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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05, 2005

주목(attention)에 대해

이 글은 왜 a77ila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을까?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살면서 "주목"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우리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려고 하고, 주목을 주는 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선생은 학생들에게, 군대 상관은 부하에게 모두 주목을 요청한다. 주목은 대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뿐만 아니라, 매스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광고하는 사람은 잠재적 소비자의 주목을 받고 싶어하고, 홍보하는 사람들은 좋은 지면에 자신들의 기사가 나가기를 원한다.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 기타 온갖 유명인들의 일상은 남들에게 주목을 받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주목의 개념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에 자주 모습이 잡히면 주목받는 것이었다. 지금도 물론 그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주목은 링크에 의한 주목이라는 점이 다르다. 과거의 게이트키핑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던 소수의 개인에 의해 좌우되었지만, 인터넷 시대의 게이트키핑은 검색엔진의 알고리듬에 의존한다. 인터넷 시대 검색엔진에 의한 게이트키핑은 일단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보다 주목해야 하지 않아야 할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뺏기는 역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상어로서의 주목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어떤 대상(사람, 사물, 메시지등)에 쏟는 주목의 정도는 우리에게 할당가능한 시간과 우리의 관심정도이다. 인지 심리학자들에게 주목(attention)이라는 용어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사람의 지각(perception)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주목"은 평생의 연구과제다. 주목에는 수많은 이론 (pdf: visual attention)이 있다. 인지심리학계의 주요한 패러다임중 하나인 인간의 지각작용과 정보 처리에 관한 연구들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인지적 처리 용량(cognitive capacity)은 제한되어 (limited)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감각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자극물의 양은 일정하다. 그리고 무의식의 상태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때 지각하는 기본 값은 일단 100%여야 한다. 하지만 인지적 처리 공간의 한계때문에 여기서 어디에 관심과 초점을 맞추고 어떤 것이 걸러내지는가는 전적으로 수용자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주목하는가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복잡한 장면 구성을 가진 스타워즈같은 영화라도, 졸지않고 화면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면 스크린속에 펼쳐지는 모든 장면들과 등장인물들은 우리의 지각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야 하고 모두 기억에 남아야 한다. 한데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소품들, 배경 장면들 중에서 당신이 주목하고 기억하는 것은 과연 몇 %나 될까? 구체적 장면과 detail한 정보를 모두 빠짐없이 주목하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 것이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간에도 주목해서 보게 되는 장면은 다른다. 때로는 아이들이 더 세세한 것들을 잘 기억한다. 어른들은 생각이 복잡해서다. 인지적 처리 용량은 제한되어 있는데, 어떤 장면에서 뭔가 다른 생각을 하면 그 장면의 주목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주목에는 기대 반응성이라는게 있다. 파드메가 입었던 소품이 어떤 것인지 기억하냐고 물어보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파드메가 입었던 의상과 소품들이 우리나라 한복의 컨셉에서 나왔다고 사전에 정보를 보고 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 의상에 더 많은 주목을 했을지 모른다. 물론 인지적 처리 용량은 제한적이므로 그 의상에 신경쓴 사람은 또 같은 장면에 나오는 다른 부분에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옷에 주목하느라고 대사를 제대로 못봤다든지...

파드메의 의상의 경우에서 주목의 반응성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파드메의 의상은 기모노의 컨셉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자극물에 대한 기대 반응은 우리의 언어적 추론, 이미지에 대한 상상, 그리고 이어지는 기억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파드메의 의상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게 기모노의 이미지를 봤다고 대답할 지 모른다. 주목 연구의 초기 학자중에 Gibson(1941)같은 학자는 지각자의 사전 준비와 이에 대한 반응이 주목과 뒤에 나오는 대상에 대한 기억의 수정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동물에 관한 단어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고 실험참가자들에게 일련의 단어들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오타난 단어같은 것을 몇 개 보여준다. 이를테면 sael같은 것이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본 단어들을 적어보라고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seal이라고 응답한다. 다음 집단에는 배와 관련된 단어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고, 그 배 관련 단어 중간에 sael을 넣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sail을 봤다고 응답을 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연구는 뒤에 스키마를 연구하는 인지학자들도 응용했다.

칵테일 파티 효과같은 관찰에 영향을 받은 인지심리학자들(Broadbent)은 주목이란 감각할 수 있는 정보들(sensory information)이 우리 신체내의 감각 기관(sensory channel)들의 제한적 용량(limited capacity)에 의해 걸러지게 되는 이른바 "선별적 필터(selective filter)"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 학설은 한동안 지각과 주목을 연구하는 지배적인 이론이 되기도 했지만, 후에 이를 비판하는 다른 학설들이 나오기도 했다. Deutsch & Deutsch(1963)등은 이런 선별적 필터링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우리의 주목을 받는 것은 결국 지각자가 부여하는 "중요도의 무게"라는 주장을 했다. 즉 어떤 대상에 주목을 주는 것은 그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나와 관련이 있는가, 또는 그 정보와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즈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후자의 학설에 더 많은 호응을 할 지 모른다. 내가 주목하고 안하고는 '내게 그 input이 얼마나 중요하고 관련되어 있는가,' 또는 '나와 그 input이 얼마나 상호작용을 많이 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은 참 그럴 듯 하다. a77ila같이 외우기도 힘들고 복잡한 닉네임이 깨알같은 글씨로 써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보보다 더 눈에 먼저 띄였다는 것은, 또 enbee나 suman같은 단어들이 수많은 영어 단어들틈에서 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a77ila과 suman이라는 이름에 대해 내가 부여하는 "중요도의 무게"가 다른 것들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지심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이는 사회 심리적 요소이다.

그렇다고 Broadbent등이 주장한 선별적 필터 가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과학자 그룹내에서 이 인지적 처리의 제한적 용량 가설은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생리적 반응 (physiological responses)을 재는 기술과 최근 뉴로사이언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의 주목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이 인지적 용량의 한계에서 오는 이런 생리적 필터링을 증명해 왔다.

이 두가지 학설은 물론 영국 옥스포드 출신의 여류 심리학자 Treisman -- 프린스턴에서 종종 Kahneman과 공동 연구로 주목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켜옴 --- 에 의해 절묘하게 통합이 되었다. Treisman은 선별적 필터링을 약화된 필터링(the attenuation filter)으로 바꾸면서,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주목받지 못한 input들은 완전히 차단되어지는게 아니라 살아는 있지만 단지 약화된 정보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 인지처리 과정중에서 이른바 "dictionary units"들이 약화된 정보와 약하지 않은 정보 모두를 다시 처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로 우리가 이들 정보에 부여하는 중요성, 관련성, 상호작용성, 상황적 해석등의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상이 60년대말, 그리고 70년대 초까지 이어진 주목에 관한 학문적 발전 과정이다. 이 주목이라는 것이 너무나 큰 연구 영역이라 블로그 글 한꼭지에 정리하기는 무리가 있다. 거기다가 내 주경기 종목도 아닌데, 수영하던 사람이 달리기장에 뛰어 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다만 최근 내가 우연히 주목하게 된 한두가지 에피소드속에서 "사람들은 왜 주목을 하고 어떻게 주목을 하는가"에 대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Posted by gatorlog at June 5, 2005 04:2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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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카네만과 트리스만은 부부랍니다. --; 그리고 심리학에서 attention의 번역어는 '주의'입니다. ^^;;;

Posted by: at June 5, 2005 07:37 AM

한자를 잘 알고 계시는 한국 심리학계의 대부들께서 번역할 때 아무래도 "주목"에 눈 목자가 거슬려서 주의로 한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attention이 시각에 의한 주목만이 담긴게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주의"에 담긴 뜻에 비춰볼 때, 주의라고 번역하면 일반인들에게 약간 다른 어감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일상용어로서 "주의"의 쓰임은 조심하라는 의미가 강하게 묻어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주의가 분산된 아이"라고 할 때는 attention의 본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위 글에서도 "주목"이라고 된 부분을 모두 "주의"로 바꿔서 글을 읽어보면 여전히 어색합니다.

이 attention은 현대 마케팅, 정치학이나 언론학에서도 많이 차용해서 쓰고 있는데, 보통 광고 주목(도), 매체 주목(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아거 at June 5, 2005 11:28 PM

trustworthy, believable, reliable의 차이점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는 영어시험 같았다구요. (맞다구요?)

Posted by: 만박 at June 5, 2005 11:33 PM

성적표 곧 공개합니다. ^ ^

Posted by: 아거 at June 6, 2005 12:02 AM

답글 보다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해서 적습니다.

attention 단어에 대해서 두 분이 '주의' 와 '주목' 이라는 의견을 내보이셨는데, 거기에 아거 님이 설명하신 바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도 attention 의 효과가 아닐까요?
즉, 아거 님이 attention 단어의 뉘앙스에서 풍기는 걸 받는 걸 주목이라고 느끼는 것과, 다른 분이 주의라고 해석되었기에 그렇게 받아 들였던 것의 경험적 인지 차이로 인한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물론, 제가 지금 이 글을 적고 있을 때 느낀 attention 의 느낌은 두 분의 답글을 보고 왜곡(약간이라도)된 것이 있기 때문에 또 하나의 attention 일지도 모릅니다. 말이 좀 이상하죠? ^^;;

여튼, 저는 답글을 보면서 attention 의 또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yser at June 23, 2005 09:30 AM

아마 feeling of familiarity에서 오는 차이겠지요.
우리나라 심리학 전공자에게 물어보면 다 주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어색하게 들리지 않지요.
중국 사람들보고 attention을 한자로 쓰라고 하면
주의라고 씁니다.

학술적 용어를 어떤 단어로 번역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개념을 잘 정의해 주는가, 그리고 그 정의가
전체 맥락에 잘 들어맞는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주의를 자꾸 듣다보니 주의도 이제 제법 어색하지 않게 들리는군요. ^ ^

Posted by: 아거 at June 23, 2005 10:3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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