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3, 2003
증인들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Sniper가 찬 타는? [연재 2]
이 글은 순전히 제 기억에 의존해서 써진 글입니다. 기억에 관해 글을 쓰니까 기억을 시험해 보는 뜻에서 말이죠^^. 혹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2002년 미국 수도 Washington D.C.에서는 연쇄 총기 저격범, 이른바 Sniper로 인해 온 도시가 공포속에 떨어야 했다. 결국 범행 한 달여 만에 흑인 한 명과 그의 의붓 아들 (미성년자)이 잡힘으로써 사건은 종말되었지만, 그 여파는 만만치가 않았다. 이 와중에 내가 주목해 본 것은 바로 목격자들의 증언 문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사건 발생 장소도 여러 곳이었기에 당연히 몇 명의 목격자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두가지 문제가 쟁점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Sniper의 얼굴을 보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Sniper가 숨어서 저격을 할 때 찬 타가 어떤 차였는가였다.
범인이 잡히기 전 연일 방송에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려주었다. Sniper는 히스패닉 계이고, 그들이 찬 타는 Astro Van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계속 이를 지지하는 증언들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당시 Forensic Psychology의 권위인 Elizabeth Loftus여사는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살벌하고 엄청난 장면에서 목격자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문제제기를 했다.
오늘 숙제입니다. 결국 Sniper가 잡혔을 때 그들이 탄 차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범인의 인종은? 검색 엔진을 통해 정답을 맞춰 보세요....다음 번 연재에서는 Loftus여사가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 내세운 이론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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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4, 2003
Troll Goal
to "flame a blog " means to post a deliberately inflammatory comment on one;a "troll" is someone who does same;
there is "Troll Goal," named after the folks who post inflammatory messages on Web sites. Whenever a troll flames a Dean blog, a Dean booster donates more money. The troll realizes he is only helping the candidate, and stops. Golme's columnSwitch2dean.com
at this point in the campaign, the Dean online operation is doing to political campaigns what Amazon.com did to retailing. For example, in the old-fashioned world of bricks-and-mortar politics, campaigns would send in a crew of advance people several days before a big event to drum up crowds. Dean staffers just send out e-mails, and thousands of supporters materialize. Golme's column
Posted by gatorlog at 12:31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Willie Nelson & Friends
지난 일요일 아침 텔레비전 Ray Charles "음악은 나의 인생"편을 보는데, 반가운 얼굴이 나왔다. 머리 뒤로 길게 따고 나와서 Ray Charles와의 우정을 이야기하던 Willie Nelson인데, 이제 7순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지금 Willie Nelson의 2003 새 음반 "윌리넬슨과 그 친구들" 음반을 듣고 있다...Norah Jones, Dinana Krall, Pual Simon, Eric Clapton, Ray Charles등 쟁쟁한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Shelby Lynne은 누구지? 노래 잘하네...![]()
윌리 넬슨하면 송창식 아저씨가 비슷한 이미지로 떠오르는데, 머리를 둘 다 뒤로 묶고 전원적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럴까? 다른 분들은 이 멋쟁이 할아버지 가수와 우리나라 어떤 가수를 비슷하다고 보시는지?
말 나온 김에 포크 락의 원조 Bob Dylan과 가장 비슷한 이미지를 지닌 우리나라 가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정답은 없습니다. 뭐 사람에 대한 인상은 모두 주관적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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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5, 2003
증인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Weapon focus effect [연재 3]
그렇다면 Loftus박사가 지난 해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Sniper의 연쇄 저격 사건에서, 목격자들의 증언들에 너무 신빙성을 두지 말라고 자문했던 배경은 무엇인가? 간략히 먼저 답부터 말하자면....이른바 무기 집중 효과라는 것인다. 누가 총기로 사람을 겨눌 때 사람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얼마나 그곳에 멈추는가에 대한 인지적 반응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정서적인 긴장이나 고조, 흥분을 만들어 내는 상황에서는 그런 긴장감을 자아내는 곳으로, 사람들의 주목 (attention)이 좁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감정적 자극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그 자극을 유발시키는 자극적 물건들, 이를테면 살인 장면을 목격할 때는 범행에 쓰인 총이나 칼에 주목이 간다는 것이다. 이때 다른 주변부에 있는 자세한 정황들은 잘 주목을 받지 못함으로써 나중에 기억의 실패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1987년 실험에서 로프터스 부부(남편도 같은 대학 심리과 교수임)는 두 그룹의 실험 집단을 만들어서 Fast Food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각기 다른 슬라이드 쇼를 보여주었다. 이 중 한 집단은 고객이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고 점원의 얼굴에 총을 겨누고 그 점원은 금전 출납기에서 돈을 꺼내 건네 주는 아주 전형적인 권총 강도 사건 장면을 보여주었다. 다른 집단이 본 슬라이드는 고객이 점원에게 수표을 건네고, 그 점원은 고객에게 잔돈을 주는 전형적인 패스트푸드점의 장면 묘사 슬라이드였다. 연구자들이 여기서 측정했던 것은 피실험자들의 눈동자가 어디에 고정되고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에 고정되었는가하는 문제였다. 실험 결과는? 피실험자들이 수표보다 권총에 더 오래 시선을 고정했음은 물론이고, 권총 슬라이드 쇼를 본 피실험자 그룹에서 고객을 가장한 그 강도의 생김새를 다른 슬라이드에서 수표를 건네던 고객의 모습보다 덜 기억함을 밝혀냈다.
여기서 이른바 무기 집중 효과라는 게 제기되는데, 바로 "어떤 위협적인 장면을 목격할 때 사람들의 지각은 그 사건의 중심부적인 특징에 쏠리게 되어 있어서, 다른 주변부 상황들은 훨씬 덜 기록된다는 것이다. 덜 기억한다는 게 아니고, 바로 사건을 입력할 당시 우리 지각에서 위협적 장면의 핵심에 우리의 주목이 빼앗겨, 주변적인 정황들은 미처 기록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Loftus, E. F., Loftus, G. R., & Messo, J. (1987). Some facts about "weapon focus". Law and Human Behavior, 11(1), 55-62.
Christianson, S.-Å. (1992). Emotional stress and eyewitness memory: A critical review. Psychological Bulletin, 112(2), 284-309.
최근 이런 weapon effect에 관한 새로운 연구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한 여자 대학원생의 스토커에 관한 비디오를 보게 된다고 먼저 피실험자들에게 설명했다. 실험은 마치 Scream의 첫 장면을 연상케 할만큼 긴장된 비디오 장면에서 시작된다. 한적한 도시의 대학내 건물 지하에 있는 오피스에서 한 예쁜 여대생이 밤늦게 공부를 하고 있다. 친구와 전화로 수다도 떨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도 치고 email도 보낸다. 그러다가 밖에서 현관문 소리 닫는 소리가 나자 누구냐고 소리를 크게 내고 그래도 아무런 답이 없자, 조심스럽게 복도로 나갔다. 이 장면부터 각기 다른 실험적 상황이 나오는데, 한편의 비디오에서는 남자가 권총을 들고 있고 다른 비디오에서는 음료수 캔을 들고 있다.음료수 장면을 본 실험자는 여자가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짓는 장면을 통해 남자가 여자의 boyfriend인데 여자를 놀라게 해 주려고 들어온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권총 장면에서는 여자의 놀란 표정과 뒤이은 동작을 통해 남자가 스토커이거나 의도적 침입자임을 연상케 만들었다. 실험 후 연구자들은 여러가지를 측정했다. 하지만 weapon효과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측정은 바로 남자의 생김새이다. 결과는? 권총을 들고 있는 남자의 생김새에 대해 전체적으로 (음료수를 들고 있던 남자의 생김새보다) 인식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Pickel, K. L., French, T. A., & Betts, J. M. (2003). A cross-modal weapon focus effect: The influence of a weapon's presence on memory for auditory information. Memory, 11(3), 277-292.
물론 라쇼몽은 일단 살인장면에 대한 기억이 각자의 주관적 의도에 의해 변질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위에 이야기한 weapon focus effect와는 다르다. 다음번에는 이런 우리 인간 지각의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기억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보다 본래 라쇼몽에 관련해 해석할 수 있는 주관적 해석에서 비롯된 기억의 왜곡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Posted by gatorlog at 03:45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Is Buddhism good for your health?
In the spring of 1992, out of the blue, the fax machine in Richard Davidson's office at the department of psychology at the University of Wisconsin at Madison spit out a letter from Tenzin Gyatso, the 14th Dalai Lama. Davidson, a Harvard-trained neuroscientist, was making a name for himself studying the nature of positive emotion, and word of his accomplishments had made it to northern India. The exiled spiritual leader of Tibetan Buddhists was writing to offer the minds of his monks -- in particular, their meditative prowess -- for scientific research. [중략]
.... ''In Buddhist tradition,'' Davidson explains, '''meditation' is a word that is equivalent to a word like 'sports' in the U.S. It's a family of activity, not a single thing.'' Each of these meditative practices calls on different mental skills, according to Buddhist practitioners. The Wisconsin researchers, for example, are focusing on three common forms of Buddhist meditation. ''One is focused attention, where they specifically train themselves to focus on a single object for long periods of time,'' Davidson says. ''The second area is where they voluntarily cultivate compassion. It's something they do every day, and they have special exercises where they envision negative events, something that causes anger or irritability, and then transform it and infuse it with an antidote, which is compassion. They say they are able to do it just like that,'' he says, snapping his fingers. ''The third is called 'open presence.' It is a state of being acutely aware of whatever thought, emotion or sensation is present, without reacting to it. They describe it as pure awareness.'' Is Buddhism good for your health?
Posted by gatorlog at 07:44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September 16, 2003
Webelievability
일전에 ejang 다이얼로그에서 링크한 뉴스에서 무슨 기관에서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라는 조사 결과를 보도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지금 그 기사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 블로그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어 기억에 의존해 글을 쓴다. 조사 결과는 다음.야후, 네이버등 포탈들의 뉴스 사이트들이 아주 신뢰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기억하고 한다.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운 조사에 그런 걸 뉴스 릴리스 받아서 신문에 내는 기자도 한마디로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왜 그게 우스꽝스러운 조사인가에 대해서는 일고의 토론 가치도 없기에 생략하고...
물론 미국을 보니까 거기서도 이런 온라인 뉴스 사이트의 신뢰도를 조사하면 일반적으로 전통적 미디어에 비해 더 신뢰한다는 응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들 조사는 CNN을 방송으로 보는 것과 CNN.COM 으로 보는 차이, 또는 the New York Times 신문 버전과 nytimes.com의 차이를 묻는 조사이기에, 이번에 발표한 우리나라 어떤 조사(다음 뉴스와 한겨레 신문 뉴스를 비교하는 식)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어쨌거나 몇 몇 조사에서도 (특히 젊은 층으로 갈수록) 온라인 미디어를 더 신뢰한다는 응답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런 조사들을 곰곰히 보고 있자면, 설문의 응답자들이 자기들이 자주 정보를 얻는 소스를, "신뢰"한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렇다면 설문을 구성할 때 연구자나 조사자들이 뭔가 잘못된 문항의 순서, 혹은 잘못된 어휘나 보기 설정을 함으로써 공신력이라는 부분에 응답자들이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온라인 뉴스를 보면 빨리 정보를 얻을 수 있다"라는 요인 하나가, 알게 모르게 전체적인 신뢰도를 답할 때 영향을 줄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공신력이란 무엇인가? 일단 공신력이라는 것은 전문성(expertness)과 믿음(trustworthiness)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를테면 조선일보는 신뢰할 만한 미디어가 아니다라고 어떤 사람이 말한다면 아마도 이 사람은 조선일보라는 정파지(주의: not 정론지)가 전문성이 떨어져서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이 저널리즘과 뉴스 생산과 분배에 혁명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많은 미디어 비평가들은 인터넷이 정보의 질적 저하와 신뢰도를 떨어 뜨려왔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조선일보가 아무리 웃기는 신문이라고는 해도 설마 신문 지면에는 "청년 우파"라는 제목 아래 해괴망칙한 인터뷰를 연재할 리 없지 않은가? 조선일보가 아무리 웃기는 신문이라고 해도, 윤효의 no love no sex 같은 삼류 구루마 소설을 신문 지면에 인쇄하겠는가?
참고문헌: Johnson, T. J., & Kaye, B. K. (2002). Webelievability: A path model examining how convenience and reliance predict online credibility. Journalism & Mass Communication Quarterly, 79(3), 619-642.
Eysenbach, G., & Köhler, C. (2002). How do consumers search for and appraise health information on the world wide web? Qualitative study using focus groups, usability tests, and in-depth interviews. British Medical Journal, 324(9), 573-577.
Hovland, C. I., & Weiss, W. (1952). The influence of source credibility on communication effectiveness. Public Opinion Quarterly, 15(4), 635-650.
Posted by gatorlog at 03:43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3)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Why is Fark.com not a blog?: The Blog should have a discernible human voice.
인터넷의 등장은 우리에게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빠른 정보 검색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덕분에 정말 "좋은 세상 살고 있다"고 느낄만큼 그 행복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인터넷의 등장이 우리에게 예전에 꿈꾸지 못하던 정보의 낙원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치 컴퓨터 시대에 자란 아이들이 예전 우리 아버지 세대 사람들보다 더 총명하고 아는 게 많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니올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첫째 인터넷의 등장으로 우리 주변에는 불필요한 정보들이 너무 많다. 불필요한 광고는 안 보면 되지만, 인터넷에서 광고가 아닌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문제는 "정보의 생산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정보를 소수의 사람만 독점해서 생산하라는 법은 없지만, 인터넷이 없었다면 전혀 알지 못했을, 또는 알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아거"의 생각까지 여러분은 매일 들어와 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아거 역시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다른 전통적 미디어의 한 켠에 내 목소리를 내 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지 모르지만... )
여하간 이렇게 불필요한 정보를 읽으면서도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자족한다. "그래 그곳에 가면 다른 사람들의 진솔한 삶이 있고, 때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티즌 사장 말대로 정보 네트워크가 있다"면서 말이다. 브라보!! 그러나 우리가 인터넷에 길들여지기 전에 읽었던 전태일 평전에도, 성자가 된 청소부에도 진솔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인터넷에 발을 담근 뒤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말 좋은 글을 읽어야 할 시간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생각들을 들여다 보는데 뺏기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요즘 컴퓨터와 인터넷과 함께 태어난 아이들은 아예 종이로 된 책을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전태일 평전같은 그렇게 "불필요한 정보"를 읽을 시간에 그들은 이른바 "버츄얼 섹스"를 해야 하고, 책에 나오는 국어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언어가 아닐 수도 있다.
쓸데 없는 정보의 과다 공급을 만드는 것은 바로 하이퍼링크라는 괴물이다. 오늘날 네티즌들에게 볼 수 있는 하이퍼링크 중독 현상은, 앨더스 헉슬리의 혜안이 들어 있는 Brave New World에서도 예견하지 못한 미래 사회의 마약이다. 이제 술, 마약, 스포츠의 중독은 하이퍼링크 중독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지 않은가?
정보의 생산자가 많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좋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부작용을 가져온다. 첫째, 아까 말한데로 하이퍼링크 때문에 정보 검색에서 찾는 시간의 절약은, 결국 하이퍼링크를 따라 가면서 접하게 되는 불필요한 정보, 혹은 쾌락적이고 감각적 정보에 빼앗길지도 모르는 시간 때문에 상쇄가 될 수 있다. (이건 뭐 꼭 야리꾸리한 사이트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우리의 지각은 뭔가 자극적인 곳에 먼저 쏠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같은 글을 읽더라도 뭔가 유용성의 차원보다는 재미 차원으로 접근한다는 이야기다).
두번째, 정보 검색은 사실 우리가 정보를 찾는데 드는 시간을 필요 이상으로 줄어주었지만, 반대로 우리에게 그 정보를 제공한 정보원이 누구인가를 기억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메이저 뉴스의 주요 뉴스를 전달받아 링크식으로 보도하는 포탈 뉴스를 읽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심각하게 이런 정보원의 실종 현상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정보만 있으면 됐지 뭐가 정보원이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런 정보원 기억의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다음에 시간을 내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일단 블로그가 주된 관심사니까 블로그만 가지고 이야기 하도록 하자. 엊그저께 joat님 글에서 RSS aggregator를 통한 블로그 읽기의 문제점을 들었다. 당연히 나 역시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 이같은 "블로그형 치매"를 앓고 있다. 우리 모두 RSS aggregator를 통해 가급적 많은 블로그의 글을 순식간에 읽고 오는데 점점 적응이 되어 가기 때문에, 이런 블로그형 치매가 올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블로거의 글은 어떤 특정 블로거에 정확히 연결되어 생각되는 정보라기보다는, 진짜 내 블로그 대문에 걸려 있는 푯말처럼 "어느 블로거의 독백"으로만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그걸 원하는 사람도 있겠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건 블로그형 정보는 아주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일기장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인터넷 전체로 확장해도 그렇다. 구글 검색을 통해 바로 하이퍼링크를 타고 들어갔다가 쑥 훑어보고 재빠르게 빠져 나온다. 효리 기사가 어디에 나왔는지, 누가 썼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예전같으면 선데이 서울 표지에서 보고 끝날 그런 류의 기사들이, 이제는 포탈들의 "선정적인 위치 만들어주기" 덕택으로, 다른 미디어들과 똑같이 중요한 "하나의 정보"로 대접받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네티즌들은 스포츠 투데이의 쓸모 없는 "루머(rumor)"를 "정보(information)"로 기억하고 마냥 즐거워한다. 여기서 스포츠 투데이인지 시사저널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하고 만다.
세번째는 인터넷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순발력, 잔꾀는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듯 한데, 대신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고민하고 풀어내려는 인내력과 사고력은 저하되는 듯하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RSS aggregator같은 테크놀로지의 총아들이 우리 두뇌의 작용을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달시키고 있다면 지나치게 주관적인 해석일까? 감각적인 말뿐만이 아니다. 정보의 소비 패턴도 그만큼 달라졌다. 예전만큼 좋은 대하소설 (토지, 태백산맥)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 있어도 읽지 않을 듯 하다. 음반도 전체를 감상하는 여유는 없다. 얼른 마음에 드는 곡 하나 빼와서 물릴 때까지 듣다가 던져 버린다.
물론 온라인에 떠도는 모든 정보가 저질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이 글 읽는 분들 오해하지 마시라. 오히려 최근 내 가장 큰 고민은 NNW로 읽는 블로그의 수가 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자고나면 "어디! 어디에서! 나타났나! 황금 바악쥐"처럼 좋은 블로거의 블로그가 보인다. 한때 큰 맘 먹고 5개까지 줄였다가, 그런 좋은 글들을 읽지 않으면 내 정신건강에 지장을 줄 것 같아, 이제는 아무 두려움 없이 바로 NNW에다가 RSS를 끌어다 놓는다. 그러다 보니 자고 나면 NNW의 새 글 알림 불에 새로 올라 온 글들이 몇 십개식 쌓여 있다... 하지만.....이 글들이 재미있고, 좋은 내용이 많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글들을 내가 현금놓고 거래할 대상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이 결론을 위해 앞에서 장황한 이야기를 거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블로그는 근본적으로 금전화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전화하려면 전문적인 정보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그 공간에 거주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정보원에 속해서 그 곳의 수익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다. 더더구나 조직을 벗어난 개인으로서 그런 좋은 정보 공간을 만들려면, 앞의 글(webievability)에서 말한 공신력 (전문성과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걸 블로그 형식으로 쌓기에는 너무 버겁지 않을까? 일례로 섹스 블로그가 아니면서 그나마 수익원을 내는 대표적 블로그 사례로 언급되는 사이트가 있다. www.fark.com 을 가 보시라. 십만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떤 회사가 10만 달러 팝업 광고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이 회사의 사이트에서 유용한 정보를 건질 수 있는가? 이런게 바로 블로그형 비즈니스라면, 또 이런게 블로그형 정보라고, 아니 더 근본적으로 이런 걸 블로그라고 부를 수 있다고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한다면, 나도 앞으로는 떠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면 그냥 나는 조용히 하산할 생각이다.
그러면 블로그로 돈 벌 생각도 없고, 또 당신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도 아니라면서 왜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매일 꼬박 꼬박 글을 올립니까라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취미입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취미가 맞는 사람까리 같이 모여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걸치는 정도는 okay, 그러나 이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oh, no, no.입니다.
블로그는 그래요....하나의 personal bound medium이고, 마음이 맞는 글쟁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인사동의 조용한 문인 찻집 같은 곳이고, 개인의 주관적 의견을 남이 듣건 말건 목에 핏대를 올리며 개진하는 그런 토론방일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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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7, 2003
증인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Schema theory [연재 4]
1932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Bartlett 경(Sir)은 심리학계에 길이 기억될 책을 남기는데, 책 제목은 Remembering이다. 이 책에는 그가 유령들의 전쟁("The War of the Ghosts")이라는 오래된 인디언 전설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재구성"하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학생들의 기억에서 나온 기록들을 보면 처음 그들이 들었던 이야기와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 (사실 나도 지금 그 이야기를 이야기하라면 잘 생각이 나지 않고, 엉뚱하게도 Shrek이 피요나 공주를 구하기 위해 드래곤이 있는 성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오르는 형편이다).
바틀렛 경이 발견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이 처음 들었던 이야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끝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존 이야기에 꿰맞추어 다시 이야기를 풀어 낸다거나, 아니면 어떤 기억의 단서 (cue)를 바탕으로 거기에 따라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옮겨진 이야기는 원래 있던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창작물이 되고 만다는 데 문제가 있다.
Bartlett, F. C. (1932). Remembering; a study in experimental and social psychology.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아하! Bartlett경은 바로 메모리라는 것이 최초에 입력했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내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기존 지식이나 경험, 신념, 또는 다른 선입견에 의해 "재구성"해내는 것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기존 지식이나 경험을 심리학적 용어로 스키마 (schema)라고 하고, 바틀렛 경이 주창한 이 스키마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기존 스키마에 맞도록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라쇼몽에서 증언을 했던 각각의 등장인물들 (아내, 산적 등)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은 따라서 다름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바로 각각의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완전히 날조했다기 보다는, 어떤 중요한 장면을 바탕으로 중간에 연결되는 (그렇지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유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결과가 아닐까? 물론 이 영화에서는 한가지가 더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한다는 점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하는 예는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건 어른들이건 싸움이 있고 나서 왜 싸웠냐고 묻는다면, 서로 싸움이 전개되는 과정을 다르게 그려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 그 중 거짓말에 가까운 사람도 자신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두 자동차가 부딪히면, 운전자들은 바로 뛰어나와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찰이 도착해서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어떻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지에 놀랄 것이다. (동생이 a cop입니다...).
또 지난 번에 쓴 글과 연관지어 생각하자면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우선 보는 각도나 시점에 따라서 사건이 입력되는 내용도 달라지겠지만, 지난 번에 이야기 했던 대로 누구를 칼로 찌를 경우에는 인지적 주목이 그쪽으로 쏠려, 다른 정황들은 잘 머리속에 담을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산적이 남편을 칼로 찌를 때라든지, 아니면 산적이 여자를 겁간하는 장면들은, 심한 감정적 자극을 가져오기에 그 배경이나 앞뒤의 연결장면들은 목격자들의 지각속에는 들어 갔을지라도 입력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에 기억이 안 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가진 기존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그리고 신념이나 필요에 의해 왜곡되어진다. 바로 여기서 인간 기억의 죄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 심리학자들이 제일 경계하는 증인은 누구인가? 바로 모든 장면을 비디오 카메라로 담아 놓은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는 증인이다. 특히 사건이 감정적인 자극을 자아내는 정도가 클 때, 증인이 주변적 상황을 정확히 묘사한다면 일단 증인이 잘못된 기억을 말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오늘 후기: 대학때 브레히트의 희곡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일고 감상문 써 낸 숙제 이후, 처음으로 어떤 작품에 대해 이렇게 불필요한 해석 작업을 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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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8, 2003
Blog for politics: Blog Factor
블로그의 사업성에 대해 기회있을 때마다 부정적인 견해를 쓰고 있는 반면, 나는 블로그가 정치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크다고 주장하고 싶다. 두어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현재 미국에서 Howard Dean이라는 사람이 느닷없는 바람몰이를 하는 배경에 블로그 요인 (blog factor)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Gatorlog에서 Howard Dean에 대해 지금까지 세 편의 관련 글을 썼는데 (참조: Gatorlog에 있는 Howard Dean 관련 글들), 블로그와 정치에 관해 정말 유심히 보고 있다. 후발주자가 위로 올라 차고 갈 여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워드 딘은 좋은 웹 참모를 둔 덕분에, 그리고 한 때 Lessig블로그에 guest글을 쓰면서 미국의 네티즌들 사이에 인지도가 높아졌다.
Dean의 blog for america는 사실 Dean이 쓴 글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지지자들이 쓰고 있고, 그래서 지난 번 내가 앙꼬없는 찐빵 (퍼스낼리티 없는 블로그)이라고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ean의 블로그는 외형상으로는 상업적 블로그를 표방한 그 어떤 블로그보다 블로그 다운 블로그라고 말할 수 있다. Howard Dean은 블로그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인지도와 충실한 유권자 확보라는 이익외에 또다른 중요한 수혜를 받고 있다. 바로 정치 자금 모금이다. 블로그라는게 매일 업데이트되므로, 잘 바뀌지 않고 그 자리에 고여 있는 다른 정치인 홈페이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식이 빠르고 그만큼 찾는 손님도 많다. 또 후보자의 글을 읽다가 마음이 동하면 바로 후원금을 보내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가장 합리적인 온라인 정치 자금 모금 모델이자, 풀뿌리 지원 체계 (grassroot supporting system)가 아니겠는가?
두번째는 바로 블로그라는 게 사람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다. 개인 홈페이지는? 아니다. 그건 관계가 아니고 홍보다. 물론 블로그로 홍보를 하기도 하겠지만, 유시민의 아침편지같은 블로그 형식에 가까운 게시판 이야기를 보라. 정치인이 (비교적) 진솔한 글을 통해 유권자와 일종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나는 태어나서 그 어떤 정치인으로부터도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자주 그리고 비교적 진솔하게 들은 적이 없다. 거기에 물론 자기 PR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그를 보고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속에 담긴 말을 듣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나는 그와 관계가 형성이 되는게 아닐까?
정치는 사람과의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비록 물리적으로 만날 수 있는 관계는 아닐지라도 시공간을 초월해서 (진짜 블로그가 있다면) 아마 유권자와 블로거 정치인 간에 관계를 형성해 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그 바탕에는 그 정치인의 사람됨과 좋은 정치 철학이 우선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Howard Dean의 블로그는 만약 Dean이 민주당 차기 주자로 선택된다면, 미국내 정치 컨설턴트와 정치커뮤니케이션 학자들에 의해 수없이 이야기 될 걸로 본다. Dean의 블로그는 조직적인 반대 세력을 다루는 것도 아주 특이하게 한다. 이른바 troll (블로그에다가 악플을 다는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고 함)이 악성 코멘트를 달면 이때는 "더 Dean에게 지지를 보내주는 글이나 후원금을 보내주십시오"라고 호소함으로써 Dean을 비방하는 사람이 아예 거기에는 악성 코멘트를 달면 오히려 Dean을 지지하는 격이 되고 만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현재 차기 민주당 후보는 이제 더 이상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부시 망하라고 우리 모두 블로그 배너 이어 달기 행사이라도 시작해야 할 만큼 미국 대통령은 이제 우리 생활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혹시 주변에 잘 아는 무당이 있으면 부시 인형을 가지고....^^ (다 아시죠..어떻게 할 지?) 누가 좀 부탁좀 해 줘요....
Posted by gatorlog at 02:54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고진감내
요즘 장안의 화제인 이글루.. joat님은 "음 분하지만 이건 블로그다"라고 말하는군요. 수만님은 "가장 때묻지 않은 곳"이라고 하네요. 저는 한마디로 "정말 좋습니다. 극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기회있을 때마다 이른바 한국형 쓰레기 블로그들에 대해 열분을 토해왔던, 그리고 심지어 블로그인같은 서비스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아거"가 원했던 진짜 한국형 블로그의 모습 여기서 볼 수 있네요.
물론 저는 전번에 락타이야기의 짜장이냐 짬봉이냐에 대한 트랙백에서 중앙서버형 블로그 보다는 개인이 직접 가꾸고 통제할 수 있는 블로깅 툴들을 선호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Leia님 억울해 하실 이유는 없겠네요. Leia님 pMachine블로그 참 예쁩니다. 고진감내(苦盡甘來)라...고생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Leia님! 한눈에 빠져 그쪽으로 새 둥지 하나를 여신 것 같네요 ^^. 두개 쓰면 상당히 바쁘실 텐데요.....
일단 좋은 블로그의 뒤에는 좋은 컨셉이 있습니다. 인티즌 사장이 무슨 말도 안되는 정보 지식 거래소라는 허황된 소리를 하고 있는 반면, 이글루는 바로 "관계"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는...)에 컨셉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옆 동네에서 광어와 게 먹으면서 아이들 가르치고 있는 J박사도 "다음 카페" 말고 이글루 써보라고 언제 권해야 겠다. 그리고 모 텔레콤 최 대리, 이 글 보고 있으면 Igloo한 번 써보게나...블로그 쓰면 시집 간다니까....
Posted by gatorlog at 02:51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8)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September 20, 2003
Metaphor
일전에 영화 Il Postino를 언급한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지중해라는 영화도 코아 아트 홀에서 봤는데...지금은 지중해를 찾을 수가 없다. 그 영화도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아쉽다...
어쨌거나 Il Postino에서 주인공 마리오는 시인 파블로에게 메타포를 묻는다. 파블로는 일단 딱딱한 정의로 설명해 주는데, 그래도 이해를 못하자, 어떤 예를 든다...(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보면서 참 멋진 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메타포를 이용해 베로니카를 위한 시를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파블로는 메타포는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대신 해 주는 것도 아니라고 일언지하 거절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이 순박한 마리오에게 베로니카를 사로잡는 메타포를 쓰게 만들고 베로니카는 이 메타포에 넘어가지 않았던가? 물론 영화를 보신 분들은 베로니카가 넘어간 (베로니카의 풍만한 가슴을 묘사한) 메타포를 들으면서 웃지 않을 수 없지만, 어쨌거나 메타포다..이게 뛰어난 메타포던가, 아니면 상투적인 메타포인가도 다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야지만....
오늘 Aristotle의 Poetics에 인용되었던 metaphor에 대한 정의를 광고 관련 논문에서 읽고는, 이 영화가 생각나 다시 한 번 삥긋이 웃었다.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것을 들라면 바로 메타포를 정복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다. 바로 타고 난 천재성이 있어야 한다.Il Postino 에서 파블로 시인이 한 말이 아니던가?
the greatest thing by far is to be a master of metaphor. It is the one thing that cannot be learn from others; and it is also a sign of genius.
Aristotle. (1952). Poetics (I. Bywater, Trans.). In W. D. Ross (Ed.), The works of Aristotle: Rhetorica, de rhetorica ad Alexandrum, poetica. Oxford: Clarendon Press. p.255
Posted by gatorlog at 09:09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September 21, 2003
남귤북지 南橘北枳
간과하거나 모르고 있던 부분이었는데, 철수님이 되올려 주신 (trackback) 글을 읽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방금 글을 쓰면서 확인하니까 NohMad님 도 같은 의견을 보내셨군요. 이런 표준화 문제와 관련해 업계에서 세심하게 신경 쓸 측면이 있겠다는 생각에 일단 동의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이 "이글루스"라는 서비스가 최근 이른바 "한국형 블로그"라는 쓰레기 블로그 문화 양산으로 푼돈을 벌려던 허접떼기 장사꾼들의 잔꾀에 찬물을 끼얹어 놓을 수 있는 참신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이글루스에 대해 여전히 (주관적인) 지지를 계속 보내고 싶습니다.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강북의 탱자가 된다는 안자의 비유대로, 그동안 우리나라 장사하는 사람들의 그릇된 비즈니스 철학이 블로그라는 외국의 귤을 탱자로 바꿔놓았습니다. 아무리 블로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해대도, 사실 이런 장사꾼의 태도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너는 짖어라, 우리는 돈 벌라니까...이런 태도지요." 돈 번다는게 나쁘다는게 아니고, 매번 지적했듯이 탱자로 돈을 벌려니까 문제라는 예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참신하게 선보이는 이글루스가 블로그 문화에 반향을 일으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을 듯 합니다.
"한국형"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그동안 제가 아주 지나치리라 싶을 정도로 이른바 "한국형 블로그"를 표방하고 나선 쓰레기 양산 포탈 블로그나 기타 상업적 블로그에 보냈던 냉소주의에 대해, 혹시라도 그러면 "네가 주장하는 이른바 한국형 블로그는 무엇인데"라는 (가상의) 질문에 대한 지극히 제 "주관적인" 응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귤이 건너와서 재배과정에 귤을 구성하는 표준적 구성 성분이 조금 바뀐다고 해도 여전히 귤 맛을 내면 귤인 것입니다. 마치 비단 마괘자, 청마괘자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의 단아한 마고자를 만들어 낸 것과 다름 없습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 블로거들이 아직도 많이 사용하는 영어 원어식 표기 (이를테면 트랙백, 코멘트)등을 점점 우리말로 바꿔 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이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따로 말을 하고 싶지만, 저는 joat님이 사용하는 되오름 (trackback)이라는 단어나, 이글루스의 덧말, NohMad님의 댓글 등 우리 말로 표기한 블로그 식 용어들이 참 좋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형 블로그라고 불러줘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차라리 이런 한걸음 달라진 사업체의 등장으로, 다른 허울좋은 사업체들이 모두 제 정신 차려 주었으면 하는게 제 바램입니다.
W3의 CSS표준양식이나 WDG의 HTML 표준을 따른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일단 이런 엄격한 기준을 따르지 못함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은 그리 크지 않은 듯 하군요. 예를 들어, MT나 PM등을 사용하는 블로거들이 보낸 되오름 글들이 이글루스에 있는 블로그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고, 제가 보고 있는 사파리나 윈도우 익스플로러에서 이글루스 보는데 똑같이 이상이 없다는 점에서 그런 기준들에 위배되는게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불이익을 가져오는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지적하자면 gatorlog역시 우리나라 대부분 블로거들이 표준으로 사용하는 euc-kr 코드를 안쓰고, Kung-log를 위해 독자적으로 utf-8이라는 코드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받아야지 않을까요? 그래서 남의 블로그에 이상한 기호를 트랙백 앞 요약으로 남기지 않습니까? 또 제 웹브라우저에서 오늘의 top 5 list가 모두 일그러져 전혀 식별할 수 없게 보이는 것도 문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모두를 만족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큰 그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런 지엽적인 문제들은 토론을 통해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덧말: 일단 답글로 보내는 글이 철수님의 의견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Mac사용자이게 때문에 철수님이 지적하는 문제점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가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혹시 제 글을 계속 보셨다면 제가 무턱대고 남을 헐뜯거나 갑자기 어느 한 구석을 보고 그걸 숭배하는 오류를 피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도 알고 계실거구요. 다시 한 번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3:59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7)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3)
September 23, 2003
4%의 시선을 잡아라
(한마디로 웃기는) 뉴스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블로그 인구가 1천만 시대에 들어섰다고 한다. 한마디로 한 집 건너 한 명씩은 블로그를 쓴다는 예기 아닌가?
블로그를 쓰는 사람의 눈에는 블로그가 인터넷 문화의 중심에 있다고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보자. 미국 언론에서 "비교적" 공신력 있는 정보원으로 알려진, 인터넷 관련 시장 조사기관인 Jupitermedi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이용 인구의 4%만이 블로그라는 것을 "최소한 한 번이라도 접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블로그 트래킹 웹 사이트인 Daypop.com의 자료에 따르면, 하루(...한달이 아니고 하루)에 5백만명 (5 million)이 방문한다는 Fark.com이란 이윤을 만들어내는 유사 블로그도 있긴 하다 ( 이걸 블로그로 봐야 하는가는 블로그란 무엇인가에 대해 개인의 가치나 기준에 따라 다르니까 할 말은 없지만). (참고로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Mr. Curtis는 매달 천 달러를 광고와 계약 관련 변호사 비용으로 주고, 또 회계사 비용으로 얼마 주고, 세금 떼고 또 고객 관리를 위해 목요일에는 늘 TGI프라이데이에서 맥주 파티를 하고도 수지가 맞는다고 한다나?)
그렇다면 이 4%의 시선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는가? 특집기사의 몇 몇 장사하는 블로거들(이를테면 www.gawker.com운영자) 인터뷰에 따르면, 꾸준히 쓰면서 전문화하는 것이다. 전문화하라니까 어떤 분야를 무슨 학위받을 정도로 깊이 파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뭔가 특색있는 블로그를 만들라는 것이다.
광고적 개념을 도입하자면, 시장의 niches를 잘 파악하라는 것이다. niche라는 것은 이런 개념이다. 어떤 회사가 노트북 컴퓨터 시장을 개척하려는데, 시장 조사를 해 보니까 노트북 시장이 포화상태로 나타났다. 그런데 가만 보니까, 기존의 노트북 회사들이 대부분 남자들을 타겟으로 제품 개발을 해왔지만 요즘 젊은 여대생들의 노트북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이 계층에 니취(niche)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 회사는 서서히 젊은 여대생을 겨냥한 핑크빛 예쁜 노트북을 시장에 선 보이기로 했다...이런게 바로 니취(niche)를 공략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예는 내가 만든 예가 아니고 최근 legally blonde 2라는 영화에서 핑크빛 노트북을 선보인 Gateway의 새로운 niche marketing이다).
어쨌거나 1천만 블로그 시대에 블로그를 자신만을 위해 쓰는게 아니라면, 바로 인쇄 매체나 기존 인터넷 업체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내용 구성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경우라도 평범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혹은 링크형 매체보다는, 가급적 "현재 읽고 있는 책이나 듣고 있는 음악도 보여주고, 실수도 하고,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신나면 즐거운 비명도 지르고, 사회 돌아가는게 못마땅 하면 울분도 토해보는" 그렇게 인간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카테고리나 공간을 최소한 하나쯤은 남겨야 블로그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전문화의 예를 하나 들어 본다. 무용을 좋아하는 사람은 월간으로 발행되는 무용잡지와 차별성을 둔 "무용에 관한 정보나 공연 리뷰, 그리고 유명한 안무가 이야기"를 꾸준히 올려준다면 분명 애독자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늘 주장하듯이 "돈은 벌 수 없겠지만," 이를 통해 무용을 좋아하고 무용에 관심있는 애독자와 함께 관계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또 하나,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읽고 링크를 걸면서 자신의 블로그 트래픽도 증가한다는 점이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전략적으로 유명 블로그나 트래핑이 많은 블로그에 링크를 걸어 놓는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미국에서는 이른바 MetaFilter라는 게 있는데, 한 달에 대략 3백만 트래핑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곳에 목적의식적으로 링크를 건다는 것이다.
글쎄...(지극히 내 주관적인 견해인데) 이렇게까지 전략적일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블로그라는게 돈 되는게 아닌데....뭐 자기 블로그를 많이 봐주면 심리적인 희열은 느끼겠지만.....그렇다고 유명인 되는 것도 아닌데....너무 블로그에 집착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그리 좋을 것 같지 않다.
삶이 있고 블로그 나야지, 블로그 만들고 그걸 삶으로 만들려면 쓰겠는가?
9월 15일 WSJ에 보도된 특집기사 the best way to start a blog에서 몇 부분을 인용했음
Posted by gatorlog at 06:59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표준에 관해 이어지는 글들을 보면서...
이 논의에 이어진 글: [남귤북지 南橘北枳]별주부뎐의 standardization vs. localization과 챨스님의 표준준수와 블로그에 대한 짧막한 코멘트입니다. 두 분 블로그에 똑같은 코멘트를 남기기 보다 여기에 적겠습니다.
일단 별주부뎐에서 제기하신 대로 두 논의의 출발점이 약간 다르다는 점에 공감이 갑니다. 또 이는 결국 챨스님 표현대로 "문학과 이/공학의 차이"에 따른, 사물을 바라볼 때 생길 수 있는 관점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 분 모두 이 분야에 상당히 깊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고, 챨스님의 지적대로 이 영역이 "문학이 아니라 이/공학"에 관련된 부분이기에 제가 사실 정리할 부분은 없는 듯 합니다만, (문학의 관점에서) 짧은 코멘트를 달면, 지금 하고 있는 표준의 논의가 (제게는)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지적한 패러다임의 논의와 비슷한 의미로 다가오는군요. 특히 별주부뎐의 논의는 그런 생각을 많이 갖게 합니다.
지배적 패러다임이 더 나은 가치를 향한 변증법적 운동의 산물일 때도 있지만, 반드시 옳거나 진리이기 때문에 주류로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죠. 때로는 특정 과학자 그룹의 집단적 이익이나, 혹은 동일 사고를 가진 커뮤니티 확산을 위한 필요성 때문에 대립하는 패러다임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듯 싶네요. 그래서 패러다임이 과학의 진보를 앞당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역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나 같은 논리인 듯 합니다.
물론 이를 인용하는 이유가 "현재 제기되는 표준화에 대한 논의가 특정 집단의 헤게모니의 산물이니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배적 패러다임이 가는 방향에 맞지 않는 소수의 패러다임이 존재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게임의 법칙"이 됐건, "시장의 논리"가 됐건, 아니면 "자연 도태의 과정"을 겪건 자연스럽게 구조 조정이 일어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찌됐건 논의의 방향이 최초 어떤 서비스 업체에 대한 "인상(impression)"의 문제에서, 점점 기술적 문제로 가면서 논의가 너무 커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글은 다음 주소로 되올려 졌습니다. http://beconfident.cjb.net/mt2.6/mt-tb.cgi/2375
http://blog.webservices.or.kr/mt-tb.cgi/142
Posted by gatorlog at 08:09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September 24, 2003
관계....
평생 우리가 가장 집착하며 살아가는 것은 뭘까? 혹시 "관계"가 아닐까? 부모와 자식 관계, 형제간 관계, 연인과의 관계, 부부사이의 관계, 친구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선후배 관계....역시 관계다. 세상에 뭘 하든지 우리는 "관계"를 벗어나 살 수 없다.
처음 이 사이버 문화에 나오기 전에는 온라인 상에서는 그런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경험하고 보니 역시 온라인 상에서도 "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지는 느낌이다. 특히 블로그 문화의 핵심은 바로 이 "관계"라고 해도 그리 틀릴 말은 아닐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나도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관계"나 "인연"에 따라서만 블로그를 읽는다. 이런 관계를 구성하는 인자는 수없이 많다: 어떤 특별한 인연, 친분, 관심사, 또는 이른바 요샛말로 "코드" 등등...물론 나는 내가 읽는 블로거의 아이덴티티를 전혀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 관계를 바탕으로 내가 무슨 국회에 출마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블로그 모임 동호회가 있다고 해도 이런데 얼굴 드밀 만큼 외향적이지도 않고, 혹시라도 평생 온라인상에서만 알고 지낸다 할 지라도 전혀 답답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읽는 블로거의 신분 (identity) 문제에 초연하다. (물론 Gatorlog를 읽는 사람은 (전자 명함을 통해) 대부분 내 이름과 하는 일, 그리고 우리 전 가족의 얼굴도 알고 있지만) 나는 내가 읽는 블로거의 이름을 몰라도 되고, 하는 일을 몰라도 되고, 얼굴을 몰라도 괜찮다. 그런 것은 내게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어떤 식의 관계로 시작 됐건 내가 읽는 블로거의 글을 통해 재미나 정서적 기쁨을 맛볼 수 있고, 때로는 어떤 일에 공분을 느낄 수 있고, 또 축하할 일이 있으면 축하해 줄 수 있고, 축하받을 일이 있으면 축하받을 수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의 폭을 넓힐 수가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니까.... 이를테면 거부기아찌님이 누군지 몰라도 나는 이 분을 통해 늘 새로 배우고 있기에, 닉네임이 "거부기"가 아니고 "자라"여도 이 분의 애독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자식 낳아 키워보면 아시겠지만, 자기 자식 예뻐해주는 사람은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예쁠 수 밖에 없다 (우리 아기 예뻐해주는 레이아님이 미운 짓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여하간 처제는 내가 사이버 문화에 발담근 뒤로 가장 기쁜 일을 해 주었기에, 내가 꼭 중매 설테니까 잠깐 기다려 봐요...(지킬 수 있으려나? ^^)
물론 관계라는 단어가 늘 긍정적인 것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혈연, 지연, 학연, 심지어는 군맥 이라는 왜곡된 관계 문화로 이른바 "인맥주의"라는 병폐를 낳았지만,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없을 만큼 이런 정실적 관계는 우리 삶의 깊숙한 곳에 뿌리 박혀 있다. (그래도 나는 지역감정으로 정치하거나 선거때 표 찍는 사람들에게는 돌맹이 던진다).
관계는 가끔 오해 때문에 깨지는 수가 있다. 살면서 늘 후회되는 것은, 오랜 세월 지나고 보면 사실 별 것 아닌 오해로 인해 다른 사람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 형이 있었는데, 장난에서 시작된 것이 큰 오해로 번져 현재는 소식을 모르고 지낸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지는 않겠지만, 동물 자원학을 연구하다 느닷없이 이쪽으로 들어왔던 "S"형...요즘은 그 좋아하던 만화 영상가의 꿈을 이루고 있는지 모르겠구려....
사소한 오해로 불편해질 수 있는 수 있는 관계가 다시 회복되려면 어느 한 쪽의 그릇이 커야 한다. 현재 워싱턴 주에서 교편잡고 있는 "L"박사라는 여장부가 있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 삐딱한 성격때문에) 약간 삐딱한 말을 몇 번 했는데도, 언제나 대범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지금 나는 L박사의 팬이다. 나는 L박사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대범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잘 삐지고, 계산적이고, 정치적이고, 등에 가끔 칼 꽂는 사람"과는 아주 상극이다.
블로그 문화가 확산될수록 블로그 문화에서 관계 역시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그냥 오늘은 일단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은 아주 밀접한 상관 관계에 있다는 말을 끝으로 글을 줄여야 겠다.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은 관계의 단절을 가져온다...안 그런가? 옆 마을 펜**라에 사는 정박?
관계중에 가장 마음 아픈 관계가 바로 헤어진 연인과의 관계가 아닐 듯 싶다. 오늘은 the girl from yesterday를 마지막 곡으로...가사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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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5, 2003
검색 기능 강화로 판매 증가를 꾀하려는 아마존
Google이 상장될 때, 가장 함박 웃음을 지을 사람은? 아마존 CEO Jeff Bezos다. 구글 초기 투자가이기 때문에 상장될 때,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현재 자산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본 기사에서 최소 60억 달러를 추정했는데, 구글이 상장되면 아마 자산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 Jeff Bezos는 최근 "A9"이라는 NC에 본부를 둔 자회사를 설립하고, 상품 검색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물론 이 회사 대변인에 따르면 상품 검색에서 아마존도 평등한 입장에서 검색되도록 하겠다고는 하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일단은 아마존에 유리한 검색으로 연결될 것은 명약관화아닌가?
Amazon plans to market the A9 technology to other Web sites as well as use it itself. "The whole business objective is to create the best e-commerce search technology out there," says Ms. Diboll. "We will start up in October with about 30 people and expect to grow significantly over time." WSJ 보도
어쨌거나 아마존과 구글은 현재까지는 아주 긴밀하고 동반자적인 관계에 있는데, 아마존의 상품 검색 시장 진입이 이 관계를 어떻게 바꿀 지는 모르겠다. 주로 상품 광고 연결에 대부분의 수입을 의존하는 Google이 현재 시범 서비스 중인 Froogle과 ebay의 검색 부분과 분명 같은 소비자를 놓고 각축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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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6, 2003
Scrabble blog
이거 미국 와서 살다 보니 Scrabble이라는 것도 해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내게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 이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집에 파티만 하면 이 게임 한 번씩 (의무 방어전으로) 해 주고 와야 합니다. 스크래블을 위한 사전도 나와 있을 정도로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이죠. 조만간 crossword블로그도 나오겠지요. 아니 예전에 어디서 본 기억도 나는데? 어쨌거나 Scrabble blog입니다.Typepad에 이 블로그 사이트를 구축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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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 Relationship
거부기아찌님의 글... 출력해서 화장실에서 읽어야 겠군요...아참 저는 집중할 필요가 있을 때는, 화장실에 들어갑니다. 관련 링크까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간 꽤 오래 걸리겠군요 (치질 다시 도지겠는걸..^^)....그런데 이 분 엔지니어인지 작가인지 구분이 안가는군요. 왜 이리 글을 잘 쓰는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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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8, 2003
블로그의 활용
활용이라는 점에서 블로그를 이야기하자면, 창의성, 상상력, 그리고 전문성 세가지 특성이 결합되야 할 듯 하다. 물론 다시 한 번 여기서 말하는 전문성은 무슨 학위 딸 만한 전문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차별화된 내용" 혹은 "시장의 빈 곳 (niche)"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이해하자.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가 그리 나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에서 문화나 소프트웨어 산업에 딸리는 것은 일단 언어와 자본력에 바탕을 둔 "문화 제국주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우리 내부적인 탓도 적지 않다고 본다. 그동안 "성장중심적" 발전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외형"만 번드르하게 쌓고 보자는 식의 잘못된 치장주의가 우리 사고를 지배한 탓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우후죽순으로 퍼지는 블로그 문화도 마찬가지다. 일단 나부터 그랬지만, 우선은 내용물(contents)에 앞서 집 뼈대부터 올리고 본다. 컨텐츠를 잘 기획하고 그 다음에 뭔가를 시작해야 하는데, 일단 성급하게 집 부터 올리고 본다. 그러다 보니, 정말 일기도 아니고 미디어도 아닌 것이 갈 곳을 몰라 망설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나는 혹시라도 블로그를 쓰지 않으면서 gatorlog를 읽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분들에게 블로그의 세계로 무턱대고 첨벙 들어오지 말라고 권유하고 싶다. 남들하는게 재미있어 보여 들어왔다가는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나중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물론 gatorlog도 어느 날 건물 철거하듯이 와르릇하고 폭발되어 공중에 날아가 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일단 블로그에 채울 내용에 대한 고민보다, 블로그 자체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외양도 비슷하지만 내용도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원 기억 실종 현상 ("I-read-somewhere-that phenomenon")이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곳이 바로 블로그이다. 엊그저께 예비군 훈련 간 사람이 누구였는지, mp3플레이어 언급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옥탑방 고양이 이야기나 다모 이야기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도데체 기억이 안난다. 오해 마시라...이게 쓸데 없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개인의 일상사 자취를 남기는게 블로그의 중요한 특색이니까,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면서 감놔라 콩놔라 하면 뭐라 궁시렁 궁시렁 할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다만 오늘은 "관계"가 아닌, "활용"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여기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약간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 뿐이다.(그냥 devil's advocate정도로 생각해 주시길). 물론 그렇다고 모두 뭔가 하나씩을 특기로 내세울 만큼 전문화된 블로그를 쓰자고 주장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관계라는 것을 배제하고 단지 "읽을 거리"라는 점에서 블로그를 논할 때 이렇다는 이야기니까 또 여기에 오해없으시길....
내가 무슨 웹 분야에 있는 컨텐츠 PD도 아니고, 나 조차 늘 창의력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기에, 무슨 창의적인 "활용"을 이야기한다는게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내 눈에 비친 특색있는 블로그의 활용 예를 꼽으라면, 이런 블로그들을 언급하고 싶다.
먼저 전문화되어 있으면서, 또 아주 좋은 뜻에서 시작한 어느 심리 치료사의 블로그이다. 바로 Perry Miller가 쓰고 있는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소개하는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블로그이다. typepad에 기반하고 있고 아주 좋은 뜻에 어울리게 블로그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을 다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목적을 가진 또 다른 블로그로 Bionic Ear Blog 를 꼽을 수 있다.
상업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어쨌든 미국 wisconsin주 풋볼 팀 badger팬들을 위한 블로그 역시 블로그의 좋은 활용 예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축구를 아끼는 사람도 전문화된 블로그를 만들어 스포츠 일간지와는 차별화된 이야기를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창의성의 관점에서 어제 링크했던 scrabble blog를 하나의 색다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 돈 부터 받고 보자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그보다 우선 내가 scrabble 블로그 기획자라면 그냥 매일 단어조합퀴즈만 내지는 않을 듯하다. 일단 사람 냄새가 나야지, 블로그의 한 특징 (최근 글이 가장 위에 온다)을 가지고 모두 블로그를 활용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블로그는 특색있다고 본다. 먼저 이란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이다.(gatorlog관련 글: blogs in Iran) 분명 모든 시선이 미국에 쏠려 있는 이 미제국주의 시대에 우리의 눈이 가지 않는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하나의 소스로, 이란 블로그는 분명 매력있는 시장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를 운영하는 분이 이란 관련 고급 contents는 유료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란과 비즈니스 관계를 모색하는 분들에게는, 유용한 정보원이 되지 않을까 쉽다.
다음은 typemod라는 블로그...다 아시다시피 호찬님이 기록하는 블로그 뉴스를 전달해 주는 전문화된 블로그이다. 물론 이게 hochan.net과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상당히 무미건조한 블로그가 될 것이다. 이런 뉴스 링크형의 전문 블로그를 꾸릴 생각이 있는 사람의 경우, 따로 기록하는 개인적 블로그가 없다면 전문 블로그 내부에라도 "블로거의 personality를 드러내 보여주는 요소들"을 빠뜨리면 안 되리라 본다.
또 한국의 Mac사용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듯한 Albireo's powerbook도 언젠가 부터인가 blog형식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전에 호찬님의 FM과 블로그의 결합이라는 기획 아이디어에 이어지는 생각인데, 완전히 블로그형 FM을 기획하는 사람도 나와 볼 만하지 않은가? Quicktime streaming서비스와 soko님의 블로그 중계소를 함께 연동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 한데......이런 개성있는 블로그가 언제 쯤 나오려나?
Posted by gatorlog at 09:08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8)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September 29, 2003
음모 이론 (Conspiracy theories) [news watch]
부도덕한 정권 (immoral regime)하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힌 사건들은 늘 유언비어와 음모 이론을 낫게 마련이다. 이전에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 사건 역시, 전두환 정권이 노태우를 돕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음모 이론이 그럴 듯하게 제기된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부시 정권도 보수파 정권 유지를 위해 뭔가 색다른 전환을 만들 사건이 필요했다는 이른바 음모 이론이 독일에서 상당수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많은 아랍권 사람들은 이미 월드 무역 센터 쌍둥이 빌딩 희생자 중에 유태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등의 근거를 대면서 이 사건이 부시의 조작극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전직 각료가 쓴 9/11이 부시 정권의 자작극이라는 책이 비소설 부분 베스트셀러에 들어가 있고, 이 저자는 숱한 강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비행기 폭파범으로 지목된 사람들도 현재 다른 곳에 감금되어 생존해 있다는 주장이다. 독일에서 5명 중 1명 정도는 이 음모 이론에 동조하고 있다는 최근 여론 조사 결과는 분명히 사실 여부를 떠나서 부시 정권에 대한 사람들의 도덕적 판단이 아주 바닥에 있음을 입증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영화 conspiracy theory와 wag the dog을 연상케 하는 음모 이론이 현재 독일을 뜨겁게 하고 있다는 뉴스가 오늘 자 월스트리트 저널 1면 top기사이다. 내용 전문을 3일간 여기서 볼 수 있음 (pdf file in English).
Posted by gatorlog at 08:32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4)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October 01, 2003
인터넷 시대에 현실성 있는 저작권을 위해.
soko님의 움베르토 에코의 새 책 소개를 읽다가 다시 인터넷 시대의 저작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글 전체를 퍼온다거나, 옮기는 일은 이 블로그에서 처음인데, 그만큼 이 글은 옮길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야만 이 지적인 대가의 경험에 공감하는 나의 쑥스러운 경험과 행동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 나머지 다른 내용들이 훨씬 더 흥미로운 것 같다.. 그저 이글이~)
매우 길고, 스포일러성이고, 게다가 불법이다. 감수할 분들만 클릭~ [soko님의 글에서 인용]
사실 인터넷의 등장으로 개별 웹 사용자들이 어떤 취미나 다른 소규모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뭔가를 웹 상에 올리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면서, 우리는 종종 큰 딜레마에 빠집니다. 우선 상업적 사이트에서나 soko님 처럼 어떤 책의 일부를 인용하고 싶을 때, 그 지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에게 먼저 허락을 맡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soko님이 이걸로 장사를 하겠다면 책의 저자에게 먼저 허가를 구해야 겠지요 (우리나라는 아마 출판사에 소유권이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리고 저처럼 종종 특정 신문 구독자에게만 열람 가능한 온라인에 올라온 내용을, pdf로 저장해서 올리는 행위 역시, 기존 저작권 법의 테두리에서는 허용이 되지 않지요. 이걸 알면서도 저도 가끔 제가 쓰는 글의 전체적 이해를 돕기 위해 부득이하게 copyright law에 저촉되는 일을 "자행"합니다. 그래도 이걸 의식은 하고 있기에, 일단 포스팅한 내용물이 저작권에 위배될 수 있을 경우는 3일 이내에 철거하려고 노력합니다만, 이걸로 모두 "면책부"를 받는 것은 아니죠. WSJ가 마음만 먹고 달려 들면 법정에서 무단 전제로 저작권 법의 무거운 심판을 받게 되어 있지요.
마찬가지로 음악 mp3파일을 매일 갈아치우면서 올리는 것도 일단 엄격한 의미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라디오 방송을 다시 듣게 하는 것도 막으려는 옹졸한 한국 음제협의 정책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인터넷 시대의 지적 재산권을 좀 더 현실성 있게 바꿔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저처럼 웹을 통해서 아주 작은 수의 이용자들과 비상업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신문 기사에 코멘트를 달기 위해 번번히 Wall Street Journal 저작권 관련 부처에 신문 기사 인용 허가를 신청하고 이걸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일 아닙니까?
모두 안된다는 식의 정책은 바로 지적 소유권의 원소유자의 출처도 링크하지 않고 무단으로 전제할 수 있는 위험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까다로운 절차나 혹시 있을 지 모르는 금전적 청구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몰래 가져다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지요.
물론 비즈니스 세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엄격한 룰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블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아주 철저히 비상업적이고 개인적 표현을 하는 사람들에게, 상업 세계에 적용되는 저작권 법의 칼날을 들이댄다는 것은 일단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인터넷 시대에 어떤 부분이 저작권에 저촉되지는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세세한 부분에 엄격한 잣대를 가져다 대면, 블로그를 쓰는 우리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그 대안은 무엇이냐? 바로 스탠포드의 저명한 법학자 Larry Lessig교수가 하고 있는 이른바 creative commonth 같은 것을 대안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언급했기에 여기서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원출처를 밝히고 비상업적인 용도로는 전문을 인용해도 괜찮다는 creative commons를 밝혔는데도, 이것도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언제인가 flashmob에 대한 지난 번 제 글을 그냥 그대로 퍼다가 출처도 없이 포럼에 올린 경우를 봤습니다). 이런 형편인데 하물며 어렵고 까다로운 기존 저작권법을 들이다미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닐까요? 쉽게 바꾸고 그 안에서 개인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계몽하는게 훨씬 현실성 있지 않을까요? 법 전공하시는 분들....조금 이야기좀 해 주세요....
Gatorlog관련 글: 인터넷과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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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2, 2003
informercial 과 paid inclusion
서치 엔진마다 검색 결과를 나타내는 모양이 다른데, 가장 합리적인 모델은 paid placement(돈 낸 사람은 따로 박스해서 따로 표시해주는 것)가 아닐까 한다. 가장 좋지 못한 모델은 paid inclusion이다. 검색 엔진 회사들은 paid inclusion(돈 낸 사람과 내지 않는 사람을 섞어서 보여주는 방식)도 정당한 검색 순위 (이를 테면 page link의 순위)에 따라 결과를 보여 준다고 주장하지만, 최근 BusinessWeek조사팀의 조사 결과 이 말이 사실과 다름이 밝혀 졌다. 다시 말해 별로 링크의 순위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낸 회사들에 어떤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프로그램을 가장한 제품 광고나 홍보를 informercial (information + commercial) 이라고 부른다. 어쨌건 informercial이나, paid inclusion이나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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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atorlog at 04:21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power of blogism
"If the news media's power is setting the nation's agenda, bloggers englarge that agenda by finding and flogging ideas and events until traditional media covers them in more depth. Good stories have that kind of energy; they behave on the Web as though they are alive, ready and eager to spread. If enough bloggers find something important and blog it, expressing opinions and linking to others' opinions, then the idea rapidly multiplies. Very quickly, the story has legs and often will enter into the mainstream media and bublle out to readers, listners and viewers. Perhaps some kind of action will result because of this news. But one thing is certain: More blogging about it will occur" Sheila Lennon, (2003), Neiman Reports, p.77.Posted by gatorlog at 06:56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October 06, 2003
Study: Wrong impressions helped support Iraq war
별주부뎐에서 발견하고 제 필요에 의해 링크 걸어둡니다.Study: Wrong impressions helped support Iraq war from http://randomfoo.net/
Posted by gatorlog at 12:20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October 08, 2003
인지적 분주함(cognitive busyness)속에 발생할 수 있는 인상 형성의 오류 가능성
어떤 사물이나 사람, 혹은 사건 (event)에 대한 인상을 형성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이 인상 형성의 중요함을 일찌기 간파한 Heider는 대인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른바 행위 추론의 귀인 이론 (attribution theory)이라는 것을 제안했고, 이는 사회심리학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귀인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심리학 책에 나오는 말이고, 쉽게 말하면 "탓"이다. "탓"이론 하면 뭔가 이론이라는 거창한 느낌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랬는지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탓 이론이라고 하지 않고, 귀인 이론이라고 한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이 "탓" (attribution)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를 들어 보자. 먼저 철수가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 왔다고 하자. 어떤 사람들은 "아, 철수가 오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늦었구나." 아니면 "아, 차가 막혀 늦었겠지" 하고 철수의 지각 행위를 철수라는 개인을 둘러싼 환경 탓으로 돌릴 것이다. 그런데 평소 철수의 행동을 삐딱하게 본 사람들은 "아 저놈은 원래 태생이 게으른 놈이니까"라면서 철수의 성격 (personality)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이렇게 행동의 원인을 내재적인 개인의 특성으로 돌리는가, 아니면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돌리는가 하는 문제는 이런 단순한 예를 벗어나 때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영화 "피고인(the accused)"에서 보았듯이, 겁간을 당한 여인을 보는 사회의 시선도 두가지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 주지하다시피, 한쪽에서는 여자의 품행이 방정치 못하니까 그런게지, 그러길래 누가 그렇게 자극적인 미니 스커트에 가슴이 들여다 보이는 옷을 입으랬어? 라고 여자의 내적인 문제에 화살을 쏜다. 그러나 이는 여성 운동가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책임의 귀인이 아닌가? 이렇듯 책임의 원인을 따지는 행위는 모두다 주관적이다. 이는 우리가 일정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한 태도를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책임을 전가시키는데서 빚어지는 우리 사고의 주관적 오류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태도가 우리의 주관적인 편견 (스테레오타입)의 굴레에 씌여 있듯이, attribution도 편견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가 무슨 말을 하면 뭐든지 자질론에 갖다 붙인다는 것이다 (최근 LA Times의 노대통령에 관련된 글에서 이런 해괴망칙한 경우를 보았다). (모든 사고가 다 이렇다. 여기서 최근 전여옥의 조선일보 칼럼을 또 논하고 싶지만, 생략하고...)...
그런데 내가 가장 비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 대상의 원인이나 결과를 돌리는 데서 사람들이 종종 신중치 못한 판단을 한다는 점이다. 그 신중치 못한 판단을 불러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변수 는 물론 우리의 스테레오타입이나 편견(bias)이다. 편견은 "편견을 가진 집단에 귀속됨"으로써, "잘못된 교육을 받음"으로써, 혹은 "한쪽에 치우친 (조선일보 같은) 미디어를 보는데서" 나온 산물이다. 이를테면 최근 한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 획득이 미디어에 따라 편차를 가져온다는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Fox나 Fox News처럼 우익 성향의 언론에 노출된 수용자들이 당연히 전쟁에 대한 왜곡된 인식 또는 착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Fox뉴스 본 사람이 원래 그런 생각을 가졌는가 아니면, fox news가 수용자의 잘못된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 '아거"의 주관적인 의견을 the Marmot's hole에 코멘트로 남겼는데 관심있는 분은 참조하시길...)
그런데 이런 편견과는 관계없이 어떤 대상을 읽거나 보거나 느낄 때, 우리의 인지적 처리 용량(cognitive capacity)의 한계에서 나오는 잘못된 인상 형성 (impression formation)을 무시할 수 없다. Daniel Gilbert라는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는 이런 인지적 처리 용량의 한계에서 오는 귀인 (attribution)의 오류 (errors)들을 실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험실 스크린에서는 어떤 여인의 표정이 몇 분간 잡힌다. 아무런 배경도 없다. 다만 여인의 얼굴에는 뭔가 불안해하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나타나 있다. Gilbert 박사는 실험자 그룹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에는 "저 여인은 현재 앞에 있는 (보이지 않는) 여행사 직원과 여행 스케쥴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해 준다. 다른 그룹에는 저 여인은 현재 앞에 있는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서 느닷없이 그 여인 자신이 경험한 성적 환상의 세계 (sexual fantasy)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주의를 돌리기 위해) 몇가지 다른 작업들 (예: 산수 문제 풀기)을 시킨 후 두 그룹에게 그 여인에 관련된 성격 테스트를 한다. 결과는 여인이 여행사 직원과 이야기 하고 있다고 들었던 집단은 여인과 관련된 성격을 거의 부정적인 쪽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저 여인은 초조하고, 안달하고, 심지어 신경질적인 성격일 것이다라고 본다는 점이다. 반면 그 여인이 성적 환상에 대한 이야기 요청을 받았다고 들었던 집단은 그 여인에 대한 그런 부정적 성격 묘사를 덜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Gilbert는 그 두 집단을 또 두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은 스크린 밑에 자막을 넣어 그 자막을 소리내어 읽으라고 시키고 다른 집단은 그냥 자막없는 본래의 화면을 보여준다. 모든 다른 과정은 처음 실험과 같다. 실험 후 다시 여인에 대한 성격 테스트를 했는데, 놀랍게도 소리내어 자막에 나온 글을 읽으면서 여인의 표정을 본 집단의 실험자들은 여인이 성적 환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강요받았다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의 심리를 부정적인 쪽(초조, 불안, 안달, 심지어 히스테리)으로 몰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지적으로 분주하지 않을 때는 전체적인 상황 (context)을 잘 이해하고 어떤 대상을 관찰하기에 탓(attribution)에서 잘못이 일어날 확률이 줄어드는 데 반해, 인지적으로 분주할 때는 상황(context)보다는 어떤 일부분, 혹은 조그마한 단서 (cue)만 보게 됨으로써, 전체를 이해못하게 되고 결국 잘못된 탓 (attribution)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전에 쓸모 없는 정보가 많아지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최근 Odds & Edds글을 보니 약 90%의 블로그가 쓰레기라고 판단한다. "separate the wheat from the chaff(밀에서 왕겨 거르기, 즉 유용한 것 가리기)"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개인이 조금만 신경 쓰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자기 취향에 따라 글을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로그를 쓰다 보니까 신경 쓰이는 것은 자기가 쓴 글이 다른 사람들의 분주한 블로그 탐색 행위 아래서 잘못된 인상 형성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은 뉴스 aggregator 영향으로 제목과 요약 몇 소절만을 그냥 건성 건성 넘어가면서 읽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더 이런 문제가 걸린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내 뉴스 reader인 NetNewsWire를 삭제해 버렸다. 뭐 읽는 글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괜히 많은 블로그 RSS끌어다 놓고 제목하고 요약 보면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여하간 이 놈의 블로그라는게 보통 가장 최근 쓴 글이 가장 위로 올라오고, 어떤 사이트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고 해도 좀처럼 뒤로 돌아가서 모아진 예전 글들을 보지 않기 때문에, 어느 순간 방문자가 어떤 글을 슬쩍 훑어 보고는, 한순간에 잘못된 인상을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이런 걸 생각하면 이렇게 블로그에 뭔가 생각해서 긴 글을 쓴다는 게 너무나 부질없는 것도 같고...
여하간 나부터 남을 한 두편의 글로써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생각이 다른 블로거라도 최소한 논쟁의 도를 알고 있고, 다른 쪽을 이해할 노력을 하고 있다면 높게 평가한다. 이런 점에서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the Marmot's hole을 자주 읽고 있다. 박학다식하고 나름대로 논리 정연한 블로거다. 광주에 살고 있고,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분주한 가운데 잠깐 든 인상은 ^^) 나와는 어떤 정치적 현상을 해석하는 시각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상할 게 없는 게 이 분은 한겨레도 읽고, 오마이도 읽고, 북한 뉴스도 많이 본다. 나는? 솔직히 할 말이 없다......나는 한겨레도 안 보고, 오마이도 안보고, 북한 뉴스도 전혀 모르는데......^^ 거기다가 나는 누구 말대로 "수구 꼴통 보수 정파지인" 조선일보하고 동아일보하고,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만드는 "Wall Street Journal"하고 BusinessWeek만 보니까......그러니까 (^^) the Marmot과 Gator생각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
Heider, F. (1958). The psychology of interpersonal relations. New York: John Wiley.
Gilbert(b), D. T., Pelham, B. W., & Krull, D. S. (1988). On cognitive busyness: When person perceivers meet persons perceived.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4, 733-740.
로빈 윌리암스의 명연기가 돋보인 Good Will Hunting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반항적 모습 뒤에는 너무나 부서지기 쉬운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블로그식 글 읽기 처럼 쑥 지나가면서 곁눈질로 훔쳐 봐서는, 한 사람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borken heart도 치유해 줄 수 없다. 오늘 마지막 곡은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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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외계어
인터넷 외계어 난무 (동아일보 기사)Posted by gatorlog at 02:44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October 09, 2003
청춘을 돌려다오
요즘 "내 청춘 돌려다오" 외치는 분들께 띄웁니다.Posted by gatorlog at 05:45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October 10, 2003
닐 포스트만의 타계에 부쳐..
[GatorLog 관련 글: Amusing Ourselves to Death 20주년 기념판 서문]
오늘 친구에게 받은 이메일을 보고 금세기 최고의 미디어 비평가인 닐 포스트만(Neil Postman)이 타계한 사실을 알았다. 생전에 뉴욕 대학교 언론 대학의 교수로서 Media Ecology라는 독특한 과목을 강의한 닐 포스트만은 여러 권의 미디어 및 문명 비평서를 남겼다. MIT에 있는 Noam Chomsky선생처럼 이메일도 쓰지 않고, 심지어 컴퓨터도 쓰지 않고 오직 자필로만 모든 것을 기록했다는 Postman선생은, Amusing ourselves to death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텔레비전과 쇼 비즈니스 시대가 어떻게 인간을 우둔하게 만들고 있는가를 뛰어난 풍자로 비꼬고 있다.
사실 나도 이미 온갖 종류의 미디어에 중독되어 있고, 요즘은 인터넷이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 언젠가는 텔레비전보다 인터넷이 더 우리 생활을 파괴하는 주범이 될 것이라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 하이퍼링크라는 괴물이 우리에게 너무나 불필요한 정보를 가져다 주고 있다는 것은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여하간 내가 즐기는 이 괴물을 나는 두려워 하면서 즐기고 있다. 그게 바로 Postman이 Huxley의 Brave New World를 인용하면서 비판한 본질이 아닌가 싶다.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Postman의 한 제자가 추모 기고글을 올렸는데, 컴퓨터도 안 쓰는 Postman이 technology비평서를 썼다는 점이 독특하다. 언제 시간 나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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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책 정보
이 추모 기고에서 재미나는 것은 "Television is inhuman to children because it gives them answers to questions they never asked." 바로 텔레비전이 비인간적인 것은 아이들이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대답해 준다는 점이다. 심지어 Postman은 Elmo가 나오는 Sesame Street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아주 강력한 TV교육 반대론을 펼친다. Postman이 특히 아이들의 TV중독을 염려했던 것을 요즘 아이를 키우면서 실감나게 깨달고 있다. 바로 Postman이 지적한 대로 이 Brave New World에서는 텔레비전이 제 1차 교육기관이 되고, 학교는 2차 교육기관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시대에 또 다른 걱정 거리가 생겼지만, 여전히 이런 테크놀로지는 우리를 우둔하게 만드는 괴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듯 하다. 이 참에 인터넷을 끊어버려? ^^
아래 Foreword는 Postman선생의 Amusing Ourselves to death 책 서문으로, 간략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뛰어난 문체이기에 전문을 영문으로 옮겨 놓고, 그 대충의 뜻을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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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이 다가왔고 (조지 오웰의) 예언이 들어맞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조지 오웰의 암울한 예언 옆으로 또 다른 ..... (조지 오웰의 것보다) 약간 더 오래되고 약간 덜 알려진 어두운 예언이 잊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앨더스 헉슬리의 Brave New World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음을 말이다. 일반적인 우리 믿음과는 달리, 조지 오웰과 앨더스 헉슬리는 같은 것을 예언하지 않았다. 오웰은 외적으로 우리를 압제하는 세력에 의해 우리가 지배당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반면 헉슬리의 혜안은 사람들에게서 개인의 자주성, 성숙함, 그리고 역사성을 뺏는데는 Big Brother같은 사람이 필요없다고 내다 보았다. 바로 사람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에게서 생각할 능력을 빼앗아간 테크놀로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지 오웰이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에게서 책을 못읽게 막을 압제자였다. 헉슬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Brave New World에서는 책을 금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왜냐면 누구도 책을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웰이 두려워했던 것은 우리에게서 정보를 빼앗아 갈 사람이었지만, 헉슬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줌으로써 우리가 수동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되어 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오웰은 진실이 감춰질 것을 두려워했다. 헉슬리가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가 아주 하찮은 문화로 전락해 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Brave New World에 나오는 feelies와 orgy porgy와 centrifugal bumblepuppy에 상응하는 무엇인가에 홀려서 말이다 (역자 주: 오래 전에 읽어 잘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 feelies, orgy porgy는 술과 환락적 마약이고 centrifugal bimblepuppy는 아마 스포츠를 상징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혹시 각각이 뭘 상징하는지 아시는 분은 알려 주세요). .....
헉슬리가 Brave New World Revisited 에서 언급했듯이, 오웰의 1984에서는 사람들이 지독한 고통에 의해 통제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Brave New World에서는 지독스러운 쾌락에 의해 통제될 것으로 보았다. 간략히 말해, 오웰이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할 것을 두려워 한 반면, 헉슬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망칠 것을 두려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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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word (이 서문은 Amusing Ourselve to Death 서문의 전문입니다 저작권 법에 저촉 될 수 있겠지만, 좋은 글을 홍보하는 의미이므로 면죄부를 받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
We were keeping our eye on 1984. When the year came and the prophesy didn't, thoughtful Americans sang softly in praise of themselves. The roots of liberal democracy had held. Whereever else the terror had happened, we, at least, had not been visited by Orwellian nightmares.
But we had forgotten that alongside Orwell's dark vision, there was another -- slightly older, slightly less well known, equally chilling: Aldous Huxley's Brave New World. Contrary to common belief even among the educated, Huxley and Orwell did not prophesy the same thing. Orwell warns that we will be overcome by an externally imposed oppressions. But in Huxley's vision, no Big Brother is required to deprive people of their autonomy, maturity and history. As we saw it, people will come to love their oppression, to adore the technologies that undo their capacities to think.
What Orwell feared were those who would ban books. What Huxley feared was that there would be no reason to ban a book, for there would be no one who wanted to read one. Orwell feared those who would deprive us of information. Huxley feared those who would give us so much that we would be reduced to passivity and egoism. Orwell feared that the truth would be concealed from us. Huxley feared we would become a trivial culture, preoccupied with some equivalent of the feelies, the orgy porgy, and the centrifugal bumblepuppy.
As Huxley remarked in Brave New World Revisited, the civil libertarians and rationalists who are ever on the alert to oppose tyranny "failed to take into account man's almost infinite appetite for distractions." In 1984, Huxley added, people are controlled by inflicting pain. In Brave New World, they are controlled by inflicting pleasure. In short, Orwell feared that what we hate will run us. Huxley feared that what we love will ruin us.
This book is about the possibility that Huxley, not Orwell was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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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1, 2003
애플은 왜 밑지는 장사를 할까?: 온라인 음반 시장의 모순
음악을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인터넷 시대에 "기술과 문화의 결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나는 인터넷 음반 산업과 관련된 주요 이슈를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종종 나 자신이 아주 적극적으로 새로운 디지털 음반 산업 모델의 소비자가 되보기도 한다. 물론 apple music store를 통해서다. 매킨토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의 94%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애플 뮤직 스토어를 그리 쉽게 여겨서는 안된다. iPod이 윈도우와 호환이 되면서 전체 iPod 판매의 2/3가 윈도우 사용자 층에서 오듯이, 늦어도 12월 말까지 진출하는 애플 디지털 음악 가게의 윈도우 시장 진입이 시작되면 이쪽의 주된 판매 역시 윈도우 사용자층에서 오지 않을까 싶다. 이미 이곳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많은 기술 분석가들은 애플 뮤직의 윈도우 시장 진입을 폭풍의 눈으로 보고 있다. 두고 보시라....
그런데 월가의 투자 분석가들이 관심있어 하는 것은 과연 이 사업 모델이 수익성이 있냐는 것이다. 사실 애플 컴퓨터가 이 뮤직 스토어를 시장에 내 놓기 전에는, 시장에서 계속 애플의 주가가 하락 추세에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 분양권 값이 입주가 가까울수록 뛰듯이, 현재 윈도우 시장 음반 가게의 개점을 목전에 둔 애플의 주가는 몇 달 전보다 거의 1.7배에서 많게는 두 배 이상 상승해 있다. 그동안 주식 시장의 전반적인 상승을 고려해도 기대 수준 이상이다. 그러나 어제 월가의 분석가가 WSJ에 아주 비관적인 보고서를 내 놓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초등학교 산수를 해 보라는 것이다. 옛말에 장사해서 밑진다는 것은 사기라고 하지만, 애플 컴퓨터는 정말 산술적으로는 본전 치기 혹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한다. 이 계산을 보고 웃기는 소리라고 하실 분들은 앞 링크에 연결된 WSJ 원문을 읽어 보시라.
애플 뮤직 스토어를 통해 판매하는 한 곡의 가격은 99센트이다. 물론 tax도 없다. 그런데 99센트에서 애플사가 음반 회사에 저작권 수수료로 내놓는 가격은? 곡당 65센트이다. 여기에 신용카드 결재 수수료가 건당 25센트 + 2~3%이다. 그러면, 기타 제반 운영비, 마케팅 비를 고려하면? 건질 게 없다는 이야기다. 미 음반협회 (RIAA)는 그동안 P2P 사용자를 상대로 소송전을 불사하면서, 애플 뮤직 스토어 같은 "합법적이고 도덕적이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합리적 모델"이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사실 그 시장에서 자신들의 잇속은 그대로 남겨두고, 신종 사업체와 소비자만 족치는 격이다. 그리고 이런 비싼 마진을 안겨주는 회사에만 음악 판매를 허용하고, "아이구 우리 착하고 바른 새나라의 역꾼"이라면서 치켜 세워왔다. 또 하나 있다. 비싼 마진과는 별도로 mp3가 무한대 복제되지 않도록 막는 복사 방지 장치를 하지 않으면 음악 판매를 허가하지 않겠다고 협박을 해서, 애플 같은 경우도 표준 mp3가 아니고, 이른바 "보호된 AAC"파일이라는 변형된 mp3파일을 판매하고 있다. 물론 mp3플레이어로 연주는 되지만, 복사와 굽기에서 몇가지 제약이 있다고 한다. 이런 장치를 마련하고 비싼 수수료를 인정할 때, 바로 디지털 음악 사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애플은 이렇게 비합리적인 소매점 (retailing store)을 왜 운영하는가? 누구나 생각하듯이, 바로 일차적으로 iPod이라는 하드웨어를 팔기 위해,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 시장에서 우위를 통해 애플 컴퓨터에 대한 전반적인 브랜드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일단 여기서 음반 시장 문제만 고려하기 때문에 생략하고....)
사실 음반 협회의 저작권 사수 노력은 이들이 조금만 소비자 입장에서, 그리고 이 시장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다른 대안적 음반 사업 모델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풀려갈 수 있다. 우선 가격이 너무 비싸다. 어제 월마트에서 아들이를 위해 LION KING special edition으로 나온 두 장 짜리 DVD를 14불 45센트 주고 샀다. 물론 11월 4일에는 역시 Finding Nemo DVD 소장용 에디션을 같은 가격에 구입할 것이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Suzanne Vega의 Retrospective: The Best of Suzanne Vega한 장 짜리 CD는 얼마인가? $14 이다. Finding Nemo 제작비와 Suzanne Vega 음반 만드는 데 든 제작비를 차치하고서라도, 공 DVD가격과 공 CD 가격만 비교해도 이건 말이 안되는 장사다. Finding Nemo를 세금합쳐 15불 주고 사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런데 Suzanne Vega의 음악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걸 14달러 주고 산다고 하면 정말 속 쓰리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하고 있는 저작권법의 모순을 또 들어 보자. 우리가 어떤 디지털로 된 소프트웨어나 게임이나, 음악 (mp3파일 등)을 산다고 할 때, 우리는 "저작권법에 의해 이것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받는다. 그러면 다르게 생각해 보자. 우리가 책방에서 책 한 권을 살 때, 우리가 책방 주인이나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남에게 기부하거나 양도하는 행위, 또는 되파는 행위는 법에 의해 저촉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는가? 당연히 아니다. 저작권법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는 미국에서도 내가 산 책 내가 되파는 행위는 합법이다. 내가 아마존에서 음악 앨범 하나를 사고 이걸 한 두달 뒤에 다시 아마존이나 Ebay에 되판다고 하자. 당연히 합법이다.
그런데 내가 MS윈도우를 하나 사고, 그걸 조금 있다가 Ebay에 중고 물품으로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애플 상회에서 99센트 주고 mp3파일 하나 사서 Ebay에 79센트주고 다시 판다면? 불법이다. 내가 산 EndNote라는 소프트웨어를 내가 깔고, 그 다음에 내 친구에게 선물하는 것과, 내가 어떤 책을 사서 읽고 그 책을 친구에게 선물하는 행위와 어떻게 다른가? "경우가 틀리다고? 그렇게 하면 디지털로 된 컨텐트 장사는 사람은 망한다고? 어떤 나라도 그렇게까지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올해 SAM BROWNBACK 이라는 보수적인 미 공화당 의원조차 "Consumers, Schools, and Libraries Digital Rights Management Awareness Act of 2003"을 발안해서, 앞으로는 디지털로 구입한 물건도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사용한 (used) 물건으로 다시 되팔수도 있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이나 단체에 기부도 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말하자면 내가 애플 스토에에서 산 mp3파일을 Ebay에 내놓고 되팔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미국 Digial Millennium Coypright Act에 있는 조항들로 일어날 수 있는 privacy문제의 남용 문제(이를 테면 포로노사업자들도 RIAA처럼 저작권을 주장해서 사람들의 IP를 추적하고 이를 이용해 신상 공개를 하고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현재 법원에 제소중인 사건...이건 실제 있는 사건이다)를 막는 쪽으로 법을 강화할 방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회의원 보좌관들...국민 혈세 가져다 밥 축내면서 지역 감정 조장할 궁리만 하지 말고......좀 이런 생각들 좀 해서 우리도 주요 일간지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현재 소비자 중심적 사고에서 "이러이러한" 디지털 관련 법안을 하나 발안했고, 이걸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중이니 여론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는 요지의 칼럼을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신문사들도 이런 의원들 있으면 좀 창구 좀 열어주고, 정책 중심의 국회를 만들 터를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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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9, 2003
iPod Clones
비즈니스윅 iPod 복제품 관련 기사윤도현의 한국 락 다시 부르기에 나온 노래들 참 좋다. 오늘은 길을 가면서 정말 수십 번 혈액형을 들었다. 작년 이맘 때는 "철망 앞에서"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는데, 1년이 지난 이번 가을에는 빅토르 최의 "혈액형"이 내 심장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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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3, 2003
Panther
지난 주에 Apple Computer "Developer Connetion"에서 날라온 봉투를 열어 보니, Panther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태에서, 시스템 변경에서 발생할 지도 모르는 만약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당분간 업그레이드를 보류하기로 했다. 맥 전문가 P군의 설명에 따르면 업그레이드에 2시간이 소요되고, 시스템 속도나 성능에서 개선된 점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당분간 모든 프로그램의 연동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업그레이드를 보류하라는 조언도 있었다.
블로거의 입장에서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은 kung-log에서 문제가 없는 가이다. 지난 번 panther에서 kung-log 연동의 문제를 김영호님께서 코멘트 남겨 주셨는데, 일단 그 분의 최근 사용기가 올라 온 것을 보니 문제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Posted by gatorlog at 04:31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November 04, 2003
Google은 MS사와 거래를 할 것인가?
요즘 검색 업계는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구글간에 진행되는 물밑거래를 놓고 말들이 많다. 일단 구글 측은 부인을 하고 있지만, 이미 두 업체가 파트너 관계 혹은 합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는 뉴욕타임스 특종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일단 2004년에 상장 예정인 구글은 현재 천문학적인 시장 가치를 가지고 있다. 월가의 분석가들은 대충 $15 billion에서 많게는 $25billion의 가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아무리 구글이 검색시장의 "God"이라고 불린다고 할지라고 MS사 측이 정도 액수를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는 구글 내의 개발자들과 경영진들이 anti-MS운영 체제...이를 테면, Unix나 Linux....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상품 검색과 광고가 검색 엔진과 결합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MS측은 이 검색 시장을 그냥 방치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검색 시장에서 4위에 랭크되어 있는 MSN의 한계를 인식한 MS측은 "Longhorn"이라는 코드명 아래 다음 출시되는 윈도우 운영 체계내에 강력한 검색 엔진을 자체 내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또 하나 주목 받는 것은 인터넷 최대 소매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마존의 상상을 초월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미 아마존은 시범적으로 190 출판사, 120,000권 책의 텍스트 검색을 서비스 함으로써 검색 분야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있다. 애초 이 검색 서비스가 책 판매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소비자들이 검색을 이용해 책의 내용을 전자 카피함으로써 책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예측....은, 이 텍스트 검색 서비스 개통 이후, 이들 책에 대한 판매가 9% 이상 증가함에 따라 일순간에 사라지게 되었다. 아마존은 이 성공을 바탕으로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전체 책에 대한 텍스트 검색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한다. 물론 아마존의 책 검색에는 다음과 같은 제한점이 있다.
아마존 검색의 제약점: Although its customers can search entire books with the new service, Amazon has restrictions that limit the ability to browse entire books online. Once a user clicks to a book page containing terms that they've search for -- "Gulf War," for instance -- Amazon doesn't let them browse more than two pages forward or back. Users may jump to other pages containing the terms, but the same restrictions on browsing apply. [WSJ에서 재인용]
한편 검색을 이용한 다른 상품들의 판매는, 현재 아마존의 A9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개발중이며, Ebay역시 이런 상품 검색 서비스 강화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Google역시 검색 시장 업계 선두의 자존심을 걸고 Froogle이라는 상품 검색 엔진 개발에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Posted by gatorlog at 03:17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Finding Nemo
드디어 나왔다. 6월 27일 극장에서 Finding Nemo를 본 이후로, 아들이는 매일 Nemo 예고편을 보면서 니모에 대한 애정을 쌓아왔다. 이런 아들의 니모 사랑을 해결해 주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던 내게 오늘 아침은 너무 중요한 날이었다. 새벽 일찍 눈 뜨자 마자, 월마트에 전화 걸어 Nemo비디오 출시 여부를 물었다. 그리고 yes, we have...라는 대답을 듣기 무섭게 아들이를 깨워 월마트에 데리고 갔다.
View image
그리고 한손에는 DVD($14.87)를 그리고 다른 손에는 비디오 테잎($15.84)을 쥐어 주었다. DVD는 출시하고 얼마 동안은 특별 할인가를 적용하기에 싸다.....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아침에 월마트 온 사람들 대부분이 Nemo를 사러 왔다는 점이다. "아 당신도 샀어요?" 또는 "Nemo"라고 외치면서 모두들 즐거워 한다...
여하간 집에 돌아 온 아들은, 니모 보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밥도 먹지 않고, 아빠가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면 발길로 아빠를 밀어 낸다. 이 모습을 본 엄마는 "저렇게 버릇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래 니모 실컷 봐라...
Posted by gatorlog at 03:34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3)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For brainstorming
Microsoft사의 OneNote 출시에 때맞춰 Jeremy Wagstaff라는 테크놀로지 칼럼니스트가 Great Mac Software라는 칼럼을 썼다. 글의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I've lamented before about the lack of good software, but I'll say it again: Innovation is dead. .....
There really is some good software out there, but sadly, it's not being written for the Windows PC. (But bear with me, Windows users, there is something for you.) Mac users have for the past couple of years had access to some excellent software that makes thinking, and organizing data, a lot easier.
오랫동안 나는 좋은 소프트웨어의 부재를 한탄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이를 반복해서 말한다: 혁신과 창의성이 죽어 있다고...
(그러나) 사실 이것은 윈도우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Mac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좋은 소프트웨어들을 가지고 있다. 지난 수년 간 Mac 사용자들은 자료나 기록들을 생각하고 정리하는 것을 훨씬 더 편하게 만들어 주는, 정말 뛰어난 소프트웨어들을 접할 수 있었다...
Notetaker라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review도 포함되어 있다...특히 Great Mac SoftWare라는 이번 칼럼은, 글을 쓰는 사람이나 기획을 하는 사람에게 필수적인 brainstorming 소프트웨어 리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Posted by gatorlog at 04:53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November 08, 2003
피그말리온 효과 1
우리나라에서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coach)이란 직책은 바람잘 날 없는 자리이다. 역대 축구 국가 대표 감독을 맡았던 사람들은 찬사보다는 모진 마음 고생을 하고 자리를 떠났던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던 히딩크는 예외다. 히딩크의 영웅 등극 신화를 지켜보면, 논란이 많은 이른바 "기대효과"의 타당성에 대해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U of California at Riverside의 저명한 심리학자 Robert Rosenthal은 "기대는 자기 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rsy)"이 된다는 이른바 기대효과 (expectation effect)를 제시해서 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로도 알려진 이 자기 수행적 신념(self-fulfilling belief)의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바라보거나 판단하는가에 따라, 그 대상자의 행위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새로 오신 선생님이 뛰어나다는 기대를 가질 경우, 그 기대를 받은 선생은 기대에 부응하는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또 새로 부임한 코치가 팀을 잘 이끌어 월드컵 4강에 들게 만들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경우, 이 코치는 이 기대에 부응하는 선전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 효과는 일반적으로 위에서 예시한 것보다는, 주로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기대효과에 종종 더 초점이 맞춰진다. 이를테면 학교 선생이 특정 학생에게 기대를 갖고 있을 경우, 그 기대를 받는 학생이 더 우수한 능력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교사의 기대효과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비과학적인 이 자기 수행적 예언의 이면에는 비교적 타당한 논리가 숨어 있다. 바로 그 기대효과에 따라 기대를 주는 사람들이 기대를 받는 사람에게 암묵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은 고전이 된 유명한 실험에서, Rosenthal 과 Jacobson(1968)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무작위로 선발한 일군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효과를 증명해 보인다. 학기 초에 어떤 선생님에게 한 학급 학생 중 특별히 4명의 학생이 어떤 능력 테스트에서 다른 학생들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고 전체 학생 중에 위에서 말했던 4명의 학생들의 IQ성적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더 낳았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 놀라운 결과는 전 미국 교육 심리학계의 교과서에 기록이 되고, 이 결과가 주는 함의가 계속해서 논의가 되어 왔다. 바로 기대를 갖는 대상에 대해 기대를 주는 사람이 보여주는 태도는 다른 대상에 주는 태도보다 "더 우호적이고, 더 이해의 폭을 넓게 해 주고, 어떤 행동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며, 차별화된 피드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대효과는 단지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한 실험에서 12명의 사람에게 생쥐 5마리를 할당해 주었다. 6명의 사람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쥐가 다른 쥐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주고, 다른 6명에게는 이 쥐들이 다른 쥐보다 멍청하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이들 쥐들은 똑같은 종에서 추출했고 오직 차이는 그들을 훈련시키는 학생들의 기대치에만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 12명의 학생들에게 5일간 그들의 생쥐를 미로에서 훈련시키는 일을 하게 했다. 결과는? 역시 좋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던 학생들에게서 훈련 받은 쥐들이 미로를 통과하는데서 더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Rosenthal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은밀하게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 (covert communication)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기대치를 높게 가진 학생들은 쥐들의 행동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좀 더 편안하게 대해 주었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열등한 쥐라고 들었던 학생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쥐들이 어떤 부족한 행동을 보이면, '이 멍청한 놈의 쥐'라는 식으로 쥐들을 자극하고 스트레스를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참고문헌:피그말리온 신화에 대해: 시프루스 섬에 살았던 Pygmalion 이라는 뛰어난 조각가는 여성 혐오자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일지라도 조금씩 부족함이 발견되는 것을 못마땅했던 그는 결혼하지 않기로 작심한다. 그리고 그의 천재성을 통해서 완벽한 조각 여인, Galatea가 탄생한다. 그는 일순간 그의 창조물과 사랑에 빠지지만, 조각품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조각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애절한 사랑에 감동한 여신 비너스는 이 여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결국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과 결혼할 수 있었다.
Rosenthal, R., & Jacobson, L. (1968). Pygmalion in the classroom: Teacher expectations and pupils' intellectual development.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
Rosenthal R. (2003). Covert communication in laboratories, classrooms, and the truly real world.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2, 151-154.
Posted by gatorlog at 02:24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November 10, 2003
피그말리온 효과 2: 자기 실현적 예언
1927년 Bertrand Russell은 과학 세계의 동향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joke를 던진 적이 있다.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동물들은 엄청난 기운을 과시하며, 주어진 일에 거침없이 덤벼들어, 결국 (실험자들이)요구하는 결과를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 낸다. 반면 독일인들에 의해 연구된 동물들은 차분히 앉아 생각을 함으로써 내적인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원하는 해법에 도달하게 된다." Russell이 한국인들의 행동 유형을 관찰했다면, 어떻게 "한국인 과학자들에 의해 관찰된 동물들은..."이라는 생각을 보였을 지 궁금하다. 어쨌건 러셀의 재치있는 유머 역시 지난 번에 이야기한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과 일맥상통하는데가 있다.
self-fulfulling prophesy의 기본은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에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타인에 의해 가진 적대적 생각이나 태도는 타인의 나에 대한 적대적 생각이나 태도를 낳는다는 것이다. 물론 집단간, 혹은 민족간 갈등이나 협력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미국 부시 정권이) 변명을 한다고 해도, 미국 내 부시를 비롯한 공화당 편견주의자들이 가지는 아랍권과 이슬람 문화를 무시하는 태도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통해, 부메랑이 되어 반미감정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과정을 관통하는 것은 역시 Rosenthal박사가 설명했듯이, 스테레오타입, 냉대, 차별, 무시의 감정이 암묵적인 커뮤니케이션(covert communication)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시 사람대 사람간(interpersonal) 상호 작용으로 관점을 좁혀 self-fulfilling prophecy를 이야기 해 보자. 이성간, 혹은 배우자 간 문제가 아마 적합한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 테면 갑돌이가 여자 친구를 기대하는 방식에 따라, 여자 친구 역시 기대하는 믿음에 근접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자신의 배우자를 부정한 사람으로 의심하면, 어쩌면 진짜로 자신의 배우자가 가정 파탄에 이를 행동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는 섬뜻한 가설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의 Mark Snyder (1977, 1984)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한 번 형성된 social world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다른 사람들을 그 믿음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77년 유명한 실험에서 Snyder와 그 동료들은 실험집단의 남학생들을 상대로 여자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난 후, 전화를 통해 그들이 사진에서 본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여성 혹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전화 통화를 하게 했다. 전화 통화 후 실험 집단의 남자학생들과 통화를 했던 여자 실험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코멘트 분석 결과, (남학생들에 의해) 매력적인 여성으로 생각되었던 여자들이 매력없는 여성들로 생각되었던 여성들에 비해 더 우호적이고 상냥하게 이야기했음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남학생들의 잘못된 믿음들이 self-fulfilling prophecy가 되어, (아름다운 여성이 더 원하는 여성이라는 남성들의 스테레오타입을 확인시키는 쪽으로) 그 여성들이 남성의 기대를 실현시켜주었을 (fulfill)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Snyder는 이를 behavioral confirmation이라고 했다.
아직 Computer Mediated Communication (CMC)에 이를 적용시킨 연구는 없다. 그렇지만 Web-based communications에서는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막연한, 혹은 어떤 몇가지 단서들에 근거한 "기대"를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belief confirmation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를테면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를 통해 만나는 이성, 혹은 friendster.com같은 곳에서 만나는 이성 혹은 사이버 친구들간에, 그리고 블로그 공간에서 만나는 블로거들간의 만남에서도 이런 belief confirmation 혹은 self-fulfilling prophecy의 가능성은 크다고 하겠다.
Snyder, M. (1984). When belief creates reality. In L. Berkowitz (Ed.),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vol. 18, pp. 248-306). New York Academic Press.
Snyder, M., Tanke, E. D., Berscheid, E. (1977). Social perception and interpersonal behavior: On the self-fulfilling nature of social stereotyp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5, 656-666.
Posted by gatorlog at 01:46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November 12, 2003
Book Smart : Chronopath's Library
Mac 사용자를 위한 도서 정리 소프트웨어: Chronopath's Library 1.1.6 을 테스트 중임....$10짜리 도서 정리 소프트웨어 (book-cataloging application)임
i-Tunes을 닮은 인터페이스에 책 대출 정보까지 기록할 수 있음.

[아직 테스트 해 보지 못한 기능들]
Library will go online and download information about the book.
Chronscan을 통해 책 목록을 쉽게 불러 저장할 수 있음.

Posted by gatorlog at 03:21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Digitalway's key chain storage
Source: Mossberg's solution:
Last month, a South Korean company, Digitalway, released the biggest shocker of all -- a keychain drive with a whopping 1.5 gigabytes of storage that is selling at Best Buy for just $199.99.
This Digitalway device, called the MPIOHS100, is a little different from other keychain drives: it has a tiny hard disk inside, instead of the usual memory chips -- that's why its housing is larger.
Embedded in the Digitalway device, the hard disk emits no noise or vibration. Even though it contains moving parts, it works and feels like a standard memory-chip keychain drive, which has none.
It even moved files between Macs and Windows machines without a hiccup.
I deliberately and repeatedly dropped it from a height of about four feet onto a brick walk, a concrete driveway, a tile floor and a concrete floor covered with thin, industrial carpet tiles. In every case, the Digitalway drive kept on working perfectly.
Posted by gatorlog at 05:27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6)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Uninstalling Evil Spyware
source: Mossberg's mailbox
Q: How can I find out if any spyware has installed itself on my hard drive? And, how can I prevent any more spyware from installing itself?
A: There are a couple of good utility programs you can run that will detect and delete spyware, the nefarious stealth software that secretly monitors your activities and reports them to others via the Internet. The best known antispyware program is called Ad-aware, and is free. You can download it at www.lavasoftusa.com. A $27 version called Ad-aware Plus adds the ability to block new spyware from entering your computer.
The other is called Spy Sweeper, from Webroot Software. It costs $30, and it detects and removes spyware already on your PC, and blocks new spyware from invading. You can buy this product, or download a free trial version, at www.webroot.com.
Posted by gatorlog at 10:33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3)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November 13, 2003
Characteristics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1 [Psychology of the Web]
일찌기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다른 인접 학문을 연결하는 사회과학의 교차로에 설 것임을 예언했던 Wilbur Schramm (1963)의 말 속에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우리 생활의 기본이라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communication is a -- perhaps the - fundamental social process. Without communication, human groups and societies would not exist. One can hardly make theory or design research in any field of human behavior without making some assumptions about human communication. (p.1)."
물론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 등 자존심이 강한 중심부 학문에서는 애써 대수롭지 않게 보려고 하겠지만, 미디어가 점점 진화해 가면서, 특히 이제 그 진화의 주류가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Schramm이 진단한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중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 가운데 더 특별한 경향은 인간 커뮤니케이션(human communication)연구의 부활이라는 점이다. 1950년대 이후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흐름은 이른바 mass communications에 있었다. 신문, 라디오,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이 인류 문화의 한가운데 주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로 자리잡으면서, 학문으로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당연히 매스 미디어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였다. 물론 1970년대 "수용자가 미디어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지만, 그래도 "미디어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패러다임은 오랫동안 주류 커뮤니케이션 연구 진영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인터넷이 몰고 온 미디어의 혁명은 이제 human communications도 아니고, mass communications도 아닌, 바로 computer-mediate communications(CMC)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낳고 있다. 이 CMC는 예전처럼 미디어의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향하고 제한적 피드백에 국한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현상과는 사뭇 다르다. CMC는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의 분류법대로 보자면 매스 커뮤니케이션 보다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더 근접해 있다. 여기서 인간 커뮤니케이션이란 가족이나 친구간에, 혹은 교사와 학생간에, 혹은 더 크게는 기업의 초청 강연에 온 연사와 수많은 청중간에 행해지는 커뮤니케이션을 말한다.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 (CMC)은 엄밀하게 광범위한 분야를 안고 있다. 이를 테면, email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도 CMC이고, 온라인을 통한 chatting 행위도 CMC이다. 블로깅(blogging) 역시 CMC의 특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 왜 이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혹은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CMC는 꼭 인터넷을 매개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화상회의도 컴퓨터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Schramm, W. (1963). Communication research in the United States. In W. Schramm (Ed.), The science of human communication (pp. 1-16). New York: Basic Books.
David Gray 의 Babylon이 마지막 곡으로 올라감...
Posted by gatorlog at 06:43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November 14, 2003
블로그식 퍼오기를 둘러싼 몇가지 쟁점..
Suman's shallow thoughts 에 올라온 네이버 "블로그로 이동" 서비스와 관련한 코멘트는 몇가지 생각할 점을 제공하는군요.
먼저, 블로깅을 통해 블로거는 자신의 자아를 다른 사람에게 내 보여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활을 엿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누구에게 뭘 보여주겠다는 목적보다는 순전히 자기 자신의 필요에 의해, 뭔가 저장해 놓고 싶은 욕심으로 다른 블로거의 글이나 뉴스 매체에 올라 있는 기사를 옮겨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언젠가 spyware를 제거하는 프로그램 기사를 Mossbergd의 테크 리뷰에서 봤는데, 어제 이 정보가 필요해서 찾으려고 하니 시간이 걸리더군요. 그래서 순전히 제 필요에 의해 기사의 몇 대목을 퍼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능하게 해 준게 바로 월스트리트저널의 비영리적 목적 기사 인용 허가였습니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대부분 기사에 대해서 비영리적 목적으로 기사를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권을 부여하고 그 심볼 마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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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언급했듯이 어차피 기존 저작권법의 개념으로 진화하는 인터넷 시대의 현상을 모두 설명하고 규제할 수 없다면, 출판사나 신문사, 혹은 개별 블로거등 저작권을 소유한 주체들이 스스로 현실성있는 저작권물의 이용에 관한 허가를 해주는 방안이 가장 권장할 만한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reative commons같은 운동이나 WSJ의 non-commercial use 심볼 등이 그런 생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비상업적인 인용은 사실 온라인 신문 입장으로서는 그렇게 크게 손해 볼 장사는 아닌 듯 합니다. 기사의 원출처를 링크하고 뚜렷이 명시한다면, 온라인 신문의 조회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지요. 더더구나 개별 블로그의 아마추어 글쓰기 공간에 옮겨진 어떤 기사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점에서, 온라인 신문 협회가 보이는 과민 반응은 빈대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울 위험을 낳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기사 전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블로그를 읽는 사람에게는 글읽기의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수만님이 지적했듯이 블로그는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개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견"과 "관점"을 보여주는 데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Spica님의 a point of view라는 블로그 타이틀이 마음에 든답니다 ^^). 또 이런 맥락에서 가급적 글 전체를 그대로 전제하는 행위를 지양하고, 글의 출처만 링크를 걸고 자신의 의견을 짧막하게 개진하는 게 훨씬 블로그식 글쓰기를 의미있게 만들지 않을까 싶네요.
글을 퍼오는데 있어 우려되는 점이 두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정보원 기억의 실종이라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기사의 유통이 많아 질 수 있다는 위험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온라인 시대의 신문들이 종이 신문보다 더 자극적이고 쓸데없는 기사를 더 많이 내 보낸다는 느낌이 있는데, 블로거에 "그대로 퍼가기"를 기본 옵션으로 해 둘 경우, 좋은 기사보다는 더 쓸모 없는 기사의 확산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밤이 깊은 관계로 정보원 기억의 실종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그나저나 위 기사에 실린 글을 보면서 든 생각은, 포탈 블로그의 폐해가 드디어 블로그에 대한 왜곡된 정의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hochan.net의 가열찬 투쟁 슬로건 (^^)인 "미니 홈피는 블로그가 아닙니다"를 무색하게 만드는 다음의 정의는 도데체 누가 내린 것입니까?
‘블로그’란 게시판 형식의 사이트에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올릴 수 있는 일종의 미니 홈페이지로서, 최근 각 사이트마다 앞다퉈 관련 서비스를 개설·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디어 오늘의 "잘못된 블로그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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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6, 2003
Characteristics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2 [Psychology of the Web]
인터넷이 점점 미디어 진화의 중심축에 자리잡고 사람들의 삶에 깊숙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여러 분야의 사회과학자들은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 (CMC)의 특성들과, CMC가 개인, 그룹, 그리고 조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연구의 중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CMC가 암시하는 메타포(metaphor)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등장 이전에 CMC하면 주로 인간과 컴퓨터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가였다. 바로 Stanford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Clifford Nass가 주도하는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을 지칭하던 CMC는, 이제 "웹 상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과 인간간에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주제로 이동을 마친 상태다.
Gatorlog에서 연재하고 있는 글(Psychology of the Web)은 바로 변화된 메타포를 반영해 "웹 상에서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상호작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과거 이 분야에서 주류 연구들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컴퓨터 시대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문제의 중심 화두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기에,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연구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
Stanford 대학의 Nass와 그의 제자인 Steuer (1993)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자기와 타인에 대해 적용하는 사회적 규범을 컴퓨터와의 관계에도 적용하는가를 연구했다. 여기서 자기와 타아에 대해 적용하는 사회적 규범이란 이런 것이다. "타인에게서 받은 평가는 자기가 내린 평가보다 더 정확하다는 생각;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칭찬은 자신이 자기에게 한 칭찬보다 우호적 평가를 받는다; 자기 자신에게 내린 비판이 타인에게 내린 비판보다 더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Nass와 Steuder(1993)는 인간관계의 이런 법칙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데 반영되는가를 실험 연구 했다. 이들의 전제는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인간은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규범이나 인상 관리에서 적용되던 원칙들을 적용하지 않을 것인 반면, 컴퓨터 중독자의 경우 컴퓨터가 대체한 사회적 역할들 (이를테면, 컴퓨터 중독 치료사 역할을 하는 ELIZA라는 프로그램, 전화기의 자동 응답 서비스, 컴퓨터 tutor system, 컴퓨터 비서, 컴퓨터 체스 게임에서 사용자와 게임하는 컴퓨터 적수, 제한된 음성 인식 능력을 갖춘 로봇 Julie등등...)을 대하는 데 있어서, 인간들의 상호작용에 가까운 사회 법칙을 적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실험은 컴퓨터가 자아 개념이 없고, 자아적 동기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한 집단은 한가지 남성 목소리만을 들었고, 다른 집단은 두개의 남성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한 집단은 컴퓨터의 목소리에서 칭찬하는 소리(자찬, 다른 사람 칭찬)를, 다른 집단은 컴퓨터의 음성속에서 비판(자기비판, 혹은 다른 사람 비판)하는 내용을 듣게 한 후, 참석자들에게 컴퓨터에서 들었던 칭찬과 비판의 정확성, 공정성, 그리고 컴퓨터에 대한 호감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한 컴퓨터에서 한가지 목소리를 들었던 집단에 비해, 한 컴퓨터에서 두 개의 다른 목소리를 들었던 집단에 속했던 참가자들은 다른 목소리를 또 다른 정보 개체처럼 간주해, 마치 다른 의도와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사회적 법칙들을 적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비판: 이들 실험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실제로 컴퓨터에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모두 정상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는 점이다).
Reeves와 Nass (1996)는 Media Equation이라는 책에서 이 실험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실험실의 참석자들이 이 컴퓨터들을 하드웨어간의 의미없는 신호의 작용으로 간주하기는 커녕, 마치 사회적 상호작용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읽어 보면 상당히 난해하고 현실적 적용력이 떨어질 것 같은 이런 생각들에 굴지의 미국 기업들이 프로젝트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edia Equation을 보면 이런 비즈니스적인 적용이 예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어떤 회사의 소프트웨어는 두명의 재정 전문가의 이미지를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제품에서 그 두 명의 강사들은 서로 자신이 전문가라고 말하고, 나름대로 각자 자신들의 빵빵한 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이들 전문가들이 서로 상대방을 전문가라고 치켜 세웠다면 나았을 것이고, 소비자로부터 더 호감을 얻었을 것이다 (p.72)."
Nass, C., & Steuer, J. (1993). Voices, boxes, and sources of messages: Computers and social actors.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19(4), 504-527.
Reeves, B., & Nass, C. I. (1996). The media equation: How people treat computers, television, and new media like real people and place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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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xio Toast 6에서 DVD 굽기 [memopad]

Roxio Toast 6에서 DVD굽기가 약간 변경되었다. 기존 version 5대에서는 others에서 DVD 옵션이 있었는데, 6에서는 others가 없어졌다. 처음에 "DVD복사 방지를 위해 없앴을까 하는 생각"에 당혹했는데, 알고 보니 DATA 굽기 옵션에 DVD Video_TS 폴더 굽는 옵션이 따로 있었다.
If you have DVD data that is already authored in a Video_TS folder (e.g., output from DVD Studio Pro), please follow the steps below to burn it to disc:
1. Launch Toast and select the Data tab.
2. In the drawer, select "Advanced" at the top.
3. Select the "DVD-ROM (UDF)" format.
4. Click on the "New Disc" button at the bottom of the layout.
Use the "Add" button to select your Video_TS folder, or drag and drop the folder into your layout.
Now you can add additional data content or burn the di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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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8, 2003
미디어는 기억이다 1
Marshall McLuhan이 미디어의 진화는 인간 기능의 기계적 연장 (The mechanical extensions of humans)라고 말했을 때, 그는 결정적으로 인간 "두뇌"(brain)의 연장에 대해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재 미디어가 진화하는 방향은 우리의 두뇌, 엄밀하게는 우리 "기억(memory)"의 연장이라는 궁국적 목적을 향해 달려 가고 있는 듯 하다. 이런 관점에서 미디어는 메시지(medium is message)라고 주장했던 맥루한의 대명제는 이제 미디어는 기억(medium is memory)라는 명제로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Brody, 1999).
인지 심리학계에서 기억(Memory) 연구의 거장으로 통하는 U of Toronto의 Endel Tulving (1983) 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메모리는 크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체계에 근거한 시맨틱 메모리(semantic memory)와 우리의 경험 체계에서 오는 에피소딕 메모리(episodic memory)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런데 컴퓨터가 열어 놓은 정보화 시대의 초기에, 사람들은 주로 "지식 체계"의 저장만을 생각했었다. 다시 말해 두가지 메모리 체계중에서 semantic memory의 연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저장할 수 없었던 우리 두뇌의 다른 기억 체계, 다시 말해 시공간적 정보가 함께 결합된 이벤트 메모리인 episodic memory를 컴퓨터가 대신 저장해 줄 것이라고 여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겠지만, 이게 어렵다고 본 이유는 바로 인공지능이라 할 지라도 어떤 이벤트에 얽힌 인간의 희노애락, 즉 감정(emotion)을 모두 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게 주 요지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에 기반한 경제가 "정보 생산의 혁명"으로 달려가고 있고, 그래서 "상품의 제조"(manafacturing goods)라는 산업 혁명 이후 경제의 중심 화두가 "정보 생산"(manafacturing information)의 패러다임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요즘, 우리는 이제 지식과 관련된 기억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벤트에 얽힌 기억까지도 컴퓨터에 의해 저장되고 심지어 불특정 다수에 의해 공유된다는 어찌보면 무서운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난 번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일어났던 한 이벤트를 상기해 보자. 한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의 야구팬은 시카고 컵스의 수비수가 잡을 수 있었던 파울 볼을 먼저 손을 내어 잡아, 결국 이날 경기 패전의 발단을 제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성난 시카고 컵스 팬들은 텔레비전 화면에 잡힌 이 사람의 모든 단서를 바탕으로, 이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의 가공한 정보 저장과 빠른 정보 흐름으로 그 파울볼을 잡은 사람은 다음 날 신문 가판대의 1판이 나오기도 전에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나락으로 떨어져야했다. 바로 그 사람이 입고 있던 옷에서 어떤 초등학교 야구단의 이름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단서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 내고, 여기에 근거해 이 사람의 신원을 금새 확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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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한국 대선 때 부산 자갈치 시장 아줌마의 노무현 후보 찬조 연설에 대응해서 한나라당이 급조한 아이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던 평범한 주부 찬조 연설자는, 인터넷에 공유된 기억에 의해 순식간에 한나라당 보좌관임이 폭로되어 망신살을 산 적이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웹로그의 등장은 희노애락의 감정까지도 시공간적 묘사와 함께 영구히 남겨주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에피소딕 메모리"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이동 전화와 무선 인터넷이라는 모마일(mobile) 테크놀로지의 진화에 힘입어, 모블로깅이 열어 보여주고 있는 가능성들 (Rheingold, 2002; Katz, & Rice, 2002)은 미디어는 기억이라는 명제를 다시 한 번 입증시켜 주고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억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우리가 경험한 일이 서사체(narrative form)로 재구성되어 뇌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블로거들은 시공간의 흐름속에 남아 있는 이벤트에 얽힌 우리의 감정들을 온라인 상의 공유된 공간에 옮겨 놓음으로써, 컴퓨터라는 매체를 지식적 기억의 보관소를 넘어서, 인간 에피소딕 메모리의 연장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 시대의 기억은 한나라당원의 평범한 주부를 가장한 텔레비전 찬조 연설자 사건과 클린턴 스캔들에서 볼 수 있듯이, 거짓 증언과 거짓 기억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이다. 클린턴은 나는 그 여인과 결코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계속 부인했지만, 인터넷에 올려진 스타(Kenneth Starr) 보고서에 담긴 모니카 르윈스키의 적나라한 기억들은, 웹 이용자들의 기억속에 그대로 남겨 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인터넷이 가져온 인간 기억의 연장은 한편으로는 쓸모 없는 "기억"을 공유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컴퓨터 스크린에서 얻은 정보는 책을 보면서 얻어진 정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누구도 이 두 정보 획득의 차이를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인터넷 시대에 쌓여 있는 기억의 편린들은 이미 우리를 "정보 인플레이션"(information inflation)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정보 인플레이션 시대에 개별적 정보의 유용함은, 다른 무수한 정보의 양에 묻혀 가치를 잃게 된다. 기억하지 않아도 될 기억들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어떤 중요한 정보도 쉽게 마우스 클릭에 의해 trash can(휴지통)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로 닐 포스트만이 컴퓨터 시대가 열어놓은 정보 홍수를 비판했듯이, "우리는 정보를 일종의 쓰레기 형태로 가공하고 있다" (We have transformed information into a form of garbage). 한가지 문제는 좋은 정보들이 쉽게 쓰레기통으로 가는 반면, 정말 나쁜 정보들이 좋은 정보를 이기고 유통되는 이른바 데이터 가공의 "Gresham법칙"(Gresham's Law)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Baxter, 1999, p.146).
Baxter, C. (1999). Shame and forgetting in the information age. In C. Baxter (Ed.), The business of memory (pp. 141-157). Saint Paul, MN: Graywolf Press.
Brody, F. (1999). The medium is the memory. In P. Lunenfeld (Ed.), The digital dialectic (pp. 134-149). Cambridge, MA: The MIT Press.
McLuham, M. (196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New York: McGraw Hill.
Tulving, E. (1983). Elements of episodic memo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Rheingold, H. (2002). Smart mobs: The next social revolution. Cambridge, MA: Perseus Publishing.
Katz, J. E., & Rice, R. E. (2002). Social consequences of the Internet use: Access, involvement, and expression. Cambridge, MA: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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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 2003
미디어는 기억이다 2
미디어는 기억이다 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데이터화된 지식을 기억하는 것과 인간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은 명백히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컴퓨터가 연결해 주는 사이버 공간에서, 혹은 더 좁혀서 웹로그나 포럼, 게시판을 통해 무엇을 기억하는가? 데이터화된 지식인가? 아니면 다른 개인들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무엇을 했던 경험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인터넷은 경험만을 기억하는 공간이고, 우리의 지식은 오로지 책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왜냐면 어떤 경우에는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공유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지식을 읽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예는 "힐러리 회고록"처럼 회고록을 읽는 것이다. 회고록은 인간의 메모리가 불완전하다는 전제를 안고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불완전한 인간 기억의 잔영을 보여 주는 곳이다. 후자의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지식 검색을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분명히 블로그라는 공간에서, 혹은 인터넷 시대의 제반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통해, 우리는 기존에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우리에게 전해 준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의 색다른 경험들"을 기억하게 된다. 한가지 아이러닉한 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우리의 무의식적인 지각작용 사이로 잠입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 ...그것이 포탈이 링크하는 기사가 되었건, 아니면 다른 블로거가 쓴 글이건....은 우리의 인지적 처리 능력을 줄어 들게 하고, 우리가 "경험"을 창출할 시간을 대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의 중독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이벤트를 즐길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텔레비전이 주류 미디어이었던 시대에 -- 물론 지금도 우리는 많은 시간을 텔레비전을 통해 옥탑방 고양이를 보고, 대장금(이것 대단한 작품입니다)을 보고, 연예가 중계를 보는데 허비하고 있지만 ---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와 이야기하거나 뭔가 추억거리를 만드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결국은 텔레비전이 전하고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된 현실(mediated reality)"만을 현실로 기억하게 되는 것과 일맥 상통하다.
바로 오늘 당신이 World Wide Web에 접속한 것은 고현정 이혼에 얽힌 이야기를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떻게 어떻게 가다 보니 하이퍼링크라는 마수의 손아귀에 걸려 쓸데 없는 고현정 이야기만 머리속에 가득 담고 허탈하게 시간을 소모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고현정 잇단 구설수에 고부갈등"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삼성에서 본격적으로 고현정 죽이기에 들어갔구나"라는 음모이론을 생각하게 되고,이런 생각은 엊그저께 "고현정이 새벽 한강변에서 외제차를 도난당했다"는 사건도 뭔가 음모적인 냄새가 난다는 식의 엉뚱하지만 그럴듯한 기억의 연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앞의 주제로 돌아가서, 블로그에서 사람들이 기억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지식도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경험도 될 수 있다.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좁혀서 생각해 본다면, 바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집합적 메모리 (collective memory)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 집합적 메모리를 공유하게 해 주는 기능들이 바로 링크와 코멘트, 그리고 토론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론 (a theory)일뿐이다. 어떤 사람이 블로그를 자아 표출의 공간으로 본다면 그것도 하나의 이론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블로그를 관계 형성의 공간으로 본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이론이 될 수 있듯이, 블로그라는 것을 한 사회내의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생산하는 조그마한 공간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그마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매스 미디어가 전하는 공적 담론의 장보다는 규모가 작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는 과거 정보와 이슈를 만들어 냈던 소수의 특권적 정보 공급자의 힘은 줄어들고, 대신 기존에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목소리가 해방되어 분출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혁명적이다. 예를 들어 럼스펠드가 노무현 대통령과 만났을 때 그가 인사말로 했던 "thank you, I'm young"을 한국 기자들이 "thank you, 안녕"이라고 듣고 이게 의도된 불만의 표시인가로 설왕설래 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블로그라는게 집단적 기억의 창출 공간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미디어 논제(agenda)의 재해석 공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
이런 맥락에서 MIT대학의 Henry Jenkins가 묘사한 blogging의 힘을 다시 읽어보자.
Imagine a world where there are two kinds of media power: one comes through media concentration, where any message gains authority simply by being broadcast on network television; the other comes through grass-roots intermediaries, where a message gains visibility only if it is deemed relevant to a loose network of diverse publics. Broadcasting will place issues on the national agenda and define core values; bloggers will reframe those issues for different publics and ensure that everyone has a chance to be heard. (Rheingold, 2002, p.121에서 재인용).
같은 맥락에서 Sheila Lennon(2003)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If the news media's power is setting the nation's agenda, bloggers englarge that agenda by finding and blogging ideas and events until traditional media covers them in more depth. Good stories have that kind of energy; they behave on the Web as though they are alive, ready and eager to spread. If enough bloggers find something important and blog it, expressing opinions and linking to others' opinions, then the idea rapidly multiplies. Very quickly, the story has legs and often will enter into the mainstream media and bublle out to readers, listners and viewers. Perhaps some kind of action will result because of this news. But one thing is certain: More blogging about it will occur."; Sheila Lennon, (2003), Neiman Reports, p.77.
Collective memory is a rubric used to describe how social group members know the past. It is distinguished from both historical and autobiographic memory. Whereas historical memory is the past stored and interpreted by social institutions and autobiographic memory is the memory of events people have personally experienced, collective memory is a remembering of the past informed by shared experiences and public narratives. That is, collective memory is socially constructed by group members and is their present interpretation of events, persons, and objects from the past. There is not a single collective memory; there can be as many collective memories as groups in society. It's a sociological framework rather than psychological one. (Motley et al., 2003).
Shapiro, M., & Lang, A. (1991). Making television reality: Unconscious processes in the 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Communication Research, 18, 685-703.
Shapiro, M. A., & McDonald, D. G. (1994). I'm not a real doctor, but I play one in virtual reality: Implications of virtual reality for judgments about reality. In F. Biocca & M. R. Levy (Eds.), Communication in the age of virtual reality (pp. 323-345). Hillsdale, NJ: Lawrence Erlbaum Associates.
Jenkins, H. (2002, March). Digital Renaissance. Technology Review. also available at [http://www.technologyreview.com/articles/jenkins0302.asp]
Rheingold, H. (2002). Smart mobs: The next social revolution. Cambridge, MA: Perseus Publishing.
Motley, C. M., Henderson, G. R., & Baker, S. M. (2003). Exploring collective memories associated with African-American advertising memorabilia. Journal of Advertising, 32, 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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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1, 2003
Easy Grade Pro & Contribute 2.0 [memopad]
Easy Grade Pro 3.6Mac World Evaluation:
Orbis Software: www.orbissoft.com Pros: Multiple classes in one file; easy to trade information between classes;
extensive reporting; excellent manual; seating chart.
Contribute 2.0
Mac World rate:
Quick setup; very easy to use; support .Mac;
allows SFTP transfer; integrates seamleesly with Dreamweaver templ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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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4, 2003
Gesturing as communication
사실 미국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모습을 가만 지켜 보면, 언어에 수반되는 제스춰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말하면서 손동작이 정말 현란하다. 미국 학부 대학생들 교양 에는 프리젠테이션의 테크틱들을 가르치는 과목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speech에서 테트닉들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손동작을 효과적으로 만드는가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그렇지만 말할 때 나오는 손동작은 후천적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선천적이라는게 지배적 학설이다.
The expression of emotions in animals and man에서 Darwin (1872/1955재간행본)은 제스춰(gesture)를 영장류에서 인류로 진화하면서, 두뇌 발전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창문과 같다고 했다. (Streech, 1993에서 재인용). 그래서 두 손의 움직임이 마비된 사람들에게서 종종 말하는 기능이 상실된다는 사실은 생물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Begley, 2003). 이런 맥락에서 University of Chicago의 David McNeill(1985) 같은 심리학자는 제스춰는 (비언어적)"nonverbal" 영역으로 분류해서는 안되고, 언어(language)와 같은 심리적 구조의 일부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말하기와 손동작은 한 언어 체계의 두가지 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동 심리학계 대부였던 Jean Piaget의 문하생이었던 현재 University of Chicago의 심리학과 교수인 Susan Goldin-Meadow 역시 이런 관점을 발전시켜, 새로 출간된 "Hearing Gesture: How our hands help us think"라는 책에서 "제스춰는 우리의 사고에 아주 활발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Begley, 2003). 그래서 대중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발표자가 뭔가 복잡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대목에 이르면, 혹은 질문자의 답변을 설명하느라고 안간힘을 쓸 때 보면, 손이 빈번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말할 때 인지적 노력(cognitive efforts)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가 더 많이 손동작을 쓴다 ("the greater the cognitve effort required for speech, the more we gesture")라는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손동작이 우리 언어체계에서 우리의 사고 작용(thought processes)을 보여주는 또다른 언어 체계라는 이론은 현실적 적용면에서 상당히 유익하다. 이를 테면 두가지 언어를 쓰는 사람 (bilinguals)이 자신이 덜 자신있는 언어를 사용할 때, 더 손동작이 빈번한 것도 설명할 수 있다. 또 아까 설명했듯이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발표자가 어려운 질문이나 곤란한 질문에 답할 때를 관찰해 보라...어김없이 손동작이 강화됨을 발견할 것이다. 또 우리는 실제로 보고 있는 장면을 설명할 때보다, 연상 작용 (imagery process)에 의해 어떤 장면을 묘사할 때 어김없이 손이 더 올라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현상에는 손동작이 우리의 인지적 부하("cognitive load")를 줄여 줄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의 제스춰를 잘 관찰해 보시라....그 나라에 간 경험이 없다면 영화를 통해 기억하고 있는, 각국 사람들의 제스춰를 연상해 보시라...이태리 사람들의 손동작은 왜 그리 큰지? 그리고 왜 우리는 손동작을 많이 쓰지 않는지? 여기에 이르면 아무래도 문화의 특수성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참고문헌: Begley, S. (2003, October 31). Gesturing as you talk can help you take a load off your mind. The Wall Street Journal, p. C1.
McNeill, D. (1985). So you think gestures are nonverbal? Psychological Review, 92, 350-371.
Streeck, J. (1993). Gesture as communication I: Its coordination with gaze and speech. Communication Monographs, 60, 275-299.
오늘은 한국 뉴에이지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루마의 Love me를 마지막곡으로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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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5, 2003
과학보도, 과학 저널리즘
내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구독하는 몇 가지 이유는 단 몇 명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기 위해서다. 사실 그 칼럼니스트 글외에는 거의 정독하지 않고 대충 보고 버린다. 아깝긴 하다. 그래도 그 쟁쟁한 필진에는 내가 자주 언급하는 Walter Mossberg(gatorlog에서 인용한 글들)나 월요일날 Portal면에 고정 칼럼을 쓰는 Lee Golmes, 그리고 금요일날 Science에 글을 쓰는 Sharon Begley(gatorlog에서 인용한 글)의 글을 읽기 위해서다.
그 중에서도 과학면을 맡고 있는 Sharon Begley는 정말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늘 심리학계의 핫이슈와 최근 연구동향을 잘 포착해서 시의적절하게 에세이를 낸다. 한 편의 글을 위해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할 때는 늘 그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고 가장 관련성이 큰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글의 짜임새도 있고, 글의 내용도 알차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오도할 위험성을 크게 줄임으로써 과학 보도의 신뢰성을 높여준다.
오늘 사이언스 동아의 이충환 기자의 글은 본래 글을 쓰게 된 동기(최면하의 기억이 신빙성이 있는가?라는 주제)와는 달리 몇가지 상당히 다른 영역에 놓여 있는 메모리에 관한 이론들을 소개함으로써 글이 산만하게 흐른 감이 없지 않다. 과학 보도의 문제를 짚어 보기 위해, 이충환 기자가 쓴 글이 어떤 영역들을 다루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먼저 시작은 법정 심리학에서나 다룰 억압된 메모리(repressed memory)에서 출발한다 (gatorlog관련 글들). 그리고 그 다음 가톨릭대의대 신경정신과 채정호 교수의 인용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전혀 다른 곳으로 글이 흐르면서, "최면하의 증언을 믿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의 초점을 벗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기억 상실증 환자에게서 살아 있는 implicit memory 이론 (압정의 아픔을 잠재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기억상실증환자 이야기), 고전적인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 이야기(short-term memory vs. long-term memory), 그리고 Endel Tulving의 encoding specificity principle (회상시에 입력 당시의 기억과 비슷한 단서를 제공할 경우 기억이 촉진된다는 이론), 그리고 골프 등 운동에 필요한 procedural memory체계가 있다는 이론 등 서로 다른 이론 몇 가지가 글의 서문과는 다르게 전개됨으로써, 글이 산만하게 된 느낌이 있다.
과학 저널리즘에 서 있는 기자들은 해당 과학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슨 학위를 딸 정도의 전문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 해당 분야의 개론서를 완벽히 이해할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기자를 위해서가 아니고, 혹시 독자에게 과학의 이름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오늘도 그 기사만 보고 사람들은 "아 최면이 기억을 끄집어 내는데 유용한 것이구나"하고 오해를 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뛰어난 과학 저널리즘은 그래서 해당 분야의 이야기를 주제에 맞게 전개하고, 또 가장 알맞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는데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심리학 박사라고 모든 내용을 아는게 아니잖은가? 교육 심리를 전공한 사람이, 또는 사회 심리를 전공한 사람이, 또는 기억 상실을 전공한 뉴로사이언티스트(neoroscientist)가 법정 심리에 대한 코멘트를 해 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나 저나 오늘부터 Memory라는 카테고리를 하나 신설했다. 이미 몇개의 카테고리는 사장시켜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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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라운드의 골프
얼마 전에 어떤 한의사가 골프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써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기사 요약을 보니까, 정통 심리학에 기본한 책은 아니다. 무슨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무슨 내장의 기능이 어떻고 저짜고 해서 뒷땅을 친다느니 하는 그야말로 골프장에 회자되는 우스개 소리를 모아다가 나름대로 신체 기능에 적용시켜 본 것일 뿐이다.
동아 사이언스의 이충환 기자가 쓴 글을 보니, 역시 서울 의대 강은주 교수(심리학 박사)가 골프에 관련된 운동이나 기술 관련 기억(procedural memory)이 기억 상실증 환자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을 인용한 게 보였다. 물론 그 심리학 박사가 언급한 사례는 현존하는 기억 연구의 굵진한 이름 중 한 명인 하버드 대학교 인지심리학과의 Daniel Schacter박사의 필드 실험 (field experiment)결과에 근거한다. 기억 연구의 주류인 토론토 학파에 속하는 Daniel Schacter박사는 지난 번에 언급한 기억 연구의 대부 University of Toronto의 Endel Tulving의 수제자 중 한 명이다.
1980년대 초 쉑터 (Schacter) 박사는 우리의 기억은 단일한 체계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발전시키는 와중에 있었다. 지난 번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80년대 인지 심리학계는 Endel Tulving에 의해서 제기된 뛰어난 이론인 두개의 메모리 체계, 즉 "시맨틱 메모리(semantic memory)"와 "에피소딕 메모리(episodic memory,)"외에도 우리가 기술을 배우고 어떤 반복된 과정에 숙달되게 하는 이른바 "procedural memory"를 포함한 세개의 기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때였다. 시멘틱 메모리는 이를 테면,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이다"처럼 우리가 언제 어디서 기억을 형성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두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지식 메모리다. 에피소딕 메모리는 "1997년에 나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에펠탑 앞에서 그녀와 사진을 찍었다"라는 "시간과 장소"개념이 함께 결합된 이벤트 메모리다. procedural memory는 우리 두뇌에서 운전하는 기술을 저장하는 메모리 체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81년 Schacter박사는 U of Toronto의 기억 장애 실험실로 찾아 온 Frederick이라는 환자를 만난 때를 잊지 못하고 있다. Frederick은 심한 뇌 손상으로 치매 (Alzheimer's disease)초기 단계에 있었다. 쉑터 박사가 아주 쉬운 단어나 그림을 보여줘도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하고, 어제 무엇을 했냐고 물어도 멍하니 다른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프레데릭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쉑터 박사는 이 사람이 30년간 골프를 쳐 왔던 열렬한 골프광이었음을 발견했다. 역시 열렬한 골프광이기도 한 Schacter박사는 자신의 취미를 기억 연구에서 널리 인용되는 중요한 필드 실험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관심은 치매 환자의 초기 단계에서 보이는 기억의 상실은 어떤 메모리 체계에 해당하는가였다. 이를테면 semantic memory가 상실되었다면, "par," "birdie," "wedge"같은 골프 용어를 기억할 수 없을 테고, 에피소딕 메모리가 상실되었다면 어디서 티샷을 했는지, 혹은 이번 홀에서 몇 타를 쳤는지를 기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procedural memory가 상실되었다면, 아예 골프를 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프레데릭과 함께 쉑터 박사는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두 라운드의 골프를 쳤다. 한 라운드는 그에게 친숙한 골프장에서, 다른 한 라운드는 그에게 아주 생소한 골프장에서...결과는?
놀랍게도 치매형 기억 상실 초기 환자였던 프레데릭은 두 라운드의 골프를 모두 완주했다. 그리고 골프에 사용되는 전문 용어들(jargon)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birdies, doglegs, 그리고 finesse shots를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레데릭은 골프에 필요한 규정과 에티켓의 아주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홀에서 멀리 있는 사람부터 볼을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상황에 맞게 클럽을 바꿔서 공을 치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린에서 경사가 있을 때 퍼팅을 잘 함으로써 그린의 경사를 읽는 기술도 살아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물론 쉑터 박사는 이 모든 것을 녹음기에 녹음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프레데릭의 볼이 쉑터 박사의 볼과 홀 사이에 놓여 있는 상황이 왔다. 프레데릭은 일반적인 골프 에티켓을 알고 있었기에, 동전 하나로 자신의 볼을 마크했다. 그리고 쉑터 박사가 퍼팅을 마쳤는데, 자신의 퍼팅(putting)을 마무리 하지 않고, 클럽을 챙겨서 유유히 그린을 벗어나가는게 아닌가? 그는 방금전에 볼을 마크했다는 것과 자신의 퍼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쉑터 박사는 또 다른 실험을 했다. 18홀 중 9홀은 쉑터박사가 먼저 티샷을 하고, 프레데릭이 나중에 함으로써 그가 바로 공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다른 9홀에서는 그에게 먼저 티샷(tee shot)을 시키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끌다가 쉑터 박사가 두번째 티샷을 했다. 그래서 그가 티샷하고 공을 찾는 사이까지는 약간의 시간차를 둔 것이다. 놀랍게도 첫번째 조건에서 그는 쉽게 공을 찾은 반면, 두번째 조건...즉, 시간의 경과가 있은 다음에 골프공을 찾게 했을 때는 한 번도 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업 기억 (혹은 단기 기억: working memory or short-term memory)이 버텨줄 수 있는 시간의 범위내에서 그는 공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작업 기억이 "시간의 경과"나 "다른 방해 요소 (쉑터 박사가 자신의 티샷 전에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작업기억이 지니는 기억을 저하시킴)"로 사라질 때는 앞에서 자기가 친 공이 어디로 갔는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에피소딕 메모리의 실종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매번 그린에서 다음 티샷 장소로 이동하면서 쉑터 박사는 프레데릭에게 지난 홀에 쳤던 tee shot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프레데릭은 한 번도 자신이 앞에서 쳤던 티샷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함을 발견했다. 즉 에피소딕 메모리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다. 골프 경기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음료를 마시며 경기에 대해 구체적 묘사를 해 보라고 요청했지만, 그가 한번도 생생한 묘사를 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쉑터 박사는 우리 메모리는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치매 환자와의 골프 실험을 통해, 그는 치매 초기 환자가 에피소딕 메모리는 크게 훼손되는 반면, semantic memory나 procedural memory는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메모리의 다른 기억 체계를 입증해 보인 것이다. 휼륭한 케이스 연구(cast study)이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다.....놀라운 것은 다음 대목이다. 첫번째 골프 경기를 하고 일주일 후, 쉑터 박사는 그와의 두번째 경기를 하기 위해 그를 태우러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골프 클럽을 챙기고 나오면서 프레데릭은 쉑터 박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글쎄...나는 골프를 잘 못쳐요....거기다가 지난 몇 달 간 골프장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더 심각한 발언은 그가 쉑터박사와 처음 경기를 하기 대문에 약간 긴장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쉑터 박사는 마음이 아파, 그에게 지난 주에 함께 골프쳤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Schacter, D. L. (1983). Amnesia observed: Remembering and forgetting in a natural environment. Journal of Abmormal Psychology, 92, 236-242.
Schacter, D. L. (1996). Searching for memory : the brain, the mind, and the past (1st ed.). New York: Basic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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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1, 2003
진심으로 다가서라!!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수학 문제라? "어려운 "수학문제의 해결"이라니까 다시 영화 Good Will Hunting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에서 로빈 윌리암스는 망나니 수학 천재 Will을 빨리 치유하지 못한다고 성화를 대는 MIT의 "위대한 수학자" 친구와 술집에서 논쟁을 벌인다. 논쟁의 와중에 로빈은 술집 주인을 부른다. 그리고 그 "위대한 수학자"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누군지 아느냐고 묻는다. 물론 술집 주인은 모르고....그 다음에 "Theodore John Kaczynski"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 "위대한 수학가" 친구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고, 술집주인은 빙긋이 웃으며 안다고 한다. 로빈은 당황해 하는 친구를 위해, 술집 주인에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라고 한다....
그 역시 오랫동안 치유할 수 없었던 마음 속 상처를 지녔던 영화 속의 심리학자 로빈 윌리암스는, 그 천재 망나니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반항의 뿌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다가서려고 한다. 그리고 그 길만이, 사회의 중퇴자 (drop-outs)나 일탈자들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지난 번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부서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서라는 것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다.
물론 영화는 비판 받을 점도 몇 가지 있긴 하다: 먼저, 사회의 status quo를 유지하려는 쪽의 패러다임에 서 있다. 또 Will의 "못난" 친구들은 "잘난 친구"를 "잘난 사람들" 품으로 돌려 보내는 "우정"을 보이지만, 자신들은 다시 자신이 속한 자리로 가야 함을 알고 있다. 영화에서 그리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버드 대학의 부자 여대생"을 향한 사랑이라는 설정 자체도 역시나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게 우리들의 자화상이걸 어떡하랴? 학교 다니면서 늘 공부 잘하는 친구를 부러워했고, 똑똑하고 예쁜 여학생 앞에서는 할 말도 못했고...
오늘은 Bee Gees의 노래로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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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2, 2003
미디어는 기억이다 3
미디어는 기억이다 2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버스속으로 자살 폭탄을 안고 돌진해 승객을 숨지게 한 이야기를 얼핏 본적이 있다. 나는 "또 이스라엘에서 자살 폭탄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그 장면을 지나쳤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오후에 다시 CNN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뉴스를 보다가, 이게 이스라엘이 아니고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맨 처음에 이 뉴스를 접하고 내가 "그 사건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났겠지"라고 미리 단정 지어 생각한 것은 일종의 déjà vu에서 오는 정보 처리의 왜곡이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전혀 다른 두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러시아 사건이 예전 어디에서 마추졌던 사건처럼 생각하게 되고, 여기에 근거해서 잘못된 지각과 기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매스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어떤 데자뷰의 느낌을 받는 것은 일정 정도 미디어라는 것이 현재의 사건에 어떤 의미와 해석을 달아서 전해주는 일종의 신문의 편집장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만 (Dayan & Katz, 1992),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기존에 일어났던 미디어의 보도가 우리 머리속의 저장고에 누적적으로 쌓여서 어떤 사건에 대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Peri, 1999; Irwin-Zarecka, 1994).
그렇다면 우리는 미디어에서 어떤 사건들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게 되는 것일까? 미디어 비평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이 매일 보고 듣고 읽는 뉴스의 대부분은 우리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Bird, 2003). 특히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우리는 뉴스 보도의 상세한 내용을 기억한다기보다는, 어떤 정형화된 뉴스의 서사적 구조를 기억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자살 폭탄 사건의 내용을 기억에 담는다기 보다는, 세상 어디서인가에서 테러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서사적 프레임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미디어 형식에 담겨졌던 뉴스의 내용물들이 이른바 새로운 미디어나 새로운 형식에 의해 전해짐으로써 사람들이 기억하는 세상의 소식은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University of South Florida의 인류학자인 S. Elizabthe Bird 는 2003년에 간행된 The audience in everyday life라는 책에서, 텔레비전 토크 쇼, 타블로이드 뉴스 (가판에서 파는 저질 연예가 소식이나 루머를 전하는 주간지), 그리고 인터넷의 다양한 공간들의 등장이 우리가 뉴스를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 6하원칙하에서 작성되던 역피라미드 형식의 기사는 우리 기억 구조상 머리속에 잘 남지 않게 되는 반면, 이들 신종 소식 채널들을 통한 드라마틱하고 흥미성 개인 신변 잡기에 관련된 선정적인 기사들이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학적 근거로 그녀는 사람들이 시간적 흐름속에 기술된 서사체의 구조 (이를 테면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나 도덕적 질타를 받을 수 있는 내용물들, 그리고 기이한 상상의 산물들을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인류학적인 참여 관찰 방법을 이용해 다음과 같은 연구를 했다;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텔레비전판 타블로이드 쇼인 Unsolved Mysteries와 ABC 프라임 뉴스인 ABC with Peter Jennings(ABC뉴스 앵커인 피터 제닝스가 진행하는 프라임 타임 뉴스 쇼)을 보게 한 후 친구, 가족과 나눈 대화등을 녹취한 기록을 분석했다. 여기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인간적 흥미, 그리고 드라마적인 전개가 없으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클린턴 대통령은 언론에서 두가지 스캔달을 추궁당했는데, 하나는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달이고, 다른 하나는 화이트워터 스캔달(불법 선거 자금 모금에 관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오직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 뿐이다. 이유는 두번째 스캔들에는 인간적 흥미가 없고, 드라마적인 전개가 없다는 점이다. 또 2002년에 그녀는 신문사 뉴스 웹 사이트나 각종 온라인 게시판이나 포럼 (이를테면 Yahoo! 뉴스 게시판)에 올라온 사람들의 댓글 분석을 했는데, 한 뉴저지 상원의원의 스캔달에는 14,000개의 댓글이 달린 반면, 당시 정치적으로 심각한 이슈였던 보험, 실직, 그리고 경기 침체에 관한 댓글은 겨우 1000개뿐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인터넷 시대에 황색 저널리즘 (yellow journalism: 선정적 기사로 사람의 눈을 끌려는 싸구려 저널리즘)의 등장은 일정 정도 수용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용자의 관심이 그런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기 때문에, 인터넷 시대의 온라인 뉴스도 그런 수용자의 욕구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인류학자만 제기한 게 아니다. 자극 추구 이론(Sensation Seeking Theory)을 주창한 Marvin Zuckerman (1984) 이라는 심리학자는 미디어 수용자를 "뭔가 자극적인 내용물에 더 많은 노출을 즐기려고 하는 sensational seekers"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다시 말해 인터넷 시대에 집단적 기억을 지배하는 기사는 뭔가 "드라마틱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인간적 흥미성"을 끌어 올리는 서사적 이야기, 다시 말해 주로 스캔달이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부부 스와핑 같은 이야기가 각종 신문사의 게시판들과 각종 포탈의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참고문헌:
Bird, S. E. (2003). The audience in everyday life: Living in a media world. New York: Routledge.
Dayan, D., & Katz, E. (1992). Media events: The live broadcasting of histor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Irwin-Zarecka, I. (1994). Frames of remembrance : the dynamics of collective memory. New Brunswick: Transaction Publishers.
Peri, Y. (1999). The media and collective memory of Yitzhak Rabin's remembrance. Journal of Communication, 49, 106-124.
Zuckerman, M. (1984). Is curiosity about morbid events an expression of sensation seeking. Proceedings of the Conference on Morbid curiosity and the Mass Media, Knoxville,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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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4, 2003
당심 얻고 민심 잃고 !!
며칠 전에 나는 최병렬이 "가지고 배 따순자의 단식"이라는 희대의 정치쇼를 보여 준 저의에 대해 논의 한 바 있다. 방금 전에 본 동아일보 인터넷 신문 헤드라인이 이 논의의 결말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심 얻고 민심 잃고"..
그래...일단 나는 딴나라당이 최병렬 중심으로 일치 단결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래 전선이 분명해 질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이 유신, 5공, 노태우의 "빛나는" 전통을 그대로 승계한 당이고, 강남 집값 떨어지고 부동산 보유세가 오르는 것에 개거품 무는 강남 졸부들의 당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최병렬은 이번 단식쇼를 통해 두가지를 얻었다. 1)그동안 주지육림해서 얻은 배의 기름기를 쫘악 빼냈기에, 골프장에서 더 유연한 허리 놀림을 자랑할 것이고 2) 대여 강경 투쟁 쇼로 인해 당에서 빈약했던 지지기반을 일정 정도 굳히는 데 성공했다. 건승하시고...한나라당의 정체를 더욱 명확히 해 주길 바란다. 때마침 노태우도 동조하는 걸 보니....잘 됐다. 예전 잡 것들 모두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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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느 정치인은 단식 중 야간에 곰탕과 죽등을 먹어 가짜 시비가 있었다는 보도를 봤다.
사진은 김공3씨가 최상궁을 만나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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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6, 2003
Truth is in the eye of beholder!
Lion King에는 명대사들이 많이 나오지만, Scar가 Simba를 벼랑 끝으로 몰면서 했던 다음 대사가 특히 명언이다:
Simba: Tell them truth.
Scar: Truth? Truth is in the eye of beholder. 진실은 지켜 보는자의 눈 속에 담겨 있다. 또는 눈에 보이는게 진실(의 전부)이다.라는 두가지 의미로 해석이 될 듯 하다.
좀 더 확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는
진리의 주관적 상대주의를 의미하는 말이고,
나는 이런 인식론과는 다른 쪽에 서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경험적 관찰을 통해
일정 부분 객관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도 가끔 우리의 경험적 추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진실은 때로는 보는 자의 눈 속에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강준만 교수와 유시민 의원의 논쟁을 보고 갑자기 든 생각이다.
오늘 마지막 곡은 tell the truth입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1:59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5)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December 15, 2003
imagined audience 1
일전에 Goffman의 자아 내보이기(Self-Presentation) 이론으로 블로그 현상을 이야기한 한 적이 있는데, 이 Self-Presentation의 핵심은 역시나 고프만이 말한 "관객" 의식이다. 관객은 실제 관객이 될 수도 있지만, 블로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보통 "머리속에 그려진 관객(imagined audience)"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관객을 설정한다는 것은, 한 개별 블로거가 글쓰기를 통해 어떤 상호작용 혹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세상에 자기를 던져 보일 때는 자아(self)를 정확하게 던져 보이거나 아니면 포장을 해서 던져 보이는 두가지의 동기를 생각할 수 있다. 정확하게 던져 보이는 것은 self-presentation이 아니다. 자아 반영(self-reflection)이라고나 할까...하지만 self-presentation에서는 일정 정도 전략적인 (strategic) 꾸밈이 들어가게 된다. "전략적"이라는 분석은 내가 제시한게 아니고 인상 관리 이론(impression management theory)라는 사회심리학의 이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이론 속에 담긴 용어이다. 전략적이라는게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의미에서는 전략적 presentation을 통해 자신이 타아와의 관계를 통해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타인 기만이 되서는 안되겠지만... 이게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 "사적인 영역" (private space)에서 이뤄지면 자아 속이기(self-deception)가 되는데, 공적인 영역(블로그나 홈페이지 같은 곳)에서는 자아 던져 보이기(self-presentation)가 된다.
Unix4Mac에서 iTunes의 곡 목록 공유가 그 사람의 성향을 노출할 수 있다는 글을 소개했다. 그런데 블로거는 자신이 지금 읽는 책, 지금 듣는 음악 등의 단서들을 통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자신의 personality"를 보여주는 "전략적인 자아 던지기 게임"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관련 글: (성격을 엿보려면). 음악을 (글을 쓸 때마다) 어김없이 올리다보니, 정말 자주 들리는 분들은 "아거"를 음악적 특성에 따라 categorization(범주화)시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음악을 올리는 블로거로서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올리는 음악이 내가 생각하는 imagined audience의 성향에 맞는 음악들일까?"하는 의문이다. 모르겠다....
오늘은 Bob Marley의 No Woman no cry를 Monty Alexander의 재즈 피아노롤 듣는다.
Posted by gatorlog at 02:39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imagined audience 2: [psychology of the Web]
일전에 이글루스가 처음 출범할 때 누가 "그래 우리 솔직해지자"라는 글을 써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사실 앞 뒤 아무런 상황적 문맥 없이 "내가 몇 살 때 뭐 했고" 식의 이야기가 "솔직"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어제 자아 내 보이기(self-presentation)의 핵심은 솔직이 아니고 "전략적" 드러내 보임이라는 점을 언급한 연장선에서 그 글의 제목이 떠올랐다. 나는 한마디로 블로그에서 정말 "순수하게 100% 솔직한 글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아거"는 이 글을 정말 솔직하게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다 써놓고 생각하면 어쩌면 여기에도 뭔가 빼낼 것은 빼고, 문장이라도 다듬어 보려는 최소한의 꾸미는 작업이 더해졌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솔직한 글을 쓰고 있는데"라면서 억울해 할 블로거가 있을 지 모르겠다. 이건 솔직이라는 단어에 걸린 긍정적 연상 작용과, "전략적"에 걸린 기만적 연상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제 말했듯이 인상관리 이론에서 말하는 "전략적 드러냄"은 윤리적 도덕적인 범주에 해당하는 단어가 아니다.
어제도 말했듯이 블로그에서 전략적인 글쓰기라는 것은 누군가와서 내 글을 읽겠구나 하는 것을 의식하며 쓰는 글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략적인 드러냄을 위해 쓰는 글이 어쩌면 예의를 갖춘 블로그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남을 위한 배려를 조금이라도 한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블로그라는게 전적으로 사적 일기장(private diary)라고 하고 아무도 본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글쓰기는 전략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때는 어제 언급한 "자기 반영 (self-reflection)"식의 글쓰기가 된다. 하지만 오늘 내가 포스팅을 하면 누군가 와서 보겠지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 글은 일기장에 적는 글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올린 글을 몇 번 다시 읽어보고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도 하고 이런 사람들은 적어도 self-reflection보다는 self-presentation에 가까운 블로깅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점에서 본다면 블로깅을 정의하는 하나의 이론으로 Goffman의 self-presentation은 상당한 설명력을 갖는다. 이론적으로는 self-presentation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1) "현저하게 보이는 실제 관객" 2) "자신을 내던져 보이는 무대위에서 자신이 관객들에게 보여지기를 희망하는 이미지," 그리고 3) "이런한 목표를 구체화시켜주는 일종의 각본" 이다. 그리고 그 각본은 눈에 가시화되는 관객 (real audience)과 자신이 그려내는 관객 (imagined audience)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위에서 말한 일종의 "각본"은 스피카님이 정의한 "interactive narrative"와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보면 되겠다.
Posted by gatorlog at 08:02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December 18, 2003
섬광기억 (Flashbulb memory) [연재 1]
인간의 기억은 정말 불완전하고 깨지기 쉽다. 그런데 그 불완전하고 파편화되기 쉬운 기억가운데 비교적 오래 살아 남는 기억이 있다. 만약에 만약에 여러분이 아끼는 그 누군가가 불의의 큰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에 어느 날 신촌 사거리를 가는데, 휴대폰을 타고 여러분이 아끼는 사람이 큰 일을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고 해 보자. 피가 멎는 듯한 충격, 그리고 복받치는 설움 속에서,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 년이 지나도 당신은 아마 그 말을 전해 들었던 바로 그 순간 신촌 사거리 무슨 상점인가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 silver bells가 울리고, 건너편 그랜드 백화점 앞 횡단보도에는 구세군이 서 있었고, 하늘에는 송이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쉽게 지워졌을 이 주변 정황들은 당신이 그 충격적인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의 뇌리 속에 그 충격적 비보와 함께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된다. 바로 심리학계에 인지적 패러다임의 물결을 열어 주었던 저명한 인지심리학자 Ulric Neisser교수의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에 대한 설명이다.
이런 일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은 다음과 비슷한 예를 생각해 보시라. 만약에 말이죠. 당신이 정말 Deux의 골수 팬이었고, 김성재 오빠를 외치던 오빠 부대의 일원이었는데, 김성재의 죽음을 들었다면? 내 경험을 이야기 해 보자. 사실 몇 년도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어느 해 겨울 ... 홍대 앞 거리에서 시간 보다 약간 늦게, 동생 SH와 함께 나온 친구SY이가 씩씩거리면서 "너 그것 들었어? ......"라고 흥분하던 그 때, 그리고 그 길거리를 잊을 수 없다. 그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김광석은 도저히 용서가 안돼. 왜 자살을 했냐고, 왜?"
그래서 다른 기억들은 쉽게 소멸하고, 쉽게 변질되고, 쉽게 파편화되는데 반해, 이렇게 자신이 깊이 사랑하던, 혹은 자신과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떴다는 그런 충격적인 비보를 들을 때, 사람들은 그 소식을 전해 듣던 주변적 배경을 잊을 수 없다고 종종 증언한다. 꼭 사람 뿐이 아니다. 이를 테면, 우리가 Larry King을 들을 때, 래리 킹이 뉴욕과 관련 있는 출연자 (저명인사)들에게 "그 때 (9/11쌍둥이 빌딩 폭파) 뭐하고 있었죠?" 하고 물으면, 출연자가 아주 자세하게 당시 배경을 묘사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야!! 참 기억력 좋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처럼 미디어가 우리의 기억을 생산하고 지배하는 요즘은 미디어에 의해 보도되는 충격적인 뉴스들이 우리에게 섬광 기억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메모리 연구 학자들은 현대인들이 J. F. Kennedy의 암살이나 다이애나 왕비의 교통사고에처럼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혹은 매개되는) 충격적인(traumatic) 뉴스를 들을 때, 바로 그 때 자기가 있던 공간, 주변 정황들을 선명히 기억한다는 가설을 검증해 왔다. 인간 기억에 관심이 많은 나도 당연히 이 섬광 메모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나는 이 섬광 메모리조차,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질되고 파편화되고 그리고 사람들의 스키마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언젠가 한 번 증명을 해야겠지만...)
오늘 글의 제목을 flashbulb memory1으로 잡은 이유는 다음에 최소 한 번은 이 섬광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 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을 쓸 때, 기억을 돕기 위해 기억의 끈을 여기 남겨 둬야 겠다: titanic증언, Neisser교수와 Babe Ruth 대한 반박, 그리고 최근 JFK 섬광 기억에 대한 논란...
어제 밤,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문세의 별밤에 고 김광석씨와 김국진씨가 게스트로 나왔던 방송분을 mp3로 들었다. 김광석씨가 통키타로 외사랑을 불렀는데...참 이상한게...내 기억속의 시간적 순서로는 김광석씨는 김국진이 뜨기 전에 저 세상으로 간 것 같은데....그만큼 우리 기억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언젠가 김광석과 안치환이 학전 공연에서 부른 듯 한데, 내 기억으로는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김광석이 죽고 난 한 참 후에 나온 노래 처럼 느껴지니 말이다....우리의 기억은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불완전하고 파편화되어 있다.Update: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2006년 4월 2일]
Posted by gatorlog at 04:28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December 19, 2003
Award is in the mind of the beholder!
혹시 charlz님이 제기하신 문제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까?
한 번 챨스님이 제기한 문제를 제가 해석한 방식으로 옮겨 보겠습니다.
"초기에는 블로그에 대한 정의와 성격에 대한
이른바 몇 몇 "블로거"들 사이에서 제법 진지한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그들"은
우리나라 웹 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블로그"라는 것이
상업주의와 포탈들의 선점하기식 경쟁에 의해
오염되고 변질된 형태로 뿌리내려지기 보다는
형식적 표준과 개방적 패러다임안에서
성장하기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지금 블로기 어워드를 진행하는 "그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이슈화 했던 문제와는
약간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귤이건 탱자건 모두 섞어서 하나가 되자는
그런 취지였다면 애초에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혹시 제가 over해서 해석했다면 다시 글을 쓴 취지를 알려 주시길 바라고...
일단 그 글을 읽으면서 제가 생각했던 바를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겠습니다. 일단 문제 지적은 굉장히 날카롭습니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블로기 어워드를 둘러싸고 나오는 숱한 말들과 또다른 논쟁은 바로 챨스님이 제기하긴 그런 문제 인식의 연장선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언제인가 nosz 블로그에서 촉발한 논쟁을 지켜보니까, 처음에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던 그런 진지한 논의가 차츰 감정적 편가르기를 낳았다는 점에서 좋아 보이지는 않더군요. 물론 이런 편가르기는 일반적인게 아니고, 이른바 설치형과 포탈형의 양진영에서 "뭔가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블로거"들 가운데 상대방의 시각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점화되고 확산되는 그런 모습을 띄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특이하게도 이런 논의 자체를 일순에 부서뜨린 것은 이른바 "설치형" 중 적극적 블로거들이 추진한 어워드 추진일 것입니다. 특이한 점은 어워드 추진 주체 세력이 내던진 화두가 너무나 큰 세간의...특히 포털형 블로거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드러내 보이기("self-presentation")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블로그를 쓰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 "상"이라는 또 다른 드러낼 기회를 주니까, 이벤트가 성립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지요. 특히 "포털형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행위 --- 그동안 제가 self-presentation이라고 언급해 왔던 것 ---에 적극적이라는 점입니다. 여러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연령적 변수가 가장 크지 않나 싶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크게 달라질 점을 예측해 본다면 이번 행사를 계기로 블로거들 사이에서 형식 논쟁은 사라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누가 상을 타는가에 대한 결과에 관계없이, 주최즉이 제시한 바처럼, 대한민국의 블로거가 하나의 행사로 즐기는 자리라고 했고, 그 참가 신청에 미니 홈피건, 포탈이건, 설치형이건 하는 제한을 두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형식 논쟁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번 행사가 자생적인 기획과 사용자가 중심이 된 참여라는 태생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 포탈업체 "그들"을 위한 기쁨의 축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뭐 포탈들에 부정적 생각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일부 사람들이겠지만,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감정을 없앴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자기가 좋아서 글을 쓰고, 남을 글을 읽는 블로그 본연의 순수한 취지, 그리고 아마추어리즘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돈을 벌고 싶은 분이나 업체는 이윤 추구를 꾀하면 되는 거고, 회사 홍보하실 분은 홍보하시고,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를 하면 되는 거고, 친구를 만들고 싶은 분은 친구를 만들면 되는 거고....그냥 취미로 즐기는 분들은 취미 생활로 열심히 블로그 하는 겁니다... 자신이 설정한 목적(goal)에 따라 당당하게 글 쓰고, 자기와 같은 패러다임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 즐겨서 글을 읽으면 되는게 아닌가요?
여하간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행사에 관여하시거나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의 즐거움으로 기억되는 그런 행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제가 truth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라는 라이언 킹 대사를 언급한 적이 있지요? 인간의 역사에서 "상"을 수여하고 받는 평가의 행위는 "권력"의 생성만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두 명 이상이 모이면 "권력"관계가 생긴다고 하는데, 저는 두 명 이상이 모이면 어떤 형태로의 "상"과 "벌"의 주고 받음이 생긴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상이라는 것은 말이죠....객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 선택의 과정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상이라는 것은 "Award is in the mind of the beholder" (상이라는 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가지 뉘앙스를 가지겠네요.
오늘 마지막 곡은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된 적이 있는 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를 올립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3:14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4)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미 음반 협회 소송 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연방 대법원의 판결
개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불사해 온 악명높은 미 음반 협회(RIAA)의 고소, 고발 정책이 미 연방 대법원가 얼마 전 낸 평결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갔다. 이 판결은 소송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미 음반협회가 온라인 음악 파일을 다운 받는 개인의 신상을 알기 위해 IP (인터넷 프로바이더)업체들에게 개인 신상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막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뉴욕타임스 보도로는 이번 판결이 RIAA의 소송 정책 자체를 무력화하지는 못하지만, 이들이 개인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음반협회에게는 불리한 결정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연방 법원도 미 음반협회가 입고 있는 물질적 타격에 대해서는 동정적임을 판결문에서 보였지만, 아무래도 개인 프라이버시의 보호를 우선시 하는 법의 원칙이 더 우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gatorlog관련 글: 미 음반협회 소송명단을 보니
Posted by gatorlog at 04:07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December 21, 2003
imagined audience 3: information game [psychology of the web]
일전에 어느 개별 블로거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을 내 보이는 행위...고프만의 정의로는 self-presentation을 통한 인상 관리 (impression management)...자체는 전략적임을 언급한 적이 있다. 왜 전략적인가? 바로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우리가 무대위에서 바라보는 관객과 보이지 않는 관객들에게 우리의 인상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비쳐지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1차적으로 전략적이다. 그런데 또 전략적인 것은 self-presentation과정에서 개별 블로거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이 그렇게 인상을 관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주고 무대위에 올려진 바로 그 모습 자체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점에서 전략적이다. 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고프만은 자아 표출을 통해 인상 관리에 임하는 개별 배우(블로거)는 "하나의 정보 게임(an information game)"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여진 정보는 부분의 합보다 작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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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3, 2003
imagined Audience 4: Psychology of the Web
블로그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블로그에 관련된 현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블로그를 공적 공간(public space)에서 전략적인 자기 보여주기로 정의한다면, 모든 현상은 이 이론에 따라 분석이 가능하지요. 며칠 전부터 언급한 내용인데, 동기(motive)와 관객(audience:수용자이지만 self-presentation에서는 관객으로 간주)이라는 두개의 교차하는 축에서 self는 다음 네가지 형태로 보여집니다. 공적인 관객을 향해 개인적 이득을 위해 던지는게 바로 고프만이 이야기하는 self-presentation의 요체입니다. 만약에 공적인 관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면 자기 폭로가 되는 것이지요. 사적인 공간에서 자기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하는 행위는 자기 기만이 되는거고, 사적인 공간에서 정확성을 꾀한다면 자기 반영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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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블로그를 쓰는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현저하게 보이는 관객 (salient audience)혹은 자신이 생각하는 잠재적 관객(imagined audience)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입니다. 블로그식으로 이야기하면 늘 코멘트를 달아주고 트랙백을 달아주는 관객이 바로 현저하게 존재하는 관객(salient audience)이 되고, 코멘트를 달지는 않지만 내가 글을 포스팅 하면 이런 관심과 취미를 갖는 사람이 읽어 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바로 그 관객들이 상상속의 관객(imagined audience)입니다.
Holloblog를 따라 들어갔다 우연히 블로그 에세이라는 분이 올린"전문가가 블로그를 싫어 하는 이유" 가 눈에 띄더군요. 제 의견을 올립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블로그는 애초에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전에 저는 블로그의 활용이라는 글에서 블로그는 "전문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때도 말했듯이 거기서 말하는 "전문성"이라는 것은, "전문가"들이 지니는 지식과 자격 요건으로서의 전문성과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사실 누구를 전문가로 보는가에 따라 틀리지만, 위의 "public"과 "audience"의 분류 틀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전문가 집단이 아직 블로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특히 "체면을 중시 여기는 face-saving문화"에서 자신이 아무런 개인적 이득을 볼 수 없는 블로그 공간에 시간과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죠. 아무래도 그러기에는 블로그는 너무나 아마추어적이며, 공적인 공간에 self를 드러내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시 여기는 "연령"과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거지요. 쉽게 이야기해, "아니 *** 변호사님...블로그에 글을 쓰신다면서요?" 혹은 "*** 박사님...이번에 블로그 만드셔서 거기서 좋은 글을 연재 하신다면서요?" 이런 말을 들으면서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아이구 "*** 변호사님, 어제 MBC 2시의 뉴스 현장 인터뷰에서 디지털 시대 저작권 문제 이야기 하는 것 들었습니다" 혹은 "*** 박사님, 이번에 Psychological Review에 좋은 글 올리셨더군요" 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한마디로 자신의 글이 포지셔닝할 잠재적 수용자들이 블로그를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와도 통합니다. 이를테면 어느 특정 분야의 학자들의 경우, 자신들이 나설 공간은 유명한 학회나 학술지이지,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블로그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죠. 아주 세속적인 의미의 전문가로 우리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종종 들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른바 "사"자 들어간 사람들도 블로그에서 자신들의 고객을 만나는게 아니기 때문에 블로그를 쓸 필요가 없는 거지요. 변호사는 브로커를 통해야 하고, 의사는 자리를 잘 잡고, 시설을 잘 꾸며야 하며, 회계사는 인맥, 연줄이 중요하지요. 기타 불특정 대중과 관계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블로그라는 한정된 공간보다는, 대중적인 공간에 포지셔닝해야 "권위"를 인정받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왜 전문가들이 블로그를 쓰는 것을 종종 보는 것일까요? 바로 self-presentation과정에서 그런 "체면"을 우리보다는 덜 고려한다는 의미지요....우리나라보다 사회적으로 블로그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보다 인구가 많기 때문도 아니죠. 바로 스탠포드의 저명한 법학자인 Larry Lessig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만 누구도 이게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않지요. 하지만 우리 정서에서는 "대중"앞에 자기를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보수적 양반문화"와는 많이 상충되기도 하는데다가, 그것도 아직 검증이 안된 문화 현상에 금방 뛰어 들면 왠지 졸갑스럽게 보이기도 할 듯 하고...이건 엔터테이너로 등장한 텔리페서 (television + professor)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도 같을 겁니다.
블로그를 꾸준히 쓰는 사람으로서, 블로그의 의미를 격하시키려는 의도로 이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4:27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5)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December 27, 2003
spam성 comment
요즘 약장수들이나 포르노 장사꾼놈들이 남긴 스팸성 코멘트 지우는 일에 화가 나서 오늘은 블로그 시작 이후 처음으로 두 개의 IP의 접근을 막았다 (ip banning).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두 놈 모두 호주에 살고 있다. 호주놈들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2:36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3)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단호함과 융통성
유교(儒敎)논리에서 강조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으로서 "군자"는 우리나라 양반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교육을 통해서,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속에서, 그리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이되어 오는 수많은 가상 현실속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군자론"의 영향을 받고 자라게 된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 시청자들은 대장금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한상궁이 자신에게 칼을 들이내밀었던 소주방 상궁들을 유임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뭔가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그들을 모두 갈아치우고 새부대에 새술을 담는 다는 식의 개각이 있었다면, 이는 "보복 정치" 혹은 "소인배의 지도력"으로 평가되었을게 분명하다.
대장금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정상궁이 마지막 가는 길에 한상궁에게 했던 말 역시 유교 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는 정말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명대사가 아닐까 싶다. "어여삐 여기거라. 불쌍히 여겨..네가 네 원칙을 지키고싶은 것만큼 사람들을 어여삐 여겨. 그러지 않으면 네 단호함이 사람들에게는 무섭고 낮설 게만 느껴질게다.... 쉽지않지! 단호하게 하는 것과 융통성 있게 하는 것!" 
목적달성을 위해 사용하는 어떤 수단과 힘도 정당화되는 서구 근대주의 정치 철학의 핵인 마키아벨리즘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라보는 지도자상은 이처럼 "원칙을 지키면서도 세상을 어여삐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단호함"과 "융통성"은 상호배타적이고 모순(矛盾)을 이루기 때문에, 두개가 공존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래서 실제로는 "원칙"보다는 "타협"과 "눈감아줌"의 아량을 보이는, 그래서 소주방 상궁들의 비리를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그런 지도자가 현실에서는 더 높게 평가되는 일이 허다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를 부르며 사는 사람은 정을 맞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를 부르며 사는 사람은 군자 대접을 받는 게 세상 이치다.
오늘 마지막 곡: 신촌 블루스 "아쉬움"
Posted by gatorlog at 03:18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December 28, 2003
관계적 스키마 1
볼드윈(Baldwin)의 관계적 스키마(relational schema)에 대한 92년 아티클을 본 후로, 이 "관계적 스키마"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볼드윈은 우리 인식 체계내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경험과 지식의 체계로서의 스키마라는 종래의 개념을 확장시켜, 사람들은 대인 관계의 경험에서 누적된 경험을 어떤 스키마적인 기억의 형태로 간직하고 이를 다른 비슷한 관계적 상황에 적용시킨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스테레오타입이나 편견 역시 관계적 스키마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아주 비근(卑近)한 예로, 군대에서 어느 특정 지역 상사에게 특별히 좋지 못한 기억을 형성했던 사람이 종종 사회에 나와 그 특정 지역 연고가 있는 사람에게 부정적 감정을 전이시키는 것도 이같은 관계형 스키마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타자들(significant others)과의 기존 관계에서 부정적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늘 경계하고 신뢰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모두 이 관계적 스키마에 기인한 방어적 기제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장인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하셨는데, 가족들에게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좁쌀 영감이었고 잔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집 장모는 남자가 말이 많은 걸 아주 싫어해서, 그 집 사위되는 사람은 장모가 가끔 찾아 오면 아예 돌부처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분의 직업이 교수인데, 그 장모되는 분은 "교수"라는 직업 자체도 학교 선생이라는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말이 많고 사람을 피곤하게 할 것"이라는 스키마에 따라, 애초에 결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기존 관계에서 형성된 경험적 관계형 스키마는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도 지극히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처럼 관계적 스키마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범주화시키는 행위는 매우 잘못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긍정적인 관계적 스키마는 사람들간의 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관계적 스키마는 종종 부정적인 쪽에서 돋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새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관계적 스키마에 따른 범주화 (categorization)를 피할 필요가 있다. 마치 우리가 어떤 현상을 판단할 때 선입견을 배제해야 하는 것 처럼,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관계적 스키마의 영향을 "최소화"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최소화"라고 말한 것은 누구도 관계적 스키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Baldwin, M. W. (1992). Relational schemas and the processing of social information. Psychological Bulletin, 112, 461-484.
Posted by gatorlog at 07:34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Relational Schemas 2 [Psychology of the Web]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서 얻은 관계적 스키마"는 웹 이용자들의 "사이버 상의 상호 작용 (interaction)"에 과연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런 주제아래 파생되는 연구 문제들은 숱하게 많을 것이다. 그 많은 문제거리중에서 블로거들을 위해 그 중 가장 적나라하고 구체적이고 솔직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오랫동안 나는 블로그의 핵심은 퍼스낼리티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 (관련 글: 앙꼬없는 찐빵; 온라인 아이덴티티에 관한 두번째 글; imagined audience 1) 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나는 역시나 블로그를 통해 어떤 퍼스낼리티를 엿볼 수 없다면 잘 방문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격을 읽을 수 있다고 모두 즐겨 찾는 것은 아니다. 어떤 블로거의 경우는 두드러진 개성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서 접근이 꺼려지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어떤 퍼스낼리티에 대한 호(好), 불호(不好)의 판단은, 우리가 사이버상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 경험적으로 쌓아 온 관계적 스키마에 근거하게 된다.
아마 모두들 이렇게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은연 중에 이런 관계적 스키마에 따라 어떤 블로거와는 적극적인 관계를 맺는데 비해, 코멘트나 링크를 통해 매번 조우하게 되는 어떤 다른 블로거들의 사이트는 잘 가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런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관계적 스키마는 인지적 분주함에서 생기는 잘못된 사람 인상 형성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다시 말해 비언어적 (nonverbal)그리고 언어적 (verbal) 단서들이 물리적 형상과 함께 합쳐져서 보여지는 현실 세계의 대인관계와는 달리 "블로그"공간에서의 인상 형성에 영향을 주는 단서들은 그리 복합적이지 않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이 말을 통해 던져 주는 인상은 그 사람이 말할 때 보여주는 제스처나 얼굴 표정, 그리고 억양등을 통해 복합적으로 전해지고 판단 역시 복합적인 단서들의 합일체로 나타나는데 비해서, 블로그를 통해 전해지는 블로거의 인상은 단지 텍스트나 사진 몇 장을 통해 전해지므로 종종 비언어적 단서의 영향 없이 무미건조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거처럼 이렇게 빼곡하게 "현학적인" 글을 올리면, 우선 읽어 보기도 전에 기피하게 될 지도 모른다....^ ^
직접 연관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도 이런 관계적 스키마의 연장에서 볼 수 있다:
1) 현실 세계에서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들은 사이버 상에서도 친구를 잘 만들 것인가? 2) 현실 세계에서 매력적인 퍼스낼리티의 사람은 사이버 상에서도 매력적인 퍼스낼리티를 보일 것인가?
이처럼 사이버 상에서 발견되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다 보면 관련된 현상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단 관계적 스키마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하나마 여기서 끝을 내고 싶다........
오늘 마지막 곡은 일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마그나 카르타의 seasons라는 명곡을 올립니다. 이 곡은 비발디의 명곡 4계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포크 뮤직의 4계라고 할 수 있지요. 파일 크기가 20.8 Mb이고 연주시간이 22분 31초이니 시간되는 분만 들어 보시길...
Reviewer: william robert (see more about me) from greer: "Seasons" uses basically the concept of Vivaldi's 4 seasons , but is a complete original folk creation . poems , songs ,warm voices & beautifull choirs , acoustic guitars &the discrete back arrangements from Tony Visconti ( Rick Wakeman from Yes , Davey Johnstone from Elton John's Band )bring you in a journey through the year. The perfect record to lesson , when wind blows , snow falls everywhere , sitting on your sofa whith the one you love in front of your chimney . I do that since 25 years without any deception . 아마존의 독자 리뷰
Posted by gatorlog at 08:18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December 30, 2003
사교육 신드롬
ED님 글을 보다 보니 엊그저께 장모님과 잠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각기 아들 3형제와 2형제를 둔 아들이 이모와 외삼촌 (내 처형과 처오빠댁)에서 사교육비로 돈을 많이 지출한다는 이야기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사실 어른 말씀에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우리나라 사교육 현실에 아주 불만이 많은 내 강한 생각때문에 본의 아닌 논쟁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 그 애들(아들네 이모와 외삼촌)은 너무 많이 보내 (영어, 유치원, 태권도, 피아노, 컴퓨터, 바이올린 등등) ...그런데 **이 (아들이 이모) 말로는 요즘 애들은 그렇게 안하면 금방 뒤쳐진다고 하대...
나: 참.... 사회 문제더군요...우리 집 형제들(참고로, 삼형제)은 유치원 나온 사람 아무도 없어요...
장모님: 그때하고 지금하고는 그래도 많이 틀리네...요즘 그렇게 애들 교육 많이 시키니까 모두 애들이 다르잖은가?
나: 글쎄요....뭐 지금이나 그때나 다른 것은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아들이를 자연 속에 키울 생각외에는 다른 계획은 없습니다....밖에서 뛰놀고 자연을 관찰하고 그렇게 살아야 아기가 정서적으로도 좋고....
장모님: 그래도 자네도 이제 아들이 학교(=유아원) 좀 보내고 그러게...
나: 지난 번에 아들 엄마 임신 초기에 고생이 심해 잠시 보낸 적이 있는데....글쎄요...둘이 모두 바쁘면 모르지만,,,, 다른 주에 가고 아들이가 말귀만 알아 들으면 제가 데리고 다니죠...하하...
장모님: 그래도 그게 아니네....그렇게 보내야 애들이 똑똑하고 사회성도 있고....
나: 예...그 말씀은 일리가 있는데, 꼭 사교육 많이 시킨다고 애들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예요...
장모님: 그래도 요즘 애들이 예전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지 않은가? 다 부모들이 이것 저것 시켜서 그런거라네...
나: 아이구...장모님...뭐 사교육 많이 시켜서 똑똑해지면, 앞으로 세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든 분야를 다 지배하겠네요.....아이들에게 창의성을 길러줘야지요....뭘 주입시킨다고 애들이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예요..좀 눈치가 많고 영악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예요....
장모님: 그래도 그렇게 교육을 시키니까 요즘 그렇게 의학도 발달하고...세상 살기도 좋아지지 않은가?
나: 그게..예전 것이 축척이 되서 그런거지...요즘 사교육 많이 받은 애들이 똑똑해져 그렇게 만든게 아니지요....그런 것 (=사교육) 받지 않은 미국인들 중에 진짜 똑똑한 사람들 많잖아요..그리고 세계도 지배하고요....책을 많이 읽고 자연과 벗하게 해야지 애들이 바로 자라지요....이곳 저곳으로 시간 맞춰 학원차 태워 보낸다고 애들 나중에 잘 되는 것 아닙니다....두고 보세요....저는 그렇게 애들 키우지는 않을 겁니다..
뒤 이야기는 생략한다....이런 논의를 할 필요가 없는게....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교육 우월주의 혹은 꼭 우월주의가 아니더라도 "안하면 우리 아이만 바보된다"는 걱정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치유할 수 없는 집단 신드롬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사실 그 잘못된 의식은 우리가 가진 "교육열" 덕분이기도 하지만, "공간적 협소성"에 기인한 도시 주거 문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좁은 땅에 아파트 올려서 따닥따닥 붙어사니까....잘못된 의식은 금방 전파된다...거기다가 점점 인구는 많아지고...먹고 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고...경쟁에서 이겨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해결책은? 없는 듯 하다.....그래서 답답하다....통일이 되면 어떨까?
Posted by gatorlog at 10:32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5)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December 31, 2003
아이들과 컴퓨터 게임
내가 아주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림 그리기다. 두뇌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나는 전혀 그림을 못 그린다. 어린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봐도 내가 그린 것보다는 낫다...이렇게 말하면 외할머니가 서운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 친가 쪽의 피를 이어받았다면 서화에 능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나는 외가쪽의 피를 이어받은 걸 게다. 그런데 나는 그런 선천적 요인보다는 (다소 비과학적 생각이지만) 후천적 요인을 더 많이 꼽고 싶다.
미술 학원 하나 다녀 본 적도 없거니와, 어머니는 어려서 만화로부터 나를 거의 100% 차단시킴으써 내가 그림으로 표현하는 세상을 접할 수 없게 하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불평하면 어머님은 "세계의 화가 시리즈"를 사주셨다고 웃으며 말씀하시곤 했지만.....어쨌건 어머님은 어린 내가 친구들과 만화방에 얼씬이라도 하는 날은, 그 날을 아주 매타작 하는 날로 잡으셨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그 매가 무서워서 만화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만화에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로 자란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한 1년간 홍대 미대 졸업한 사람들과 함께 산 적이 있다. 집에 만화가 가득했다...그래서 당시 처음으로 만화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남벌(南伐)같은 명화들(?? ^ _ ^)을 접한 기억이 있다....그러나 환경이 다시 바뀐 후 나는 역시 만화를 찾지 않았다.....

한 때 이모집에서 살 때,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모 아들이 오락실에 갔다가 내게 적발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주 심한 군대식 얼차려를 주었다. 이모가 서운할 정도로 혼을 냈는데, 지금 고등학교 다니는 이 녀석은 컴퓨터 게임에서 비교적 해방되어 있다.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일전에 한국에 나갔을 때, 초등학교 다니는 친구 사내 아이가 정신없이 컴퓨터 게임을 하던 모습들이 내게는 아주 충격적이었다....요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서울대 갈 아이가 정해진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분당에 살으리랏다"를 외치는 이 친구 역시 사교육비로 일반 샐러리맨의 월급만큼을 지출하는 열성 사교육자 옹호론자다....그런데 아들의 게임병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시간을 정해준다고 한다....게임을 모르면 아이들 사회에서 매장된다나?
진희의 다락방에서 읽은 조기 컴퓨터 교육 반대론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컴퓨터 문명 회의론자인 나 역시, 아이들이 조금 시대에 뒤쳐지더라도 컴퓨터를 접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매체의 특성상 어차피 컴퓨터는 정보적 처리보다는 텔레비전과 비슷한 즐기기 위한 도구로 곧잘 전락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멜 계정 가지고 있고, 메신저 쓰고, SMS보내는 데 능숙한 것을 부모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그런 정보화 지수가 높을수록 아이들은 점점 생각하는 능력을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아이만큼은 영악한 겜보이보다는 반문명적인 "타잔"으로 키우고 싶다.
[인터넷에 버려진 아이들]
Posted by gatorlog at 10:10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결국 해를 넘기고
결국 우리 둘째 아이는 26일 예정일을 넘기고 2004년 아이로 태어날 것 같습니다. tax return을 생각해서 12월 마지막에라도 아이를 낳으라는 주변에 사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권유를 뒤로 하고, 한 해의 끝에 태어나기보다는 한 해를 여는 아이로 만들고 싶다는 내 의지가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실현된 듯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음악으로 김광석의 그루터기를 올립니다. 새해 인사는 아들이 태어난 이후에 다시 드리겠습니다. 
Posted by gatorlog at 10:19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01, 2004
possum 을 아시나요?
며칠 전에 집 문 앞을 나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굴은 쥐가 돌연변이한 형상을 하고 하얀 빛깔이 도는데, 몸톰은 거의 두더쥐 크기의 검정색을 띄고 있고, 꼬리는 하얀 빛깔과 검은 색이 함께 보이는 아주 흉칙하게 보이는 놈이 나를 째려 보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봐도 그 자리에서 몸을 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설명때문에 장모님과 아내는 저녁 외출을 꺼리게 되었는데, 옆집 사는 JH아빠의 설명으로 이 녀석 이름을 알았다...포섬이라고 했다. (모습을 보고 싶으신 분은 여기를 클릭: 주의: 밥맛 떨어지는 형상임)
오늘 뉴욕 타임스를 보니까 노스 캐롤라이나 브래스타운이라는 곳에서는 12월 31일 자정에 이 포섬을 풀어주는 행사가 있다고 한다....혹시 설치류 에 관심있는 분은 보시길...구글 한글 검색을 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이 포섬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영문 이미지 검색 하면 비교적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음...

[image출처: Franknernest]
Posted by gatorlog at 01:03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드디어 둘째 아들이...
병원입니다. 일단 간략히 둘째 아들이 태어난 소식을 기록합니다...이곳 미국 동부 시각으로 1월 1일 오후 2시 3분에 태어났고, 산모와 아들 모두 건강합니다. 몸무게는 7.15 파운드 (3.58Kg), 키는 20.75인치 였습니다....한국 시각으로는 1월 2일 새벽 4시 3분이 되는군요...이름은 아직 짓지 않았습니다....Posted by gatorlog at 07:29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6)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January 08, 2004
편집국 블로그
한국일보 기자들이 블로그를 쓰고 있는데, 무척 재미있군요. 일단 기자들이 쓰고 있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역시 블로그스러워서 좋습니다....일단 글이 어떤 피쳐 기사로 분류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꼭 취재 뒷 이야기나 가쉽거리성 글이 아니라는 점에서 "블로그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나저나 포탈들이나 개별 블로그 회사들의 틈새로 이제 신문사 까지 블로그를 제공하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히 블로그가 열풍은 열풍인가 봅니다. 미국에서는 달라스모닝뉴스가 이미 편집국 블로그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신문사 블로그와는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이른바 편집국 블로그라는 것은 신문사가 편집국과 독자들간에 기사에 대한 의견 교환을 더 원활하게 하는 피드백 창구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달라스모닝뉴스의 블로그는 저널리즘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물론 한국일보 블로그에서도 취재 뒷 이야기같은 글을 볼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기영 기자가 쓴 김대중 전대통령을 진정 아끼는 길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렇지만 그 취재 현장에서 느낀 개인의 주관적 의견을 아주 강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글 역시 단순한 취재 뒷 이야기로 분류해서는 안될 듯 합니다. 또 한국일보 블로그에는 일상의 관찰들에 주관적 의견을 달고 거기에 동시대적 느낌을 전하는 블로그식 글쓰기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글들이 아주 많더군요. 이를 테면, "승은을 입었다는 여배우"에서 박은주 기자은 세간에 떠도는 "카더라"통신으로 시작해, 현재 화제의 영화 (실미도)까지 언급하고, 루머의 사회심리학에 대한 하나의 의견을 제공함으로써 뛰어난 블로그 엔트리 하나를 남겨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영창 기자의 '앰블런스 탔어요' 자랑인가 역시 재미나군요..."20대 마지막 해의 첫날을 하루 앞둔 2003년의 마지막 날 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 모 방송사에서 하는 연말 가요 시상식을 '별 생각없이' 보게 되었는데..."로 시작하는 이 글에서 이영창 기자는 기자의 취재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고, 평범한 관찰에서 툭 거슬리는 어떤 가수의 인터뷰를 듣고 한 명의 블로거로서 "하나의 의견 (a point of view)"을 들려 줍니다.
앞으로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이런 말이 자주 들릴지도 모르겠네요.."어이 박기자, 그것 재미있는데.. 블로그에 올려보지?"
오늘 마지막 곡은 Sixpense none the richer의 99년 big hit곡인 Kiss Me를 올립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4:20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09, 2004
애플 1984 광고
Mac World 2004년 1월 호에 나온 광고사에 길이 남는 전설적 광고였던 "1984"에 대한 기사 내용을 Q & A로 재정리 해보았습니다.
Q: 맥의 1984광고에서 Big Brother는 IBM을 상징했는가?
A: 꼭 그렇지만은 않다 (that's not exactly the case). 광고의 컨셉은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대한 투쟁이었다. (Lee Clow, Creative Director). 애플은 Mac을 (체제) 순응 (conformity)적 사고를 깨뜨리고, 창의성 (creativity)을 부여하는 도구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했다.
Q: Big Brother를 혹시 Bill Gates로 볼 수 있는가?
A: 빌게이츠는 당시만 해도 성공한 기업가 한 명이었을 뿐, 지금처럼 세계를 지배하는 Big Brother는 아니었다. MS-DOS를 내고 소비자에게 다가가려던 아주 겸손한 소프트웨어 거부 (a humble software tycoon) 였을 뿐이다. (지금은 겸손하지 않은가? ^^)
Q: 당시 Big Brother에게 해머를 던졌던 Anya Major는 지금은 무엇을 하나?
A: 이상하게도 이 유명한 광고의 모델은 이후 공중의 시선에서 사라졌고,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행방을 추적할 수 없었다. (Big Brother에게 도전했으니, 어디 쥐도 새도 모르게...^ ^)
Q: 광고를 처음 본 애플 이사들의 반응은 어땠나?
A: 잠시 침묵이 있었고, 두 명의 이사들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당시 CEO John Sculley는 회고한다. "You're not really going to run that thing, are you?" (이것 진짜 내보내려는 것은 아니죠, 그쵸?). 반대되는 이유는 제작비 7십만 달러, 그리고 Super Bowl에 한 번 보내는 데 백 오십만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이 광고에서 컴퓨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Q: 이 광고가 애플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A: 애플은 문자 그대로의 직접적 메시지 (literanl message)보다는 명백히 사람들의 감성(emotion)에 영향을 주는 광고를 원했고, 지금도 이 광고 전략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는 컴퓨터라는 고관여 제품 광고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광고 전략이다).
Posted by gatorlog at 09:51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10, 2004
우리말에 침투한 일본식 문체 분석
메이저블로그에서 본 어느 블로그가 옮겨 온 글 (이것도 "펌"으로 자주 사용된다) "우리 말에 침투한 일본식 문체 분석"은 재미있고 또 유익했다. 특히 예로 제시된 일본식 표현들을 보니, 웹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우리 말 파괴가 이제 우리의 언어 인식 체계에 무감각할 정도로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댓글에 나온 반응처럼 예시된 표현들을 모두 일본식 문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다음 몇 가지는 일본식 어투로 분류되야 한다.
1) 훗..나는 스타를 꽤 하죠; 초 귀엽다 (초는 超) 같은 일본식 수식어 사용
2) 저것이 궁극의 춤이란 말인가? (여기서는 궁국의 춤에서 "의"의 사용이 문제가 된다)
아마도 내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준 책 한 권을 들라면 단연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를 꼽겠다. (검색을 하다가 오늘 선생님 타계 소식을 들었네요. 명복을 빕니다). 대학 때 이오덕 선생의 책을 보고 나는 우리 말에 스며든 일본식 어투와 문장의 폐해에 깜짝놀란 적이 있다. 나 역시 그런 표현들을 식자층의 언어로 생각하고 자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본식 말과 글의 폐해는 비단 글에만 스며 있는게 아니다. 이를 테면 일본 조사(노)의 쓰임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처럼 한국인의 애창 동요에도 들어가 있다. (이오덕 선생 표현대로 하자면, 내가 살던 고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선생은 우리 말에 스며 든 일본식 어투인 "~ 적"의 남발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법적 오류" "가급적" 등등). 어쨌거나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나는 우리 말 바로 쓰기에 상당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런 생각 때문에 웹상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볼 수 있는 우리 말 파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애정을 가지고 블로그를 쓰는 이유도 바른 글 쓰기 운동의 일환이 아닐 까 싶다. 이오덕 선생의 바른 글 쓰기 철학은 단지 우리식 문장과 표현을 만들자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일제시대부터 우리는 온갖 글재주꾼들에 속아왔지만, 글쓰기가 돈벌이의 수단으로 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글의 타락한 모양이 한층 더 교묘해지고 또 그 자리가 넓어져서 바야흐로 글의 공해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글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글을 써서, 글로 움직이는 세상을 글로 바로잡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특별한 사람만 글을 쓰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농민도 노동자도 노점상인도 교원도 회사원도 주부도, 자기를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수단으로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합니다」(이오덕, 「우리문장쓰기」중에서). via. 마이더스동아
인터넷을 그리고 블로그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오덕 선생이 말한 "특별한 사람만 글 쓰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이제 우리는 누구나 시간과 열정만 있다면 자기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굳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수단으로써 글쓰기"라는 거창한 목표는 아닐 지라도, 최소한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살려보려는 의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링크: 우리글 바로쓰기 책 정보
Posted by gatorlog at 06:07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4)
January 11, 2004
Ecto 베타 버전!
Kung-Log version update를 기다렸는데, Ecto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blogging 소프트웨어를 발표했군요. 그동안 Kung-Log는 Mac사용자들만 이용이 가능했는데, 현재 개발자는 Ecto의 윈도우 버전도 개발 중이라는군요. Ecto는 MT, TypePad, pMachine, Nucleus, Blogger 등 주요 블로깅 툴을 모두 지원하는군요.
Ecto for Window 가 4월 중순에 출시되었습니다.
Ecto의 특징을 간략하게 옮겨 보았습니다. 평가판을 써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3)번과 9)번이 새롭게 추가된 기능이고, 나머지는 Kung-Log의 연장선에 있는 듯 합니다. Ecto 베타 버전 출시를 알린 개발자의 글과 관련 코멘트, 그리고 축하와 격려의 글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1) 다중 웹로그와 다중 웹서버 지원 (계정관리의 용이)
2) 웹로그 엔트리 작성과 편집을 도와주는 편리한 인터페이스
3) 최근 포스팅한 엔트리와 편집기에 저장 중인 드래프트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음 (찾기 기능 추가)
4) HTML 태그 템플릿트 도구 메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단축기를 임의로 정할 수 있음
5) MT와 TypePad의 모든 리모트 컨트롤 옵션들 (예를 들어, 트랙백, 다중 카테고리, 키워드, 요약, 텍스트 포맷, 코멘트 옵션)을 모두 Ecto에서 제어할 수 있음.
6) 포스트한 엔트리의 날짜와 시간을 쉽게 변경할 수 있음
7) Safari 브라우저의 Webkit와 연동해 작성한 엔트리를 최종 output형태로 미리 볼 수 있음
8) 이미지 파일과 일반 파일들의 업로드 기능을 강화함 (변환, thumbnailing images)
9) 현재 연주되는 iTunes 곡의 구체적 정보를 추가할 수 있음
Posted by gatorlog at 06:24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Ecto beta 테스트 중
Ecto for Window 가 4월 중순에 출시되었습니다.
1. 베타 버전 다운로드에서 설치까지 약 2분 정도 소요됨. 참조: Ecto first time use
2. 한 줄 입력 후 preview 한 화면 캡쳐 이미지를 upload한 후
preview시행했을 때 나온 화면 ...
![]()
3. HTML 태그에서 strike-through를 테스트 해 봄...이걸 지우고 싶다...
4. 다음 Entires and Drafts에서 기존에 내가 쓴 글 중 융통성이 들어간
엔트리를 검색했을 때 정확히 그 엔트리를 찾아낸 화면
![]()
5. 다음은 카테고리 메뉴 바에서 다중 카테고리를 선택해 봄: buzz, web watch, weblog watch
6. 그리고 가장 궁금한 iTunes테스트 들어감...
현재 나오고 있는 음악은 Edie Brickell & New Bohemians의 Zillionaire인데
메뉴바의 iTunes를 클릭했더니,
Zillionaire#a from the album ^a#a#p by ^p#p
곡 제목과 링크를 자동으로 연결해 줌...문제는 찾기 정보를 다시 설정해야 할 듯 함.
다음은 advanced를 클릭해 보니, 키워드, 트랙백 URL, Ping URL,
그리고 엔트리 포스팅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나옴....
테스트 삼아 Windblog'w mac log의 kung-log에 관한 엔트리
trackback URL을 적어봄...
그리고 포스트를 클릭함...
유의 사항:
1. 이번 베터 버전은 올 해 1월 말에 사용이 종료됨.
2. Kung-Log와 Ecto는 서로 데이터와 preference을 공유하지
않는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 설계됨
Posted by gatorlog at 07:09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3)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3)
January 12, 2004
Lord of the rings: return of the king
Currently playing on iTunes:
Sound The Bugle from the album Spirit: Stallion Of The Cimerron by Bryan Adams
영화가 끝나고 주제 음악이 나오면서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 이름이 올라오기 시작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제작에 참여했던 스탭들의 가족들...^ ^
![]()
어제 뉴욕타임스에는 Lord of the rings 왕의 귀환 편의 제작에 도움을 준 분들(credits)과 관련해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자막으로 흐르는 CREDITS에서 주요 스탭들이 소개되는데 5분, 그리고 그 다음에 말 분장사와 같은 덜 중요한 사람들의 이름이 3분 정도 더 나오고, 약 8분 경에 wrangler manager등이 소개되고, 마침내 9분 33초가 지나서야 이 credits도 막을 내렸다고 한다.
이때까지 극장에 남아 있을 사람이 있을까? 글쎄 뉴욕타임스 기자는 한 명의 관객을 발견했다고 한다. ^ ^
영화 credits에 관련한 기록들:
the original "Star Wars" in 1977 listed 143 people in its credits;
In 1999, "The Matrix" listed 551;
Last year, "The Lord of the Rings: The Two Towers" listed 559 names;
"Finding Nemo" listed 642,
The third installment of the "Matrix" series had 701.
Posted by gatorlog at 10:50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January 13, 2004
이혼율의 진실
사실 지난 해 우리나라 기자들의 보도 중에 가장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 보도를 꼽으라면 나는 거두절미하고 이혼율에 관한 보도를 꼽을 것이다. 바로 한국 이혼율 50% 시대, 더 자극적인 문구는 2쌍 중 한쌍이 이혼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보도가 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하면 우리 머리속에는 모두 이혼한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어디 보자. 고현정부터 시작해서....내 아는 친구...S, Z, 우리 직장 상사 L까지...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네'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 메이저 블로그에 이영태 기자가 올린 글, 이혼율의 진실과 거짓말은 정말 상주고 싶을 만큼 훌륭한 글이다. 먼저 이혼율 계산의 문제점을 보자.
지난해 2002년 결혼을 한 신혼부부가 30만6,000쌍이었는데, 이혼 부부가 14만5,000쌍이었으니 이혼율이 47.4%라는 것이죠. 분모에 전체 결혼 부부를 놓는 것이 아니라 새로 결혼한 부부를 놓다보니 이런 오류가 발생한 겁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어느 해 결혼 인구가 급격히 줄면 이혼율이 100%가 넘는 기이한 일도 발생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왜 통계청은 이런 문제를 모르고 있나? 계속해서 이영태 기자의 글을 보자...
질문: 이혼율은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결혼 상태에 있는 부부 인구 중에서 이혼한 쌍이 몇 쌍인지를 따져 계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통계청: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유배우자 인구를 정확히 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5년 마다 한번씩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유배우자 인구가 집계되기는 하지만 오차가 심해 통계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데다 이혼자수가 나오는 해와 기준년도를 일치시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 그렇다면 알고도 글을 쓴 기자들과 초등학교 산수만 알아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런 이혼율에 대한 기사를 보고도 문제를 시정하지 않으려는 통계청 직원들은 모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결국, 에이...이런 스발!! 하고 욕나오다가, 그래도 이영태 기자가 계산해 놓은 새로운 이혼율의 수치를 보고, 아직은 희망이 있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겠지요? 기자가 나서서 이혼율을 한번 아주 대강이라도 추산해 보겠습니다. 적어도 이혼율 47%라는 통계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가장 최근인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유배우자 인구(통계학적으로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유일한 통계 자료이니까.)는 2,202만3,805명. 여기에 2001년 혼인 건수가 32만건이고 이혼건수가 13만5,000건이라니 18만5,000건, 즉 37만명의 유배우자가 1년간 순증했겠지요. 그래서 2002년 현재 유배우자 수를 대략 2,240만명으로 놓고 이중 이혼건수가 14만5,324명, 약 30만명이라고 하니 30만명/2,240만명으로 계산을 해보면 1.34% 정도가 나오네요. 2002년 한 해 100쌍의 부부 중 1.34쌍의 부부가 이혼을 했다면 ‘2쌍 중 1쌍이 이혼했다’는 통계보다는 그래도 한결 근접해 보이지 않으실는지....
물론 이렇게 계산하는 것도 약간 문제가 있지요? 왜냐하면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하다 보면,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없는 중년 이후 부터 노년층까지의 유배우자를 모두 포함하기에, 실질 이혼율은 무척 낮아지는 오류를 만들 위험이 있지요. 해결책은? 수학을 잘하는 Bobmber0 에게 물어야겠군요. ^ ^ 아무래도 가중치를 두고 계산하는 방법이 있을 듯 합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3:52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5)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January 14, 2004
Spiral Jetty
Now Playing on iTunes:
소금인형 from Confession by 안치환
유타 주에 있는 Salt Lake City는 우리에게는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는 도시다. Mormon교의 중심인 이곳은 왜 소금 호수 도시라고 불려질까? 오늘 자 뉴욕타임스를 보니까 이 도시에
삼십여년 전 Robert Smithson이라는 예술가가 바위를 이용해 Great Salt Lake속에 만들었던 Spiral Jetty라는 조각물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feature기사가 실렸다. 물이 차 있을 때도, 위에 나선형의 Jetty가 드러나 보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물에 계속 잠식당하고 있어, 후손들을 위해 바위를 더 가져와야 하는가, 아니면 원래 예술가의 작품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심중이라고 한다. (결론은 아무래도 원작 그대로 둔다는 쪽으로 갈 듯).
여하간 가뭄으로 모두 드러난 이 Spiral Jetty라는 바위 조각품이 하얀 소금으로 뒤덮여 있는 사진을 보면, 왜 Salt Lake City가 소금 호수의 도시로 불리는가를 알 수 있다.
사진은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에서 가져옴: 슬라이드 쇼를 꼭 보시길......
Posted by gatorlog at 02:01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15, 2004
Free Expression in a cyberspace city? 1
U of Michigan 교수 Peter Ludlow는 그가 기록하는 블로그 The Alphaville Herald에 Alphaville에서 일어나는 10대들의 매춘 행위들을 폭로했다. (대표적 기사:Whoring in Alphaville). Ludlow교수는 이 탐사보도가 있은 후, 그는 Alphaville에서 추방당했고 Alphaville에 있는 그의 자산이 몰수당했으며 심지어 그의 애완 고양이 두마리도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사실 Alphaville은 진짜 도시가 아닌 사이버 상의 가상 도시다. 이른바 The Sims Online이라는 인터넷 롤 플레잉 게임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가상 도시일 뿐이다. 실제 Ludlow교수가 주장하는 자산은 그 게임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 이런 자산들은 온라인의 가상 통화를 통해 거래되고 Ebay같은 경매 사이트에서도 Ludlow교수의 희귀종 고양이가 25달러에 거래되지만....).
하지만 현재 이 이슈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고, 오늘 자 뉴욕 타임스 1면에도 보도가 되었다.
![]()
NYT에 실린 사진을 캡쳐함.
이 이슈에 대해 다음 번에 다시 논의를 할 것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기사를 참조하시길....
Posted by gatorlog at 03:33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January 16, 2004
Free expression in a cyberspace city 2
사실 EverQuest나 Sims Online혹은 리니지같은 인기있는 다자 롤 플레잉 게임(multiplayer role-playing game)을 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환상과 현실의 심리적 경계는 종종 흐려진다고 한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은 온라인 게임에 사용하는 사이버 머니가 실제 시장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는데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Ludlow교수는 쉽게 돈을 구할 수 없는 십대들이 가상공간에서 성을 파는 행위를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게임에 참여하는 기본 동기가 환타지의 세계에 빠져드는데 있는 이런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에서, 현실 세계의 실존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가상 세계의 행위들을 용인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논란이 있어 왔다. 예를 들어 EverQuest에서 다른 등장인물을 죽이는 십대 소년들의 행위를 인정한다면, Sims Online에서 십대 소녀들이 섹스 채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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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s Online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Ludlow교수의 계정 박탈과 자산 몰수는 선별적이었다는데 동의를 하고 있지만, 이 온라인 게임의 적극적 참여자 중에는 Ludlow교수가 보도한 내용이 믿을만한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Ludlow교수가 언급한 (사이버 머니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인) 17세 게임 플레이어가 신뢰할 수 없는 정보원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심지어 Ludlow 교수의 비판자들도 심스 온라인 게임이 10대들에게 가져올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입을 틀어 막는 행위는 이 가상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하지만 Ludlow교수가 Sims Online의 소유권자인 Electronic Arts회사가 자신의 탐사보도에 대한 보복으로 계정을 몰수했다는 증거를 내밀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그가 미국 수정 헌법 의해 보호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소송으로 갈 수는 없다는게 법학자들의 의견이다. 왜냐하면 전화 회사와는 달리 게임 회사는 일종의 사적 클럽으로 볼 수 있고, 이런 사적 클럽에서는 멤버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 세계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행위들이 현실세계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될수록, 이를 재단하는 사이버상의 법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사이버 상의 아바타를 강간하는 행위라든가, 이번 경우처럼 사이버 상의 자산을 몰수하는 행위는 어쩌면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유사 행위만큼 당사자들에게 정신적 물리적, 그리고 물질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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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7, 2004
Bush 와 그의 똘마니들: 欺瞞의 高手들
오늘 미국 정가의 최대 화제는 아무래도 Al Gore가 맨하탄의 한 극장에서 했던 연설이었다. 혹한의 추위에도 환경 문제와 부시 정권의 정책 비판에 대한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Bob Herbert가 연설장 스케치와 연설 요약을 했다. 길게 이어지는 기립 박수 속에서, "다수표를 얻고도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비운의 정치인" Al Gore는 왜 부시와 그의 똘마니들이 기만(欺瞞)의 고수(高手)들로 불리는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다. (Gatorlog관련 글: Bush The Misleader)
"In preparing this series of speeches, I have noticed a troubling pattern that characterizes the Bush-Cheney administration's approach to almost all issues. In almost every policy area, the administration's consistent goal has been to eliminate any constraints on their exercise of raw power, whether by law, regulation, alliance or treaty. And in the process, they have in each case caused America to be seen by the other nations of the world as showing disdain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y devise their policies with as much secrecy as possible," he said, "and in close cooperation with the most powerful special interests that have a monetary stake in what happens. In each case, the public interest is not only ignored, but actively undermined. In each case, they devote considerable attention to a clever strategy of deception that appears designed to prevent the American people from discerning what it is they are actually doing".....
"Indeed, they often use Orwellian language to disguise their true purposes. For example, a policy that opens national forests to destructive logging of old-growth trees is labeled Healthy Forest Initiative. A policy that vastly increases the amount of pollution that can be dumped into the air is called the Clear Skies Initiative." 뉴욕타임스 op-ed Masters of Deception에서 인용
Posted by gatorlog at 12:29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18, 2004
우리나라 표준시
우리나라는 동경 127.5도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표준시를 왜놈들의 땅을 지나는 동경 135도 선에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재 민주당 의장인 조순형(趙舜衡) 의원은 1999년에 국운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표준시 원상회복 입법을 추진한 적이 있다.
대한제국때 우리나라는 표준자오선을 동경 127도 30분을 사용했으나 왜놈들이 식민지 통치의 편의를 위해 동경 135도로 바꾸었다"면서 "한때 127도 30분으로 원상회복됐으나 지난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35도로 변경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용: 조순형 의원 via 국운회복운동
사진 출처: 여기
사실 54년 이승만 정권 때 다시 우리나라 표준시를 찾았지만, 친일파 박정희의 국가 재건회의는 61년 다시 왜놈들의 표준시를 승계했고 이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요즘 친일 인명 사전 편찬 운동에 국민적 힘이 모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다시 우리 표준시를 찾는 운동도 병행하자...독도로 시비를 거는 왜놈들에게 분노하는 만큼, "왜놈들 땅에 우리의 삶의 기준을 맞추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도 분노를 느꼈으면 한다.
다른 읽을 거리: 우리의 표준시가 제멋대로 뒤바뀌어진 치욕의 역사
Posted by gatorlog at 12:57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January 19, 2004
Typepad테스트 중: 그리고 MT Blacklist Plugin
기술적 문제로 삽질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MT support forum과 google검색을 통해 기술적 문제로 씨름 중이다. 일단 두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 gatorlog는 금방이라도 오늘 시험 사용 (30 day trial test) 신청한 TypePad로 옮겨갈 것이다. [Gatorlog 관련 글: 8월 8일 Six Apart에서 배울 점)
1) 도메인 mapping: 현재 Typepad는 yourname.blogs.com이나 yourname.typepad.com 두가지 형태의 서브 도메인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른바 domain mapping을 통해 yournam.com 형태로 자신만의 계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이용할 수 있다. 일단 http://gatorlog.blogs.com으로 신청한 타입패드의 서브 도메인을 gatorlog.com으로 바꿀 수 있다면, 옮겨갈 것이다.
2) 그런데 이것은 내 계정이 GoDaddy에 있으므로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그동안 MT에서 작성했던 gatorlog를 어떻게 typepad로 옮길 수 있는가이다. 다행히 gatorlog는 utf-8인코딩을 하기 때문에, Typepad와 맞지만, 어떻게 typepad에서 코멘트가 딸린 모든 데이터를 불러 올수 있는가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import를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면 코멘트 남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TypePad Mapping 포럼 글타래: from Typepad User Group
Moving from MT to TypePad:
Technoiva.typepad.com: 그냥 옮기는게 쉬었다는 말만 있음
Noist to signal: moving a blog: 실패 경험기 & Redirecting your mt permalinks to typepad추천
Redirecting Your MovableType Permalinks to TypePad
: 이사가는 것보다는 서치엔진에서 기존 MT링크를 어떻게 타입패드로 돌리는가를 설명함.
TypePad User Group
Typepad Resources
그리고 오늘 내 리서치 블로그의 모든 엔트리에 comment spam폭탄이 날아 들었다. 74개나 되는 코멘트 스팸을 어떻게 지워야 할 지 엄두가 안나서 지금 방치하고 있다. 이런 잡것이 있나....
Comment Spam에 관한 Six Log의 정보 사이트
update:방금 포스팅 하다가, 호찬님의 메일로 MT-Blacklist 플러그 인 정보를 받았습니다...사용해 보고 결과를 내일 포스팅 하지요...
MT-blakclist User Guide
Posted by gatorlog at 07:32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MT-Blacklist Plugin test 결과....
호찬님이 메일로 소개해 주신 Mt-Blacklist Plugin으로 75개 되는 코멘트 스팸을 일순간에 날려 버렸습니다. 혹시 이 plugin의 위력을 알아 보기 위해 몇 십개 되는 코멘트 스팸 받고 싶으신 분은 없겠지요? ^ _ ^ 아주 지울 일이 막막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지우고 나니, 이제 은근히 코멘트 스팸이 기다려 지는군요...오기만 해 봐라...이 놈들....^^
어쨌거나 몇 백개의 코멘트 스패머를 일순간에 등록시킴은 물론이고, 지우려면 한나절 이상 걸릴 뻔했던 코멘트 스팸을 일격에 날려서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겠군요. 마틴 루터 킹 휴일이라 간만에 새벽까지 삽질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삽질이 뭐야??? 남들이 그렇게 말하길래 나도 이렇게 써 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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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atorlog at 08:09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5)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30분 단위의 표준시는 불편하다? 바꾸는 것은 무모하다?
일편단심님께서 트랙백으로 표준시에 대한 논의를 연장해 주셨군요. 먼저 일편단심님의 이견은 135도에 맞춰 쓴다고 해도, 우리 자존심이 뭉개지는 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쓰는 우리의 표준시를 애초에 우리가 정한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이 식민 통치를 위해 임의로 자기네 땅에 우리 삶의 기준을 맞춘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 경우와 다릅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승만 정권이 다시 원상복귀했던 것을 다시 박정희 군부 독재 때 왜 다시 돌렸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이슈가 되지 않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바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그룹들과 언론들이 친일파의 후손들이었기 때문 아닙니까? View image
모두 아시겠지만, Movable Type이나 PM등의 블로그 툴을 쓰시는 분들은 Time Zone설정 옵션을 보실 것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30분대의 표준 시간대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참고: 세계 각국의 표준시).
한국 천문 연구원의 성언창 연구원은 "네팔과 같은 작은 나라도 자기네 상공을 통과하는 본초자오선을 정하기 위하여 15분대의 차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표준시에 관한 논쟁은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해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봅시다.
표준시가 세계시에 대하여 1시간 간격으로 떨어지는 것이 편리하다는 생각으로 1시간 간격이 좋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한편으로 본초 자오선이 우리의 상공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도 의미 있는 것일 겁니다. 실제로 여러 나라를 살펴보면 30분 혹은 15분으로 된 나라도 많습니다. 이유는 본초 자오선이 자국의 하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죠. 이런 입장으로 볼 때 개인적으로는 127.5도를 본초 자오선으로 정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보면 알겠지만 시간대가 바뀌는 것에 의한 혼란이 생각만큼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위와 같이 일본과의 무역에서의 혼란은 실제보다 부풀려진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관공서가 09:00에 시작하는데 우리의 경우 08:30에 근무를 시작하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각종 기록의 비교 문제 : 만약 우리가 127.5도로 환원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역사에서 30분이 생기게 되겠지요. 즉 2001년부터 본초자오선을 변경하면 우리는 옛 시간에서 2000년 12월 31일이 30분 길어져 2001년 0:30분이 새로운 표준시는 2001년 1월 1일 00:00시가 될 겁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88올림픽 때 서머타임을 사용해 보았으나 별 문제가 없었던 것과 마차가지로 역사상 이와 비슷하게 역을 바꿈으로서 생기는 공백이 아주 많았습니다. 다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표준시는 엄격히 이야기하면 항상 30분간의 '서머타임'제를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경제 활동에 유리한 점은 있습니다. 출처: 한국 표준시 변경 논쟁
세계화 시대에 호환성을 강조해야지, 왜 고립된 표준을 만드냐는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아주 우둔한 질문을 하고 싶다: 왜놈들이 우리 정기(精氣)를 누르기 위해 주요 산 꼭대기에 박아 놓은 정을 왜 우리는 빼내야 하는가?
자존심만 가지고 바꾸는 것은 무모하다라는 의견도 있던데, 무모하다고 한 배경을 모르겠군요. 미국에 살면서 일년에 반은 한국과 13시간 차이나게 맞춰야 하고, 나머지 반은 14시간, 그리고 중부나 서부로 컨퍼런스를 갈 때면 또 다시 시간을 바꾸며 살아야 하지만 나는 이런게 무모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미국 경제 대외 종속도가 굉장히 심한 우리나라지만, 미국 시간대가 반년만다 바뀐다고 교역에 차질을 빚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제 생각에는 화폐 단위를 줄이기 위한 디노미네이션에 비하면 표준시를 30분 당기는 문제는 별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Posted by gatorlog at 09:09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21, 2004
미국 부자들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Now Playing on iTunes칵테일 사랑 from the album 마로니에 the best by 마로니에
미국 구세군이 15억 달러 기부를 받았다는 월스트리트 저널 특종 보도가 뉴욕타임스로 다시 옮겨와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군요. 15억원이 아니고 15억 달러입니다. 그러니까 15억에다 1200원을 곱해야 합니다. 이 돈은 미국 최대 규모의 비영리 기구인 구세군이 2002년 전체 받은 기부를 훨씬 뛰어넘는 돈이라고 합니다. 사상 최대의 단일 기부를 한 사람은 맥도널드(McDonald's) 설립자의 부인인 Joan B. Kroc여사인데, 작년 가을 유언으로 이 막대한 기부를 남겼다는군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미국 부자들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는데, 역시 이번 기부를 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혹시 부자들이 그런 것 남기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분이 있다면, 우리나라 부자들, 특히 족벌 대기업 사주들의 불법 변칙 상속 사례를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자들이 기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모두 사회적 대의 명분을 위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막대한 돈을 사회에 투자할 때는 기부자들이 그 조직의 사명(mission)에 큰 공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번 기부가 화제가 되고, 좋은 일은 분명하지만,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안그래도 잘 나가는 비영리 조직 (Nonprofit organizaiton)이 더욱 비대해지고 관료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9/11 이후 쏟아지는 기부 행렬에서 미국 적십자사가 일부 돈을 비축하려 했던 문제가 터졌다는 점, 그리고 그 때 밝혀진 미국 유명 비영리 조직 CEO가 받는 천문학적인 연봉과 보장(년간 5십만 달러:a half million)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비대해지는 조직의 투명성(accountability)을 잘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감시 기구의 역할이 그만큼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Posted by gatorlog at 12:58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22, 2004
Google Bomb1: 구글 폭탄 [연재 1]
뉴스 생산 과정에서 뉴스가치와 게이트키핑 (gatekeeping) 역할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던 내가 구글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Why? 미디어로서의 웹을 생각할 때, 누가 정보 생산에서 게이트키퍼(gatekeeper)역할을 하고 있는가? 바로 검색 엔진이다. 전통적 게이트키퍼였던 저널리스트들을 통제했던 것은 내적으로는 뉴스가치와 특종이라는 저널리스트적인 가치들이었다. 그리고 외적 힘을 발휘했던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시장의 힘 (market-driven journalism)이나 정치적 힘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정보 생산의 민주화.....긍정적 의미에서...혹은 정보 생산의 저질 하향화...부정적 의미에서...를 가져온 (대중적) 검색엔진을 제어하는 힘은 어디에 있나? 여전히 시장의 힘이다. [관련 글: informercial과 paid inclusion]
그런데 검색엔진의 게이트키핑에 인위적 힘을 가하는 또 다른 세력이 있다. 바로 구글 폭탄을 투척하는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구글 폭탄:google bomb에 관해 재미있는 그리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오늘 NYT의 기사가 나간 이 시점에도 구글에서 Miserable Failure (끔찍한 실패물)라고 검색을 할 때 가장 상위에 검색된 결과는? 바로 백악관의 부시 자서전 인터넷 버전이었다. 부시를 나만큼 끔직히 혐오하는 한 블로거가 구글 폭탄을 투척한 것이다. (나도 거기에 동참하기 위해 링크 하나를 올린 셈이다. ^ ^)
[이글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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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orlog관련 글: Google은 검색 엔진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될 것인가? [시리즈 연재 1-4]
Posted by gatorlog at 09:32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5)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23, 2004
Moving and Domain Mapping 1
PM에서 MT로 이사[ Gatorlog관련 글: 한달여 만에]한 지 꼭 6개월 만에 또 짐을 싸들고 타입패트 호스팅으로 이사를 했다. Pmachine에서 Movable Type으로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Kung-Log였고 아직도 Kung-Log을 애용하지만, 타입패드를 지원하는 Kung-Log의 후속타 Ecto가 나온 뒤로 [gatorlog 관련 글: Ecto테스트 중], 한걸음 더 진화된 미디어 형식(Typepad)에 굴복한 셈이다. 그리고 또 거기에는 앞으로 블로그 세계에서 Typepad는 가장 선도적인 블로깅 툴, 그리고 블로깅 호스트 업체로 성장할 것이라는 100%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1월 22일 현재 Gatorlog.com은 Typepad 기반을 둔 블로그로 가기 위해 잠시 문을 닫고 있다. 사실 문을 닫은 것은 아니고, Typepad는 기본적으로 Typepad.com아래 서브 도메인 형식으로 블로그를 유치하기 때문에, gatorlog.com이라는 독자적인 도메인을 사용하려면 도메인 매핑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실 이런 장벽이 타입패트 초창기에 바로 이쪽으로 옮겨 오는 것을 꺼린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Movable Type의 버전 업과 때를 같이해, 큰 맘을 먹고 이사를 감행했다. Typepad기술팀의 Brenna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사짐 옮기는데 엄청 고생했을 뻔 했다. 일단은 Typepad에서 importing을 하는데 애를 먹었다.(gatorlog관련 글: Typepad테스트중). 모두들 importing이 쉽다고만 적어놓았지 구체적인 방법을 기술한 사이트는 전무했다. Typepad매뉴얼에 약간 문제가 있었다. 사실 MT에서 Typepad로 임포팅 하는 것은 정말 쉬운 문제다. MT 컨트롤 패널에 먼저 들어가서 제일 하단의 importing from gatorlog.com을 클릭한 후, 브라우저에서 view에서 소스 (source) 보기를 누른다. 그리고 이걸 txt파일로 저장한다. 이 과정이 Typepad매뉴얼에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 내 경우는 source view를 클릭했을 때 사파리 브라우저가 얼어버리는 문제가 생겨, 결국 Brenna가 내 control panel에 들어가 이 importing과정을 대신 해 주었다....(thank you, Brenna!!).
어쨌거나 importing한 후, 타입패드의 내 블로그를 보니, 컨트롤 패널에서는 모든 엔트리와 코멘트, 트랙백이 보였는데, 블로그 자체에서는 그게 안 보였다. 결국 importing을 한 후, 타입패트 컨트롤 패널에서 다시 republishing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Movable Type에서 rebuild을 해야만 블로그 변동 사항이 완전 반영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어쨌거나 이걸 한 후 보니, 모든 엔트리와 코멘트, 트랙백이 똑같이 옮겨와 있었다. 만세......
그 다음은 도메인 매핑을 해야 했다. Everything Typepad에 나온 도메인 매핑 설명을 읽어 보니, GoDaddy에 도메인을 가진 내 경우는 도메인 매핑이 쉬울 듯 보였다...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내 도메인은 GoDaddy에서 신청한 게 맞지만, 내 gatorlog.com을 호스팅 한 업체는 달랐다. 그런데 이 GoDaddy라는 업체는 자기네들에 도메인을 파킹한 경우나, 아니면 자기네 서버가 호스팅 하는 웹 사이트만 Advancded DNS setting 을 허용한다는 게 아닌가?
이런 제기럴....쩝쩝...할 수 없이 Go Daddy에 도메인 파킹을 신청했다...이틀이 걸린다고 한다....그동안 gatorlog.com은 go daddy.com의 gatorlog.com: coming soon과 회사 광고밖에 볼 수 없었다.....[다음 번에 계속]
참고로 할 웹페이지들:
Domain Mapping 성공 경험기
How will domain mapping work?
domain mapping Questions from Typepad User Group
Domain mapping된 Typepad웹로그 예
mad about Madrid
Marketing Tom
Posted by gatorlog at 06:02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25, 2004
新粧開業: Gatorlog.com 세번째 이사를 마치며
드디어 오랜 전부터 마음만 먹고 있던 Typepad로의 이전을 마쳤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엊그제 포스팅했던 Moving and Domain Mapping을 참고해 주시고요. Domain mapping은 설명에 적힌 대로 몇 가지 스텝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도메인 매핑이 반영되기까지는 24-48시간이라고 했지만, 제 경우는 3시간 안에 매핑이 된 듯 합니다.
아직 문제는 있네요. 서버가 바뀌었기에 예전 엔트리 대부분 경우, 이미지 파일 자리가 깨져 보일 겁니다. 이미지 파일이 보이는 경우는 어제 조금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서 한 번에 해결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새로운 포스팅을 할 때, 한 개씩 그림을 다시 이어주는 "삽질"이 필요할 듯 하군요. ^^^ ...어쨌거나 다행인 것은 기존 엔트리와 코멘트, 그리고 트랙백이 무사히 다 옮겨졌다는 겁니다.
지긋지긋한 이사를 마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 바닥에도 누가 포장이사 도맡아 해 줄 사람이 있으면 ..... MT, PM, TypePad, B2, Nucleus모든 블로깅 툴에 능하신 분들은 오늘부터 포장이사 광고 뿌려 보세요......"MT, B2, NuCleus에서 Typepad로 포장 이사 전문" !!!! 어쨌거나 이렇게 삽질을 많이 해 댔으니, 어찌 블로그를 중단할 수 있겠습니까? 뿌린 시간이 "아까버서....." (<아까워서)
Posted by gatorlog at 04:52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8)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26, 2004
새해 들어 받은 가장 좋은 뉴스
드디어 신한 은행에서 국내 최초로 리눅스, 매킨토시 사용자의 인터넷 뱅킹을 지원해 주겠다는 반가운 뉴스를 Ednn.net에서 보았습니다. freebank.org에서 펼쳤던 캠페인에 동참한 적이 있는데, 저 역시 신한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바꾸고 프리뱅크에 약정한 금액을 신한은행으로 예치하렵니다. ^^ (뭐 저같은 영세민이 주거래 은행을 바꾼다고 하면 지나가는 소도 웃겠지만...크 크 크....; 혹시 아거가 약정한 금액을 찾아보려고 프리뱅크에 가보는 분은 없겠지요? ^^ )
한편 프리뱅크는 매킨토시와 리눅스에서 인터넷 뱅킹을 구현하는 은행에 대해, 회원들로부터 예금 약속을 받아 이를 전액 해당 은행에 예치키로 했다. 25일 현재 예약금은 180억원을 넘어섰으며, 예약자가 2160여명에 이른다. (Ednn.net에서 인용)
Posted by gatorlog at 02:24 A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5)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Google Bomb2 [구글 폭탄2]
이 글은 며칠 전 썼던 구글 폭탄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첫번째 구글 폭탄은 언제 터졌을까? 구글 역사가들 (^^)의 증언에 따르면 1999년 가을에 사람들이 사탄보다 더 한 악마("more evil than Satan himself")라고 구글링(googling)을 했을 때, 나온 검색 결과가 첫번째 터진 구글 폭탄이라고 한다 (뉴욕타임스 참조). 검색 결과는? 바로 Microsoft였다. 안그래도 구글 경영진과 스태프들의 반 MS경향을 알고 있던 MS사는 구글측이 고의로 MS사를 연결시켰다고 항의하고 나섰다. 하지만 구글 측의 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구글 시스템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탄보다 더한 악마라는 단어에 걸린 링크가 MS사를 많이 가르키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같은 논리로 구글측은 "Miserable Failure (끔찍한 실패물)"로 부시의 자서전이 걸린 것 역시 현실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실은 종종 외부 활동가들, 혹은 의도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최근 우리나라 블로거 사이에서도 구글 폭탄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살자로 전두환을 링크하자는 구글 폭탄 계획이다. 또 대장금의 인기 속에 최상궁 (=최병렬)을 입력하면 "대장금과 정치판"이라는 Holloblog의 블로그 엔트리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구글 폭탄 (Google Bomb), 그리고 이렇게 폭탄을 투척하는 행위를 구글 폭탄 던지기 (Google Bombing)이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누구인가?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스탠포드 컴퓨터 학도였고, 현재 열렬한 블로거인 Adam Mathes라고 한다. 실제로 Adam Mathes의 웹에 들어가면, 자신이 Google Bombing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던 최초의 아티클을 소개하고 있다. 한때 구글사에 취업 인터뷰를 갔다가 물을 먹었던 경험이 있던 그가 만들어 낸 "구글 폭탄"이라는 신조어는 일단 구글의 게이트키핑 과정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도적 행위를 설명하는 용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 주제는 다음에 이어집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6:01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A Cub & his Mom: Slide Show
제가 아끼는 아이들입니다. :)
- thumbnail을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 Ecto를 이용한 그림 올리기(upload)의 여러 기능을 시험할 겸 올려 봤습니다.
- 크기에 따라 곰을 분류하면, polar bear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brown bear, 그리고 미국산 American balck bear가 가장 작습니다. 아참 반달 곰은? ^^
-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폴라 베어가 화씨 마이너스 50도 아래서 살 수 있는 적응력에 대해 연구했는데, 이 북극 곰은 두 겹의 털로 둘러싸여 있다는군요.
- 이 아래 맨 오른쪽 사진을 보면서 왜 나는 라이언 킹에서 스카와 심바가 싸우는 장면이 떠오르는걸까요?


출처: NYT 슬라이드 쇼
Posted by gatorlog at 10:43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6)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27, 2004
List Comment for Typepad
오늘 새로 추가된 타입패드 List Comment기능으로 타입패드 사용자들은
코멘트 스팸 (comment spam)이 올 경우, MT-Blacklist plugin과 같은 플러그 인 없이도, 대량으로 살포된 코멘트를 ip address나 이름으로 걸러내서(filtering) 순식간에 쓰레기통으로 버릴 수 있게 되었군요. 물론 이 list comment 기능은 코멘트 스팸(comment spam)을 걸러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기존에 코멘트 썼던 사람들을 이름별로 정렬해서 편집하는데도 유용할 듯 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오래 전 코멘트라 하더라도 쉽게 찾아내서 다시 편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편리합니다.
Bravo!

예전에 스팸과의 전쟁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그때 스피카님이 단 코멘트와 제 답글을 보면, 스팸성 코멘트나 트랙백이 걸릴 날이 오지 않겠냐고 우스개 소리를 주고 받은 적이 있는데, 이제는 이게 엄연히 현실이 되었군요. 여하간 블로그 개발자 분들의 머리속에 코멘트 스팸 filtering기능 지원은 이제 최우선 순위 항목으로 올라가야 할 듯 합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7:17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4)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George Soros vs. Bush
한 때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폴란드 출신의 억만 장자인 조지 소로스, 그의 최근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재단 open Society & Soros Foundation을 통해 민주화와 열린 사회라는 대의 명분을 위해 지금까지 5 billion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기부해왔던 자선 사업가 조지 소로스는 지금부터는 단 한가지 목표가 있다고 한다. 바로 2004년 조시 부시와 그의 일파들 (miserable failure: Google bomb)을 백악관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소로스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조지 부시 일파를 몰아내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a matter of life and death" )라고까지 비장한 각오를 밝히고 있다. "부시 일파 아래 있는 미국은 세계에 위험한 존재"라고 신랄한 비판을 하는 그는 "내 입이 움직이는 곳에 내 돈을 쏟아 붇겠다"고 말함으로써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수많은 돈을 쓸 것임을 암시했다.
어제 뉴욕타임스는 그가 최근 발간한 The Bubble of American Supremacy: Correcting the misuse of American Power라는 책의 제 1장 전체를 게재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철학있고 신념있는 기업인, 그리고 자선사업가가 나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gatorlog at 08:27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4)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29, 2004
Unsportsmanlike Conduct of CBS
미국 스포츠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주는 수퍼볼 시즌이 오면, 마케팅과 광고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은 경기 자체보다, 올해는 어떤 기발한 광고가 나올 것인가에 더 촉각을 세운다. 당연히 오늘 자 뉴욕타임스에도 이번 수퍼 볼 광고 이야기가 비즈니스 탑 스토리를 장식했다.
그런데 어제 MoveOn.Org라는 진보적 단체는 이번 슈퍼볼 과 관련해 이슈 광고 하나를 뉴욕타임스에 실었다. (광고는 pdf파일로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스포츠맨답지 않은 CBS의 행위"라는 카피를 단 이슈 광고: Conduct에서 사람 눈 모양을 한 O자는 CBS의 로고이다.
이슈가 되는 것은 CBS가 MoveOn.ORg가 내 보내려고 하는 정치 (이슈) 광고 하나를 CBS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30초 짜리 광고를 내 보는데 올해는 2백 30만 달러($2.3million)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지만, MoveOn.Org는 기꺼이 이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는데도 CBS는 이 광고를 실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이유는?
바로 이 광고가 부시 일파의 적자 경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부시에게 부정적인 광고기 때문에 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CBS측은 이 광고가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MoveOn.Org의 주장은 그렇다면 술, 담배 장사, 그리고 심지어 벌거벗은 남녀가 성기부분만 종이로 가리고 나와 역겨움을 더하는 전화 광고는 왜 논란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싣느냐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다.
MoveOn.Org는 이런 조치가 미 수정 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현재 CBS나 FOX의 수지맞는 장사를 독과점법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부시가 반대를 해서 CBS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척동자도 이제 왜 CBS가 왜 이 광고를 거절하는 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광고는 MoveOn.ORg와 www.bushin30seconds.org에서 볼 수 있다. MoveOn.Org를 지원하는 큰 세력 중 한 명이 엊그제 언급한 조지 소르스다. 지난 월요일 소로스는 이 단체에 $5 million을 기부한 바 있다.
오늘자 뉴욕타임스 사설 George Bush, In Denial은 조지 부시가 이라크 전의 명분으로 framing했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라는 거짓말이, 이미 현재까지 진행된 85%의 실사에서 허구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시가 엊그저께 State of Union연설에서 또 국민을 상대로 이런 기만적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를 따지고 있다. 부시라는 인간에 대해 더 알면 알수록 정말 나쁜 * 이라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gatorlog at 04:17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Feel so Good [lastsong 테스트]
모이기 힘들었던 5분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5명의 위원들은 좋은 제안과 덕담을 해 주었다. 이런 자리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script에 따른 진행과는 달리, 유머도 많이 오갔고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아이라 선생이 어니언스(low credibility source)에서 본 Rush Limbaugh 예를 들면서 source memory forgetting이 중요하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1시간 반 후, 퍼박의 허그와 I'm proud of...등의 의례적인 script에 따른 칭찬이 있었다. 그 와중에 머리속은 또 다른 생각들으로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lastsong을 다시 시작해 볼까 합니다....
Posted by gatorlog at 04:40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3)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January 30, 2004
Toy Story 3? Steve Jobs, CEO of Disney?
오늘 장안의 화제는 Pixar와 Disney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군요. 일단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의아해 할 분들을 위해 간략한 배경을 정리 해보겠습니다. 애플 컴퓨터의 스타 CEO Steve Jobs스티브 잡스가 Pixar Animation을 만들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그런데 애초 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 때는 Pixar는 제작외의 다른 부분, 이를테면 영화의 홍보 및 극장 상영, 그리고 분배를 도와 줄 대형 회사의 도움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Jobs는 약간은 불리한 조건으로 Disney와 12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Disney의 유통망과 만화 영화 시장에서 경험을 이용한다는 것이었지요. 조건은 박스 오피스의 12.5% 수익을 디즈니가 갖고, 나머지 수입 (비디오 등)에서는 절반을 디즈니가 갖는다는 것이었지요. 이것만이 아닙니다. 영화의 판권이 디즈니로 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현재 토이 스토리나 finding nemo같은 애니메이션의 판권은 디즈니에 있습니다.
그런데 토이스토리에서 시작한 픽사는 만든 영화마다 큰 대박을 터뜨리고 현재 픽사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 세계의 브랜드 가치 1위로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12년 계약이 내년으로 만료되고, 월가의 관심은 디즈니와 픽사가 2005년 이후에도 협약을 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2년전의 픽사와 지금 픽사는 위상이 틀립니다. 이제 픽사 에니메이션 스튜디오는 돈도 있고, 명성도 있고.,...그래서 애플 컴퓨터 CEO 스티브 잡스는 12년전 맺은 계약보다 훨씬 더 배짱을 내밀 수 있게 되었던 것이죠. 그 중 스티브 잡스가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은 판권입니다. 판권만은 이번에는 찾아 오겠다는 것인데, 디즈니 CEO Eisner는 여전히 배짱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Steve Jobs는 관계를 끝내겠다고 전화 통보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 비즈니스계의 여론은? 디즈니의 아이즈너 회장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려 있습니다. 안 그래도 내놓는 만화 영화마다 흥행 실패로 탄핵 위기에 있는데, Pixar와의 수지 맞는 사업 동반 관계가 끊어지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현재 월가 분석가들은 디즈니 주식에 대해 "매도(sell)"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가지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나오는군요. 뉴욕타임스 보도이니까 신빙성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지요..
- 월트 디즈니의 거대한 주주들은 현재 CEO Eisner를 몰아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물망에 오르는 CEO는? 바로 애플 컴퓨터 회장 스티브 잡스입니다. "One film executive suggested that Mr. Jobs could now be considered a candidate to run Disney if indeed Mr. Eisner ever left."
- Eisner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그동안 히트했던 Pixar 필름들의 sequel들을 만들 지 모릅니다. 이 경우 Toy Story III 이나 Finding Nemo II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 경우는 Pixar와 디즈니는 원수 관계가 되겠지요....
lastsong: Sophisticated Lady from the album Homage To Duke by Dave Grusin
Posted by gatorlog at 02:44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4)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War Against Misspelling
한국일보 박은주 문화부 기자 블로그에서 오타와의 전쟁이란 글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여기자가 썼기에 망정이지 .......남기자가 썼으면 문제가 됐을 수도 있겠다. 여하간 입담이 걸죽한 박은주 기자다...^^
내 기억은 다시 엊그저께 뉴욕타임스 1면에서 읽었던 eBay에서 오타에 걸린 물건을 싸게 사들여, 비싸게 되팔아 돈 버는 사람들 이야기로 옮겨간다. 사실 인터넷 전자 상거래 황제 eBay가 수많은 사람들의 경제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 이 feature기사에서 취재한데로 오타로 가격이 잘못 매겨진 상품을 되파는 장사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는 정말 입이 다물어진다....
아참...오늘 자 뉴욕타임스 독자의 편지 (Letters to Editor)보니까, 어떤 사람은 뉴욕 주에 오타를 점검하는 위원회를 만들고 공무원을 임용해야 한다는 우스개 편지를 보냈는데 이게 채택되기도 했다. 혹시 블로그의 영향을 받아 이제 뉴욕타임스같은 권위지에서도 점점 유머스러운 코멘트가 인기를 얻어가는 것은 아닐까? gatorlog.com 오타 점검해 줄 수 있는 분을 공개 모집해 볼까? 이력서 보내주세요....^^
Posted by gatorlog at 10:22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February 02, 2004
A clash of Egos and Business Interests
글쎄...2000년에 AOL의 TimeWarner의 인수합병만큼 거대한 사건은 아니지만, 최근 스티브 잡스의 디즈니와의 결별 선언은 관련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아니 오히려 뉴욕타임스는 정확한 비전에 바탕을 두지 않고 잘못된 전략으로 닷 컴 붐과 닷 컴 몰락을 가져왔던 AOL사례보다, 세계를 선도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을 바탕으로 업계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은 스티브 잡스에게 훨씬 더 주목을 한다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오늘 자 뉴욕타임스는 분석 기사 (Hollywood Mogul Plays by Technology's Rules)를 1면 톱 기사에 올리고 있는데, 몇가지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 일단 지난 주 디즈니와 픽사의 결별을 "Ego와 비즈니스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두 사람의 격돌 (A clash of Egos and Business Interests)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이다. 뉴욕타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전통적인 미디어 거인 (Disney를 지칭)과 미디어 내용과 분배 방식의 변화를 디지털 테코놀로지의 힘에 기대어 바꾸어 온 신흥 기업가들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지칭)간의 힘의 균형에 변화가 온 것(the changing balance of power between the conventional media giants and the entrepreneurs wielding digital technologies that are rapidly changing the way media content is made and distributed"
- 그리고 엊그저께 업계가 내 보냈던 한가지 시나리오...즉 스티브 잡스가 헐리우드의 수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이유는 스티브 잡스는 테크놀로지와 연계되어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osted by gatorlog at 12:24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4)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0)
February 03, 2004
Janet's Boob vs. Moveon.org
오늘 장안의 화제는 Janet Jackson의 한쪽 가슴 노출이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이 사건은 며칠 전에 gatorlog에서도 언급했던 moveon.org의 정치 광고를 거절했던 CBS의 censoring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논쟁거리를 가져온다. [추천 칼럼: Janet's Boob and Moveon.org's Commercial: What's Real Controversy?]
먼저 Janet's boob에 관련된 논란의 핵심을 적어 본다.
- 제일 먼저 누구나 하는 질문; "과연 이 boob의 노출이 사고였나, 아니면 고도로 계산된 마케팅의 검은 손의 작용이었나?" (Was that "on purpose?" or "an accident" ?)
- 만약 계산된 의도적 쇼였다면, 왜 이들은 이런 일을 했을까? (Why would they do that?)
- CBS는 이를 미리 알았을까? 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해 CBS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나?
여론조사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건이 의도적인 계산이 깔린 행위라는 것과, CBS와 이 쇼를 기획한 MTV가 모두 같은 그룹 (Viacom)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CBS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데 다수의 의견이 있는 듯 하다. 미디어 파수견 (watchdog)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indecency rule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여기에 방송을 규제하는 직접적인 힘인 FCC의 의장 Michael Powell은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참고로 Michael Powell은 현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아들이다.[gatorlog관련 글: 코드 인사가 뭐가 문제?]
여기에 관한 내 간략한 생각:
- 이런 깜짝쇼를 하면 뭔가 득이 되는 게 있을까?
- 물론 9천만이 지켜보는 미국인 최대의 축제라는 점을 빼면, 미국 TV에서는 매일 이보다 훨씬 "indecent"한 장면들, 때로는 역겨운 장면들을 볼 수 있다....
- 결국 CBS는 정치광고가 논쟁의 여지가 있다(controversial)는 이유로 30초짜리 부시를 비판하는 광고를 거절했지만, 정말 controversial한 30초 짜리 장면을 내 보내는 자가당착을 범했다.
Posted by gatorlog at 10:54 PM | 코멘트 스팸때문에 코멘트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2) | 트랙백 스팸때문에 트랙백 기능 닫았습니다 (8-24-2005)(1)
February 06, 2004
Gay들의 결혼을 금하는 것은 위헌이다는 판결
이번 대통령 선거 전에 나타난 복병...바로 게이들의 결혼 문제다. 아무래도 이틀 전 미국 매사츄세츠 주 최고법원(supreme court)이 내린 이정표적인 평결 ---게이들과 레즈비언들도 헌법에 의해 결혼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 이 이 이슈에 불을 지피고 있다.

사진은 매사추세츠 최고 법원의 판결 장면
일단 다 아시다시피, 이 문제에 관한 한 공화당은 민주당을 싸잡아 비난할 것이고, 이른바 다수 여론(majority of opinions)과 진보적 정책 (liberal policy)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민주당 후보로서는 이 이슈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닐 게다. 일단 민주당 대권 후보가 될 것 같은 John Kerry는 이 문제에 관해, 자신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