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블로거의 독백과 방백 블로그(www.gatorlog.com)를 시작하며 | Main | 당심 얻고 민심 잃고 !! »

December 02, 2003

미디어는 기억이다 3

미디어는 기억이다 2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버스속으로 자살 폭탄을 안고 돌진해 승객을 숨지게 한 이야기를 얼핏 본적이 있다. 나는 "또 이스라엘에서 자살 폭탄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그 장면을 지나쳤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오후에 다시 CNN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뉴스를 보다가, 이게 이스라엘이 아니고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맨 처음에 이 뉴스를 접하고 내가 "그 사건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났겠지"라고 미리 단정 지어 생각한 것은 일종의 déjà vu에서 오는 정보 처리의 왜곡이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전혀 다른 두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러시아 사건이 예전 어디에서 마추졌던 사건처럼 생각하게 되고, 여기에 근거해서 잘못된 지각과 기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매스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어떤 데자뷰의 느낌을 받는 것은 일정 정도 미디어라는 것이 현재의 사건에 어떤 의미와 해석을 달아서 전해주는 일종의 신문의 편집장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만 (Dayan & Katz, 1992),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기존에 일어났던 미디어의 보도가 우리 머리속의 저장고에 누적적으로 쌓여서 어떤 사건에 대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Peri, 1999; Irwin-Zarecka, 1994).

그렇다면 우리는 미디어에서 어떤 사건들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게 되는 것일까? 미디어 비평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이 매일 보고 듣고 읽는 뉴스의 대부분은 우리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Bird, 2003). 특히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우리는 뉴스 보도의 상세한 내용을 기억한다기보다는, 어떤 정형화된 뉴스의 서사적 구조를 기억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자살 폭탄 사건의 내용을 기억에 담는다기 보다는, 세상 어디서인가에서 테러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서사적 프레임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미디어 형식에 담겨졌던 뉴스의 내용물들이 이른바 새로운 미디어나 새로운 형식에 의해 전해짐으로써 사람들이 기억하는 세상의 소식은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University of South Florida의 인류학자인 S. Elizabthe Bird 는 2003년에 간행된 The audience in everyday life라는 책에서, 텔레비전 토크 쇼, 타블로이드 뉴스 (가판에서 파는 저질 연예가 소식이나 루머를 전하는 주간지), 그리고 인터넷의 다양한 공간들의 등장이 우리가 뉴스를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 6하원칙하에서 작성되던 역피라미드 형식의 기사는 우리 기억 구조상 머리속에 잘 남지 않게 되는 반면, 이들 신종 소식 채널들을 통한 드라마틱하고 흥미성 개인 신변 잡기에 관련된 선정적인 기사들이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학적 근거로 그녀는 사람들이 시간적 흐름속에 기술된 서사체의 구조 (이를 테면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나 도덕적 질타를 받을 수 있는 내용물들, 그리고 기이한 상상의 산물들을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인류학적인 참여 관찰 방법을 이용해 다음과 같은 연구를 했다;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텔레비전판 타블로이드 쇼인 Unsolved Mysteries와 ABC 프라임 뉴스인 ABC with Peter Jennings(ABC뉴스 앵커인 피터 제닝스가 진행하는 프라임 타임 뉴스 쇼)을 보게 한 후 친구, 가족과 나눈 대화등을 녹취한 기록을 분석했다. 여기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인간적 흥미, 그리고 드라마적인 전개가 없으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클린턴 대통령은 언론에서 두가지 스캔달을 추궁당했는데, 하나는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달이고, 다른 하나는 화이트워터 스캔달(불법 선거 자금 모금에 관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오직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 뿐이다. 이유는 두번째 스캔들에는 인간적 흥미가 없고, 드라마적인 전개가 없다는 점이다. 또 2002년에 그녀는 신문사 뉴스 웹 사이트나 각종 온라인 게시판이나 포럼 (이를테면 Yahoo! 뉴스 게시판)에 올라온 사람들의 댓글 분석을 했는데, 한 뉴저지 상원의원의 스캔달에는 14,000개의 댓글이 달린 반면, 당시 정치적으로 심각한 이슈였던 보험, 실직, 그리고 경기 침체에 관한 댓글은 겨우 1000개뿐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인터넷 시대에 황색 저널리즘 (yellow journalism: 선정적 기사로 사람의 눈을 끌려는 싸구려 저널리즘)의 등장은 일정 정도 수용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용자의 관심이 그런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기 때문에, 인터넷 시대의 온라인 뉴스도 그런 수용자의 욕구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인류학자만 제기한 게 아니다. 자극 추구 이론(Sensation Seeking Theory)을 주창한 Marvin Zuckerman (1984) 이라는 심리학자는 미디어 수용자를 "뭔가 자극적인 내용물에 더 많은 노출을 즐기려고 하는 sensational seekers"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다시 말해 인터넷 시대에 집단적 기억을 지배하는 기사는 뭔가 "드라마틱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인간적 흥미성"을 끌어 올리는 서사적 이야기, 다시 말해 주로 스캔달이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부부 스와핑 같은 이야기가 각종 신문사의 게시판들과 각종 포탈의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참고문헌:
Bird, S. E. (2003). The audience in everyday life: Living in a media world. New York: Routledge.
Dayan, D., & Katz, E. (1992). Media events: The live broadcasting of histor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Irwin-Zarecka, I. (1994). Frames of remembrance : the dynamics of collective memory. New Brunswick: Transaction Publishers.
Peri, Y. (1999). The media and collective memory of Yitzhak Rabin's remembrance. Journal of Communication, 49, 106-124.
Zuckerman, M. (1984). Is curiosity about morbid events an expression of sensation seeking. Proceedings of the Conference on Morbid curiosity and the Mass Media, Knoxville, TN.

Posted by gatorlog at December 2, 2003 03:36 AM

Trackback Pings

TrackBack스팸 피해때문에 트랙백 닫았습니다
http://gatorlog.com/mt/mt-tb.cgi/1477

코멘트 스팸 피해때문에 코멘트 닫았습니다

Post a comment




Remember Me?

(you may use HTML tags for 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