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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8, 2005

그때나 지금이나

"그때는"을 읽으면서 그동안 블로깅 생활에서 느꼈던 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가 처음 블로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몇 해 전 우연히 누군가의 블로그에 있던 달력을 보면서다. 그 블로그 형식은 기억을 붙잡고 싶어하던 내게 너무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열심히 블로깅을 했다. 그때는에 적힌 것처럼 가장 큰 변화는 "뭔가 사물이나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사소한 일도 뭔가 쓰기 시작하면 중요한 일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다. 그러던 중 가상적 네트워크망에서 익명화된 혹은 보이고 들리지 않는 존재들과의 관계맺기나 글쓰기가 더 이상의 울림도 떨림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가온 이른바 블로그 권태기를 겪게 된다. 자연스럽게 가상공간에 내 디지털 아이덴티티(digital identity)를 갖고 매일 기억의 일부를 기록한다는 것이 내 인생에 별 중요한 의미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때마침 국내외 정세가 내 마음의 평정을 잃게 할 만큼 아주 요동을 쳤다. 나는 블로그 공간이 두려워져서 떠나려는 시도를 했다.

그렇지만 떠날 수 없었다. 블로그는 결국 자극이고, 관계고, 약속이다. 그러나 역시 다시 기억의 문제로 돌아온다. 블로그는 기억이다. 아픈 사랑의 기억이고, 내 젊은 날의 초상이며,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기억이며, 충격적인 일을 당했을때 생생한 장면묘사를 담아내는 섬광기억이고, 때로 내 스키마대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왜곡된 증인의 기억이다. 블로그속에서 나는 몽상가이며 문상객이고, 성난 군중의 한 명이며, 엉뚱한 제안자이고, 관찰자이며, 매뉴얼 작성자이면서 트렌드세터(trend-setter)이다.

어느 순간이 넘어가면서부터 GatorLog를 기록하는 목적은 하나가 되었다. 될 수 있으면 내 인생에, 내 career에 도움이 되는 기억만을 담아내자는 것이다. 에피소딕과 시멘틱 기억 사이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시멘틱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끔씩 에피소딕 기억을 남긴다. 그게 블로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에는 내 젊은 날의 초상에 대한 구체적인 스케치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 다시 말해 내 자서전적 기억을 남기지 않을 뿐이다.

최근에는 글 한 편 한 편 쓰는게 두려워졌다.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기억을 남겨주지나 않을까 싶어서이다. 얼마전에 내게 이메일 보내 온 어느 블로거의 편지 일부다.

이번에 설치형 블로그를 처음 사용하려는 초보 블로거입니다. ^^; 툴로 태터와 워드프레스 중 무엇을 사용할까 고민하다 워드프레스가 더 마음에 들어 사용하려고 하는데요, 워드프레스로 작성하는 포스트 중 공개는 되나 RSS 피드에는 수집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런지요. 일상신변잡기 같은 내용까지 feed로 내뿜어서 정보 공해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보니....

정보 과부하 시대의 정보 엔트로피 관리에 관심이 있는만큼, 내 자신도 가끔 이런 정보 공해 유발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또 다른 두려움은 바쁜 시대에 괜히 남들 머리아프게 만들고 있지나 않나 하는 두려움이다. 지인들중에 내 블로그를 아는 사람은 몇 안되지만, 그 중 가끔 의견을 주는 이가 내 블로그는 너무 어렵고 재미없어서 읽지 않는다고 한다. 20대에 이 모든 생각을 남기신 그 분을 생각하며 늘 내 어리석음과 생각의 짧음, 잡글의 남발을 반성하는 가운데 그런 말을 들으면, 역시 내가 글을 남길 사람은 아니구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음 세가지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을 하기에 나는 오늘도 역시 블로그에 이런 기록을 남기게 된다.

세계와 접촉기간이 짧은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플라톤의 문제)“많은 양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그렇게 아는 것이 없는가?”(오웰의 문제) “수많은 인간의 신비와 인식론의 경계 밖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데카르트의 문제) [위선의 성채를 깨부수다]

Posted by gatorlog at July 18, 2005 03:5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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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보잘것없지만 뭐든지 블로그와 관련지으려고 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정말 다른 일을 못하겠더라구요.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아거님의 글을 읽어 오면서 느낀 것은 아거님은 정말로 ‘블로그의 힘’을 믿는다는 겁니다.
저도 블로그를 사용하지만 저는 좀 부정적으로 봤거든요. 그런데 아거님의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저도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는 걸 느낍니다.

이번 권태기는 좀 강한 것 같지만 다시 또 흥미를 찾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아거님 블로그가 제일 재밌어요~ ^^)

Posted by: onyx at July 18, 2005 05:18 AM

다소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상의 기록에서 기록의 일상으로 익숙해져 간다는 것은 다들 매한가지 일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http://lunamoth.biz/index.php?pl=996 여전하신 분들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Posted by: lunamoth at July 18, 2005 01:2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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