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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7, 2003

증인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Schema theory [연재 4]

1932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Bartlett 경(Sir)은 심리학계에 길이 기억될 책을 남기는데, 책 제목은 Remembering이다. 이 책에는 그가 유령들의 전쟁("The War of the Ghosts")이라는 오래된 인디언 전설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재구성"하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학생들의 기억에서 나온 기록들을 보면 처음 그들이 들었던 이야기와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 (사실 나도 지금 그 이야기를 이야기하라면 잘 생각이 나지 않고, 엉뚱하게도 Shrek이 피요나 공주를 구하기 위해 드래곤이 있는 성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오르는 형편이다).

바틀렛 경이 발견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이 처음 들었던 이야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끝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존 이야기에 꿰맞추어 다시 이야기를 풀어 낸다거나, 아니면 어떤 기억의 단서 (cue)를 바탕으로 거기에 따라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옮겨진 이야기는 원래 있던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창작물이 되고 만다는 데 문제가 있다.

Bartlett, F. C. (1932). Remembering; a study in experimental and social psychology.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아하! Bartlett경은 바로 메모리라는 것이 최초에 입력했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내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기존 지식이나 경험, 신념, 또는 다른 선입견에 의해 "재구성"해내는 것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기존 지식이나 경험을 심리학적 용어로 스키마 (schema)라고 하고, 바틀렛 경이 주창한 이 스키마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기존 스키마에 맞도록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라쇼몽에서 증언을 했던 각각의 등장인물들 (아내, 산적 등)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은 따라서 다름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바로 각각의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완전히 날조했다기 보다는, 어떤 중요한 장면을 바탕으로 중간에 연결되는 (그렇지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유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결과가 아닐까? 물론 이 영화에서는 한가지가 더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한다는 점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하는 예는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건 어른들이건 싸움이 있고 나서 왜 싸웠냐고 묻는다면, 서로 싸움이 전개되는 과정을 다르게 그려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 그 중 거짓말에 가까운 사람도 자신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두 자동차가 부딪히면, 운전자들은 바로 뛰어나와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찰이 도착해서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어떻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지에 놀랄 것이다. (동생이 a cop입니다...).

또 지난 번에 쓴 글과 연관지어 생각하자면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우선 보는 각도나 시점에 따라서 사건이 입력되는 내용도 달라지겠지만, 지난 번에 이야기 했던 대로 누구를 칼로 찌를 경우에는 인지적 주목이 그쪽으로 쏠려, 다른 정황들은 잘 머리속에 담을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산적이 남편을 칼로 찌를 때라든지, 아니면 산적이 여자를 겁간하는 장면들은, 심한 감정적 자극을 가져오기에 그 배경이나 앞뒤의 연결장면들은 목격자들의 지각속에는 들어 갔을지라도 입력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에 기억이 안 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가진 기존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그리고 신념이나 필요에 의해 왜곡되어진다. 바로 여기서 인간 기억의 죄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 심리학자들이 제일 경계하는 증인은 누구인가? 바로 모든 장면을 비디오 카메라로 담아 놓은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는 증인이다. 특히 사건이 감정적인 자극을 자아내는 정도가 클 때, 증인이 주변적 상황을 정확히 묘사한다면 일단 증인이 잘못된 기억을 말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오늘 후기: 대학때 브레히트의 희곡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일고 감상문 써 낸 숙제 이후, 처음으로 어떤 작품에 대해 이렇게 불필요한 해석 작업을 하는 듯 합니다)

Posted by gatorlog at September 17, 2003 03:4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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