니 DV (6미리 캠코더)를 통해 생산한 짧은 비디오 뉴스 클립들은 current TV 웹 사이트에 올려지고 rss피드를 통해 우선 배포되며, 소비자들의 평가(rating)를 반영해 보도의 우선권을 얻게 된다. 결국 현재 요즘 나와 있는 모든 가능한 테크놀로지를 모두 결합해서, 젊은 세대들이 뉴스를 가지고 놀 수 있는 환경만 제공하는 셈이다.

    방송 출범 전에 current TV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비디오 뉴스 클립들은 이런 제작방향에 잘 들어맞는 뉴스의 전형들을 보여준다. 그 중 하나는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패리스 힐튼 휴대폰 해킹 사건을 바탕으로 휴대폰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취재를 했는데 예전에 네트워크들이 생산하던 뉴스의 개념에서 완전히 일탈해 있다. 빠른 장면 전환과 경쾌한 배경 음악속에 선글래스를 쓴 멋진 청년(뉴스 제작자)이 BMW를 타고 야자수가 우거진 거리를 운전해 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비디오 뉴스 클립은 마치 최근 MTV의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다만 MTV가 미국 십대들의 자유분방한 사생활을 엿보는 편성을 하는 반면, 앨 고어 세대(Al Gore Generation)창출을 꿈꾸는 Current TV는 젊은 세대들 감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이른바 시티즌 저널리즘을 권장하는 편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머독이 지적한대로 젊은 세대에게는 "패리스 힐튼 휴대폰 해킹 사건"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게 왜 일어났고 그게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토론하는게 더 중요하다. 웹 발전 초기에는 게시판이 이런 역할을 했지만, 휴대폰 카메라, 디지털 카메라, 미니 DV 캠코더, 휴대용 mp3플레이어가 젊은 세대들의 필수품으로 되가면서, 디지털 미디어계도 그런 기술력과 젊은 세대들의 뉴스 수용 욕구를 반영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블로그 (blog), 비디오 블로그(Vlog), 파드캐스트(podcast), Current TV 등이 단시간내에 매체 시장의 판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오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몇년 전 블로그라는 매체가 등장했을 때 웹에 떠다니는 개인의 공개된 일기장이 결국 방송 매체의 뉴스 생산과 수용 패턴에까지 영향을 가져오리라고 예측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Current TV등장이 지금 당장 방송 뉴스의 생산과정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Current TV가 뜬다면 비운의 대통령 후보 Al Gore는 미래의 뉴스 형식에 기념비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인물로 기억될 지 모른다.

    Posted by gatorlog at 10:10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3)

    June 03, 2005

    타블로이드 블로그 (타블로그)에 대한 우려

    실직하거나 반쯤 실직한 마케팅 및 홍보 컨설턴트들이 워낙 설쳐댄 탓인지 (?) 아니면 서부개척 정신의 연장에서 사이버 시장을 개척하는 건지 몰라도, 미국의 블로그계는 점점 혼탁해지고 있다. Gawker계의 Fleshbot같은 노골적인 타블로이드형 블로그도 있지만, 블로거들에게 맥주값 안겨주는 구글의 에드센스만 해도 블로그를 대하는 블로거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캐나다 출신의 벤춰 자금이 트래픽이 많은 블로거들에게 월 800달러씩을 주고 자신들이 후원하는 상품에 대해 코멘트를 적어달라는 이른바 Marqui라는 사업체를 벌였다. 이들은 CMS(content management system)이라고 듣기 좋게 이름붙였지만, 결국은 구글 주스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내용을 조작하는 Content Manipulation System에 불과하다. (Marqui와 블로그 윤리에 대해서는 OJR: The cost of ethics: Influence peddling in the blogospher 참조).

    하지만 좋다. 대중적인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목적 의식을 가지고 블로그를 기록한다. 그게 돈과 직접 결부되지 않는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대중적인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은 평판(reputation)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보수적인 저널리스트지만 블로그에 대해서는 상당히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 페기 누난(Peggy Noonan)이 일전에 쓴 블로그 에세이의 한대목이다.

    그것은 지적 거래이다. 블로거는 당신에게 정보와 관점을 준다. 그 댓가로 당신은 그 블로거들에게 당신의 주목과 지적 열정을 바치는 것이다. 당신의 시선을 끌 때 그들은 영향력을 얻는다; 당신은 당신의 눈을 빌려줌으로써 정보를 얻는다. 그들은 유명해지고 영향력을 갖게 된다; 당신은 즐거움을 얻고 정보를 얻는다. 그들은 이를 통해 뭔가를 얻고 당신 역시 뭔가를 얻는다.

    그리고 높은 평판은 궁극적으로는 그 개인 혹은 조직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을 더 많이 팔건, 프로젝트를 더 많이 수주하건, 컨설팅을 더 많이 따내건, 좀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건, 선거에 이기건, 회사 홍보를 더 잘하건, 또는 광고를 더 많이 따내는 등이다. 그게 아니면 뭔가 정신적 해방구라도 될 듯 하다. 이명헌씨가 "영어권 싸이트를 읽다 보면 이런 내용이 공개되어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싶을 정도로 심도 있는 양질의 컨텐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훨씬 높다" [via Likejazz]고 했는데, 이는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사회와 사이좋게 나눠가지려는 마음이 더 강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평판이라든지 신뢰(trust)라든지 하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가치들 (intangible values)이 어떻게 자신들에게 궁극적인 수혜를 안겨주는가를 잘 아는 그야말로 마케팅의 귀재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Gawker 미디어계의 상업 블로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밌다고 생각은 하지만) 너무나 대중적인 보잉 보잉같은 블로그도 읽지 않는다. 왜 닉 덴튼같은 사람에게 삐딱한지 내 마음 나도 잘 몰랐다. 나는 블로그로 돈을 못버는데, 그 사람은 블로그 기업을 세워 배가 아파 그럴까? 그런데 Lessig의 "of amateur journalists, and professional trolls"이란 글을 읽다보니 바로 내가 왜 상업 블로그에 삐딱한지 알게 되었다. 기회있을 때마다 나는 블로그의 두가지 필수 요건으로 "게이트키핑이나 편집을 거치지 않는 아마추어들의 글"이라는 점과 "개성과 의견(관점)이 담긴 명확히 구분되는 사람의 목소리(discernible human voice)"를 꼽아왔다. 이런 점에서 유명 매체에 몸담고 있는 기자라도 편집국에 넘기는 기사가 아니고 자신의 블로그에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글을 올릴 때는 '어느 블로거'가 된다. 그리고 그 아마추어 정신의 요체는 바로 "진실의 추구"이다. Lessig의 말을 들어보자.

    아마추어의 덕목이 진실 혹은 진리의 추구라면, 그 덕목은 광고 수입을 벌기 위한 욕구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앞에서 돈을 직접 목적하지 않는 블로거라도 결국은 평판이 올라감으로써도 뭔가 얻는 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돈을 밝히는 타블로이드형 블로그를 매도할 수 없다는 반론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평판을 얻기 위한 노력과 돈을 벌기 위한 노력간에는 상당히 큰 간극이 존재한다.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진실"을 가장하거나 추구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 진실은 물론 그 블로그에게만 통하는 지극히 편협하고 주관적 진실이더라도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선을 끄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점이다. 레식의 말을 들어보자.

    영국식 타블로이드가 신문을 팔기 위해 진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듯이, 상업적 블로그-로이드(주: 타블로이드에 견주어 blogloid라고 함> 개인적으로는 타블로그로 부르고 싶다) 역시 시선을 잡기 위한 노력 과정에서 진실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아니 누가 와서 보란 것도 아니고 누구나 말할 자유가 있는데, 하드코어를 팔든, 레이싱 걸을 올리건, 연예인 가쉽을 팔든 어떠하리? 안보면 될 것 아닌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악정보가 양질의 정보를 구축해버린 디지털 그레샴 법칙의 시대에 블로그계 마저 타블로그가 진짜 블로그를 대체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가 얻는 손실은 여간 큰게 아닐 것이다. 지금이나 몇 십년 후에나 블로그가 타블로이드적 가치에 밀리지 않고 건재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4:22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3)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une 20, 2005

    아이들 커가는 모습 과연 어디에 담아 둘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샀던 가전제품은 참 수명이 오래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찌된게 미국에서 샀던 가전제품은 싼 대신 수명이 너무 짧다. 올 초에 고장나서 버렸던 VCR은 필립스 제품인데, 아마 3년 썼던 것 같다. 그 전에 삼성 DVD를 하나 샀는데, 1년이 채 안되 고장이 나서 텍사스로 한 번 A/S를 보낸 적이 있다. 그리고 1년 서비스 기간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DVD는 작동을 멈춰버렸다. 베스트바이나 삼성측에 전화 문의를 해봤지만, 결론은 수리비가 사는 것 보다 더 든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싼 맛에 삼성 DVD를 하나 샀다.

    삼성 미니 DV 캠코더는 2001년 10월 아들이 태어나고 사서 2003년 6월에 LCD 액정 화면이 먹통이 되었다. 당연히 액정 LCD수리 보는데 드는 비용이 새 캠코드 한 개 값이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아직도 캠코더 촬영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둘째 녀석이 요즘 어찌나 예쁜지, 좀 무리를 해서 다시 캠코더를 장만하기로 아내와 결정했다. 마침 베스트바이 10% 할인 쿠폰이 온데다가 30달러 mail-in rebate를 해주기에, 이미 들어가는 모델이지만, 캐논 ZR 100을 구입 ($270) 했다. 다만 이제는 가전제품을 "연장 서비스 플랜"없이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99달러를 주고 4년간 서비스 플랜을 별도로 샀다. 1년은 캐논의 워런티로도 되지만, 그 후 3년간은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에서 모두 책임을 져 준다. 덤으로 4년간 해마다 새 배터리를 하나씩 주고, 청소를 무료로 해준다니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다. 2년 전만 해도, 계산대에서 서비스 플랜 사실래요 하면서 뭔가 홍보를 하면 일언지하에 관심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모든 제품을 살 때 서비스 플랜 없이 사는 경우는 없다. 동생에게 보낸 우편이 분실된 경험 이후에는 우편 보낼 때도 보험을 산다.

    VCR은 얼마 전에 한국에 들어가는 친구가 쓰던 것을 어찌어찌 구해왔는데, 얼마 전부터는 테입 꺼내기가 되지 않는다. 명색이 소니여서 가져올 때 아내에게 이번 것은 좀 오래 쓰겠다고 장담했는데, 역시나 2주도 안되서 맛이 갔다. VCR이 없으면 캠코더 녹화된 것을 뜰 수 없는데다가 아들 녀석이 스타워즈를 못봐서 좀 서운해 한다. 그래서 오늘 베스트바이와 샘즈 클럽, 시어즈, 월마트, 타겟등을 모두 돌았는데 한가지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 VCR은 매장마다 모델 하나씩을 제외하고는 아예 없다. 2년 전만 해도 엄청나게 선택의 폭이 넓었는데, 이제 DVD/VCR 콤보가 아닌 VCR만 돌아가는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품이 없으니 남아 있는 VCR 제품도 DVD가격보다 더 비싸다. 30달러주면 삼성 DVD를 사는데, VCR은 그나마 남아 있는 제품인 magnobox나 삼성 같은 저가 브랜드에도 50달러씩을 줘야 한다. 결국 아까워서 구입을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오랜만에 매장을 돌아다녀보니, 요즘 이쪽 시장에서는 DVD recorder 가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매장의 주요 진열대는 모두 DVD recorder고 가격도 상당히 떨어졌다. 삼성 것은 약 170달러주면 살 수 있다. DVD의 등장으로 VCR이 과거 tape신세로 전락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요즘 시장 분위기를 보면 VCR은 퇴출 일보 직전이다. 그렇다면 캠코더 녹화된 것을 이제 VCR로 옮길 이유가 전혀 없어지는 것이다. 아들들이 대학갈때쯤이면 아빠가 애쓰고 찍어둔 비디오 테입들을 들여다 볼 장치가 없어서 보지 못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머리속에 DVD Recorder가 희망 제품 1순위로 입력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DVD는 언제까지 정상을 지키는 저장 매체로 남을 것인가? 저장 공간의 혁명이라는게 언제 현재의 주류 저장 매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새로운 저장매체를 주류로 내놓을지 모를 일이다. . 요즘 DVD파는 곳을 가보면 DVD보다 더 비싼 뭔가가 있던데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그게 아마 포스트 DVD를 겨냥하는 놈일지 모른다.

    Posted by gatorlog at 12:36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5)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uly 18, 2005

    그때나 지금이나

    "그때는"을 읽으면서 그동안 블로깅 생활에서 느꼈던 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가 처음 블로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몇 해 전 우연히 누군가의 블로그에 있던 달력을 보면서다. 그 블로그 형식은 기억을 붙잡고 싶어하던 내게 너무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열심히 블로깅을 했다. 그때는에 적힌 것처럼 가장 큰 변화는 "뭔가 사물이나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사소한 일도 뭔가 쓰기 시작하면 중요한 일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다. 그러던 중 가상적 네트워크망에서 익명화된 혹은 보이고 들리지 않는 존재들과의 관계맺기나 글쓰기가 더 이상의 울림도 떨림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가온 이른바 블로그 권태기를 겪게 된다. 자연스럽게 가상공간에 내 디지털 아이덴티티(digital identity)를 갖고 매일 기억의 일부를 기록한다는 것이 내 인생에 별 중요한 의미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때마침 국내외 정세가 내 마음의 평정을 잃게 할 만큼 아주 요동을 쳤다. 나는 블로그 공간이 두려워져서 떠나려는 시도를 했다.

    그렇지만 떠날 수 없었다. 블로그는 결국 자극이고, 관계고, 약속이다. 그러나 역시 다시 기억의 문제로 돌아온다. 블로그는 기억이다. 아픈 사랑의 기억이고, 내 젊은 날의 초상이며,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기억이며, 충격적인 일을 당했을때 생생한 장면묘사를 담아내는 섬광기억이고, 때로 내 스키마대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왜곡된 증인의 기억이다. 블로그속에서 나는 몽상가이며 문상객이고, 성난 군중의 한 명이며, 엉뚱한 제안자이고, 관찰자이며, 매뉴얼 작성자이면서 트렌드세터(trend-setter)이다.

    어느 순간이 넘어가면서부터 GatorLog를 기록하는 목적은 하나가 되었다. 될 수 있으면 내 인생에, 내 career에 도움이 되는 기억만을 담아내자는 것이다. 에피소딕과 시멘틱 기억 사이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시멘틱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끔씩 에피소딕 기억을 남긴다. 그게 블로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에는 내 젊은 날의 초상에 대한 구체적인 스케치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 다시 말해 내 자서전적 기억을 남기지 않을 뿐이다.

    최근에는 글 한 편 한 편 쓰는게 두려워졌다.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기억을 남겨주지나 않을까 싶어서이다. 얼마전에 내게 이메일 보내 온 어느 블로거의 편지 일부다.

    이번에 설치형 블로그를 처음 사용하려는 초보 블로거입니다. ^^; 툴로 태터와 워드프레스 중 무엇을 사용할까 고민하다 워드프레스가 더 마음에 들어 사용하려고 하는데요, 워드프레스로 작성하는 포스트 중 공개는 되나 RSS 피드에는 수집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런지요. 일상신변잡기 같은 내용까지 feed로 내뿜어서 정보 공해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보니....

    정보 과부하 시대의 정보 엔트로피 관리에 관심이 있는만큼, 내 자신도 가끔 이런 정보 공해 유발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또 다른 두려움은 바쁜 시대에 괜히 남들 머리아프게 만들고 있지나 않나 하는 두려움이다. 지인들중에 내 블로그를 아는 사람은 몇 안되지만, 그 중 가끔 의견을 주는 이가 내 블로그는 너무 어렵고 재미없어서 읽지 않는다고 한다. 20대에 이 모든 생각을 남기신 그 분을 생각하며 늘 내 어리석음과 생각의 짧음, 잡글의 남발을 반성하는 가운데 그런 말을 들으면, 역시 내가 글을 남길 사람은 아니구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음 세가지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을 하기에 나는 오늘도 역시 블로그에 이런 기록을 남기게 된다.

    세계와 접촉기간이 짧은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플라톤의 문제)“많은 양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그렇게 아는 것이 없는가?”(오웰의 문제) “수많은 인간의 신비와 인식론의 경계 밖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데카르트의 문제) [위선의 성채를 깨부수다]

    Posted by gatorlog at 03:51 A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2)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

    July 28, 2005

    매쉬업스 (Mash-ups): Mix, Match, and Mutate

    2001년 애플 컴퓨터사가 내놓은 Rip, Mix, Burn이라는 매력적인 캐치프레이즈는 이후 사람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패턴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사실 애플과 같은 매력적인 광고 카피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들이 웹을 소비하는 패턴을 점진적으로 바꿔놓기 위해 애쓰는 몰락한 닷 컴 버블(거품) 시대의 후예들이 있다. 이들이 던지는 화두는 바로 Web 2.0이라는 것이다. Web 2.0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웹의 발전을 소프트웨어 버전처럼 1.0과 2.0으로 업그레이드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이들은 산개(散開)해있는 HTML문서들의 총집합으로서의 웹을 버전 1.0으로 간주하면서, 웹 2.0은 웹 안에서 사용자들이 원하는 대부분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다기능 컴퓨팅 플랫폼으로서의 웹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질적 향상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비즈니스윅 (July25, pp.72-75)은 이런 몰락한 닷컴 거품의 후예중 한 명이자 Monster WorldWide Inc.를 창설한 Alan Talyer의 표현을 빌어 웹 2.0은 아직도 서부 개척 시대처럼 그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월드와이드웹이 아니라 Wild, Wild Web이라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한 차례 거품이 빠질대로 빠지고 몇 명의 승자가 과거 패잔병들을 모두 먹여 살리고 있는 판국에 도대체 어디에 개척할 곳이 남아있다는 것인가? 세상을 바꾸는 천재들은 역시 프레이밍(틀짓기)의 기본 원칙을 알고 있다. 바로 Web 2.0처럼 추상적이고 뜬구름잡는 용어를 배제하고 rip. mix, burn처럼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살아 꿈틀댈 수 있는 구체적인 용어를 들이미는 것이다. Greasemonkey를 개발한 구글의 웹 개발자 Aaron Boodman은 "웹이란 기본적으로 짓이겨지도록(혹은 섞이도록)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바로 요즘 웹 2.0 주창자들 사이에 유행어는 바로 매쉬업스(Mash-ups)이다. Mash-ups란 두개 혹은 그 이상의 곡을 섞는다는 뜻의 힙합(hip-hop) mixes라는 속어이다. 이들이 요즘 던지는 캐치 프레이즈는 바로 세개의 M(3Ms)이다: "Mix, Match, & Mutate" (섞어라, 서로 맞춰라, 그리고 변형시켜라).

    [업데이트] "The current things people are doing with Google Maps are cute but they don't add value," said Peter Rip, managing director of Leapfrog Ventures in Menlo Park, Calif. [Mashup에 대한 투자가들의 반응]

    Posted by gatorlog at 03:50 PM

    | Comment 닫았습니다 (8-24-05) (1) | TrackBack 닫았습니다 (8-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