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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표지자 가설과 선택 (II)

February 1st, 2010

이 글은 “주몽의 불길한 느낌과 신체표지자 가설 (I)”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신체 표지자 가설이 선택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선택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일단 선택과 의사결정에 관련된 다음 두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자. 맨 먼저 반찬 가지수만 20여가지가 넘는 전통 한식밥상앞에 앉아 밥 한숫갈에 어떤 반찬을 뜰 것인가를 결정하는 상황이다. 어떤 반찬을 뜰 것인지 선택하는 상황인데, 이때 당신의 선택을 이끄는 것은 의식적인 지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식적인 이성의 작용도 아니다. 물론 당신이 게장을 집을 것인지, 아니면 숙주나물을 집을 것인지는 뇌속에 저장된 각 음식에 관련된 정보에 근거한다. 게장과 숙주나물을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어떤 어린아이앞에 ‘맛있으니 한 번 먹어보렴’하고 권해보자. 아이는 당연히 ‘그게 뭐야? 무슨 맛이야?’하고 꼬치꼬치 물어보고 입에 넣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려 할 것이다. 이때는 물론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며, 매운 맛을 싫어하거나 짠 맛을 싫어하는 아이는 이성의 작용으로 게장을 피하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눈싸움을 할 때 상대방이 던진 눈덩이를 피하려는 작용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게장을 집어들지 아니면 숙주나물을 집어들지는 대개의 경우 아주 빠른 시간내에 자동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다시 말해 심사숙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두번째 상황은 무슨 반찬을 집어들 것인가보다는 좀 더 머리를 써야 하는 선택들이다.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것, 직장을 선택하는 것, 인생의 목표를 결정하는 것, 결혼 상대자를 정하는 일, 교육감/시장/국회의원/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200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분을 휩쓴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2천만루피가 걸린 마지막 문제로 가기 전 화장실에서 퀴즈쇼의 진행자가 정답이라고 귀띔해 준 정답과 나머지 한 개의 정답 사이에서 자말이 택해야 하는 손에 땀을 쥐는 선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운명을 결정짓는 도박과도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때이다.

이 두번째 상황에서 예시한 선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번째 문제보다 당연히 더 머리를 써야 한다. 머리를 쓴다는 것은 의식적 작용이면서 논리적 알고리즘 (순차적 경로)을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경우는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예상되는 결과들과 내가 특정 선택을 했을 때 일어날 결과들을 비교함으로써 최선의 최고의 결정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급한 당신은 ‘그래 선택에는 무의식적/자동적 선택과 의식적/노력하는 선택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쏟아부어야 하는 인지적 노력의 정도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첫번째 선택과 두번째 선택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따지고 보면 이 두번째의 선택내에서도 또 나름대로 선택의 복잡함과 선택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깊이가 확연히 다르다. 또 개인의 성격이나 환경, 혹은 사회적 처지에 따라 위에 주어진 선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리는 인지적 노력의 정도도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교육감/시장/국회의원/대통령 선거 모두 특정 정당에 찍기 때문에 고민할 여지가 전혀 없는 반면, 어떤 사람은 둘 중 덜 나쁜 놈에게 찍자면서 일일이 후보자 관련 정보를 훑어야 하니 그게 일이다. 어떤 사람은 매파가 중매한 몇 명의 상대 배우자 후보를 놓고 이것 저것 꼼꼼히 따져보고, 이 사람을 택하면 인생이 어떻게 풀릴까 저사람을 택하면 어떻게 살까 고민고민할 것이다. 반면 ‘돈’이면 최고라는 철학을 가진 사람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돈을 중심으로 정렬을 시키면 3초안에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안토니오 다마시오 박사는 공유된 신경생리적 중심(neurobiological core)의 형태로 인간의 모든 선택 상황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된 타래(a common thread)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마다시오 박사가 구성한 의사결정 혹은 선택에 이르는 뇌의 과정에 대한 두가지 설이 여기서 나온다 [Damasico, A. (1994). Decartes' error. NY: Quill. pp. 170-171].

정상적인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부딪힐 때, 재빠르게 가능한 응답의 옵션들과 그 각각의 옵션을 택할 때 결과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짜게 된다. 이때 우리가 만들어 내는 시나리오는 의식적 작용으로 나오는 것이며 여러 개의 가상의 장면들로 이뤄져 있다. 이 장면들은 영화처럼 잘 이어지는 필름이 아니라, 그 가상의 장면들중 중요한 이미지에 대한 그림으로 된 플래쉬같은 것이다. 이게 잘 이해가 안되면 지금도 이런 장면을 만들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예전에 두개의 전혀 다른 직장을 두고 선택을 취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때 당신이 지금 택한 직장말고 거기에 갔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몇가지 그림들이 번쩍번쩍 지나갈 것이다. 바로 그런 것들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정하지 않은 미래의 결정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결정이건 앞으로 다가올 결정이건간에 선택의 기로에 서서 당신의 결정을 도와주는 것은 다시말해 의사결정이나 선택에 이르게 만드는 우리 뇌는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설명은 ‘고도의 이성’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의사결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다마시오는 앞에서 말한 ‘신체 표지자 가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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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아닌 기업이나 조직, 국가는 선택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결정지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의사결정방법은 손익(loss and gain을 따지고 비용과 혜택(cost and benefits)을 따지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과는 달리 개인이 이런 논리적 접근을 취할 때 보통 개인은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연필과 종이를 들고 차근차근 조목조목 따져나가도 순차적 알고리듬을 따라가는 의사결정은 곧잘 삼천포로 빠져들기 쉽상이다. 이렇게 순차적 연산같은 의사결정이 개인에게 어려운 이유는 바로 개인들의 주의(attention)와 작업기억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손익이나 비용/혜택을 따지는 과정에서 당신의 머리를 스치는 특정 예감들이 생긴다. 영어로는 헌치(hunch)라고 불리는데, 일종의 직관적 느낌이다. 몸을 감도는 어떤 예사롭지 못한 기운을 말한다. 여전히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가 2년 후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녀는 손익계산을 따졌을까? 아니다. 그녀는 그녀가 물러가야 할 때를 몸으로 느낀 것이다.

 

Addendum:
“The mind is a cluster of apps or modules securing the replication of the genes that are expressed in our bodies.” http://on.wsj.com/srO2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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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의 불길한 느낌과 신체표지자 가설 (I)

January 31st, 2010

미국의 인기토크쇼 콜베르 리포트(Colbert Report) 진행자 스티브 콜베르(Stephen Colbert)는 언젠가 How we decide의 저자 조나 레러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조나. 그래서 당신은 직감(gut)이 뇌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조나 레러가 사람들이 결정을 할 때는 감성과 이성적 뇌의 작용이 일어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그 질문은 다소 기본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은 정말 날카로웠다. 스티브 콜베르는 조나 레러에게

‘사람들이 순전히 이성에 의해서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는가? 아니면 결정이라는 것에는 언제나 감정이 녹아들어있는 것인가?’

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토크쇼의 환담수준에서 논의할 문제 수준을 넘어 과학자들이 대를 이어 연구하는 중요한 연구과제다. 그렇다면 왜 처음 질문은 기본에서 벗어났고, 왜 두번째 질문은 과학자들이 평생 걸쳐 탐구하는 연구문제일까?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조지 로웬스타인은 언젠가 “(의사/선택) 결정이론은 그 뛰어난 설명력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함으로써 다소 절름발이 이론이 되었다.” 고 주장했다. 사실 오랜 세월동안 선택과 결정을 이야기할 때 감정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중요한 토론을 할 때 감정을 개입하는 것처럼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사람들은 전적으로 이성적 판단이 선택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적으로 이성적 판단이 작용한다면 왜 세상에는 부모가 용인할 수 없는 자식의 눈먼 배우자 선택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원수의 집안이면서 사랑할 수 밖에 없고 비극으로 끝날 것을 알면서도 헤어질 수 없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애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33.jpeg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이야기할 때면, 늘 이성의 작용안에서만 논의되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감정을 뇌와 분리해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가들은 마음과 몸의 분리를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이 심장에 자리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물론 다르게 생각했지만, 마음과 몸의 이원설을 주장하는 사상가들 가운데 마음이 뇌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정교해 진 것은 훗날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에 와서였다 (Carter, R., 1998). 그래도 여전히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하트를 떠올리고 내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아.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내 뇌가 터질 것 같아’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신경의학 혹은 뉴로사이언스 관련 연구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제 감정이 뇌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감정이 선택이나 결정 행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도한 과학자가 바로 안토니오 다마시오 박사이다. 다마시오의 주장의 핵심은 감정이 이성을 주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감정과 동떨어진 순수한 작용이 아닐지도 모르며 어쩌면 감정과 이성은 뇌의 네트워크에서 함께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발 더나가 인간의 몸을 규제하는 감정과 느낌의 작용없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에겐 이성의 작용이라는 것도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이 구체화된 것이 이른바 신체 표지자 가설 (Somatic Marker Hypothesis)이다. 내가 택한 선택의 옵션과 연관되어 뭔가 나쁜 결과가 마음에 전달될 때 이게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뭔가 유쾌하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을 보자. 자기가 사라져야 주몽과 자신이 사랑했던 유화 부인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떠날 결심을 굳힌 해모수는 주몽에게 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오라고 말한다. 이 순간 해모수를 죽이러 주몽의 이복형 대소는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었다. ‘스승님 다녀오겠습니다’고 말하고 길을 가던 주몽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은지 고개를 두어발자국 뒤에 다시 스승을 돌아다 본다. 바로 이 찰나의 불길한 느낌이 전해지는 현상이 바로 신체 표지자 가설에서 지칭하는 판단에 앞선 감정이나 느낌의 역할이다.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에서 다마시오 박사는

“그런 느낌은 온통 몸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주몽이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몸에 나타난 현상에 somatic state (신체적 상태)라는 전문용어를 부여했다. somatic은 물론 그리스어에서 몸을 지칭하는 soma에서 온 것이다. 또 그 몸의 반응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표식/표지(mark)하기에 나는 그것을 표지자(a marker)라고 했다”

고 설명한다.

신체표지자 가설은 이성에게 사랑의 감정이 느낄 때 내 안에 일어나는 몸의 반응과 같은 즐겁고 흥분되는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 짝사랑하고 있는 이성이 내 앞에 있을 때 내 심장의 박동과 얼굴의 홍조, 이런 것들은 모두 내 뇌안에 있는 이성의 작용을 안내하는 지표자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경험을 통해 생기는 좋고 싫은 감정이나 느낌들이 내 몸안의 반응을 만들어 내고 이 반응이 일종의 표지가 되어 무의식적으로 내 행위를 안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짝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종이학 백마리를 접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결국 당신 이성의 작용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신체표지자 가설과 선택 (II)]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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