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의 주된 화두인 ‘보상지향의 뇌’의 작용과 ‘예측가능하게 비합리적인’ 경제적 선택 행위를 알아보기 위해 트위터상에서 팔로워들을 상대로 눈에 띄지 않는 실험을 해봤다. 팔로우를 하던 사람을 갑자기 언팔로우 해본 것이다. 물론 나를 잘 알고 나와 오랫동안 관계했던 사람들은 내가 언팔로우해도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기에, 나와 상대가 서로 상대의 실체를 잘 모르는 경우를 대상으로 몇 명을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트위터 공간에서 상당히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분들을 선택했다.
그런데 팔로우와 언팔로우에 있어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행위는 내가 생각했던데로 ‘보복을 곁들인 신뢰의 게임’의 결과대로였다. 일단 두가지 타입의 언팔로우 행위가 있었는데, 첫째는 나를 팔로우했다가 내게서 이에 대한 호혜적 팔로우가 없을 경우 바로 언팔로우하는 경우였다. 두번째는 내가 호혜주의적 팔로우(나를 팔로우한 사람을 맞팔로우하는 것)를 취했다가 어느날 은근슬쩍 언팔로우(unfollow)해 본 경우다. 놀랍게도 많은 경우 곧바로 언팔로우가 되돌아왔다. 수십에서 수백명의 팔로워를 갖는 트위터리언들이 팔로우 한 명 빠져나가는 것을 자신의 잇몸에서 이가 하나 빠져나가는 것처럼 민감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난 발견이다.
유명인에 대한 팔로우를 논외로 하고, 필명/닉네임으로 얽혀진 트위터망에서의 팔로우는 많은 경우 호혜적 상호선택(팔로우)을 전제로 한 신뢰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즉 서로 모르는 상대방을 팔로우하고 언팔로우하는데서 얻어지는 손에 잡히는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안에서 호혜적주의 선택행위를 기대하는 이른바 신뢰의 게임 모드에 들어간다. 우선 내가 팔로우했는데 안해주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불편함은 서로 호혜주의적으로 팔로우하다가 어느날 나를 언팔로우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떠나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호혜주의적 팔로우를 먼저 깨고 나가는 상대의 아이디위에서 마우스로 언팔로우 버튼을 누르며 “단호한 응징”을 했다고 통쾌해하는 수많은 호모 리시프로칸들이 존재한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언스트 페르라는 경제학자를 소개해본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도 거명되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언스트 페르(Ernst Fehr, 쮜리히 대학교)는 ‘시장에서 인간의 소비/선택 행위’에 대한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학파 혹은 고전경제학적 전제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부정한다. 애로우 학파에서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를 따라 선택/소비를 하며, 시장을 움직이는 주된 동력은 인간의 탐욕이다고 전제한다. 반면 언스트 페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호혜적 방식(a reciprocal manner)으로 경제적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호모 리시프로칸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언스트 페르는 지금은 ‘보복을 곁들인 신뢰의 게임’(The trust game with revenge)으로 불리는 재미난 실험을 했다. 실험을 이렇게 이해해보자.
내가 당신과 당신이 잘 모르는 누군가(그를 ‘멍바기’라고 하자)에게 각각 만원을 줍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먼저 경제적 선택행위를 하게 하는데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만원을 그냥 갖든지 아니면 멍바기에게 주세요. (2) 당신이 만원을 그냥 가지면 당신과 멍바기 둘다 만원씩 갖고 이 게임은 끝납니다. (3) 만약 당신이 멍바기에게 만원을 주면 내가 멍바기에게 원금의 4배만큼을 더해서 줄 겁니다. 즉 멍바기는 5만원을 갖게 되겠지요. (4) 당신의 선택행위 다음에 멍바기는 또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을 전부 갖든지 아니면 반을 나눠주든지. 만약 멍바기가 당신에게 반을 주면 당신과 멍바기 모두 2만5천원을 갖는 걸로 게임이 끝납니다.
언스트 페르는 이 실험에서 서로 상대에 대해서 모르는 두명의 사람들이 상대에게 만원을 주고 또 상대방은 이에 대해 호혜적으로 2만5천원을 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실험이 이게 전부라면 호모 리시프로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상대에게 만원을 주는 행위가 자신의 ‘탐욕’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 혹은 도박이라면 ‘신뢰에 바탕을 둔 호혜적 경제적 선택’이란 가설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언스트 페르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실험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들은 멍바기가 5만원에서 반을 떼주지 않고 모두 꿀꺽 삼켰을 때, 당신에게 당신 자신의 돈을 써서 그를 벌줄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알려준다. 천원을 낼 때마다 멍바기는 이천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즉 당신 돈 이만 5천원을 내면 멍바기 돈 5만원은 모두 나(연구자)에게 환수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신은 만원을 잃고 멍바기한테 ‘에이 그것 먹고 창자나 뒤집어져라’하고 막말 한마디 던지고 더이상 돈을 잃지 않으려 할 지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2만 5천원을 더 잃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멍바기같은 인간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실험의 전부가 아니다. 현대경제학에서 이른바 뉴로이코노믹스(neuroeconomics)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언스트 페르가 이끄는 연구팀은 추가 2만5천원을 써서 상대에게 보복을 가하는 당신같은 사람들의 뇌를 양전자방출영상(PET)을 이용해 스캔한다. 보복 행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뇌를 스캔한 결과 연구팀들은 ‘보상’에 연결된 뇌의 영역인 쾌락중추의 한 부분(Striatum)이 강하게 작용함을 발견했다.
다시말해 호혜적 경제행위에 대한 배신자에게 보복을 하는데서 그들은 강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보복이 심지어 내게 가진 뭔가를 잃는다고 해도, 이들은 이런 보복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뇌가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역시 우리 뇌는 지극히 예측가능하게 비합리적(predictably irrational)이라는 점이다. 연구자가 정한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날 실험이 끝나면 다시 만나지도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손해를 감수해가며 멍바기 타입을 응징하려 한다는 것. 바로 그게 생물학적 뿌리에서 잉태한 신뢰의 게임에서 보이는 보복의 진짜 모습이다.
Addendum
1. 생물학적 뿌리에 대해서는 “방어본능의 뇌: 구글과 마소의 냉전” 참조.
2. 아래는 트랙백으로 온 의견인데, 신뢰의 게임에서 보복에 대해 아주 색다른 관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호혜적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왜 이런 인간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호혜적 인간에 ‘생물학적 뿌리’가 있을까? 악한 일을 행한 자에게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벌한 사람은 쾌락 중추가 반응한다. 이것은 악한 자에게 벌하려는 욕망이 자연적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가진지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도 상당히 높은 비율로 인간에게 나타날 것 같다.얼핏 생각해본다면 쓸데없는 비용을 지불하려는 사람은 도태되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손해를 야기하는 구성원을 도태시키려는 사람이 없는 집단은 부패로 무너져 내리고 만다. 집단 자체가 무한히 단단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다면 자기에게 손해가 가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 선택되어도 좋다. 분명히 그런 행동의 취하는 구성원이 몇 배는 더 잘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집단이 무너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정도 집단을 단단히 유지시켜주는 행동이 선택되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 집단이 무너지면 아무리 잘 나가던 구성원도 한순간에 몰락하고 말 것이다.” [호혜적 인간과 자연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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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ciTKI500(“한국어 사용/한국거주 사용자를 자동추출 팔로워,트윗수 등으로.. 영향력 순위.. 서비스)가 뭔가 싶어 잠깐 훑어봄. 1. 통계적효용 2. 속물적재미 있을 수 있겠으나…본질은 이거 http://bit.ly/1XusgV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