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6일에 기록했던 글인데, wayback machine을 통해 오늘 다시 복원했습니다.
Clotaire Rapaille은 문화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인터내셔널 마케팅 (광고)을 접근하는 마케팅 컨설턴트이다. 마케팅에서 문화적 코드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그의 접근법은 참여관찰이다. 이번에 내놓은 “문화 코드 (The Culture Code)”라는 책에서 프랑스 태생인 그는 미국 (소비)문화의 기저에 자리잡은 미국인들의 문화 코드가 프랑스인의 코드와 어떻게 다른지, 그게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고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인과 미국인들이 치즈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데,프랑스인은 치즈를 구할 때 가게에 가서 쿡쿡 찔러보고 냄새를 맡아 치즈의 숙성기간을 알아본다. 치즈를 사가자고 집에 가서는 실내온도로 보관하는데 벌레가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클로쉬에 보관한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저온살균으로 치즈를 “죽인”다음에 이걸 미라처럼 랩으로 둘둘 말거나 혹은 플라스틱 백에 넣어 유통을 시킨다. (미국에서는 살균처리되지 않은 치즈는 유통될 수 없다).
그리고 남은 치즈는 다시 밀폐해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따라서 클로테어 라파유는 프랑스인들에게 치즈의 문화적 코드는 “Alive”인데 반해 미국인들은 “Dead”라고 주장한다. 한때 (브뤼셀의 관료들에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도 파스퇴르 살균된 치즈를 유통할 것을 명하는 법을 만들려는 때가 있었는데, 이때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데모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코드를 깨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문화에 각인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클로테어 라파이유는 마케팅 종사자들이 문화적 코드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렐 화장품을 컨설팅 하면서 참여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각국 여성들의 메이크업의 차이에서 유혹에 대한 문화적 코드를 분석한 것도 재미나다. 이를테면 프랑스 여인들은 자연미를 굉징히 중시여겨서, 화장대 거울앞에서 메이크업을 하는데 전혀 시간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메이크업을 하기 위해 두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네글리제 라는 단어의 어원 역시 “neglect”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반면 영국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아주 도발적인 노력들을 한다고 한다. 미국의 문화는 물론 영국과는 반대다. 반면에 이태리에서는 이런 seduction에 신경을 쓰는게 남성들이라고 한다.
라파유의 관찰에 따르면 섹스에 대해 미국인들이 갖는 문화적 코드는 무의식중의 의심이며 결국은 폭력과 맞닿는다고 한다. 따라서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Desperate Housewives에 나타난 섹스는 결국 살인과 연결이 되면서 높은 인기를 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소개페이지를 보면 정신분석학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에서 가끔 얼치기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시도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를테면 미국인들이 마이크 타이슨이나 마이클 잭슨, 톰 크루즈, 빌 클린튼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비정상적이고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점에서는 미국인들이 정말 마이크 타이슨을 좋아하는지, 탐 크루즈를 좋아하는지를 먼저 밝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다보면 자유와 구속이라는 개념에 대해 역시 프랑스 태생다운 사고가 보인다. 미국인들이야 미국이 자유의 나라라고 자랑하지만, 미국이 과연 자유스러운 나라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이 책의 예는 아니지만 9/11 이후 미국 땅을 휩쓸고 있는 이 미치광스러운 homeland security의 구속과 폐해에 대해 미국인들은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역시 이 책에서 나온 예는 아니지만 애연가들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자유를 억압하는 나라, 구속하는 나라가 된다. 비행기안에서도 흡연을 허용하는 프랑스야말로 신사의 나라, 선진화된 문화국이 되는 셈이다. 이 책에는 디즈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 디즈니 개장 초기에 미국식 규제 — 금연 및 애완동물 금지 등 — 를 했다가 결국 장사에 차질을 빚고 프랑스에 맞게 구속을 느슨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미국식 사고”의 모순을 지적하는 대목이 보인다. 이를테면 미국내 비만을 논의하는 대학 초청 심포지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공중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비만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데 대해, 저자는 자신의 순서에서 “만약 교육과 대공중 계몽이 문제라면 왜 여기 모인 대다수 (MD와 PH.D) 사람들은 자신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라고 꼬집었다가 다음부터 누구도 초청을 하지 않았다”라는 조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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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예술 박물관 (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 맨 위에는 오랫동안 영화 록키의 가상적인 복서 록키 발보아(Rocky Balboa)의 동상이 서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클로테어 라파이유는 이렇게 묻는다. “뉴욕양키스 스태디움에 잭슨 폴락의 동상이 서 있다고상상해 보세요.” 라파유가 이 이야기를 들고나온 이유는 미국인들이 숭상하는 것은 행동하는 사람들 (doers)이지 사상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나이키의 캐치프레이즈 “Just Do IT”은 이런 행동주의에 기반한 문화적 코드를 가장 잘 파고든 광고 카피가 되는 셈이다. 행동의 문화에서 태생한 미국문화는 결국 건강의 코드는 “움직이는것”이 된다. 차사고가 나서 보험회사에 전화하면 제일먼저 묻는 것은 (다친데 있습니까)가 아닌 “당신 움직일 수 있어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뭘 먼저 물을까? 누가 피해자입니까?)
라파유가 바라보는 건강코드에 동의할 수 없다면 동양의 예를 생각해 보자. 라파유는 중국에서 건강의 코드는 “자연과의 조화”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의무”이다. 아퍼서 학교못가면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죄의식을 느끼며 아파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일화와 인터뷰 증언들을 조합해서 몇가지 중요한 하부 문화에 담긴 코드를 해독하려고 시도한 이 책에서는 경험,실증주의 패러다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직관의 파워가 엿보인다. 그렇지만 각각의 하부문화들이 저자가 등치시킨 의미안에서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다민족 다문화에 기반한 미국에서는 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젊음을 숭상하고 젊음을 무언가 손에 잡히는 어떤 것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기기에 이걸 “마스크”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미국 특유의 성형과 피부관리 문화를 설명하려고 한다. 과연 미국에서 “젊음”에 담긴 문화적 코드를 “마스크”로 바꿀 수 있을까? 이처럼 결론이 삼천포로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말이 나온김에 이야기하자면 이처럼 젊음을 마스크로 여기는 경향은 우리가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사람들은 어찌보면 이런데 대범한 것 같다. 저자가 미국처럼 “젊음에 집착하는 나라가 없다”고 했지만 사실 이건 우리나라 문화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젊음은 언제나 갈아치울 수 있는 껍데기이며, 특정한 신체 모양을 향한 강박관념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 2세들이 학창시절 한인사회를 기피하는 이유가 바로 한인사회에서는 “너 살빠졌다” “너 키컸구나”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없어졌네”등 신체적 변화나 결함을 직접 언급하는 문화라는 점이다. “젊음”에 올인한 결과 우리 사회에서 젊음의 문화적 코드는 결국 “젊은피 수혈”같은 정치적 은어나 “영계”같은 성인남성들의 은어속에서 볼 수 있듯이 심하게 말하자면 “보신”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저자의 시각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모순은 저자는 미국인과 미국문화를 “극단”과 “비정상”을 향한 문화로 간주하면서도 그 하부문화중 섹스나 미에 대한 문화적 코드는 중용을 추구하는 문화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폭력에 맞닿아 있는 미국의 섹스 코드는 미국 여성들에게 미와 성적 자극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적당한 긴장을 갖게 한다고 주장한다.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 Secret)이라는 브랜드가 성공한 이유도 “빅토리아”에서 오는 억압된 본능과 숨겨진 옷장 속의 성적미라는 두 모순이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평가들이 극찬한 도브의 평범한 사람들속에 미가 있다는 광고에 대해 라파유는 그 컨셉은 코드를 깬 것이기에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적 개념의 미라는 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슈퍼모델의 절대미와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창녀들이 던지는 도발사이의 긴장인데, 여기서 숭배되는 미가 없다면 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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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중반부는 home(가정)과 일에 대한 문화코드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만큼 home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모든 것은 home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홈디포(Home Depot)가 미국에서 이처럼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던 것도 미국 문화가 home의 문화라는 것을 설명해주지 않을까 싶다.
가정을 중시 여기지 않는 나라는 없겠지만 미국인들이 home을 특별히 여기는 이유는 미국 개척사와 맥을 같이 한다. 꽤 설득력 있는 설명끝에 저자는 미국에서 가정의 문화적 코드는 “회귀”라는 접두사인 Re-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return, reunite, reconfirm, renew, reconnect 등 가정은 모든 것을 출발하는 원점이 된다. 추수감사절은 가정이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멀리 흩어진 가족이 재회하는 가장 큰 행사날에 가정은 따뜻하고 중심이 되는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래서 프랑스와는 달리 미국에는 부엌이 개방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부엌 구경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대부분 살롱이나 다이닝 룸에서 식사와 파티가 진행되지만,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에 부엌을 중심으로 가족과 친지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문득 우리나라 명절과 부엌문화가 생각난다. 따라서 미국의 식사 문화 코드는 가족을 이어주는 절대적인 구심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인들은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경우가 없으며, 결혼한 부부끼리 밥을 먹을 때에도 남녀가 따로 먹는 문화이다. 중국의 식사문화는 음식 자체를 즐기는 문화이며, 식사가 들어오면 하던 이야기도 중단하고 음식 자체에 몰두하는 문화라고 보고 있다. 저자의 이같은 조언에 기초해서 미국 거대 식품회사 크래프트사가 “gather aroun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택했다고 한다.
미국인은 일벌레?
프랑스를 강타한 베스트셀러 제목은 Bonjour Paresse (Hello Laziness)인데 반해 미국인들의 베스트셀러는 “The Seven Habit of Highly Effective People”이다. 미국인들에게 what do you do를 질문하면 그건 취미도 지금 집에서 하는 일도 아닌 바로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가”하는 대답이 나온다. 저자는 미국인들에게 일(work)의 문화적 코드는 바로 “내가 누구인가”인 존재의 의미로 다가간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없으면 내가 누구인가도 의미가 없어지는게 바로 미국이되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은 미국에서 건강에 대한 코드처럼 계속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일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결코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좋은 일이 아닌 셈이다.
2004년에 만들어진 가장 좋은 영화로 꼽을 수 있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매기 (힐러리 스웽크 분)는 낮에는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그 번 돈으로 복서의 꿈을 키워나가는 — 그것도 복서로서는 이미 노장의 길에 들어설만한 나이에 —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차고에서 시작해서 세계적 기업을 일군 미국인들이 바로 미국의 영웅이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미국에서 일의 대가는 돈이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을 좋아하고 유산 물려받아 잘 사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들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먹을 것 못먹고 코뿌러지면서 얻은 댓가는 돈이고 그 돈은 성공에 대한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돈의 문화적 코드는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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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코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인이 보는 미국의 코드는 “NEW”이다. 도시 이름에 숱하게 들어간 New는 미국인들이 새로움을 얼마나 갈구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 미국인은 미국을 풍요와 광활함으로 보고 있다. 협소한 땅에 수많은 인구를 먹여살려야 하는 일본이 마이크로컬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면, 미국은 거대 문화의 산실이다 (한가지 역설적인 것은 그 매크로 문화의 고수인 미국을 상징하는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icro + soft)인 것이다. ). 이걸 이해한다면 미국 구경을 와서 미국인들은 왜 지하주차장을 파지 않고 왜 아파트를 높게 짓지 않으며 왜 도심의 고층빌딩 옥상위에 도요타 식물원같은 것을 짓지 않는가, 건물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왜 쉴새없이 에어컨이 뿜어져 나오는가를 물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런 발상들은 미국의 문화적 코드에 어긋나는 것이기 떼문이다.
그리고 이 새로움과 풍요로움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문화적 코드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꿈”이다.
영화 시비스킷과 신데렐라 맨에서 볼 수 있듯이 대공황속에서도 미국인들은 젊음과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꿈을 믿지 않았던가? 그게 말이되었건 복서가 되었건 좌절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움직이고 결국 승리를 거머쥔다는 데서 사람들은 꿈을 발견하고 그 꿈의 상징이 영웅이 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흑인 운동의 한 축에 있던 마틴 루터 킹이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도 바로 ‘우리도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설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 가면 약간 슬퍼지는게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꿈이 있다. 그런데 그 꿈은 “우리“가 커나갈 수 있다는 꿈이 아니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살기에 좋은 나라를 물려주는 꿈“이 아니고 바로 내가 못 이룬 꿈을 내 아들이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무의식속의 강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잘못 시작하면 평생 그 인생이 그 인생이다. 꿈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손들이 모여 숱한 패거리를 낳고 대열을 만들고 줄을 세운다. 한 번 줄 잘못서면 신세 조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컴백이라는 것은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컴백 키드의 사회이다. 마이클 조단이 몇 번 은퇴를 했던가? 클린턴은 탄핵 위기까지 몰리지만 컴백했다. 마사 스튜어트는 감옥에 살고나와 다시 움직일 뿐만 아니라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컴백해도 받아주는 문화인 이유는 미국인들이 패배와 실패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뿐 아니라, ‘완전 무결점’을 오히려 ‘죽음’의 코드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처럼 품질 경영이나 무결점에 도전하는 것은 미국의 기업 코드가 아닌셈이다. 미국에 최초로 온 개척자들이 무결점의 매뉴얼을 들고 온 엘리트들이 아니다. 강한 바람과 혹한을 거치고 거치면서 강철과 같이 단련된 게 미국이다. 그러다보니 “작동하는 것”에서 시작해 “좀 더 나은” 것으로 이동하는게 미국인들의 사고가 되는 셈이다. 좁은 땅에서 수많은 인구를 먹여살려야 하는 일본의 코드가 효율성인것과는 비교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작동하는게 중요하고 새로운게 (NEW) 중요하다. 한 번 텔레비전 사서 평생 쓰는 것은 일본인의 코드다. 미국인들은 매 3년마다 차 바꿔야 하고 매 5년마다 텔레비전을 바꿔야 한다. 아이팟이 시판되고 약 3년 지나서 아이팟 배터리의 수명에 관한 비밀이라는 비디오가 나돌았고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여전히 아이팟의 수명은 보통 3년을 못넘긴다고 보면 될 것이다. [GatorLog관련 글: Built to last 시대에서 Built to change 시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아이팟은 공전의 히트 상품이 된 것도 모두 같은 이치이다. 1세대 아이팟을 지금까지 쓰는 것은 전혀 미국인들에게는 코드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아이팟 미니가 나오면 사줘야 하고 나노가 나오면 이전 것을 이베이에 내놓고라도 사야하는게 진짜 미국인인 셈이다. (물론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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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minds처음, 라파이유를 접한 것은 석사 1년 때 PBS Frontline (Nova였나?)의 Persuasion을 통해서였습니다. 라파이유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