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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8, 2003

섬광기억 (Flashbulb memory) [연재 1]

인간의 기억은 정말 불완전하고 깨지기 쉽다. 그런데 그 불완전하고 파편화되기 쉬운 기억가운데 비교적 오래 살아 남는 기억이 있다. 만약에 만약에 여러분이 아끼는 그 누군가가 불의의 큰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에 어느 날 신촌 사거리를 가는데, 휴대폰을 타고 여러분이 아끼는 사람이 큰 일을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고 해 보자. 피가 멎는 듯한 충격, 그리고 복받치는 설움 속에서,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 년이 지나도 당신은 아마 그 말을 전해 들었던 바로 그 순간 신촌 사거리 무슨 상점인가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 silver bells가 울리고, 건너편 그랜드 백화점 앞 횡단보도에는 구세군이 서 있었고, 하늘에는 송이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쉽게 지워졌을 이 주변 정황들은 당신이 그 충격적인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의 뇌리 속에 그 충격적 비보와 함께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된다. 바로 심리학계에 인지적 패러다임의 물결을 열어 주었던 저명한 인지심리학자 Ulric Neisser교수의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에 대한 설명이다.

이런 일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은 다음과 비슷한 예를 생각해 보시라. 만약에 말이죠. 당신이 정말 Deux의 골수 팬이었고, 김성재 오빠를 외치던 오빠 부대의 일원이었는데, 김성재의 죽음을 들었다면? 내 경험을 이야기 해 보자. 사실 몇 년도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어느 해 겨울 ... 홍대 앞 거리에서 시간 보다 약간 늦게, 동생 SH와 함께 나온 친구SY이가 씩씩거리면서 "너 그것 들었어? ......"라고 흥분하던 그 때, 그리고 그 길거리를 잊을 수 없다. 그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김광석은 도저히 용서가 안돼. 왜 자살을 했냐고, 왜?"

그래서 다른 기억들은 쉽게 소멸하고, 쉽게 변질되고, 쉽게 파편화되는데 반해, 이렇게 자신이 깊이 사랑하던, 혹은 자신과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떴다는 그런 충격적인 비보를 들을 때, 사람들은 그 소식을 전해 듣던 주변적 배경을 잊을 수 없다고 종종 증언한다. 꼭 사람 뿐이 아니다. 이를 테면, 우리가 Larry King을 들을 때, 래리 킹이 뉴욕과 관련 있는 출연자 (저명인사)들에게 "그 때 (9/11쌍둥이 빌딩 폭파) 뭐하고 있었죠?" 하고 물으면, 출연자가 아주 자세하게 당시 배경을 묘사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야!! 참 기억력 좋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처럼 미디어가 우리의 기억을 생산하고 지배하는 요즘은 미디어에 의해 보도되는 충격적인 뉴스들이 우리에게 섬광 기억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메모리 연구 학자들은 현대인들이 J. F. Kennedy의 암살이나 다이애나 왕비의 교통사고에처럼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혹은 매개되는) 충격적인(traumatic) 뉴스를 들을 때, 바로 그 때 자기가 있던 공간, 주변 정황들을 선명히 기억한다는 가설을 검증해 왔다. 인간 기억에 관심이 많은 나도 당연히 이 섬광 메모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나는 이 섬광 메모리조차,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질되고 파편화되고 그리고 사람들의 스키마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언젠가 한 번 증명을 해야겠지만...)

오늘 글의 제목을 flashbulb memory1으로 잡은 이유는 다음에 최소 한 번은 이 섬광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 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을 쓸 때, 기억을 돕기 위해 기억의 끈을 여기 남겨 둬야 겠다: titanic증언, Neisser교수와 Babe Ruth 대한 반박, 그리고 최근 JFK 섬광 기억에 대한 논란...

어제 밤,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문세의 별밤에 고 김광석씨와 김국진씨가 게스트로 나왔던 방송분을 mp3로 들었다. 김광석씨가 통키타로 외사랑을 불렀는데...참 이상한게...내 기억속의 시간적 순서로는 김광석씨는 김국진이 뜨기 전에 저 세상으로 간 것 같은데....그만큼 우리 기억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언젠가 김광석과 안치환이 학전 공연에서 부른 듯 한데, 내 기억으로는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김광석이 죽고 난 한 참 후에 나온 노래 처럼 느껴지니 말이다....우리의 기억은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불완전하고 파편화되어 있다.
Update: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2006년 4월 2일]

Posted by gatorlog at December 18, 2003 04:2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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