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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s Tagged ‘트위터’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트위터 감정파동 연구에 대해

September 29th, 2011

시간별, 요일별 트위터 글에 반영된 사람들의 감정파동 (mood fluctuation) 연구는 이미 진부한 소재죠. +Yong-Yeol Ahn 박사님도 아주 오래 전에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적도 있구요.

그런데 코넬대의 사회학자들은 같은 연구를 해서 사이언스지에 게재하는 개가를 올렸군요. 원문을 보지 않아 뭐라 말을 하진 못하겠지만, 과학계의 breakthrough로 여길만한 그런 연구는 아니라고 봅니다. 요약과 뉴욕타임즈 관련 기사를 통해 볼 때, 기존 연구/프로젝트와 차이는 조사 대상 지역이 미국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 다시 말해 이들이 cross-cultural study라고 포장했다는 것에 있는 듯 합니다. 이게 좀 기만적인게, 비교문화적, 혹은 교차문화적 분석이라면 다른 나라 말로 된 것도 봤어야 하는데, 영어로 된 트윗만 분석했을 뿐인데도 말이죠.

연구결과도 뭐 과학계에 새로운 지식이나 이해를 주기보다는 기존 상식을 다시 확인하는 차원에서 끝난다는 겁니다. 트윗들에 반영된 사람들의 감정은 아침에 기분좋다가 늦은 오후에 가라앉고 잠자리에 들기전에 다시 올라감으로써, 이른바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에 부합하는 감정의 기복을 보여준 겁니다. 또 월요일날 기분나빴다가 주말에 기분좋아지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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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연구 (결과) 자체보다는 이 연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 하버드 행복심리학작 대니얼 길버트 박사님의 의견에 더 눈길이 갑니다.

Tweets may tell us more about what the tweeter thinks the follower wants to hear than about what the tweeter is actually feeling. In short, tweets are not a simple reflection of a person’s current affective state and should not be taken at face value. (Happy and You Know It? So Are Millions on Twitter)

그리고 마지막에 한 농반진반의 다음 논평에 넘어갔습니다.

“컴퓨터를 통해 사람들이 성교중에 내뱉는 말들을 긍정적 감정어와 부정적 감정어로 나눠 분석한다면, 아마 그들이 끔찍한 시간을 보낼 것으로 결론낼 것입니다.”

팬더를 위한 구글, 바닷가재를 위한 페이스북 (그리고 고래를 위한 트위터)

July 20th, 2010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식의 상징적 이분법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런 깜찍한 이분법은 어떨지: 팬더를 위한 구글, 바닷가재를 위한 페이스북. 이 재미난 글을 올린 사람은 ifindkarma 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Adam Rifkin. 블로그 타이틀 ifingkarma (I Find Karma)는 아담 리프킨의 Anagram이다.

페이스북은 바닷가재 덫(lobster trap)이라는 그럴듯한 주장을 들어보자.

1. 페이스북에 들어오면 그 안에 갇혀서 먹이를 먹어야 한다. 이곳에 들어와 외부로 빠져나가기 위한 통로는 원천적으로 차단되게 설계되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외부링크로 통하는 숨통을 열어줬지만, 페이스북에 한번 들어간 사용자들은 트랩속의 맛있는 먹이들을 먹느라고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을 한참동안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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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컨텐츠의 RSS구독을 철저히 막는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RSS는 2009년 폐쇄되었다. 기본적으로 닫힌 시스템을 지향한다. 물론 RSS 피드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몇단계를 거치면 RSS피드를 강제로 만들 수는 있지만, 모양새도 그리 예쁘지 않고 그야말로 썰렁한 느낌을 준다.

3. 페이스내의 컨텐츠는 랍스터 트랩의 미끼역할을 하고 당신의 페이스북 친구는 랍스터가 되는 셈이다.

구글은 반대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가장 빠른 시간내에 찾아내고 효과적으로 정렬해준다. 이 과정에서 구글은 소비자를 그 안에 가둬두지 않는다. 페이스북안에서 사용자들은 뉴스도 보고 음악도 듣고 사진도 보고 동영상도 보고 광고고 보고 like 버튼을 누르고 다른 사람이 남긴 의견도 읽는다. 구글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볼 일을 보면 바로 그 장소를 떠날 수 있게 도와준다. 볼 일을 보러 온 사람들이 거기서 자꾸 서성이게 만드는 것은 구글 스타일이 아니다.

구글의 핵심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사용자들은 구글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갈 필요조차 없다. 지메일은 맥이나 PC의 기본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통해 바로 읽을 수 있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홈페이지에 구글맵을 보여주고, 소비자들은 구글맵을 열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곧바로 지도정보를 찾을 수 있다. 아이패드의 QuickOffice앱을 쓰면 구글 docs에 들어가지 않고도 구글 문서를 입력하고 편집하고 저장할 수 있다. 구글 뉴스는 실시간으로 다른 뉴스 사이트의 기사를 찾아서 키워드별로 묶어준다. 물론 각 결과를 클릭하면 개별 뉴스 사이트로 바로 직행한다. 이 과정에서 구글뉴스의 소비자는 구글 뉴스의 다른 인터페이스에 눈길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 페이스북이 모든 것을 번들링해서 제공하려 하는데 반해, 구글은 반대로 세상의 많은 정보를 언번들링(unbundling)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구글의 어플리케이션을 쓰면 원하던 일을하고 바로 다음 단계 일로 옮겨갈 수 있는데 반해, 강력한 소셜 어플리케이션은 사용자를꾀어서 (잠시다른사이트로) 나갔다가도 바로 다시돌아와서 그안에 갇혀있게 만든다. [팬더와 랍스터]

그렇다면 트위터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담 리크킨은 트위터는 “거대한 블루볼 머쉰이다“(클릭전 볼륨을 줄이시길)라고 주장한다.

트위터에는 물론 많은 고래들이 산다. 유명인 고래들은 우리를 당기는데 반해, 실패한 고래들은 우리를 쫓는다. 이에 반해 페이스북은 고래(페이스북 친구수락 한계인 5천명을 가진 사람)를 매우 싫어한다. 고래가 바닷가재들이 덫에 걸리는 것을 훼방놓기 때문이다.

그럼 결론적으로 구글은 왜 강력한 소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없는가? 이건 구글이 소셜어플리케이션을 하기에는 너무나 지성적이고 깔끔하고 유용하기 때문이란다.

“구글은 기본적으로 바닷가재 덫같은 개념을 거부하고 사용자에게 정크푸드를 먹일 수 없고, 거대한 블루볼 머쉰처럼 우리를 정신없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의 인터넷에는 팬더처럼 우아하게 대나무를 찾아먹는 구글같은 사람도, 랍스터 덫을 놓아 함께 열심히 소셜하자는 페이스북지향적 사람도, 그리고 거대한 고래와 루저 고래가 쉴새없이 파란공을 굴리는 거대한 블루볼 머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공존한다. 그런데 우아한 팬더도 볼일 보실때는 이렇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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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엿듣기를 통한 광고 카피 제작

November 23rd, 2009

아침 산책 중에 읽었던 WSJ의 Marketers Find Web Chat Can Be Inspiring.
마케팅/PR 리서치에서 소셜미디어가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좋은 case study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기사의 핵심은 웹에서 엿들은 이야기를 통해 소비자들이 제품 자체에 대해 좋다 나쁘다 의견을 떠나, ‘그 기술/서비스들이 우리(소비자)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혹은 그 기술/서비스를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서 이를 광고 카피로 만든다는 것이다. IBM이 최근 내보낸 광고 “Lotus knows”가 사례로 소개된다.

“In creating a recent campaign for its Lotus business software, IBM and its ad agency, Ogilvy North America, tapped sources ranging from consumers’ Web searches to the comments they posted on video sites like Google’s YouTube to their conversations on social-media sites like Twitter.” [...]

“IBM discovered through online videos that potential customers tended to care less about its technologies themselves than what those technologies could do for them.
Instead of talking about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or cloud delivery models, for example, they talked about having conversations and meetings.
That insight, says Kristen Lauria, a vice president of marketing and channels at IBM, led to a new print ad with the text “Lotus knows you’re trying to reach the person, not their phone.”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Then We Set His Hair on Fire: Insights and Accidents from a Hall of Fame Career in Advertising 라는 책에서 읽는 내용이 생각난다. 하나의 idea는 한 개의 광고를 만들지만, 하나의 insight는 수십년을 흐르면서 셀 수 없는 광고 메시지를 만들어낸다는 것. GE의 태그라인처럼.

하지만 이 기사의 백미는 기사의 끝에 있다. 블로그, 트위터가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점. “There is a broad swath of the population that is not on the blogs, and it is important to reach out to those people and bring them into the fold,” she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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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윌리암스의 '트위터는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생각에 대해

November 12th, 2009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에반 윌리암스가 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라 정보 네트워크라고 했다고 한다. (via 브라이언 솔리스)

@EV: Twitter is not a social network, it’s an information network

에반 윌리암스는 사업적 감각은 있을지 몰라도, 미디어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듯 하다. 미디어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매체도 특정한 용도로 규정될 수 없다. 이렇게 물으면 바로 모순을 파악할 수 있다. ‘라디오는 정보 매체인가? 오락 매체인가? 아니면 현실도피를 위한 매체인가?’

시대를 초월해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 비평학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바로 그가 던진 놀라운 insight 때문이다. 그는 ‘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했다. 그가 ‘미디엄은 메시지다’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메시지가 태동할 환경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형성된 새로운 매체는 인간들이 관계하고 행동하는 규모와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는다. 새로운 매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열어놓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맥루한이 예로 든 것처럼 전등이라는 매체가 뇌수술에 사용되건 야구장의 야간경기를 밝히는데 사용되는가는 매체 생태학에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새로운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관계망은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매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

다시 말해 그 누구도 특정매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를 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게 그 매체를 발명한 사람일지라도 매체는 애초 개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화해간다. 그래서 트위터의 아버지건 할아비건 ‘트위터는 ~ 이다’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도 트위터는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내게 트위터는 일종의 휴식공간이다. 간혹 타임라인에서 드는 생각이나 감정을 칠칠맞게 흘리거나, 내 블로그글의 링크를 거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정보적 가치로서는 아주 빵점이다. 내가 보는 트위터는 또하나의 trendsetter이다. 정보라는 착각을 주는 소식들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난 전통적 매체에 들어가거나 책을 들여다 보거나 아니면 학술저널을 읽는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조금 있다보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내 머리속에 있는 정보조차 날아갈 것 같은 걱정이 든다. 휴식을 취하러 갔다가 오히려 정신줄을 놓을 위험이 있다…

Conversations

Twitter (9)
iampaprikaRT @gatorlog: 남겨주신 댓글에 답글을 남겼습니다 http://bit.ly/8Izrw8RT @tomyun: “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다.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ev의 말에 대한 @gatorlog님의 의견에 대한 나의 생각 @ …
gatorlog남겨주신 댓글에 답글을 남겼습니다 http://bit.ly/8Izrw8RT @tomyun: “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다.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ev의 말에 대한 @gatorlog님의 의견에 대한 나의 생각 @ReadLead
tomyun“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다.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ev의 말에 대한 @gatorlog님의 의견에 대한 나의 생각. http://bit.ly/7RcH4RRT @ReadLead http://gatorlog.com/?p=1575
ReadLead페이스북을 네트워크 서비스라 선언하는 것 http://www.read-lead.com/blog/944, 트위터를 정보 네트워크라 선언하는 것.http://gatorlog.com/?p=1575모두 다 탐욕 가득한 말장난이다. ^^
hownext공가ㅁRT @hongss: 트위터의 아버지건 할아비건 ‘트위터는 ~ 이다’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도 트위터는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http://bit.ly/46xmTo
DrunkeN_JRT @hongss: 트위터의 아버지건 할아비건 ‘트위터는 ~ 이다’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도 트위터는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http://bit.ly/46xmTo
hongss트위터의 아버지건 할아비건 ‘트위터는 ~ 이다’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도 트위터는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http://bit.ly/46xmTo
Kwangbae에반 윌리암스의 ‘트위터는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생각에 대해: http://gatorlog.com/?p=1575 via @add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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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 사용자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November 6th, 2009

내 블로그의 주된 화두인 ‘보상지향의 뇌’의 작용과 ‘예측가능하게 비합리적인’ 경제적 선택 행위를 알아보기 위해 트위터상에서 팔로워들을 상대로 눈에 띄지 않는 실험을 해봤다. 팔로우를 하던 사람을 갑자기 언팔로우 해본 것이다. 물론 나를 잘 알고 나와 오랫동안 관계했던 사람들은 내가 언팔로우해도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기에, 나와 상대가 서로 상대의 실체를 잘 모르는 경우를 대상으로 몇 명을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트위터 공간에서 상당히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분들을 선택했다.

그런데 팔로우와 언팔로우에 있어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행위는 내가 생각했던데로 ‘보복을 곁들인 신뢰의 게임’의 결과대로였다. 일단 두가지 타입의 언팔로우 행위가 있었는데, 첫째는 나를 팔로우했다가 내게서 이에 대한 호혜적 팔로우가 없을 경우 바로 언팔로우하는 경우였다. 두번째는 내가 호혜주의적 팔로우(나를 팔로우한 사람을 맞팔로우하는 것)를 취했다가 어느날 은근슬쩍 언팔로우(unfollow)해 본 경우다. 놀랍게도 많은 경우 곧바로 언팔로우가 되돌아왔다. 수십에서 수백명의 팔로워를 갖는 트위터리언들이 팔로우 한 명 빠져나가는 것을 자신의 잇몸에서 이가 하나 빠져나가는 것처럼 민감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난 발견이다.

유명인에 대한 팔로우를 논외로 하고, 필명/닉네임으로 얽혀진 트위터망에서의 팔로우는 많은 경우 호혜적 상호선택(팔로우)을 전제로 한 신뢰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즉 서로 모르는 상대방을 팔로우하고 언팔로우하는데서 얻어지는 손에 잡히는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안에서 호혜적주의 선택행위를 기대하는 이른바 신뢰의 게임 모드에 들어간다. 우선 내가 팔로우했는데 안해주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불편함은 서로 호혜주의적으로 팔로우하다가 어느날 나를 언팔로우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떠나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호혜주의적 팔로우를 먼저 깨고 나가는 상대의 아이디위에서 마우스로 언팔로우 버튼을 누르며 “단호한 응징”을 했다고 통쾌해하는 수많은 호모 리시프로칸들이 존재한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언스트 페르라는 경제학자를 소개해본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도 거명되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언스트 페르(Ernst Fehr, 쮜리히 대학교)는 ‘시장에서 인간의 소비/선택 행위’에 대한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학파 혹은 고전경제학적 전제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부정한다. 애로우 학파에서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를 따라 선택/소비를 하며, 시장을 움직이는 주된 동력은 인간의 탐욕이다고 전제한다. 반면 언스트 페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호혜적 방식(a reciprocal manner)으로 경제적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호모 리시프로칸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언스트 페르는 지금은 ‘보복을 곁들인 신뢰의 게임’(The trust game with revenge)으로 불리는 재미난 실험을 했다. 실험을 이렇게 이해해보자.

내가 당신과 당신이 잘 모르는 누군가(그를 ‘멍바기’라고 하자)에게 각각 만원을 줍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먼저 경제적 선택행위를 하게 하는데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만원을 그냥 갖든지 아니면 멍바기에게 주세요. (2) 당신이 만원을 그냥 가지면 당신과 멍바기 둘다 만원씩 갖고 이 게임은 끝납니다. (3) 만약 당신이 멍바기에게 만원을 주면 내가 멍바기에게 원금의 4배만큼을 더해서 줄 겁니다. 즉 멍바기는 5만원을 갖게 되겠지요. (4) 당신의 선택행위 다음에 멍바기는 또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을 전부 갖든지 아니면 반을 나눠주든지. 만약 멍바기가 당신에게 반을 주면 당신과 멍바기 모두 2만5천원을 갖는 걸로 게임이 끝납니다.

언스트 페르는 이 실험에서 서로 상대에 대해서 모르는 두명의 사람들이 상대에게 만원을 주고 또 상대방은 이에 대해 호혜적으로 2만5천원을 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실험이 이게 전부라면 호모 리시프로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상대에게 만원을 주는 행위가 자신의 ‘탐욕’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 혹은 도박이라면 ‘신뢰에 바탕을 둔 호혜적 경제적 선택’이란 가설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언스트 페르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실험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들은 멍바기가 5만원에서 반을 떼주지 않고 모두 꿀꺽 삼켰을 때, 당신에게 당신 자신의 돈을 써서 그를 벌줄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알려준다. 천원을 낼 때마다 멍바기는 이천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즉 당신 돈 이만 5천원을 내면 멍바기 돈 5만원은 모두 나(연구자)에게 환수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신은 만원을 잃고 멍바기한테 ‘에이 그것 먹고 창자나 뒤집어져라’하고 막말 한마디 던지고 더이상 돈을 잃지 않으려 할 지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2만 5천원을 더 잃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멍바기같은 인간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실험의 전부가 아니다. 현대경제학에서 이른바 뉴로이코노믹스(neuroeconomics)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언스트 페르가 이끄는 연구팀은 추가 2만5천원을 써서 상대에게 보복을 가하는 당신같은 사람들의 뇌를 양전자방출영상(PET)을 이용해 스캔한다. 보복 행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뇌를 스캔한 결과 연구팀들은 ‘보상’에 연결된 뇌의 영역인 쾌락중추의 한 부분(Striatum)이 강하게 작용함을 발견했다.

다시말해 호혜적 경제행위에 대한 배신자에게 보복을 하는데서 그들은 강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보복이 심지어 내게 가진 뭔가를 잃는다고 해도, 이들은 이런 보복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뇌가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역시 우리 뇌는 지극히 예측가능하게 비합리적(predictably irrational)이라는 점이다. 연구자가 정한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날 실험이 끝나면 다시 만나지도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손해를 감수해가며 멍바기 타입을 응징하려 한다는 것. 바로 그게 생물학적 뿌리에서 잉태한 신뢰의 게임에서 보이는 보복의 진짜 모습이다.

Addendum

1. 생물학적 뿌리에 대해서는 “방어본능의 뇌: 구글과 마소의 냉전” 참조.

2. 아래는 트랙백으로 온 의견인데, 신뢰의 게임에서 보복에 대해 아주 색다른 관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호혜적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왜 이런 인간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호혜적 인간에 ‘생물학적 뿌리’가 있을까? 악한 일을 행한 자에게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벌한 사람은 쾌락 중추가 반응한다. 이것은 악한 자에게 벌하려는 욕망이 자연적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가진지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도 상당히 높은 비율로 인간에게 나타날 것 같다.얼핏 생각해본다면 쓸데없는 비용을 지불하려는 사람은 도태되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손해를 야기하는 구성원을 도태시키려는 사람이 없는 집단은 부패로 무너져 내리고 만다. 집단 자체가 무한히 단단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다면 자기에게 손해가 가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 선택되어도 좋다. 분명히 그런 행동의 취하는 구성원이 몇 배는 더 잘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집단이 무너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정도 집단을 단단히 유지시켜주는 행동이 선택되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 집단이 무너지면 아무리 잘 나가던 구성원도 한순간에 몰락하고 말 것이다.” [호혜적 인간과 자연선택]

Conversations

Twitter (21)
minociTKI500(“한국어 사용/한국거주 사용자를 자동추출 팔로워,트윗수 등으로.. 영향력 순위.. 서비스)가 뭔가 싶어 잠깐 훑어봄. 1. 통계적효용 2. 속물적재미 있을 수 있겠으나…본질은 이거 http://bit.ly/1XusgV 아닐까싶다.
alexhanderRT @gatorlog: 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http://bit.ly/2bXuXM웹비즈니스 기획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yuyongchoiRT @gatorlog: 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http://bit.ly/2bXuXM웹비즈니스 기획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happyaloRT @gatorlog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http://bit.ly/2bXuXM
iamsummerz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http://bit.ly/2bXuXM(via @gatorlog)
dogsulRT @gatorlog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http://bit.ly/2bXuXM웹비즈니스 기획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fromto행동주의 경제학 관점은 흥미롭습니다.~ RT @gatorlog: 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http://bit.ly/2bXuXM웹비즈니스 기획자들의 일독
hiconcep호. 대단하세요! RT @gatorlog: 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http://bit.ly/2bXuXM
blographerRT @gatorlog: 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http://bit.ly/2bXuXM웹비즈니스 기획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gatorlog트위터의 빠른 성장을 행동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 호모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http://bit.ly/2bXuXM웹비즈니스 기획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Mycogito호모 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http://gatorlog.com/?p=1535
tearain트위터도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군요… 언팔로우 조심해야겠는데요… RT @blographer: #LT_18415 http://gatorlog.com/?p=1535[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haawoo흥미롭네요 다만 표본집단의 크기와 집단의 성향 분포가 좀더 넓었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까 싶군요 RT @blographer: RT @iFoog: @gatorlog님의 언팔로우 실험 http://is.gd/4PAQP
blographer#LT_18415http://gatorlog.com/?p=1535[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호혜적 경제행위에 대한 배신자에게 보복을 하는데서 그들은 강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 http://j.mp/rK8xX
blographer오늘 오전부터 아거님께 ‘고발’당했는데, 떨리네요….RT @iFoog: Twitter덕분에 unfollow라는 단어가 곧 정식 단어가 되지 않을까? gatorlog님의 언팔로우 실험 http://gatorlog.com/?p=1535
iFoogTwitter덕분에 unfollow라는 단어가 곧 정식 단어가 되지 않을까? gatorlog님의 언팔로우 실험http://gatorlog.com/?p=1535
minoci호모 리스프로칸(호혜적 인간) 트위터 실험. http://gatorlog.com/?p=1535: 1. 대단히 흥미로운 가설 2. “생물학적 뿌리에서 잉태한 신뢰의 게임” 에서 “생물학적 뿌리” 3. 보충 댓글도 인상적 4. 가급적 관련글 써보자.
taeuk호모 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http://gatorlog.com/?p=1535으핫..^^
jojaljojal[http://gatorlog.com/?p=1535호모 리시프로칸으로서 트위터리언들의 선택, 보복, 그리고 신뢰]
puanadiRT @ReadLead: 사람은 남에게 공짜로 뭔가를 주기 힘들어 한다. 상대방에게 뭔가를 줄 땐, 상대방으로부터 뭔가를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호혜 기대감이 무너질 때, 선심은 복수로 전환된다. http://gatorlog.com/?p=1535
ReadLead사람은 남에게 공짜로 뭔가를 주기 힘들어 한다. 상대방에게 뭔가를 줄 땐, 상대방으로부터 뭔가를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호혜 기대감이 무너질 때, 선심은 복수로 전환된다. http://gatorlog.com/?p=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