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의 심리학: 체화된 인지
아기가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개발하는 감각은 바로 터치다. 그리고 우리는 무덤에 들어가 ‘싸늘한’ 주검이 될 때까지 한순간도 세상/환경과 터치를 멈추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이 따뜻한지 추운지, 습기가 많은지 건조한 지를 점검한다. 남녀관계의 기본도 터치다. 10대 소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트와일라이트 사가는 기본적으로 차가움과 뜨거움의 대비로 남녀관계를 그려낸다. 에드워드의 정체를 알기 전, 벨라는 우연히 에드워드의 손을 만졌다가 너무나 차가운데 소스라친다. 마찬가지로 두번째 New Moon에서는 영화관에서 언쟁으로 흥분한 제이콥의 손이 너무나 뜨겁다고 놀란다. 저자아존중 우울증(low self-esteem depression)환자로 볼 수 있는 벨라가 에드워드를 선택한 것은 아마 미국인들의 격언인 “cold hands, warm heart”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인상 평가나 감정적 선호를 나타내는 것 역시 몸으로 느낀 체화된 온도를 이용한다. ‘뜨거운 심장’이라든지 ‘그는 냉혈인간이야’ 등이 그 예다.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패러다임을 형성해 왔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우리 뇌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몸 전체에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체화 인지의 기본 가정이다. 다시 말해 체화된 인지 패러다임에서 인지적 처리는 우리 몸이 세상과 어떻게 교감을 하는가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제한다.
일전에 설명했던 신체표지자 가설 [1] [2]도 결국은 이런 체화된 인지 패러다임에 기반한 생각이다.

요즘 인지심리학계에 이 ‘체화된 인지’ 패러다임에 기반한 논문들이 계속 이어져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인상이나 태도를 평가하는데 체화된 인지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는 논문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2008년 예일 심리학자 존 바그(John Bargh)와 그의 제자가 Science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있던 학생들이 찬커피를 들고 있던 학생들에 비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해 더 따뜻한 사람이라고 점수를 매기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미국 속담 “Cold hands, warm heart”는 어쩌면 차가운 손을 가진 사람이 겪을 마음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게 아닐까?) 어쨌든 다음 번 소개팅 나갈 때, 첫만남에서 팥빙수를 시킬 것인지 따뜻한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킬 지 이제 정답은 주어진 셈이다.
체화된 인지는 물론 온도에 관련된 현상들에만 국한되는게 아니다. 무게라든지 질감이라든지 하는 손과 몸을 이용해 접촉, 지각되는 모든 사물과 관련한 인지를 지배한다. 거칠고 딱딱하게 굳은 살이 박인 손등을 보면서 ‘두꺼비 손등’이라고 표현한다든가 ‘바위처럼 굳은 마음’ 등이 그 예다. “Metaphors We live by”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 교수등은 일찌기 언어속에 나타난 체화된 인지현상을 설명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영어표현에서 ‘앞으로 만날 것을 고대합니다’라는 표현은 “look forward to seeing you.” 회고/회상하다라는 표현은 “look back“에서처럼 back을 쓰는 것도 이같은 체화 인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University of Aberdeen 심리학자들이 실험실에 사람들을 모아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 혹은 미래 여행을 한다고 가정하고 이에 관련된 생각들을 물었더니 과거를 생각하는 경우에는 몸이 뒤쪽으로 미래에 관련된 판타지를 생각할 경우에는 몸이 앞쪽으로 더 많이 기우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물론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다는 것은 아니고, 약 2-3밀리미터정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잠재의식적으로 분명히 기우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무게에 대해 몸이 받아들인 ‘감’은 ‘중요도’나 ‘심각성’을 판단하는 인간의 인지작용과 언어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말수는 적지만 참 듬직한 사람보고 우리는 ‘무게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역을 맡은 배우에게 이번 영화에서 참 ‘비중(比重)’있는 역을 맡았다고 말한다. 암스테르담대학교의 Jostmann 교수등은 무게감과 비중에 대한 인지적 관계를 보여주는 재미난 실험을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했다. 특정 텍스트북을 설명하면서 이 책은 이번 교과에 매우 중요한 책이라고 했을 때와 부교재라고 했을 때, 학생들이 그 책에 대해 느끼는 무게감이 달랐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필수 교재라고 강조했을 때, 학생들은 그 책이 보조교재라고 들었을 때보다 더 무겁게 느끼는 경향이 있더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따뜻한 커피와 찬 커피 실험을 했던 예일대의 존 바그 교수와 MIT경영대학의 조수아 아커맨 교수팀은 사이언스지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체화된 인지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련된 여섯개의 중요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첫번째 실험에서는 무게가 구직자의 인상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지나가는 행인 54명에게 구직자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각기 두꺼운/얇은 보드에 붙인 이력서를 들게 한 후, 이들에게 그 이력서에 있는 구직자에 대한 평가를 의뢰한 결과, 두꺼운 보드에 붙인 이력서를 들었던 참가자들이 그 이력서의 구직자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물론 이 평가는 그 자리에 얼만큼 더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가등 항목에서였을 뿐, 직장에서 사교성등 평가에서는 두껍거나 얇은 보드판을 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두번째 실험에서는 이력서대신 정부지원예산의 배정인데, 43명의 행인들에게 각기 무거운 판과 가벼운 판을 들게 한 후, 뒤이어 정부예산이 배정되어야 할 사회적 이슈들(무거운 이슈들 vs. 가벼운 이슈들)에 대한 서베이를 했다. 이 실험에서는 성별과 무게가 상호작용을 해서, 무거운 판을 들었던 남자들이 가벼운 판을 들었던 남자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 묵직한 이슈들에 지원을 해야 한다고 답하는 경향을 발견했다.

그 다음 두 실험은 촉감(거침 vs. 매끄러움)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이 실험과 관련된 언어적 사고의 예로는 “오늘 하루는 참 rough day였어” 라는지 “coarse voice”등을 들 수 있다. 세번째 실험을 하기 전 64명의 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그룹에게는 뒷면이 사포로 제작된 퍼즐조각들을 또다른 그룹에게는 반질반질 광택을 낸 퍼즐조각들을 가지고 놀게 했다. 그리고 나서 어떤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을 아주 모호하게 묘사한 문장을 읽게한 후, 이 사람들이 친화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적대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측정했다. 연구결과, 사포면으로 된 퍼즐을 가지고 논 그룹들은 부드러운 면을 가지고 논 그룹에 비해 그 상호작용을 더 적대적으로 평가했음을 발견했다.
다섯번째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49명의 실험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그룹에게는 딱딱한 나무로 만들어진 단어들을 만지게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부드러운 담요를 만지게 하면서, 이 물체가 마술에 쓰일 것이라고 알려줬다. 마술은 물론 없었고 대신 이들에게 어떤 직원과 어떤 보스간의 모호한 대화가 적힌 글을 읽게 한 후 그 직원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딱딱한 나무블록 단어를 만졌던 사람들이 담요를 만졌던 사람들에 비해 그 직원을 더 경직되고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했다. 같은 실험을 86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딱딱한 나무 의자와 부드러운 가죽쿠션이 있는 의자에 앉게 한 후 다시 실행했을 때도 똑같은 결과를 발견했다. 직원-보스간 대화 평가 실험후, 부드러운 쿠션의자 그룹과 딱딱한 나무 의자 그룹에게 중고 자동차 구매 흥정을 하게 만들었다. 두번의 오퍼를 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16,500에 넣게 하고 이게 딜러에게 거절당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두번째 오퍼를 하게 했을 때 부드러운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이 딱딱한 의자에 앉았던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부르는 현상을 발견했다.
결국 터치의 심리를 잘 이용하면 대인관계에서부터 협상으로 중재를 이끌어내야 할 노사관계나 국가간 수반들의 외교관계에서도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연구들을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에 봤던 것 중에 여러 실험들 중에서 http://www.youtube.com/watch?v=mW2SByfHpYg 이게 기억나네요. 체화된 인지를 Priming 이라는 틀로 접근하고 있는 연구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실험실적으로 증명할 때 priming을 이용하는게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사포를 만지게 하는 것등도 일종의 프라이밍에 해당하죠…
언제 시간나실 때, 레이코프교수의 초창기 설명좀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