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블로거의 독백과 방백 블로그(www.gatorlog.com)를 시작하며 | Main |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아픈 사랑의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

May 05, 2004

왜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는가?

예외적인 경우(flashbulb memory등)를 제외하고 인간의 자서전적 기억은 근시안(近視眼)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기억은 희미해지는가? 이는 우리가 뇌속에 기록하고 저장하는 새로운 경험들과 일들이 과거에 기록되고 저장된 기억의 회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기억의 간섭, 방해가설에 따르면 동일한 혹은 비슷한 경험이나 사건들일수록 최근 기억에 방해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Schacter, 1996, p.76).
1년전 집에서 밥먹었던 것 기억은 그 이후 수없이 똑같은 반복적 밥먹기에 의해 방해를 받기 때문에 잘 생각 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 1년전이라도 평범한 밥상이 아니고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 이를테면 생일상이었다면 -- 그 기억은 1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비단 에피소딕 메모리(episodic memory)뿐만 아니다. 컴퓨터 작업이나 전화번호 누르기, 스틱차를 모는가 오토차를 모는가 하는 동작(혹은 운동)기억과 관련된 작업 기억(procedural memory)에서도 "최근 기억"은 "과거 기억"을 방해한다. 맥(Mac)으로 바꾸기 전 십수년간 PC를 사용할 때 나는 수천번을 Ctrl + C를 이용해서 어떤 내용을 복사 하고 이를 다시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맥으로 바꾼 뒤에는 (command) + C를 해야 복사가 되고 + V가 붙이기가 된다. 한동안 Ctrl + C의 반복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번번히 실수를 했다. 하지만 일단 Mac에 익숙해진 이후로는 반대되는 경험을 한다. 가끔 PC앞에 앉으면 Mac의 자리에 해당하는 PC키를 눌러서 이상한게 떠오르곤 한다. 망각(forgetting)에 대한 연구로 한 획을 그은 Anderson과 Neely(1996)의 설명으로는 이런걸 "같은 반응군에서 나온 예전 기억 억누르기(Response-set suppression)"라고 한다 (p.256).

예전 기억과 현재 기억 상호간의 간섭과 방해는 컴퓨터 파일 덮어쓰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컴퓨터 파일이야 한번 덮어쓰면 (일반적으로) 재생이 어렵지만, 인간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일생의 기억과 망각이라는 분야에는 크게 두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일은 우리 뇌에 영구히 기록되어 있어 설령 어느 순간에 어떤 기억을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기억에서 영구히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학파의 주장은 어떤 적절한 "기억 살리기" 기법을 이용하면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같은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해 준다거나 기억의 단서가 될만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학설은 어떤 경험이나 사건은 우리 기억속에서 영구히 사라져서 결코 회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Loftus와 Loftus(1980)가 미 심리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기억 연구 학자들중 84%가 "우리 기억은 모두 저장되어 있고 적절한 기법이나 조건이 주어지면 복원할 수 있다"는 학설을 지지했다. 물론 이 놀라운 사실은 인지심리학계의 대부인 Endel Tulving 박사의 이른바 기록시점 구체화 원칙(Encoding Specificity Principle)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고 있다 (gatorlog관련글). 이 "기록시점 구체화 원칙"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기록 시점과 기억을 끄집어 내는 회상 시점에 똑같은 상황, 구체적 단서가 주어질 때 복원력이 높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5년전 스쿠버 다이빙을 갈때 내가 오른손에 수중 카메라를 들었던 장면을은 긴 세월의 흐름속에 지워진 듯 했다. 그런데 오늘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는데 누군가로부터 수중 카메라를 맡았을 때 불현듯 잊혀졌던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어제 인디애나에서 차를 몰고온 JW이 부부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또 우리는 기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서로 망각했던 기억들이 많았는데, 누군가 구체적인 기억의 단서를 주면 "아 맞아 맞아..그때 우리 연수들어갔을 때 뭐 가지러 보문동에 갔잖아..." "그래 맞아 맞아..." 다른 기억들도 모두 그렇게 구체적 단서를 통해서 누군가 상황을 재연해 주면 놀랍게도 회상이 되는 것이었다... "그때 속초에 갔을때, 술먹은 다음에 우리가 ST형한테 개겼잖아...그때 ST형이 무슨 말해서..말이지.." "아 맞다 맞다...." 영원히 지워진 기억은 없다.....

이 이론을 잘 이용하는게 보통 법정 싸움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변호인은 당시 정황을 세밀히 묘사하고 심지어는 비슷한 분위기의 모형까지 들고 나와서 증인에게 기억을 되살려 볼 것을 요청하곤 한다.

  • Anderson, M. C., & Neely, J. H. (1996). Interference and inhibition in memory retrieval. In Bjork, E. L., & Bjork, R. A. (Eds.), Memory. New York: Academic Press.
  • Conway, M.A., & Rubin, D. C. (1993). The structure of autobiographical memory. In A. F. Collins, S. E. Gathercole, M.A.. Conway, & P. E. Morris (Eds.), Theories of memory (pp.103-137). Hillsdale, NJ: LEA.
  • Loftus, E. F., & Loftus, G. R. (1980). On the permanence of stored information in the human brain. American Psychologist, 35, 409-420.
  • Schacter, D. Searching for memory: The brain, the mind, and the past. New York: Basic Books.

Posted by gatorlog at May 5, 2004 12:02 AM

Trackback Pings

TrackBack스팸 피해때문에 트랙백 닫았습니다
http://gatorlog.com/mt/mt-tb.cgi/1625

코멘트 스팸 피해때문에 코멘트 닫았습니다

Post a comment




Remember Me?

(you may use HTML tags for 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