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회적 매체 시대의 (개인과 조직의) 자기 정체성: 형성 vs. 축조와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을 바탕으로 사회적매체 시대의 자아의 개념에 대해 추가 논의를 한 글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자아(self)의 개념은 어빙 고프만의 영향을 받아 플로리다대학교의 배리 슐렌커 (Barry Schlenker)등이 발전시킨 이른바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이론과 버클리대학의 해롤드 켈리(Harold Kelley)와 프린스톤의 에드워드 존스등이 자기와 타인의 행위를 각기 다른 원인에서 찾는다는 이른바 귀인이론 (=attribution theory:탓이론)의 두가지 지적 흐름속에서 정리되어왔다. 에드워드 존스의 제자였던 케네스 거겐(Kenneth Gergen)은 고정된 self 혹은 핵심적 self가 존재한다는 도널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t) 입장에 반대하며, 이른바 saturated self 라는 개념을 내놓는데, 이 개념에 따르면 자아라는 것은 시간과 관계의 흐름속에서 끊임없이 (re)construct된다.
위니코트등이 말한 자아는 보수적이며 시간의 흐름속에 내재된 속성을 유지한다. 반면에 거겐의 자아는 급진적 자아이며, 시간의 흐름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며, 때로는 내부에서 각기 다른 갈망을 하고 서로 통제권을 지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다중적 자아(The multiplicity of selves)이다.
내 안에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 다중적 자아 개념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이래 문학과 예술, 영화의 주요 소재였다. 엄밀하게 지킬과 하이드에 나타난 것은 다중적 자아라기보다는 다중인격장애로써 다중적 극단적으로 싸움을 벌이는 상태에서 발견되는 정신병이다.
예일대 심리학자 폴 블룸 교수는 나와 타인의 행위를 귀인할 때 생기는 이른바 근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마저 시간의 흐름속에 변하는 다중적 자아속에서는 약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Social psychologists have found certain differences in how we think of ourselves versus how we think of other people—for instance, we tend to attribute our own bad behavior to unfortunate circumstances, and the bad behavior of others to their nature. But these biases diminish when we think of distant past selves or distant future selves; we see such selves the way we see other people. [First Person Plural]
문제는 오랜 시간 흐름속에서 나타나는 다중적 자아의 모습이 아니라, 낮과 밤의 생활에서 혹은 같은 시간대에서도 가족들과 거실에 있을 때와 혼자 골방에 틀여박혀 있을 때 전혀 다른 자아를 가동시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텐프로로 일하는 여대생을 지칭하는게 아니다. 그 경우는 다중적 자아라기보다는 다중적 신분이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다중적 자아는 다중적 인격에 가까운 정신병이며, 그 근간은 동시간대에 각기 다른 자아들을 움직이는 뇌의 투쟁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 보호운동에 앞장서는 교육감이 컴퓨터앞에 앉아서 10대 가출소녀들과 채팅을 통해 원조교제를 하는 행위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동성애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던 공화당 상원의원이 공중화장실에서 다른 남성에게 동성애를 구하다 걸린 일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밖에서는 거룩한 설교를 하고, 컴퓨터 자판에 앉아 익명으로 입에 담지 못할 악플을 담는 목사가 있다면 이 역시 이런 다중적 인격에 속한다.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전혀 다른 selves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뇌에는 각기 다른 자서전적 기억이 존재한다는 뉴로사이언스 연구결과도 있다.
Regardless of the cause of the spike, considerable evidence, including recent brain-imaging studies, suggests that some people really do shift from one self to another, and that the selves have different memories and personalities. In one study, women who had been diagnosed with dissociative-identity disorder and claimed to be capable of shifting at will from one self to another listened to recordings while in a PET scanner. When the recordings told of a woman’s own traumatic experience, the parts of the brain corresponding to autobiographic memory became active—but only when she had shifted to the self who had endured that traumatic experience. If she was in another self, different parts of the brain became active and showed a pattern of neural activity corresponding to hearing about the experience of a stranger.
일인칭 복수인 Myselves는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에 매우 중요한 함의를 남겨놓는다. 인터넷 시대에는 다중 자아 혹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자아를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세계에선 굉장히 내성적인데, 마우스와 자판만 잡으면 나를 내보여주지 못해 안달인 조급하고 외향적 자아를 만들 수도 있다. 사회학자 쉐리 터클 (Sherry Turkle)은 사람들이 아바타를 통해 그들이 가장 바라는 이상적 옵션으로 자아를 만들어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쉐리 터클이 온라인을 연구할 때는 지금처럼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들이 인터넷의 지배적 관계망이 아니었다. MUD등이 퇴조하고 뒤이어 등장한 가상현실세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때문에 맥을 못추거나 언론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이 시점에 다중적 자아 연구의 중요성도 떨어질 지 모른다. 거기다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진짜 자아(authentic self)에 있기에 어쩌면 이런 일인칭 복수 개념인 myselves가 별 의미없는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사회적매체는 일인칭 복수인 myselves를 퇴출시키는 긍정적효과를 가져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