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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5, 2003

두 라운드의 골프

얼마 전에 어떤 한의사가 골프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써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기사 요약을 보니까, 정통 심리학에 기본한 책은 아니다. 무슨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무슨 내장의 기능이 어떻고 저짜고 해서 뒷땅을 친다느니 하는 그야말로 골프장에 회자되는 우스개 소리를 모아다가 나름대로 신체 기능에 적용시켜 본 것일 뿐이다.

동아 사이언스의 이충환 기자가 쓴 글을 보니, 역시 서울 의대 강은주 교수(심리학 박사)가 골프에 관련된 운동이나 기술 관련 기억(procedural memory)이 기억 상실증 환자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을 인용한 게 보였다. 물론 그 심리학 박사가 언급한 사례는 현존하는 기억 연구의 굵진한 이름 중 한 명인 하버드 대학교 인지심리학과의 Daniel Schacter박사의 필드 실험 (field experiment)결과에 근거한다. 기억 연구의 주류인 토론토 학파에 속하는 Daniel Schacter박사는 지난 번에 언급한 기억 연구의 대부 University of Toronto의 Endel Tulving의 수제자 중 한 명이다.

1980년대 초 쉑터 (Schacter) 박사는 우리의 기억은 단일한 체계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발전시키는 와중에 있었다. 지난 번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80년대 인지 심리학계는 Endel Tulving에 의해서 제기된 뛰어난 이론인 두개의 메모리 체계, 즉 "시맨틱 메모리(semantic memory)"와 "에피소딕 메모리(episodic memory,)"외에도 우리가 기술을 배우고 어떤 반복된 과정에 숙달되게 하는 이른바 "procedural memory"를 포함한 세개의 기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때였다. 시멘틱 메모리는 이를 테면,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이다"처럼 우리가 언제 어디서 기억을 형성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두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지식 메모리다. 에피소딕 메모리는 "1997년에 나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에펠탑 앞에서 그녀와 사진을 찍었다"라는 "시간과 장소"개념이 함께 결합된 이벤트 메모리다. procedural memory는 우리 두뇌에서 운전하는 기술을 저장하는 메모리 체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81년 Schacter박사는 U of Toronto의 기억 장애 실험실로 찾아 온 Frederick이라는 환자를 만난 때를 잊지 못하고 있다. Frederick은 심한 뇌 손상으로 치매 (Alzheimer's disease)초기 단계에 있었다. 쉑터 박사가 아주 쉬운 단어나 그림을 보여줘도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하고, 어제 무엇을 했냐고 물어도 멍하니 다른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프레데릭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쉑터 박사는 이 사람이 30년간 골프를 쳐 왔던 열렬한 골프광이었음을 발견했다. 역시 열렬한 골프광이기도 한 Schacter박사는 자신의 취미를 기억 연구에서 널리 인용되는 중요한 필드 실험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관심은 치매 환자의 초기 단계에서 보이는 기억의 상실은 어떤 메모리 체계에 해당하는가였다. 이를테면 semantic memory가 상실되었다면, "par," "birdie," "wedge"같은 골프 용어를 기억할 수 없을 테고, 에피소딕 메모리가 상실되었다면 어디서 티샷을 했는지, 혹은 이번 홀에서 몇 타를 쳤는지를 기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procedural memory가 상실되었다면, 아예 골프를 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프레데릭과 함께 쉑터 박사는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두 라운드의 골프를 쳤다. 한 라운드는 그에게 친숙한 골프장에서, 다른 한 라운드는 그에게 아주 생소한 골프장에서...결과는?

놀랍게도 치매형 기억 상실 초기 환자였던 프레데릭은 두 라운드의 골프를 모두 완주했다. 그리고 골프에 사용되는 전문 용어들(jargon)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birdies, doglegs, 그리고 finesse shots를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레데릭은 골프에 필요한 규정과 에티켓의 아주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홀에서 멀리 있는 사람부터 볼을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상황에 맞게 클럽을 바꿔서 공을 치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린에서 경사가 있을 때 퍼팅을 잘 함으로써 그린의 경사를 읽는 기술도 살아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물론 쉑터 박사는 이 모든 것을 녹음기에 녹음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프레데릭의 볼이 쉑터 박사의 볼과 홀 사이에 놓여 있는 상황이 왔다. 프레데릭은 일반적인 골프 에티켓을 알고 있었기에, 동전 하나로 자신의 볼을 마크했다. 그리고 쉑터 박사가 퍼팅을 마쳤는데, 자신의 퍼팅(putting)을 마무리 하지 않고, 클럽을 챙겨서 유유히 그린을 벗어나가는게 아닌가? 그는 방금전에 볼을 마크했다는 것과 자신의 퍼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쉑터 박사는 또 다른 실험을 했다. 18홀 중 9홀은 쉑터박사가 먼저 티샷을 하고, 프레데릭이 나중에 함으로써 그가 바로 공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다른 9홀에서는 그에게 먼저 티샷(tee shot)을 시키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끌다가 쉑터 박사가 두번째 티샷을 했다. 그래서 그가 티샷하고 공을 찾는 사이까지는 약간의 시간차를 둔 것이다. 놀랍게도 첫번째 조건에서 그는 쉽게 공을 찾은 반면, 두번째 조건...즉, 시간의 경과가 있은 다음에 골프공을 찾게 했을 때는 한 번도 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업 기억 (혹은 단기 기억: working memory or short-term memory)이 버텨줄 수 있는 시간의 범위내에서 그는 공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작업 기억이 "시간의 경과"나 "다른 방해 요소 (쉑터 박사가 자신의 티샷 전에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작업기억이 지니는 기억을 저하시킴)"로 사라질 때는 앞에서 자기가 친 공이 어디로 갔는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에피소딕 메모리의 실종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매번 그린에서 다음 티샷 장소로 이동하면서 쉑터 박사는 프레데릭에게 지난 홀에 쳤던 tee shot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프레데릭은 한 번도 자신이 앞에서 쳤던 티샷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함을 발견했다. 즉 에피소딕 메모리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다. 골프 경기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음료를 마시며 경기에 대해 구체적 묘사를 해 보라고 요청했지만, 그가 한번도 생생한 묘사를 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쉑터 박사는 우리 메모리는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치매 환자와의 골프 실험을 통해, 그는 치매 초기 환자가 에피소딕 메모리는 크게 훼손되는 반면, semantic memory나 procedural memory는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메모리의 다른 기억 체계를 입증해 보인 것이다. 휼륭한 케이스 연구(cast study)이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다.....놀라운 것은 다음 대목이다. 첫번째 골프 경기를 하고 일주일 후, 쉑터 박사는 그와의 두번째 경기를 하기 위해 그를 태우러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골프 클럽을 챙기고 나오면서 프레데릭은 쉑터 박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글쎄...나는 골프를 잘 못쳐요....거기다가 지난 몇 달 간 골프장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더 심각한 발언은 그가 쉑터박사와 처음 경기를 하기 대문에 약간 긴장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쉑터 박사는 마음이 아파, 그에게 지난 주에 함께 골프쳤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Schacter, D. L. (1983). Amnesia observed: Remembering and forgetting in a natural environment. Journal of Abmormal Psychology, 92, 236-242.
Schacter, D. L. (1996). Searching for memory : the brain, the mind, and the past (1st ed.). New York: BasicBooks.

Posted by gatorlog at November 25, 2003 11:2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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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거의 메멘토를 보는 듯한 느낌이군요..^^

Posted by: FunFun at November 27, 2003 05:24 AM

실제로 비슷한 환자가 곁에 있어서 그런지 가슴이 저린 얘기네요. 이 분이 뇌출혈을 일으켜 입원해 있을 때 거의 매일같이 그 병원 이름을 얘기해줬습니다. 일주일 지나 어느 병원에 계신지 아냐고 물었습니다. '어느 병원인데?' 라고 반문하시더군요. 내가 빤히 바라 보고 있으면 실망하는 눈치라, 다시 '어느 병원입니다' 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과거와 현재를 뒤섞인 메모리로 이제 사시고 계시죠. 제가 숫자 1에서 10까지 쓰는 법을 가르쳐 줬습니다. 종이에 열심히 적으면 연습하셨죠. 몇주전까지만 해도 정상인으로 저와 쇼핑을 가곤했는데 말입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것이 어쩌면 꿈만 같습니다.

Posted by: ilovja at December 17, 2003 10:36 AM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메모리 문제를 가진 분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기억의 상실이나 기억의 변질, 혹은 망상(delusion)으로 피해보는 사람들의 가족에게는 이 보다 더 큰 아픔도 없을 듯 합니다. 바로 인간은 추억을 안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Posted by: 아거 at December 18, 2003 03:1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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