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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the ‘Murmurs’ Category

The Buck Stops Here [책임은 내게 있다]

May 29th, 2010

멕시코만 원유 유출피해가 단일사건으로 미국이 경험한 최악의 재앙이 되어가고 도무지 수습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고 있다. 아직도 쉬지 않고 바다로 뿜어지는 원유를 효과적으로 멈출 완벽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오염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피해범위는 넓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환경을 걱정하는 미국인들과 생업과 생계의 터전을 잃은 현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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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든지 피해배상액을 줄이려는 BP는 의회청문회에서 트랜스오션이라는 회사와 조지부시 정권때 실세였던 딕 체니가 깊이 연관된 할리버튼에 책임을 떠넘기는 추악한 모습까지 보이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매일밤 심야 토크쇼 코미디언들은 BP를 비웃는 개그를 던지고 있고, 트위터에는 BP의 무책임한 대공중관계(PR)를 풍자하는 풍자 트위터 @BPGlobalPR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5월 19일 시작해 연일 BP를 비꼬고 있는 이 트위터는 9일만에 8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얻어 BP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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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오바마 미대통령이 멕시코만을 두번째로 찾았다. 검붉게 변한 멕시코만의 해안에 도착한 그는 장화를 신고 있었다. 연청색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입은 그는 바닷가에 쪼그려 앉아 파도가 운반해온 타르더미를 집어들고 “붐(boom)에 흡수되지 않으면 인력으로 모두 걷어내야겠지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바로 그곳에서 전국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장 뒤로 터전을 잃은 바닷갈매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계속 들렸다.

“이 위기를 해결하는데 있어, 모든 책임을 제가 지겠습니다.” 라고 운을 뗀 오마마 대통령은 그다음 같은 요지의 말을 이런 표현으로 되풀이했다.

I’m the President, and the buck stops with me.


미 주요 언론들은 모두 “the buck stops with me”를 타이틀로 혹은 사운드바이트로 뽑아 이 뉴스를 전했다. 우리에겐 전혀 친숙하지 않은 이 말은 도대체 어떤 뜻을 갖는가? 이 표현을 이해하려면 일단 buck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현대 미국 영어에서 buck는 주로 달러를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 하지만 여기서 buck은 그 의미와는 관련이 없다. buck은 카드게임에서 사용되는 은어였다. 카드게임에서 카드를 돌리는 가운데 종종 속임수가 있었고 이때문에 칼(총)부림 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되면서, 세션마다 카드돌리는 것을 바꾸는 룰이 생겨났다. 다음 번에 카드 돌릴 사람은 앞에 표식을 받게 되는데, 이 표식으로 순록(buck)의 뿔(horn)로 손잡이를 만든 주머니용칼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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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를 돌린 사람이 다음 순서인 사람에게 패를 넘길 때, 이를 pass the buck이라고 했던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카드에서 가장 중요한 deal (패섞는 것)을 넘기는 직설적 의미가 오늘날 ‘책임을 떠넘기다’라는 은유적 의미로 굳어진 것은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미 33대 트루먼 대통령의 고향마을 친구였던 미주리의 보안관 프레드 캔필(Fred Canfil)은 어느 날 오클라호마주의 한 연방감화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the buck stops here라는 사인을 보고, 트루먼을 위해 이 문구를 넣은 책상용 장식용 표지판을 만들어 선물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앞면에는 The Buck Stops Here.라고 적혀있고 뒷면은 I’m from Missouri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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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대통령의 집무실에 있다가 미주리 트루먼 박물관에 소장었던 이 표지판은 지미카터 대통령의 집권시절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임 연설에서도 이 표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The President – whoever he is – has to decide. He can’t pass the buck to anybody. No one else can do the deciding for him. That’s his job.”

원유유출의 피해와중에 차기 대권을 노리는 두명의 공화당 예비주자들이 오바마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흠집을 많이 내기 위함도 있지만, 사람들의 불만을 부추기고 동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동물들이다. 그 한명은 당연히 원유가 유출된 루이지애나 주의 주시사 바비 진달이다. 바비 진달은 인도 2세 미국인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공화당의 오바마로 불리는 유망한 정치인이다. 다른 한명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은 열성팬과 가장 많은 적을 가진 정치인 새라 페일린이다. 바비 진달은 역시 계산된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으로 현장을 누비면서 미국인들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주고 있는 반면, 요란한 빈수레 새라 페일린은 뚜렷한 대안 제시없이 오로지 비난 게임에만 올인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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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er, May 31, 2010, p.36]

이런 가운데 오늘 오바마 대통령이 던진 “The Buck Stops with Me”는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 현실과 대비해 큰 울림을 준다. “내가 대통령입니다. 남에게 책임넘기지 않고,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혹자는 말은 쉽다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이건 정치인이건 위기 상황에서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자신이 직접 잘못한 일도 아니고, 탐욕에 쩌든 악한 기업의 행위로 인해 빚어진 재앙을 자신에게 돌린다는 것, 이것은 매우 큰 용기이며 존경스러운 결정이다.

국민적 저항앞에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고 고개를 떨구는 시늉을 했던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2년 뒤 “국민들은 반성하라”고 훈계했다. 천안함 관련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어야 할 살아남은 장성놈들은 무슨 개선장군마냥 의기양양하게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을 겁박하고, 연일 전쟁의 공포로 한반도를 다시 긴장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명박정권의 거짓말과 국민협박에 신물이 난 우리네들은 그놈의 섬기겠다는 말은 이제 듣기도 싫고, 제발 단 한번만이라도 “책임은 모두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라며 국민앞에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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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발 경제 위기와 부패지수

April 17th, 2010

WSJ: Tragic Flaw: Graft Feeds Greeks Crisis
[우리나라 신문의 요약기사: 뇌물과 부패문화가 그리스 재정위기 불렀다]

이슈: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위해 IMF 및 EU와 깊은 협상에 들어갔지만, 과연 구제금융이 재정적자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를 구할 것인가에 대해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내보이고 있다. 이가운데 미 브루킹스 연구소가 내놓은 국가별 부패지수와 재정적자의 상관관계 분석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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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1. (intro) 그리스어로 파켈라키 (fakelaki) and 라우스페티 (rousfeti)는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이 두 단어가 현재 그리스가 겪고 있는 재정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가?

2. (advanced) 미 씽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뇌물과 밀어주기, 정치적 부패 정도가 한 국가의 재정적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태리와 그리스는 왜 고질적인 부패고리를 끊을 수 없는지, 핀란드와 네덜란드는 왜 상대적으로 부패정도가 낮은가를 논의해보라.

3. (advanced) 그리스에서 세금 징수가 잘 안되는 이유는 그리스의 세무공무원들이 이른바 축구용어의 변형인 4-4-2 시스템을 가지고 세금 징수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일억원 세금을 내야 하는 사업체가 4천만원은 세무공무원에게 바치면 이천만원만 국가에 내고, 4천만원은 세금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도표에서 부패지수가 낮은 핀란드는 국민들의 납세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핀란드인들의 납세 의무 의식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논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부자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의 세금체납액이 왜 가장 높은지 논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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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시대의 실직

January 4t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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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er, Jan. 4. 2010,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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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에게 절하는 오바마를 풍자한 뉴요커의 삽화

December 9th, 2009

뉴요커지의 커버 페이지의 삽화는 아주 가끔 정치 풍자를 하는데, 그때마다 이 풍자물들은 많은 사람들의 토론 혹은 논쟁을 낳는다. 특히 작년에 대선을 얼마 앞두고 이슬람 터번을 쓰고 오사마 빈 라덴의 초상화 아래에 있는 벽난로에서 미국 성조기가 불타는 가운데 부인 미셸과 주먹을 맞부딪히는 (fist bump) 삽화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되자 뉴요커지의 편집장 데이빗 렘닉은 이 삽화가 오바마에 대한 일부 백인들의 잘못된 지각(혹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그림의 제목도 그래서 ‘politics of fear’라고 주장했다. 즉 오바마가 이슬람교도니 애국심이 없니 하는 루머를 퍼뜨리는 정치인들이 사람들의 ‘fear’의 느낌을 악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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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점의 진열대에 꽂혀 있는 뉴요커지의 커버를 보고 누가 그런 깊은 뜻을 해석하려고 노력하겠는가? 이 표지를 스쳐 본 사람들중 어떤 사람들은 그와는 반대로 오바마에 대한 잘못된 지각을 강화했을 수가 있다.

계속 문제가 되자 편집장 데이빗 렘닉은 정치풍자의 자유를 강조했고, 또 거기에는 어떤 정파적 이해관계도 결부되지 않음을 강조하며 풍자 삽화 전시를 하기도 했다.

The Politics of Satire _ The New Yorker.jpg

그런 전력을 가진 뉴요커지가 오랜만에 다시 정치 풍자를 실었는데 이번에도 오바마의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서 나온 이 삽화는 context를 모른다면 그냥 재밌다고 지나갈 수 있는 그림이다.

The New Yorker Digital Edition _ Dec 14, 2009.jpg

하지만 지난 번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왕에게 고개를 완전히 숙이고 절을 했던 오바마를 기억하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분명 이 그림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이 분명하다.

Peggy Noonan_ He Can_t Take Another Bow - WSJ.com.jpg

오바마가 망하기를 바라는 공화당주의자들이 당시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매주 토요일 정치 칼럼을 쓰는 전 레이건 스피치원고 작성비서 출신의 보수파 저널리스트 페기 누난은 He Can’t Take Another Bow: An icon of a White House that is coming to seem amateurish라는 칼럼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교묘하게 펜대를 굴렸다.

‘위대한 나라’가 자신감있고 강할 때야 예고없이 취한 대통령의 깜짝놀랄만한 꾸벅인사도 우아하게 보일 지 모른다. (하지만 경기후퇴로) 나라가 초조해했을 때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다면 비굴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일본왕에게) 절하는 사진은 꼭 그때문에 iconic한 것만은 아니다. 이 고개숙인 사진들은 현 대통령의 통치에 뭔가 아마추어같고 무능한 것 같다는 정치적 지각이 증가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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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다가 데자뷰의 느낌을 받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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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슈미트씨의 WSJ 의견글에 대해

December 4th, 2009

어제는 정말 종일 구글 CEO 에릭 슈미트씨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의견글(op-ed)이 화제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op-ed에 대해 언급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구글 블로그 검색을 해봤습니다. 이 의견들을 모두 다 읽어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네요. 어제 그 글의 페이지뷰가 꽤 나와, WSJ쪽으로는 꽤 괜찮은 이득을 본 날이지 싶습니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많았는데, 제가 재미나게 본 글은 바로 애틀랜틱 와이어에서 본 Google to Murdoch: Peace Offering or Fighting Words? 였습니다. 슈미트씨의 글에 대해 전문가들의 논평을 요약 대비하면서 휴전을 위한 글인지, 아니면 확전을 선언한 글인지에 생각해보라는 재미난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요즘 머독이 이곳저곳에서 끈질기게 구글을 압박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헤드라인 카피입니다.

제가 Review의 구글 v. 머독에서도 기록했듯이 루퍼트 머독이 구글에 검색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협상용 카드에 불과합니다. 어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링크를 타고 글을 보기도 했겠지만, 앞으로 구글과 신문이라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하면 분명히 WSJ의 그 글이 맨 위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방문자 유입 효과를 그냥 무자르듯 자를만큼 머독이 완고할까에 대해선 의문이 남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머독이 압박하고 있는 바로 그 당사자가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신문사에다가 op-ed를 올렸으니 이 자체로만 해도 빅뉴스가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대박났지요.

그런데 이 글의 행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행간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오직 슈미트와 머독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요? 슈미트씨의 글이 평화를 위한 협정 제안인지 아니면 계속 싸워보자는 결사항전 임전무퇴를 다지는 글인지는 슈미트씨만이 알테고, 또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세상의 해석과는 전혀 관계없이 루퍼트 머독만이 내릴 결정인 셈이죠. 분명한 것은 어제 글로 구글은 백만원병을 얻은 것 같은 효과를 냈다는 것입니다. PR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셈이죠. 그렇다고 WSJ이 한 판졌다고는 볼 수 없겠네요. 어쨌든 WSJ을 봐야 이 정도 메가톤급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 직접 쓴 의견칼럼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렸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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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퀴즈] Too big to fail

November 25th, 2009

[연상퀴즈] 아침에 신문의 op-ed페이지에서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그 기사에 이런 그림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 그림에 어울리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뽑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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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맞히는 분께 구글이 감마테스트중인 모빌용 GPS(Galaxy Positioning System) “안드로메다” 초대장을 보내드립니다.

Addendum

연상퀴즈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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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You, certainly not loser!” @gatorlog: [연상퀴즈] 이 그림에 맞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뽑아보세요. http://yfrog.com/1ep7yj...http://dw.am/L9lS

@gatorlog 연상퀴즈 : CEO의 조건

@gatorlog 1. OO기업, 직장동료 평가제 도입 / 2. 취업가도 루저열풍 – 신체조건 입사결과에 영향미쳐 / 3. 인재 규격화 낳는 대기업 입사제도 – 맞지는 않을것 같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습니다.^^

@gatorlog 루저 발언은 정말 사그라들지도 않나 봅니다. ㅋㅋ 그런데 심사관들은 다 루저이신듯. ㅋㅋㅋ


nije께서 퀴즈 정답을 맞혀 게임이 over됐습니다. 문제가 심각한데도 너무 커버려서 없앨 수 없는 미국 금융권 문제를 다룬 기사입니다. 이 이슈는 일전에 뉴요커 칼럼니스트 제임스 서로위키도 다뤘습니다.

So, at a time when banks are failing with some regularity, the size and ubiquity of these big banks is reassuring. It seems improbable that they will simply vanish (the way a bank like IndyMac did), because the government won’t allow it. It’s possible, in fact, that the crisis, instead of eroding the reputational advantages of the big banks, ended up bolstering them. In times of uncertainty, people are inclined to shun experiment for the safe choice. [WHY BANKS STAY BIG]

too big to fail이란 책 도 나왔지요.
Amazon.com_ Too Big to Fail_ The Inside Story of How Wall Street and Washington Fought to Save the Financial System---and Themselves (9780670021253)_ Andrew Ross Sorkin_ Book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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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November 23rd, 2009

조선일보 출신, 한나라당 구태의원 진성호씨가 자신의 친정을 살리기 위해 희한한 입법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른바 ‘신문 구독하면 연 30만원까지 소득공제’해준다는 것이다. (via @estima7)

이 발상은 조선일보가 그동안 줄기차게 내걸어온 이른바 “시장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극히 ‘반시장주의적’ 발상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위해 이들이 모델로 삼은 것은 그들이 평소 들먹이던 미국이 아니다. 이번엔 프랑스다.

일개 독점적 사기업 (혹자는 사익추구집단이라 부름)에 불과한 조중동을 살리기 위해 국고를 바로 열어주면 반대에 직면할 수 있기에, 이들은 이번에도 술수를 부린다. 국고를 열어 뭉텅 집어주는 대신 소득공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소비자입장에서는 뭔가 좋은 소리처럼 들린다. 신문도 보고 세금 혜택도 받고.

그런데 어쩌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격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일에 국고를 열겠다는 이런 생각이 건전한 것일까? 지금 많은 국민들은 4대강 삽질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엉뚱한 곳에 탕진시킬 것이 분명한 현 정권을 매우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다. 이미 재정적자가 불을 보듯 뻔한 판국이다. 신문사들에 제공되는 혜택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더 심화시킬 뿐이며, 이로 인해 정작 국가가 돈을 써야 할 곳에는 돈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국고를 털어 사익추구집단을 살리겠다는 이 희한한 발상은 이런 경제적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이미 모순이다. 정부가 납세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기업을 살리겠다면, 우리는 이보다 훨씬 공익적인 혹은 몇백배는 더 많은 납세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산업의 영역에도 정부가 똑같은 혜택을 줘야 된다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형평성의 문제이다. 일례로 휴대폰 요금은 왜 소득공제는 커녕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가? 트위터상에는 벌써 실시간으로 이런 모순을 지적하는 트위터리언들의 RT가 줄을 잇고 있다.

40%만 구독하는 신문보다는, 85% 가입한 무선인터넷을 활성화시키는게 맞죠 RT @ih5 @Hanbaek @kimseongjoo:무선인터넷 스마트폰 사용하면 년 30만원 소득공제를 RT @estima7: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hollobit

현 정부는 재벌과 신문의 지상파 방송 진출을 허용함으로써 현 삽질정권 창출에 1등공신 역할을 한 조중동에 이미 보은을 했다. 진성호가 이번에 입법 발의했다는 내용이 그 개인의 작품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미 친정과 정권 내부의 긴밀한 협의와 조정을 거쳐 나온 또다른 보은용 퍼주기 성격이 짙다. 이미 이 정권은 반대파에는 엄청난 탄압과 보복, 자신의 주구들에게는 놀랄정도로 뻔뻔스러운 보은을 해준 정권이라는 것이 세간의 시각이다:

이번 정부의 특징은 반대세력에게는 철저히 보복 지지세력에게는 철저히 보은한다는 것이다. @pariscom

진성호는 이번 입법 발의를 하면서 프랑스의 니콜라스 사르코지가 추진하려는 신문보조금 계획을 언급했다. 프랑스 대통령은 향후 3년간 프랑스 신문에 €600million을 긴급투입하고, 청소년들이 18세가 되는 해에 1년간 신문을 무료로 구독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런 발상이 미국에선 먹힐까? 미국에서 이런 발상을 내놓는 자가 있다면 바로 정치생명이 끝날 것이다.

저널리스트이자 블로거, 그리고 뉴미디어 컨설턴트이자 뉴욕시립대의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인 제프 자비스는 신문에 대한 구제금융안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Danger, danger, Will Robinson. I don’t want government interfering with news and speech (he who giveth may taketh away). And I’m not at all sure that it’s newspapers that should be the beneficiaries of subsidy; they have not given journalism responsible stewardship in the last decade and a half. [Newspaper subsidy? Try this…]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의 저널리즘스쿨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시각에 동의할 것이다. 거기다가 이런 보조금 정책이 죽어가는 신문산업이라는 식물을 극적으로 회생시키지도 않을 것이다는 점을 인식하는게 더 중요하다.

신문 산업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제프 자비스는 대신 오바마 정권이 다음과 같은 식으로 신문에 보조를 해준다면 자신이 적극 지지할 수 있겠다고 한다. (자비스의 주장중 몇개를 부분 요약하고 내 의견을 첨가했음).

1. 오바마 정부가 전 미국인들이 브로드밴드를 갖게 해준다면 뉴스업체들은 지금 종이신문으로 확보할 수 있는 독자들보다 훨씬 많은 공중들에게 뉴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1. 저소득층자들이 컴퓨터 구매와 인터넷 사용을 하는데 세제 혜택을 준다면 이른바 ‘디지털 격차’도 줄일 수 있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1. 젊은 세대들에게 일년간 신문을 소비하는 것을 장려하는 것보다, 블로그와 온라인 저널리즘, 블로기즘 교육을 통해 미디어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이른바 디지털 문맹 혁파 교육을 시켜준다면 이들이 더 분별력있는 미디어의 수용자로 자랄 수 있음을 물론이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줄 아는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1.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플랫폼위에 구축되어진 더 건실한 미래형 뉴스 산업을 만들수 있을 것입니다.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의 구제금융보다는 정보화 사회를 위해 이런 방법들이 더 나은 투자가 아닐까요?

Convers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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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mislife조선일보출신 진성호의원 신문보면 소득공제 30만원 입법안 제출했다는데.. http://bit.ly/4okMvM
hangulo잃어버린 10년전으로 RT @junycap: @gatorlog“신문구독하면 연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발의 논란보고, 제프 자비스씨가 일전에 올린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신문산업에대한 정부지원’이란 글로 정리. http://bit.ly/8uY82u
junycap혹시 못보신 분들을 위해 RT @gatorlog“신문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발의 논란보고, 제프 자비스씨가 일전에 올린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신문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란 글로 정리. http://bit.ly/8uY82u
chghynRT 다양하게 웃기네 @babocherub: 우하하하 너무 웃겨…. RT @patoworld참으로 놀라운 시절이다 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
moon100“배부른 돼지들이 더 살찌고, 배고픈 자들은 여전히 배고프고.” http://bit.ly/8GztJz(via @gatorlog신문구독 소득공제 입법 발의 관련)
lbjcomRT @ih5: 정말 어이없죠 RT @gatorlog: 트위터상에는 벌써 이런 모순을 지적하는 트위터리언들의 RT가 줄을 잇고 있다.http://gatorlog.com/?p=1691@hollobit@ih5@Hanbaek@kimseong
ih5정말 어이없죠 RT @gatorlog: 트위터상에는 벌써 이런 모순을 지적하는 트위터리언들의 RT가 줄을 잇고 있다.http://gatorlog.com/?p=1691@hollobit@ih5@Hanbaek@kimseongjoo@estima7
babocherub우하하하 너무 웃겨…. RT @patoworld참으로 놀라운 시절이다 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
gatorlogRT @jina522: 그 돈은 어디서 나서 준데요. 4대강 파는데 다 쓰고나서.@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http://bit.ly/8uY82u진성호의 발의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gaemon@gatorlog누군가 했더니 진본좌군요. 드보르작 같은 애하고 놀더니 쯧쯧. 친구 가려서 사귀라는 엄마 말 안들으면 저런 꼴이 된다는.
russaRT @gatorlog: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 논란을 보고, 제프 자비스씨가 일전에 올린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신문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란 글이 생각나 정리해봤습니다. http://bit.ly/8uY82u
whinsuriRT@sigol:@gatorlog:“신문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 논란을 보고, 제프 자비스씨가 일전에 올린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신문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란 글이 생각나 정리해봤습니다. http://bit.ly/8uY82u
sigolRT @gatorlog: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 논란을 보고, 제프 자비스씨가 일전에 올린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신문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란 글이 생각나 정리해봤습니다. http://bit.ly/8uY82u
happyaloRT @gatorlog: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 논란을 보고, 제프 자비스씨가 일전에 올린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신문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란 글이 생각나 정리해봤습니다. http://bit.ly/8uY82u
gatorlog“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 논란을 보고, 제프 자비스씨가 일전에 올린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신문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란 글이 생각나 정리해봤습니다. http://bit.ly/8uY82u
messfilmhttp://is.gd/52mi7“신문 구독하면 소득공제 연 30만원..” – 한나라당의 조선일보 사랑
junppa국민들 진을 빼려는 작전 일환.. RT @exsugar@lightroot@foxgogi@tjryu@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진성호의 발의.
yoon300B그러면 위성방송은? 케이블 티비는? 에혀.. RT @patoworld: 참으로 놀라운 시절이다 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
yoon300B이거 정말인가요? @.@ RT @patoworld: 참으로 놀라운 시절이다 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
exsugarRT @lightroot: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RT @foxgogi: 아놔 @tjryu@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http://gatorlog.com/?p=1691진성호의 발의.
patoworld참으로 놀라운 시절이다 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
HaneulnuriRT 이건 뭡니까? @lightroot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foxgogi@tjryu조중동의 어마어마한 판촉 예상 @doax: 신문 구독하면 연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j.mp/69gueU진성호의 발의 참 어이가 없다
nanumsirRT어이 상실 ㅠㅠ @foxgogi: 아놔..RT @tjryu: 조중동의 어마어마한 판촉이 예상됩니다.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진성호의 발의라
lightroot세상이 미쳐 돌아간다RT @foxgogi: 아놔 @tjryu조중동의 어마어마한 판촉이 예상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진성호의 발의. 참 어이가 없다
Centaurskr참나 정신이 있는건가 묻고싶구만….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gatorlog) 진성호의 발의라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foxgogi아놔..RT @tjryu: 조중동의 어마어마한 판촉이 예상됩니다.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http://gatorlog.com/?p=1691진성호의 발의라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paulssong좃중동 살리자고 국고를 터는군요. 이 인간들 가면 갈수록… 아주 신났군요. 신났어ㅠㅠ RT @Celina_Park: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bit.ly/54VJwBvia @addthis
seungil_lee@doax 정말, 제정신으로 한 발의..? 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gatorlog) 진성호의 발의라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Celina_Park“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via @addthis
coyday조만간 티비를 사도 소득공제해주겠군. 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http://gatorlog.com/?p=1691(@gatorlog) 진성호의 발의라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jina522그 돈은 어디서 나서 준데요…4대강 파는데 다 쓰고나서…R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http://gatorlog.com/?p=1691(@gatorlog) 진성호의 발의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nor1dor1역시 진성호였군요. RT @blographer:http://gatorlog.com/?p=1691““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 ‘국… http://dw.am/L9At
doax: “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http://gatorlog.com/?p=1691(@gatorlog) 진성호의 발의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zetlosㅡ.ㅡ; RT @blographer:http://bit.ly/54VJwB““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 ‘국고를 털어 사익추구집단을 살리겠다는 이 희한한 발… http://bit.ly/5Se4DI
blographerhttp://gatorlog.com/?p=1691““신문 구독하면 연(年)30만원까지 소득공제” 입법 발의에 대해” – ‘국고를 털어 사익추구집단을 살리겠다는 이 희한한 발… http://dw.am/L9Ao
RussaRT @gatorlog: 트위터상에는 벌써 이런 모순을 지적하는 트위터리언들의 RT가 줄을 잇고 있다.http://gatorlog.com/?p=1691@hollobit@ih5@Hanbaek@kimseongjoo@estima7
gatorlog트위터상에는 벌써 이런 모순을 지적하는 트위터리언들의 RT가 줄을 잇고 있다. http://gatorlog.com/?p=1691@hollobit@ih5@Hanbaek@kimseongjoo@estim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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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센치미터, 코리안 트위터스, 그리고 브레이브 뉴월드

November 20th, 2009

민노씨의 “트위터 줄세우기 서비스 : 거짓 전도사들“이라는 글에 보내는 트랙백입니다.

의심많고 눈에 보이는 것만 좇는 인간의 본성은 참된 진리에 접근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아직까지 의심과 회의속에서 진리와 복음을 완전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주변만 겉도는게 사실이다.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예수의 제자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다른 제자들에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스승을 믿지 못하는 제자를 나무라시기는 커녕, 예수는 도마에게 오셔 이렇게 말하셨다고 전해진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한다. 이에 예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고 믿느냐’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봐야만 네가 복음을 아느냐’이다. 그런데 이 말에 담긴 속뜻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수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180센치미터를 확인해야만 위너(winner)로 보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세대들에게 말이다. ‘네가 대물인 것을 보여줘‘ 그러면 널 ‘택할께’ — 이는 봐야만 믿겠다는 ‘도마’로 대변되는 속물적인 우리들의 전형이다. 180센치미터건 150센치미터건 스킨 벗겨놓으면 모두 하나같이 해골인데, 그 겉모습에 혹해서 사람을 재단한다. 그리고 그 사회의 보여주기 가치에 따르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다.

자신의 겉모습을 치장해서 성형을 하려는 사람들처럼, 트위터에서도 숫자를 불려 자신의 실체를 성형하려는 송사리들이 꽤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송사리들의 숫자를 삼키는 이보다는 더 큰 메기들이 있다. 이 메기들은 언젠가는 자기도 고래가 되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어린 송사리들을 유인한다. 하지만 메기가 고래들 노는 바다에서 놀 수 있을까? 트위터에 보니까 이런 메기같은 자들이 거짓 전도를 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코리안 트위터스라는 사이트가 도대체 뭔가? 누가 만들었는가? 그런 사이트를 누가 만들었고,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도대체 구글신도 그런 걸 말해주지 않는다. 그 회사의 트위터를 보니 “미국 palo alto 에있는 한인이 경영하는 internet software 회사에서 만들었읍니다”라고 적혀 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런 사이트에 송사리를 보내는 메기들도 문제고, 사용자 허락도 받지 않고 ID를 제멋대로 이곳 저곳에 분류해 놓은 그 사이트의 사장도 문제다.

트위터에서 숫자가지고 요란떠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팔로워가 삼만명인 들, 3000명인들, 300명인들 그게 뭐 대순가. 그런데 그 알량한 숫자를 잡기 위해 그 알량한 숫자를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다. 트위터에서 숫자늘이기 게임하면서 자신을 높이려 한다. 그게 뭐 대수랴. 트위터에 만 명이면 당신이 그만큼 높아지는가? 그만큼 위대해지는가? “아서라. 말어라. 미실 아들 너희로다.” 천하의 미실도 가거늘..

What Lemmings Believe - Video.jpg

[What Lemming Believe]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예수의 제자들은 이상한 다툼을 벌인다. 이름하여 ‘누가 더 크냐’ 논쟁이다. 자신들이 섬기는 스승이 죽음을 앞두고 최후 만찬을 갖는 그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 누가 ‘가장 크냐’를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 다툼이 난 지에 대해 누가는 기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섬기는 스승이 죽음을 앞두고 최후 만찬을 갖는 그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 누가 ‘가장 크냐’를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어 표현으로는 ‘”considered to be greatest”이다. 누가 가장 위대하냐 이다. 왜 그들은 누가 가장 큰 가, 누가 가장 위대한 가를 논의하고 있었을까? 아마 누가 스승을 팔 것인가를 논의하다가, 누가 과연 스승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사람인가를 내세우며 자신은 그럴 리 없다라고 주장하기 위한 다툼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가 더 크냐?”]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마지막 가르침을 주신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 (the greatest among you should be like the youngest, and the one who rules like the one who serves” )

예수께선 일관되게 낮아져야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게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4장 10-11]

많은 대중들이 TV와 인터넷의 포로로 전락한 오늘날 세상은 “봐야만 믿을 수 있다”(seeing is believing)라고 믿는 사람과 그렇게 봐야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봐요. 날 좀 봐주세요“라고 자기를 PR하기 바쁜 사람들 간에 주목 뺏고 뺏기기 게임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게임쇼와 같다.

TV와 인터넷이 지배적인 미디어가 아니었을 때, 지식인들은 행여 압제자들이 대중들로부터 정보를 뺏거나 독점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금서를 만들지 않을까, 인터넷의 흐름을 막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했다. 조지 오웰은 미래사회에서는 빅 브러더가 강제로 윈스턴을 무기력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앨더스 헉슬리는 brave new world에서 다른 생각을 했다. 그는 미래의 brave new world에서는 오히려 정보가 너무 넘쳐나서 사람들이 수동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 갈 것을 두려워했다.

조지 오웰이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에게서 책을 못읽게 막을 압제자였다. 헉슬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Brave New World에서는 책을 금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왜냐면 누구도 책을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웰이 두려워했던 것은 우리에게서 정보를 빼앗아 갈 사람이었지만, 헉슬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줌으로써 우리가 수동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되어 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오웰은 진실이 감춰질 것을 두려워했다. 헉슬리가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가 아주 하찮은 문화로 전락해 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닐 포스트만의 타계에 부쳐..]

2003년 amusing ourselves to death의 서문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난 앨더스 헉슬리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2009년 오늘, 소일거리로 혹은 화젯거리를 알아보기 위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트위터가, 이처럼 ‘누가 더 큰가‘ 키재기를 부추기는 ‘의도적인 장난질’치는 자들 때문에 하찮은 문화로 전락해 가지 않을까 우재씨나 민노씨처럼 우려한다.

Conversations

Twitter (4)
FROSTEYedRT @gatorlog: 정보필터링을 위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트위터가, 국내에선 ‘트위터 코리언스’처럼 ‘누가 더 큰가’ 키재기를 부추기는 ‘의도적인 장난질’치는 자들 때문에 하찮은 문화로 전락해 가지 않을까 http://bit.ly/5voirb
gatorlog정보필터링을 위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트위터가, 국내에선 ‘트위터 코리언스’처럼 ‘누가 더 큰가’ 키재기를 부추기는 ‘의도적인 장난질’치는 자들 때문에 하찮은 문화로 전락해 가지 않을까 우려한다.http://bit.ly/5voirb
minoci180센치미터, 코리안 트위터스, 그리고 브레이브 뉴월드 (아거) : 존경하는 벗이 있어 먼 곳에서 트랙백 한방 쏴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게이터로그 댓글 안내문 패러디. ㅎㅎ) http://bit.ly/07QyR6R
happyalo“오웰이 두려워했던 것은 우리에게서 정보를 빼앗아 갈 사람이었지만, 헉슬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줌으로써 우리가 수동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되어 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 http://twurl.nl/tnw8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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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윌리암스의 '트위터는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생각에 대해

November 12th, 2009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에반 윌리암스가 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라 정보 네트워크라고 했다고 한다. (via 브라이언 솔리스)

@EV: Twitter is not a social network, it’s an information network

에반 윌리암스는 사업적 감각은 있을지 몰라도, 미디어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듯 하다. 미디어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매체도 특정한 용도로 규정될 수 없다. 이렇게 물으면 바로 모순을 파악할 수 있다. ‘라디오는 정보 매체인가? 오락 매체인가? 아니면 현실도피를 위한 매체인가?’

시대를 초월해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 비평학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바로 그가 던진 놀라운 insight 때문이다. 그는 ‘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했다. 그가 ‘미디엄은 메시지다’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메시지가 태동할 환경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형성된 새로운 매체는 인간들이 관계하고 행동하는 규모와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는다. 새로운 매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열어놓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맥루한이 예로 든 것처럼 전등이라는 매체가 뇌수술에 사용되건 야구장의 야간경기를 밝히는데 사용되는가는 매체 생태학에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새로운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관계망은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매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

다시 말해 그 누구도 특정매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를 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게 그 매체를 발명한 사람일지라도 매체는 애초 개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화해간다. 그래서 트위터의 아버지건 할아비건 ‘트위터는 ~ 이다’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도 트위터는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내게 트위터는 일종의 휴식공간이다. 간혹 타임라인에서 드는 생각이나 감정을 칠칠맞게 흘리거나, 내 블로그글의 링크를 거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정보적 가치로서는 아주 빵점이다. 내가 보는 트위터는 또하나의 trendsetter이다. 정보라는 착각을 주는 소식들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난 전통적 매체에 들어가거나 책을 들여다 보거나 아니면 학술저널을 읽는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조금 있다보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내 머리속에 있는 정보조차 날아갈 것 같은 걱정이 든다. 휴식을 취하러 갔다가 오히려 정신줄을 놓을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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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 (9)
iampaprikaRT @gatorlog: 남겨주신 댓글에 답글을 남겼습니다 http://bit.ly/8Izrw8RT @tomyun: “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다.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ev의 말에 대한 @gatorlog님의 의견에 대한 나의 생각 @ …
gatorlog남겨주신 댓글에 답글을 남겼습니다 http://bit.ly/8Izrw8RT @tomyun: “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다.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ev의 말에 대한 @gatorlog님의 의견에 대한 나의 생각 @ReadLead
tomyun“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다.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ev의 말에 대한 @gatorlog님의 의견에 대한 나의 생각. http://bit.ly/7RcH4RRT @ReadLead http://gatorlog.com/?p=1575
ReadLead페이스북을 네트워크 서비스라 선언하는 것 http://www.read-lead.com/blog/944, 트위터를 정보 네트워크라 선언하는 것.http://gatorlog.com/?p=1575모두 다 탐욕 가득한 말장난이다. ^^
hownext공가ㅁRT @hongss: 트위터의 아버지건 할아비건 ‘트위터는 ~ 이다’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도 트위터는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http://bit.ly/46xmTo
DrunkeN_JRT @hongss: 트위터의 아버지건 할아비건 ‘트위터는 ~ 이다’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도 트위터는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http://bit.ly/46xmTo
hongss트위터의 아버지건 할아비건 ‘트위터는 ~ 이다’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도 트위터는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http://bit.ly/46xmTo
Kwangbae에반 윌리암스의 ‘트위터는 정보 네트워크다’라는 생각에 대해: http://gatorlog.com/?p=1575 via @add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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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넌센스

October 12th, 2009

아침밥 먹으며 (아이팟 터치로) MBC라디오를 트니, 이외수의 언중유쾌라는 것이 흘러나왔다. 이외수씨가 오바마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한 생각(혹은 작가들의 원고?)을 읽어 나갔는데, 140자 논평의 귀재인 그가 여기에서는 그다지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통력이 없는 이유는 너무나 평범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업적을 죽 읽고 다음에 오바마가 그들의 업적에 걸맞는 업적을 남겼냐는 반문에는 전혀 색다른 관점이 들어있지 않았다. 이외수씨 혹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개탄하면서 꺼버렸다.

난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의 지도자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알려져있다시피, 노벨 평화상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이 전쟁에 사용되는 것에 책임(혹은 죄책감?)을 느낀 노벨의 유지를 받들어 제정된 상이다. 다이너마이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무자비하게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들을 가지고 세계 여러나라의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나라의 지도자에게 절대 돌아가서는 안될 상이다. 조쥐 부시가 벌여놓은 전쟁이기에 오바마는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모두 철군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 한 후에 수상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受賞의 이유를 노벨평화상 심사 위원들 중 과반수 이상이 좌파라는 점에서 찾는다고 한다. 이것도 넌센스다. 오바마가 좌파라고 생각해서 상을 줬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진짜 좌파들은 땅을 치고 통곡할 지도 모른다. 이건 마치 고 김대중 대통령이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좌파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좌파여서 오바마를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퇴임한 조쥐 부시 귀싸대기를 때리기 위해서 좋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

따라서 기본적으로 오바마의 수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왕 그런 본연의 취지가 퇴색한 마당에 그런 것을 따져서 뭐하겠느냐는 분이 있다면 물론 나도 유연하게 사고할 용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에게 평화상을 授賞한 이유를 ‘앞으로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는 소요유님의 의견을 받아서 생각해 봤다.

‘평화’는 거대한 빙산을 만날 운명을 가진 타이타닉호다. 개인의 삶에서도 평생 평화로운 삶이 있을 수 없듯이, 국내문제나 국가를 초월한 범지구적 문제에서도 평화가 지속될 수 없다. 세상에는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사람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걸려 이뤄놓은 평화를 깨뜨리기 위해 눈이 벌건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인 셈이다.

평화는 ‘북극의 눈물’에 나오는 얼음판이다. 지구온난화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북극곰과 일각고래 사냥꾼들의 삶을 지탱해온 두꺼운 얼음을 깨뜨렸듯이, 조선일보와 이명박과 같은 평화파괴주의자들은 김대중 대통령등이 평생을 헌신해 이뤄놓은 해빙의 무드를 깨뜨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세계의 평화라는게 모두 그렇다. 모두가 평화로운 상태가 되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악의 무리들때문에 평화는 절대 지속될 수 없다. 평화로 인해 혜택을 얻게 되는 사람이 많아도, 그 사람들은 평화로 인해 손실을 입을 사람만큼 이해관계에 철두철미하지 않다. 그래서 선거때가 되면 정치에 열정적이지 않은 대다수 평화주의자들은 파시즘과 분열주의자들에게 번번이 패하기 마련이다. 평화주의자와 평화파괴주의자간에는 바로 열정의 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막 내디뎠다 싶으면, 곧바로 그 평화호는 거대한 평화파괴 빙산에 부딪혀 좌초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평화주의자들이 평화를 완수했다고 착각한 바로 그 순간부터 또다른 균열과 갈등, 전쟁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평화로운 때는 평화를 이뤄냈다고 자평하는 순간이 아니라, 바로 평화를 위해 평화파괴주의자들과 투쟁을 벌이며 그들을 현재의 반평화 무드에서 몰아내려는 노력을 하는 때이다. 이게 바로 평화의 역설이다. 어떤 의미에서 평화의 패러독스는 행복의 패러독스와 이복형제인 셈이다. 행복하다는 느낌은 행복의 요건이 충족될 그 때만 잠깐 크게 느껴질 뿐이지, 시간의 흐름속에서 무뎌지고 처음 느꼈던 것과 동등한 느낌은 다시 찾을 수 없다.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배낭을 싸는 순간인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결국 오바마가 어떤 업적을 이뤄냈는가는 평화상에서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지미 카터, 만델라, 김대중 등 전환기적 인물들이 일궈냈던 평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도로아미타불되거나 역사의 반동세력들에 의해 오히려 더 심각한 갈등국면으로 빠져들지 않았던가? 백번 양보해서 이전보다 덜 죽고 덜 파괴당하고 덜 긴장속에서 살지 몰라도, 이들 평화주의자들이 이뤄낸 평화는 늘 평화파괴주의자들에 의해 또다른 전쟁 혹은 대치 모드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평화상은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한 사람에게 주어진다기 보다는 그런 평화를 얻기 위해 진정 헌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의미를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조쥐 부시와 네오콘등 평화파괴주의자들로 인해 오랫동안 평화가 깨져있었지만, 이제 오바마를 선출함으로써 그 평화의 싹을 심었다는 의미에서 지금이 가장 평화로운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평화상은 오바마를 선택해서 전쟁광 미치광이들을 퇴출시킨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주는 응원의 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오슬로측이 평화상을 수상하는 이유를 들면서, 완료형 표현을 한 이유가 여기 있는 셈이다. ‘믿음과 동시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라고 완료형 표현으로 구원을 설명한 예수처럼, 오슬로측은 ‘오바마 선출과 동시에 우리가 평화를 이룬 것으로, 다시 말해 ‘갈등에서 평화로 옮겼느니라’라고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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