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지의 커버 페이지의 삽화는 아주 가끔 정치 풍자를 하는데, 그때마다 이 풍자물들은 많은 사람들의 토론 혹은 논쟁을 낳는다. 특히 작년에 대선을 얼마 앞두고 이슬람 터번을 쓰고 오사마 빈 라덴의 초상화 아래에 있는 벽난로에서 미국 성조기가 불타는 가운데 부인 미셸과 주먹을 맞부딪히는 (fist bump) 삽화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되자 뉴요커지의 편집장 데이빗 렘닉은 이 삽화가 오바마에 대한 일부 백인들의 잘못된 지각(혹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그림의 제목도 그래서 ‘politics of fear’라고 주장했다. 즉 오바마가 이슬람교도니 애국심이 없니 하는 루머를 퍼뜨리는 정치인들이 사람들의 ‘fear’의 느낌을 악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서점의 진열대에 꽂혀 있는 뉴요커지의 커버를 보고 누가 그런 깊은 뜻을 해석하려고 노력하겠는가? 이 표지를 스쳐 본 사람들중 어떤 사람들은 그와는 반대로 오바마에 대한 잘못된 지각을 강화했을 수가 있다.
계속 문제가 되자 편집장 데이빗 렘닉은 정치풍자의 자유를 강조했고, 또 거기에는 어떤 정파적 이해관계도 결부되지 않음을 강조하며 풍자 삽화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런 전력을 가진 뉴요커지가 오랜만에 다시 정치 풍자를 실었는데 이번에도 오바마의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서 나온 이 삽화는 context를 모른다면 그냥 재밌다고 지나갈 수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지난 번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왕에게 고개를 완전히 숙이고 절을 했던 오바마를 기억하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분명 이 그림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이 분명하다.

오바마가 망하기를 바라는 공화당주의자들이 당시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매주 토요일 정치 칼럼을 쓰는 전 레이건 스피치원고 작성비서 출신의 보수파 저널리스트 페기 누난은 He Can’t Take Another Bow: An icon of a White House that is coming to seem amateurish라는 칼럼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교묘하게 펜대를 굴렸다.
‘위대한 나라’가 자신감있고 강할 때야 예고없이 취한 대통령의 깜짝놀랄만한 꾸벅인사도 우아하게 보일 지 모른다. (하지만 경기후퇴로) 나라가 초조해했을 때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다면 비굴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일본왕에게) 절하는 사진은 꼭 그때문에 iconic한 것만은 아니다. 이 고개숙인 사진들은 현 대통령의 통치에 뭔가 아마추어같고 무능한 것 같다는 정치적 지각이 증가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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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다가 데자뷰의 느낌을 받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