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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the ‘Ideas’ Category

모럴 해저드의 데자뷰

April 28th, 2010

제임스 서로위키: DÉJÀ VU (The New Yorker, May 3, 2010)라는 칼럼을 요약해봤습니다.

배경: 제임스 서로위키의 위 칼럼을 이해하려면 먼저 한경 기사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판다고?… 골드만삭스의 ‘모럴 해저드’] (via @royalwine)를 읽어야 함.

요약: 위 한경 기사에서 김정은 기자는 골드만삭스 사건의 여파를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강하게 부인하지만 사실로 판명나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연속되는 모럴 해저드여서 미 국민들의 분노를 피해가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제임스 서로위키 역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소식통들이 내놓는 전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관측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 그 회사’는 평판에 치명타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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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임스 서로위키는 ‘그 회사’ 자리에 골드만삭스를 대입하려는 사람들에게, 2002년 메릴린치 혹은 시티그룹도 바로 ‘그 회사’였음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이처럼 고객을 기만하고 시장을 충격속에 빠뜨린 금융기관들의 평판은 곧바로 떨어지고, 이 실추된 평판을 다시 회복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닷컴버블뒤 금융시장을 교란시켰던 메릴린치와 시티그룹에 투자자들은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이를 운용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제임스 서로위키의 질문이 이어진다. “과연 투자자(고객)들이 너무 쉽게 용서를 해주는 것인가?”

이에 대해 “구제금융 나라”(Bailout Nation)의 저자 Barry Ritholtz는 “내 뇌의 합리적 영역에서는 이번에 골드만과 같은 그런 스캔들을 만든 회사와는 그 누구도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뇌의 경험적 영역에서는 아무런 중요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속삭인다”라고 했다. 이건 마치 헤겔이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그리고 나서 제임스 서로위키는 왜 이런 ‘기억상실’ 현상이 나타나는지 질문을 던지고 몇가지 가능한 답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1) 탐욕이 사람들을 용서하는 모드로 돌아서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닷컴 버블 때 돈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망하게 했던 월가를 다시 찾는다는 것이다. 마치 도박으로 망한 사람이 돈을 만들어 다시 카지노를 찾는 현상 — 전문용어로는 chasing losses — 이다.
(2) 두번째는 더 강화된 규제때문에 드러난 위험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다. 이런 스캔들이 터지면 금융기관은 더 많은 것을 사실대로 밝히도록 강요받게 되고, 그들은 강화된 규제를 따라야 한다. 투자기관은 투자가에게 ‘당신이 투자하는 대상에 대해 우리 회사는 직접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혹은 더 나아가 ‘우리를 믿어서는 안됩니다’라고까지 밝혀야 할 지 모른다. 문제는 사람들은 ‘드러난’ 이해관계의 충돌을 경시하고, 그 이해관계의 충돌이 빚어낼 결과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건 카네기멜론 대학 경제과 교수이며 심리학자인 George Lowenstein의 가설이다.
(3) 세번째 심리 상태는 이른바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월가에 대해 투자가들은 기본적으로 ‘정직한 브로커’이고 ‘영리한 자산 운용가’이며 ‘부를 보장해주는 통로’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믿음을 깨는 현실에 부딪힐 때, 사람들은 (믿음을 현실에 맞게 바꾸는게 아니라) 그 현실을 그들이 갖고 있던 믿음에 맞게 바꾸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오바마 정권이 금융권 길들이기 위해 괜히 표적 수사했구먼’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설득력있는 분석뒤에 이어지는 제임스 서로위키의 결론이 참 마음에 든다. 자 그래서 어쩌자구?
서로위키는 이번만큼은 (잘못을 저지른 이 금융기관들을) 제발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까지 인용하면서.

  • joogunking says: 골드만 삭스 모럴 해저드 반복 탐욕 http://gatorlog.com/?p=2034 – 8th Ma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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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ychong says: http://j.mp/cTdXkr “이번만큼은 제발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도 잊지말자 6월 2일 – 30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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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ychong says: http://gatorlog.com/?p=2034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러면에서 의미있는 말이다 – 30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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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hlhaus says: RT @gatorlog 제임스 서로위키: 모럴헤저드가 반복되는 이유 http://goo.gl/3Ygq 를 요약했습니다. inspired by @royalwine 님의 골드만삭스 모럴헤저드에 관한 트윗 – 28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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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nsnroz says: [추천] 골드만삭스가 살아 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 http://bit.ly/alB0FE – 28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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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xtw says: 금융말고 우리나라에 대입해도… RT @gatorlog: 제임스 서로위키: 모럴헤저드가 반복되는 이유 http://goo.gl/3Ygq 를 요약했습니다. inspired by @royalwine 님의 골드만삭스 모럴헤저드에 관한 트윗 – 28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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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kchu says: RT @royalwine: :) RT @gatorlog: 제임스 서로위키: 모럴헤저드가 반복되는 이유 http://goo.gl/3Ygq 를 요약했습니다. inspired by @royalwine 님의 골드만삭스 모럴헤저드에 관한 트윗 – 28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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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rapher says: [강추: 필독요망] RT @gatorlog: 제임스 서로위키: 모럴헤저드가 반복되는 이유 http://goo.gl/3Ygq 를 요약했습니다. inspired by @royalwine 님의 골드만삭스 모럴헤저드에 관한 트윗 – 28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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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yalwine says: :) RT @gatorlog: 제임스 서로위키: 모럴헤저드가 반복되는 이유 http://goo.gl/3Ygq 를 요약했습니다. inspired by @royalwine 님의 골드만삭스 모럴헤저드에 관한 트윗 – 28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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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torlog says: 제임스 서로위키: 모럴헤저드가 반복되는 이유 http://goo.gl/3Ygq 를 요약했습니다. inspired by @royalwine 님의 골드만삭스 모럴헤저드에 관한 트윗 – 28th Apr, 2010

우린 인터넷을 서프합니다. 우린 잡지안에서 스윔합니다.

April 24th, 2010

이번 주 뉴요커(Apr. 26, 2010)를 펼치니 ESPN매거진에서 올린 ‘잡지’ 예찬 광고의 카피가 인상적이다 (클릭하면 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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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는 기본적으로 미디어 대체(media displacement) 가설을 반박하면서, 인터넷 시대에도 잡지는 계속 번창할 것이며 끊임없이 인터넷이 제공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전달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헤드라인 카피는 “We Surf the Internet. We Swim in Magazines (우린 인터넷을 서프합니다. 우린 잡지안에서 스윔합니다)” 인데, body copy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Which is why people aren’t giving up swimming, just because they also enjoy surfing. (그게 바로 사람들이 surfing을 즐긴다고 해서, swimming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입니다.)

addendum:

[검색을 해보니 이 광고 캠페인의 컨셉인 Magazine, The Power of Print 는 다른 매체 포맷으로도 전달되고 있다).

유튜브 버전의 Magazine, The Power of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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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가지수와 만족 [1]

April 17th, 2010

사람들은 고를 수 있는 가지수가 적을 때보다 많은 경우를 선호한다. 하지만 막상 선택할 가지수가 많은 상태에서 소비 결정을 내린 후에는 늘 자신의 선택을 뒤돌아보고 자신이 고르지 못한 옵션들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는 경향이 있다. 자장면이 가장 맛있을 때는 내가 짬뽕을 시켰는데 옆에 사람이 자장면을 먹을 때라는 우스개 말도 있다. 그렇다고 짬짜면이 이런 선택의 갈등을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는 것은, 자장이나 짬뽕 하나만을 시킨 사람이 짬짜면 먹는 사람보다 더 만족도가 큰데서도 알 수 있다.

오늘자 WSJ는 콜럼비아 비즈니스스쿨의 시나 아이옌가 박사의 새책 The art of choosing의 서평 [WSJ: Pick an ordeal, any ordeal] 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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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아이옌가 박사는 스탠포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심리학자이며 선택에 관한 실험연구 논문을 많이 발표해왔다. 특히 선택의 경우수가 많은 가운데 내린 결정이 경우수가 작을 때 내린 결정보다 더 만족도를 높이지 못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서 이 분야에 한 획을 그었다. 스탠포드 심리학자 마크 레퍼 교수와 그녀는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실험연구를 했다.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초콜렛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모집해 두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에게는 6개의 다른 맛이 있는 고디바(Goidva)초콜렛에서 하나를 고르게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30개의 맛이 있는 고디바에서 하나를 고르게 했다. 연구결과 30개의 초콜렛에서 고른 사람들이 6개에서 하나를 고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고른 초콜렛을 덜 좋아했고, 실험에 참여한 댓가로 받을 수 있는 선택에서도 고디바 초콜렛을 덜 골랐다고 한다. (Iyengar, Sheena & Lepper, M. (2000). When choice is demotivating: Can one desire too much of a good th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9. pp.995-1006.

이번에 출간된 The Art of Choosing에 인용된 연구 결과는 선택의 가지수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가설이 인지능력이 완전히 개발되지 않은 취학전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입증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이옌거 박사는 3살된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게는 많은 종류의 장난감을 주면서 바꿔가면서 놀게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한가지 장난감만 주고 놀게 만들었다. 실험 결과 한가지 장난감만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여러종류의 장난감을 바꿔가며 놀게 했던 그룹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논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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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또 그녀와 스탠포드의 레퍼교수가 발표해서 선택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수퍼마켓 잼(jam) 연구도 인용되어 있나보다.

2000년에 발표한 연구에서 이들은 너무 많은 선택 옵션들은 소비자들의 머리속을 과적시킴으로써 마음에 부담을 갖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은 소비자들의 구매의도와 선택의사를 꺽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Iyengar, Sheena & Lepper, M. (2000). When choice is demotivating: Can one desire too much of a good th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9. pp.995-1006; See also Goode, Erica (Jan., 2001). In weird math of choices, 6 choices can beat 600. The New York Times, F7.]

이들은 연속 두번의 토요일날 캘리포니아주 한 도시의 고급 수퍼마켓에 시식코너를 차려놓고 조교들을 시식 도우미로 꾸며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윌킨 & 선즈 잼을 맛보게 했다. 첫번째 토요일에는 24개의 각기 다른 잼을 갖다놓고 손님들에게 어떤 것이든 골라서 시식하게 했고, 그 다음 토요일에는 6개의 각기 다른 잼을 갖다놓고 손님들이 맛을 보도록 했다. 일단 같은 수의 고객들을 정해놓고 이 각기 다른 시식대를 지나면서 시식을 하러 오는 손님들의 비율을 비교했더니, 당연히 선택의 종류가 더 많을 경우 시식하러 오는 비율(60%)이 작을 때 시식하러 들리는 비율(40%)보다 많았다. 하지만 시식후 구매 비율을 비교해 봤더니, 6종류의 잼이 있는 시식대에서 시식한 사람들중 30%가 시식후 구매를 한데 반해, 24종류에서 선택한 경우는 오직 3%만이 선택을 했음을 발견했다.

선택의 다양성이 사람들을 겁박하는 경우는 바로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어 당신이 최종 선택을 할 때는 아무렇게나 혹은 대충 선택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에게 로봇 청소기 룸바가 좋다고 추천을 했다고 하자. 룸바를 사러, 인터넷 쇼핑몰을 들여다보니 20개가 넘은 룸바 청소기가 있다. 각기 다른 옵션에는 소비자는 전혀 알아먹을 수 없는 숫자들이 붙어있다. 한시간 정도 들여다보고 밑에 달려있는 소비자 별점 평가를 읽어도 여전히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벌써 머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맨 밑에 룸바 베스트셀러 대할인판매 이런 배너가 번쩍거린다. 그리고 원래 가격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고, 그 밑에 33% 할인 가격 25만원 이렇게 붙어있다고 하자. 한시간 쥐난 머리는 이제 그 가격 정보가 믿을만한 것인지, 아니면 그 제품이 구형모델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바로 결제버튼을 누르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어서 모처럼 한남동의 스위스 레스토랑에 갔다고 치자. 메뉴판 첫장을 넘기는데 벌써 기가 죽는다. 애피타이저 가격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메뉴는 왜 그렇게도 많은지. 가격이 이렇게 셀 수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특별세트메뉴를 보니 애피타이저와 본요리, 디저트를 따로 시켰을 때보다 최소한 30%는 절약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음식점에서 평균적인 고객이라면 눈길도 줄 것 같지 않는 비싼 가격대의 메뉴를 메뉴판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넣어두었다면, 이 역시 당신의 뇌를 쫄게 만들어 결국 당신이 그들이 쳐놓은 덫에 딱 걸리게 만들기 위함이라. 이쯤되면 당신은 이제 선택 자유가 많아진다는 것이 당신을 위한게 아니라, 당신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아무렇게나 하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이 이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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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제품 선택은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까?

February 25th, 2010

일전에 자기결정이론을 바탕으로 남을 돕는 행위가 자신의 심리적 만족을 늘이고 개인의 웰빙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When helping helps소개한 적이 있다. NIH의 Jorge Moll 박사등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뇌를 스캔할 결과, 먹을 때와 섹스할 때처럼 이기적 쾌락을 느끼는 뇌의 일부가 반응했다. 뉴욕타임즈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인용한 언챙이 수술을 돕는 비영리 조직인 Smile Train의 공동창설자인 브라이언 물래니의 말을 빌자면 “가장 이기적인 일이 남을 돕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생물학적 ‘costly signal”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관련 글: 무개념 루저녀와 공작새 꼬리효과]. 진화심리로 본 아이폰 열풍에서 Mu님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은 개인의 우수한 특질과 우수한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결정이론과는 다른 관점이지만 역시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 남을 돕는 것이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다.

미국 사회심리학계 최고 권위 저널인 JPSP 최근호를 보니 Mu님의 주장과 같은 이론적 토대위에서 사람들이 친환경제품을 사용하는 동기를 연구했다. Griskevicius, V., & Tybur, J. M. (2010). Going green to be seen: Status, reputation, and conspicuous conserv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8(3), 392-404.

다른 사람의 혹은 사회적 이익 (=공익)을 위해 기꺼이 친환경 제품을 사용할 의지가 있음을 과시하는 내재적 동기가 사람들이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미네소타대학교의 마케팅 교수인 Vladas Griskevicius와 뉴멕시코대학의 동료는 재미난 실험을 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을 실험 그룹과 통제 그룹으로 나눠, 실험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프라이밍(priming)을 걸었다. 실험 결과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프라이밍 조건에 놓여있던 실험 그룹의 참여자들은 통제그룹 피실험자들에 비해 조사대상이었던 친환경 제품들을 택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았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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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구가 여기에서 끝나면 재미가 없다. 이 연구의 백미는 그 다음 실험에 있다. 두번째 실험에서 이들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신분상승 상태’에서 이들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행위가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costly singaling’(값비싼 시그널 보내기)의 일환인지를 측정할 수 있는 또다른 실험 조건을 걸었다. 바로 남들이 보는 공적인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 온라인 쇼핑을 통해 아무도 보지 않는데서 물건을 고르는 조건을 추가한 것이다.
실험 결과 아주 재미난 상호작용 패턴이 발견됐다. 사적인 공간(=온라인 쇼핑몰)에서 ‘사회적 지위상승 프라이밍’을 받지 않았던 통제 집단이 실험집단보다 친환경 제품 사용이 약간 더 높게 나온 반면, 남이 보는 공적인 공간(가게안)에서 구매를 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사회적 지위 상승 프라이밍을 받은 집단의 사람들이 통제그룹에 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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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결과를 해석할 때는 물론 주의할 점이 있다. 실험실내부에서 프라이밍과 가상 시나리오를 써서 직접 구매가 아닌 구매 의도/선택 의지를 조사했기에 일단 이 연구 결과들이 현실 세계에서도 같은 결과를 보일 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아놓아야 한다. 관여(involvement)도 크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자동차 고르는 것과 냉장고 혹은 비누 고르는 것은 모두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연구가 주는 현실적 함의는 분명히 크다.

연구에서 친환경 제품과 비교한 다른 제품은 고가의 다른 일반 제품이었다. 예를 들어 토요타사의 하이브리드인 프리우스와 BMW를 대놓고 비교한 것을 예로 생각할 수 있다. 진화론적 과시측면에서 본다면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일단 BMW를 몰아야 한다. 돈이 있는데 BMW를 타지 않고 프리우스를 몬다면 이건 진짜 친환경주의자거나 검소하거나 아니면 환경의식과 후손들을 위해 환경을 염려하는 의식있는 지구인일 지 모른다. 예를 들어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는 국내에 몇 대밖에 없는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이건 분명히 성공한 목회사업가로서 자기 과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만약 그가 하이브리드차나 연비가 적게 드는 소형차를 타고 다닌다면 사람들은 분명 그자에게 다른 특질을 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고가의 일반 브랜드 대신 역시 고가의 친환경제품을 고르는 행위를 두루뭉실하게 ‘costly signaling’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 설명력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짝짓기 상대를 유혹하기 위한) ‘값비싼 시그널링’으로써 고가의 친환경 선택은 말이 안된다.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바빠서 여기서 중단).

Convers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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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mindsRT @gatorlog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 http://bit.ly/a8TDWi
AlwaysChoi재미있는 실험 ㅎ RT @gatorlog: 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http://bit.ly/a8TDWi
russaRT @gatorlog: 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http://bit.ly/a8TDWi
happyalohttp://gatorlog.com/?p=1985어제 지인이 사줘서 점심 먹었던 식당(왠지 이런 곳은 식당이 아니라 레스토랑이라고만 불러야 할 거 같은) 가기 전에 위치 확인을 위해 검색을 했더니 모든 재료가 친환경 어쩌구
happyalohttp://gatorlog.com/?p=1985“남을 돕는 행위가 자신의 심리적 만족을 늘이고 개인의 웰빙을 증가시킨다” “이기적 쾌락을 느끼는 뇌의 일부가 반응했다” 이런 연구 보기 이전부터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
GIVONIONRT @gatorlog: 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http://bit.ly/a8TDWi
00oooRT @gatorlog: 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http://bit.ly/a8TDWi
ivorynoteRT @gatorlog: 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http://bit.ly/a8TDWi
touch4goodRT @gatorlog: 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http://bit.ly/a8TDWi
louiskimRT @gatorlog: 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http://bit.ly/a8TDWi
gatorlog고가의 친환경 제품 사용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려는 과시적 선택일 것인가에 대한 최신 연구를 리뷰했습니다.http://bit.ly/a8TD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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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표지자 가설과 선택 (II)

February 1st, 2010

이 글은 “주몽의 불길한 느낌과 신체표지자 가설 (I)”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신체 표지자 가설이 선택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선택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일단 선택과 의사결정에 관련된 다음 두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자. 맨 먼저 반찬 가지수만 20여가지가 넘는 전통 한식밥상앞에 앉아 밥 한숫갈에 어떤 반찬을 뜰 것인가를 결정하는 상황이다. 어떤 반찬을 뜰 것인지 선택하는 상황인데, 이때 당신의 선택을 이끄는 것은 의식적인 지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식적인 이성의 작용도 아니다. 물론 당신이 게장을 집을 것인지, 아니면 숙주나물을 집을 것인지는 뇌속에 저장된 각 음식에 관련된 정보에 근거한다. 게장과 숙주나물을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어떤 어린아이앞에 ‘맛있으니 한 번 먹어보렴’하고 권해보자. 아이는 당연히 ‘그게 뭐야? 무슨 맛이야?’하고 꼬치꼬치 물어보고 입에 넣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려 할 것이다. 이때는 물론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며, 매운 맛을 싫어하거나 짠 맛을 싫어하는 아이는 이성의 작용으로 게장을 피하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눈싸움을 할 때 상대방이 던진 눈덩이를 피하려는 작용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게장을 집어들지 아니면 숙주나물을 집어들지는 대개의 경우 아주 빠른 시간내에 자동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다시 말해 심사숙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두번째 상황은 무슨 반찬을 집어들 것인가보다는 좀 더 머리를 써야 하는 선택들이다.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것, 직장을 선택하는 것, 인생의 목표를 결정하는 것, 결혼 상대자를 정하는 일, 교육감/시장/국회의원/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200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분을 휩쓴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2천만루피가 걸린 마지막 문제로 가기 전 화장실에서 퀴즈쇼의 진행자가 정답이라고 귀띔해 준 정답과 나머지 한 개의 정답 사이에서 자말이 택해야 하는 손에 땀을 쥐는 선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운명을 결정짓는 도박과도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때이다.

이 두번째 상황에서 예시한 선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번째 문제보다 당연히 더 머리를 써야 한다. 머리를 쓴다는 것은 의식적 작용이면서 논리적 알고리즘 (순차적 경로)을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경우는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예상되는 결과들과 내가 특정 선택을 했을 때 일어날 결과들을 비교함으로써 최선의 최고의 결정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급한 당신은 ‘그래 선택에는 무의식적/자동적 선택과 의식적/노력하는 선택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쏟아부어야 하는 인지적 노력의 정도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첫번째 선택과 두번째 선택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따지고 보면 이 두번째의 선택내에서도 또 나름대로 선택의 복잡함과 선택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깊이가 확연히 다르다. 또 개인의 성격이나 환경, 혹은 사회적 처지에 따라 위에 주어진 선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리는 인지적 노력의 정도도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교육감/시장/국회의원/대통령 선거 모두 특정 정당에 찍기 때문에 고민할 여지가 전혀 없는 반면, 어떤 사람은 둘 중 덜 나쁜 놈에게 찍자면서 일일이 후보자 관련 정보를 훑어야 하니 그게 일이다. 어떤 사람은 매파가 중매한 몇 명의 상대 배우자 후보를 놓고 이것 저것 꼼꼼히 따져보고, 이 사람을 택하면 인생이 어떻게 풀릴까 저사람을 택하면 어떻게 살까 고민고민할 것이다. 반면 ‘돈’이면 최고라는 철학을 가진 사람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돈을 중심으로 정렬을 시키면 3초안에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안토니오 다마시오 박사는 공유된 신경생리적 중심(neurobiological core)의 형태로 인간의 모든 선택 상황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된 타래(a common thread)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마다시오 박사가 구성한 의사결정 혹은 선택에 이르는 뇌의 과정에 대한 두가지 설이 여기서 나온다 [Damasico, A. (1994). Decartes' error. NY: Quill. pp. 170-171].

정상적인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부딪힐 때, 재빠르게 가능한 응답의 옵션들과 그 각각의 옵션을 택할 때 결과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짜게 된다. 이때 우리가 만들어 내는 시나리오는 의식적 작용으로 나오는 것이며 여러 개의 가상의 장면들로 이뤄져 있다. 이 장면들은 영화처럼 잘 이어지는 필름이 아니라, 그 가상의 장면들중 중요한 이미지에 대한 그림으로 된 플래쉬같은 것이다. 이게 잘 이해가 안되면 지금도 이런 장면을 만들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예전에 두개의 전혀 다른 직장을 두고 선택을 취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때 당신이 지금 택한 직장말고 거기에 갔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몇가지 그림들이 번쩍번쩍 지나갈 것이다. 바로 그런 것들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정하지 않은 미래의 결정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결정이건 앞으로 다가올 결정이건간에 선택의 기로에 서서 당신의 결정을 도와주는 것은 다시말해 의사결정이나 선택에 이르게 만드는 우리 뇌는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설명은 ‘고도의 이성’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의사결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다마시오는 앞에서 말한 ‘신체 표지자 가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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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아닌 기업이나 조직, 국가는 선택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결정지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의사결정방법은 손익(loss and gain을 따지고 비용과 혜택(cost and benefits)을 따지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과는 달리 개인이 이런 논리적 접근을 취할 때 보통 개인은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연필과 종이를 들고 차근차근 조목조목 따져나가도 순차적 알고리듬을 따라가는 의사결정은 곧잘 삼천포로 빠져들기 쉽상이다. 이렇게 순차적 연산같은 의사결정이 개인에게 어려운 이유는 바로 개인들의 주의(attention)와 작업기억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손익이나 비용/혜택을 따지는 과정에서 당신의 머리를 스치는 특정 예감들이 생긴다. 영어로는 헌치(hunch)라고 불리는데, 일종의 직관적 느낌이다. 몸을 감도는 어떤 예사롭지 못한 기운을 말한다. 여전히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가 2년 후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녀는 손익계산을 따졌을까? 아니다. 그녀는 그녀가 물러가야 할 때를 몸으로 느낀 것이다.

 

Addendum:
“The mind is a cluster of apps or modules securing the replication of the genes that are expressed in our bodies.” http://on.wsj.com/srO2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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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의 불길한 느낌과 신체표지자 가설 (I)

January 31st, 2010

미국의 인기토크쇼 콜베르 리포트(Colbert Report) 진행자 스티브 콜베르(Stephen Colbert)는 언젠가 How we decide의 저자 조나 레러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조나. 그래서 당신은 직감(gut)이 뇌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조나 레러가 사람들이 결정을 할 때는 감성과 이성적 뇌의 작용이 일어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그 질문은 다소 기본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은 정말 날카로웠다. 스티브 콜베르는 조나 레러에게

‘사람들이 순전히 이성에 의해서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는가? 아니면 결정이라는 것에는 언제나 감정이 녹아들어있는 것인가?’

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토크쇼의 환담수준에서 논의할 문제 수준을 넘어 과학자들이 대를 이어 연구하는 중요한 연구과제다. 그렇다면 왜 처음 질문은 기본에서 벗어났고, 왜 두번째 질문은 과학자들이 평생 걸쳐 탐구하는 연구문제일까?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조지 로웬스타인은 언젠가 “(의사/선택) 결정이론은 그 뛰어난 설명력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함으로써 다소 절름발이 이론이 되었다.” 고 주장했다. 사실 오랜 세월동안 선택과 결정을 이야기할 때 감정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중요한 토론을 할 때 감정을 개입하는 것처럼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사람들은 전적으로 이성적 판단이 선택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적으로 이성적 판단이 작용한다면 왜 세상에는 부모가 용인할 수 없는 자식의 눈먼 배우자 선택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원수의 집안이면서 사랑할 수 밖에 없고 비극으로 끝날 것을 알면서도 헤어질 수 없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애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33.jpeg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이야기할 때면, 늘 이성의 작용안에서만 논의되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감정을 뇌와 분리해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가들은 마음과 몸의 분리를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이 심장에 자리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물론 다르게 생각했지만, 마음과 몸의 이원설을 주장하는 사상가들 가운데 마음이 뇌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정교해 진 것은 훗날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에 와서였다 (Carter, R., 1998). 그래도 여전히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하트를 떠올리고 내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아.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내 뇌가 터질 것 같아’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신경의학 혹은 뉴로사이언스 관련 연구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제 감정이 뇌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감정이 선택이나 결정 행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도한 과학자가 바로 안토니오 다마시오 박사이다. 다마시오의 주장의 핵심은 감정이 이성을 주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감정과 동떨어진 순수한 작용이 아닐지도 모르며 어쩌면 감정과 이성은 뇌의 네트워크에서 함께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발 더나가 인간의 몸을 규제하는 감정과 느낌의 작용없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에겐 이성의 작용이라는 것도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이 구체화된 것이 이른바 신체 표지자 가설 (Somatic Marker Hypothesis)이다. 내가 택한 선택의 옵션과 연관되어 뭔가 나쁜 결과가 마음에 전달될 때 이게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뭔가 유쾌하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을 보자. 자기가 사라져야 주몽과 자신이 사랑했던 유화 부인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떠날 결심을 굳힌 해모수는 주몽에게 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오라고 말한다. 이 순간 해모수를 죽이러 주몽의 이복형 대소는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었다. ‘스승님 다녀오겠습니다’고 말하고 길을 가던 주몽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은지 고개를 두어발자국 뒤에 다시 스승을 돌아다 본다. 바로 이 찰나의 불길한 느낌이 전해지는 현상이 바로 신체 표지자 가설에서 지칭하는 판단에 앞선 감정이나 느낌의 역할이다.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에서 다마시오 박사는

“그런 느낌은 온통 몸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주몽이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몸에 나타난 현상에 somatic state (신체적 상태)라는 전문용어를 부여했다. somatic은 물론 그리스어에서 몸을 지칭하는 soma에서 온 것이다. 또 그 몸의 반응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표식/표지(mark)하기에 나는 그것을 표지자(a marker)라고 했다”

고 설명한다.

신체표지자 가설은 이성에게 사랑의 감정이 느낄 때 내 안에 일어나는 몸의 반응과 같은 즐겁고 흥분되는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 짝사랑하고 있는 이성이 내 앞에 있을 때 내 심장의 박동과 얼굴의 홍조, 이런 것들은 모두 내 뇌안에 있는 이성의 작용을 안내하는 지표자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경험을 통해 생기는 좋고 싫은 감정이나 느낌들이 내 몸안의 반응을 만들어 내고 이 반응이 일종의 표지가 되어 무의식적으로 내 행위를 안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짝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종이학 백마리를 접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결국 당신 이성의 작용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신체표지자 가설과 선택 (II)]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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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와 메시아 콤플렉스

January 11th, 2010

언젠가 데이빗 브룩스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데이빗 브룩스: 오바마 다임의 패러독스]. 생각있는 보수주의자 데이빗 브룩스의 아바타 비평 “메시아 콤플렉스 (The Messiah Complex)” 전문을 우리 말로 옮겼습니다.

모든 세대는 저마다 일종의 우화(寓話)들을 만들어낸다. 우리 세대는 백인 메시야의 우화를 만들어왔다. 이 우화에서 종종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한 젊은 모험가가 등장해 스릴과 이윤을 추구하러 야생의 자연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거기 들어가면 원주민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고귀하고, 영적이며, 순수하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메시아로 떠오르며, 그들을 인도하여 그가 속한 부패한 문명에 대항한 정의로운 십자군전쟁을 벌인다. 당신이 열정적인 영화광이라면 분명 “말이라 불리우는 사나이”와 “At Play in the Fields of the Lord”를 보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늑대와 춤을” 혹은 “마지막 사무라이”를 보았을 것이다. “포카혼타스”와 “요정 크리스타”같은 아이들을 위한 우화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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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er, Jan 11, 2010, p. 45]

이런 이야기 구도는 매우 유용한 공식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감독이 백인 메시아 우화를 선택하면, 그 다음은 플롯가지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전혀 없어진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대략 어떻게 전개되고 끝날 지를 알기 때문이다. 이 우화 공식은 또한 사회적으로 의식있는 사람들에게 떡밥을 준다. 관객들이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환경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상의 투표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다문화 의식적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원시인들이 입는 허리춤에 걸치는 옷을 입은 좋은 백인이 군산복합체들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이런 백인 메시아 공식을 적용했던 모든 감독들 중, 그 누구도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에서 했던만큼 그렇게 넘쳐나게 했던 감독은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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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er, Oct. 26, 2009. Man of Extremes]

아바타는 다른 우화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탁월한 인종적 판타지다. 주인공은 전직 백인 해병대원이며 그가 속한 문명에서 표류해 돌아다니다, 마침내 거대한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공간을 초월해 원시상태의 행성의 환경을 약탈하고 거기에 사는 평화를 사랑하는 원주민들을 없애는 일을 돕게 된다.

그 평화를 사랑하는 원주민들은 미국 원주민, 아프리카안들, 베트남인들, 이라크인들, 그리고 다른 문화적 부분들의 혼합들을 모아 편집했으며, 당신이 백여편의 다른 영화에서 보아왔던 다른 평화를 사랑하는 원주민들과 같다. 아바타의 원주민들은 크고, 근육질이며, 감탄할만큼 날씬하다. 그들은 거의 나체로 걸어다닌다. 그들은 경이로운 운동선수이며 매우 좋은 가수이자 무용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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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er, Jan. 4. 2010, p.43]

영화에서 그 백인 남자는 이 평화를 사랑하는 원주민들이 탐욕적인 기업의 도구로 쓰이는 사람들이나 그가 극복해야 할 피에 굶주린 미국 군인들보다 훨씬 쿨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이 원주민들과 살게 되고, 재빨리 그 부족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된다. 그는 부족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인과 섹스를 했다. 정글을 넘나들고 말들을 타는 법을 배운다. 심지어 원주민 부족 어느 세대도 길들일 수 없었던 가장 큰 붉은 새를 타고 날음으로써, 원주민 부족 누구보다 더 뛰어난 감각과 운동적 능숙함을 지닌 것으로 판명된다.

그가 원주민과 동화되는 가운데, 그는 의식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다. 평화를 사랑하는 원주민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 몸에서 나온 광섬유질의 케이블을 말이나 나무에 접속하는데 이는 마치 무선통신없이 말과 귓속말을 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문자나 셀폰이나 대박영화등으로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깊고도 고요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 원주민들은 그 백인남자 역시 천부적으로 내재하는 깊고 평화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돕는다. 원주민들은 뜨거운 몸과 완벽한 생태학적 감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연적 창조물이지 역사를 만드는 피조물은 아니다. 군산복합체가 그들의 터전을 없애버리려고 들어올 때, 그들은 자신들을 리드하고 방어할 수 있다고 고취시켜주는 백인 메시아가 필요하다.

우리의 영웅은 성스러운 대지가 소집한 공룡들 무리의 도움을 받아 도약한다. 메시아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부족들이 함께 밀려오는 해병대와 전직 해병대 혹은 (로봇을 탄) 해병대를 소탕하고, 결국 그 백인 메시아는 궁극적인 상을 획득한다: 원주민들은 그를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고 그 나머지 일생을 그 뛰어난 부족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된다.

카메론이 이 백인 메시아 우화를 다뤘다는 것이 “아바타”가 전세계적인 흥행을 만들어 낸 이유는 아니다. 위클리 스탠더드에 존 포드호레츠가 썼듯이, “카메론은 단지 그의 특수효과에 굉장한 울림을 주기 위해 이 친숙한 브로마이드를 속기처럼 이용했을 뿐”이다. 이 줄거리는 전세계의 관객들에게 미국 군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구경한 기회를 준다. 맥도널드와 다른 미국의 기업들이 앞다투어 다양한 형태의 프로모션 캠페인을 하게끔 떡밥을 제공한다.

그런데 카메론이 적용했던 것과 같은 백인 메시아 우화가 거슬린다고 지적한다면 당신은 화를 낼 것인가?

이 대답은 당신이 백인은 합리적이고 기술주의적이며, 식민지배를 받는 희생자들은 영적이고 자연적인 신체를 움직인다고 하는 스테레오타입을 받아들이냐에 달려있다. 또 그 대답은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들의 십자군을 이끌 백인 메시지아가 필요한가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다. 그 대답은 문맹을 깨치지 않는 것이 인간적 우아함으로 이르는 길이다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다. 그것은 또 일종의 양날의 칼을 가진 문화제국주의를 만들어낸다. 원주민들의 역사는 무자비한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던지 아니면 자애로운 제국주의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건, 그것은 백인들의 자화자찬을 향한 여정에 이들이 조역배우들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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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er, Jan 11, 2010, p.59]

명백히 현실도피이고, 자애로운 낭만주의는 (대비적으로) 일종의 악의적 낭만주의만큼 생색내는 듯 은혜를 베푸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 설령 3D안경을 끼고 툭툭 튀어나오는 양치류 식물들과 둥뚱 떠다니는 듯한 산맥들로 그것들을 에워쌀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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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결심과 인지적 부하

January 5th, 2010

차니님께서 올린 새해에는 결심하지 말기로 하자에 보내는 트랙백입니다.

새해에 하는 결심은 우리 행동을 바꾸는데 좋은 길은 아니다. 특히 새해에 결심을 많이할수록 뒤에 지키지 못한 약속에 발목이 잡혀 파트너에게, 친구나 직장 동료들에게 괜시리 의지가 박약하고 말만 앞서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위험까지 떠안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키지 못할 결심 세우지 말아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줄 수 있는 조언은 두가지다.

첫번째 조언은 지키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결심이라도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중 새해 결심의 성공과 좌절에 관해 연구해온 미국의 심리학자 존 노크로스 (John Norcross)는 새해 결심을 세우지 않았던 256명의 사람들과 178명의 새해 결심자를 대상으로 6개월에 걸쳐 전화인터뷰 조사를 통해, 6개월 이후에 자신들이 설정한 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비교했다.2002년에 JOCP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같은 목표(예: 살빼기나 담배끊기등)일지라도 새해 결심으로 목표를 세웠던 사람들(46% 성공률)이 새해 결심으로 만들지 않았던 사람들(4% 성공률)보다 10배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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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스: Norcross, John C., Marci, S. M., & Matthew, D. B. (2002). Auld lang Syne: Success predictors, change processes, and self-reported outcomes of New Year's resolvers and nonresolvers.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58, 397-405.]

하지만 새해 먹은 결심이 성공할 확률 자체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위에 제시한 상대적 수치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위 연구를 수행한 존 노크로스스 박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새해 먹은 목표를 2년 이상 계속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겨우 1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새해 결심을 세워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두번째 조언은 지키지 못할 새해의 결심을 세우고 지키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결심을 세우는 단계부터 이것은 언젠가는 지킬 수 없는 결심이라고 되뇌일 필요는 없다. 새해 결심 연구의 전문가 존 노크로스 박사는 새해 결심은 목표의 종류나 목표를 세우는 사람들의 인구학적 특성에 관계없이 모두 지키기 어렵다고 한다.

새해 결심에 대해 학문적으로 조사했던 연구자들이나 이걸 바탕으로 대중적인 칼럼을 쓰는 기자들이 매년 강조하는 전략은 단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새해 결심을 대중적으로 공표하자는 것이다. 공적인 약속이 사적인 결심보다 더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전략은 결심의 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최소화해야 하는가? 단 하나만 세워야 한다. 뒤에 간략히 언급하겠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 리차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2007년에 3천여명의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재미난 실험을 했다. 새해의 결심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추적한 것이다. 와이즈맨은 실험에 참여한 남자와 여자들을 각기 다른 몇 개의 그룹에 참여시키고 각 그룹에서 제시한 조언을 따라 새해의 결심을 한 번 이뤄낼 것을 당부했다.

일단 시작하기 전 조사에서, 실험에 참여한 사람 중 52%가 새해 결심을 반드시 달성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1년 뒤 겨우 12%만이 자신이 설정한 새해의 결심을 이뤄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단 새해 결심의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은 통념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낮은 성공률 가운데서, 우리가 관심있는 것은 과연 어떤 조언을 받은 사람들이 더 성공했을 확률이 높은가이다.

와이즈맨 박사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결심 그 자체보다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한 세부 목표를 설정해 두라는 조언을 따른 사람들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살 빼기’ 이렇게 일반적인 결심을 세울 때보다, 매달 몇 킬로그램씩 빼자는 식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을 때 결심을 이뤄낼 확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다른 친구나 가족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한 경우에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결심을 할 때는 동양이고 서양이고 다소 마초적 생각을 하는 경향이 짙다. 이른바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근성이며, 셰익스피어의 전통에 서 있는 서양에서도 ‘내 칼이 대신 말할 것이다’ (I have no words; my voice is in my sword)에서처럼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저돌성이다. 그리고 그 마초적 저돌성은 곧잘 이도 저도 아닌 우둔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다 허다하다. 한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여성들은 일단 내 안의 결심이 공적으로 공유될 때, 그말을 지키려는 의지가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와이즈맨 박사는 새해 결심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결심을 딱 하나만 세우고, 그 세운 결심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라는 조언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새해의 결심을 하나만 세워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있단 말인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부담 혹은 인지 부하(cognitive load)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지 부하라는 것은 어떤 일(과제)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정신적 노력의 양을 말한다.

새해에 몇가지 목표를 동시에 설정하게 되면 우리의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인지적 처리 용량에 부하가 걸리게 된다. 인지적 부하가 걸리게 되면 사람들의 자기 통제, 혹은 자기 억제 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하게 된다.

뇌 과학적인 접근으로 이를 이해해보자. 우리 뇌에서 새해 결심처럼 사람들의 의지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뇌의 영역은 우리 이마 바로 뒤에 자리한 전전두엽 피질 (prefrontal cortext: 전두엽(frontal lobe)에서 맨 앞 영역)이다. 우리들 뇌의 전전두엽피질에서는 새해의 결심같은 것 말고도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런데 이 부분의 활동역량을 현저히 줄여버릴 수 있는 새해의 강한 결심같은 부담스러운 의지 작업을 몇개 더 얹어본다고 생각해보라. 당연히 당신의 이마뒤에 자리한 그 의지의 생산공장의 작업 능률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지심리학 전문 저널리스트이며 How we decide의 저자 조나 레러(Jonah Leher)씨가 WSJ에 새해 결심과 의지력에 대해 Blame It on the Brain이라는 재미난 칼럼을 올렸다. 차니님께서 링크한 Creativity, Innovation, and Tech 블로그에 이 글의 개요를 번역한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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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저널리즘

December 12th, 2009

[표준어 표기는 알고리듬이 맞지만, 아래 소개한대로 검색엔진 최적화를 위해 제목만은 알고리즘이라고 표기했습니다. ^ ^]

독일에서 두번째로 큰 신문사인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FAZ)의 발행인인 Frank Schirrmacher씨가 책을 냈다는군요. 인터뷰 기사를 읽다보니 그가 주장하는 것을 알고리듬 저널리즘이라고 이름붙이고 싶어졌습니다.

Schirrmacher씨가 주창하는 알고리듬 저널리즘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죠. 이 알고리듬 저널리즘은 신문사 내부의 노력과 기존 저널리즘 밖의 영역에서 모두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단 신문산업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알고리듬 저널리즘은 검색엔진 최적화를 이야기합니다. 즉 검색엔진 친화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서 구글의 기계적 검색언어에 최적화해주자는 것입니다. 이런 논의는 2006년 뉴욕타임즈가 This Boring Headline Is Written for Google이라는 정말 기가 막힌 헤드라인 카피가 달린 기사를 내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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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실험은 신문사만 하는게 아닙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에서 프로들은 저같은 듣보잡 블로거와 경쟁을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신문사만 검색엔진 최적화를 하는게 아니라, 저같은 블로거도 구글의 알고리듬을 고려해 검색엔진 최적화를 한답니다. 이 글의 타이틀을 ‘알고리즘 저널리즘’이라는 매우 boring한 헤드라인으로 뽑은 이유도 이때문이죠. 그런데 언론사는 구글 알고리듬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경쟁에서 저같은 듣보잡 블로그에 밀릴 때가 많습니다. 거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죠.

The Answer Factory_ Demand Media and the Fast, Disposable, and Profitable as Hell Media Model | Magazine.jpg

첫째는 뉴욕타임즈지는 ‘알고리즘 저널리즘’ 이런 식으로 헤드라인을 쓸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헤드라인 뽑는 카피 에디터가 있다면 당장 그만 둬야겠죠.. ^ ^ 그래서 뉴욕타임즈는 “This Boring Headline Is Written for Google”처럼 기가 막히게 멋진 헤드라인 카피를 내는 것이겠죠. 그게 바로 내가 뉴욕타임즈같은 엘리트 저널리즘에서 기대하는 헤드라인이겠구요. 물론 아무리 듣보잡 블로거라고 하더라도, 늘 검색엔진 친화적으로만 뽑기에는 가끔 저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가끔은 있단 말이죠. 물론 그럴 때는 맨하탄 인쇄매체계의 올드보이와 뉴키드식으로 제목을 뽑기도 합니다. ^ ^두번째는 이건 특히 우리나라에 해당되는 이야기인데요. 블로거들의 글을 가만 보면 국내 신문사 기사를 인용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인용할 때도 링크가 분산되는 겁니다. 뉴욕타임즈나 WSJ등 미국 신문의 경우는 모든 링크를 개별 신문사가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다음이나 네이버, 네이트 뉴스, 야후 뉴스등 수많은 포털들이 이들 신문사의 뉴스를 게재하기 때문에 링크도 수없이 많은 곳으로 분산됩니다. 결국 구글 알고리듬이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 지 모른다는 거죠. 그래서 저같은 듣보잡 블로거들이 반사 이익을 받습니다. 왜냐? 제글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중개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링크의 성은을 GatorLog자체가 받는다는 이야깁니다. ^ ^

신문사 내부의 검색엔진 친화적 글쓰기와는 별개로, 알고리듬 저널리즘은 전통적 저널리즘 영역을 넘어서 정말 듣보잡 분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저널리스들이 무엇에 대해 써야하는지를 알고리듬을 이용해서 (데이터 마이닝과정을 거쳐) 뽑아내고, 그런 정보를 찾는 소비자와 광고주를 연결해 주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서 꽤 주목을 받는 회사는 demand mediapluck 입니다.

디맨드 미디어측이 써낸 홍보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는 검색 알고리듬을 통해 테라바이트에 해당하는 검색 데이터와 인터넷 트래픽 패턴들, 그리고 키워드들의 비율을 마이닝(mining)해서 사용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결정해주고, 이 대답에 관련된 글/기사를 써서 검색엔진 최적화를 해줄때 관련업자나 광고주들이 얼마만큼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지를 따져서 프리랜서/아마추어들에게 글 용역을 주고, 이 과정을 거쳐 나온 글/기사를 내부에서 고용한 작가와 카피 에디터들을 통해 손을 봐서 인터넷에 올린다고 합니다.
내가 처음 이런 회사들을 눈여겨 본 것은 집안의 싱크가 막혔을 때 이런 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를 찾기 위해 이른바 DIY (do it yourself)방법들을 검색하면서였습니다. 구글 검색에서 톱에 링크된 관련 정보는 ehow.com등 디맨드 미디어와 제휴된 사이트였습니다. 심지어 유튜브 검색을 해도 디맨드 미디어에서 손을 본 비디오들이 나를 맞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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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대부분의 소셜미디어등이 API개방등을 통해 폐쇄보다는 열린 시스템을 지향하기 때문에 이처럼 알고리듬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신흥 웹사이트들이 번성할 수 있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정보(?)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19일 와이어드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디맨드 미디어의 창립자는 이렇게 공언하고 있습니다.

By next summer, according to founder and CEO Richard Rosenblatt, Demand will be publishing 1 million items a month, the equivalent of four English-language Wikipedias a year. Demand is already one of the largest suppliers of content to YouTube, where its 170,000 videos make up more than twice the content of CBS, the Associated Press, Al Jazeera English, Universal Music Group, CollegeHumor, and Soulja Boy combined. Demand also posts its material to its network of 45 B-list sites — ranging from eHow and Livestrong.com to the little-known doggy-photo site TheDailyPuppy.com — that manage to pull in more traffic than ESPN, NBC Universal, and Time Warner’s online properties (excluding AOL) put together. To appreciate the impact Demand is poised to have on the Web, imagine a classroom where one kid raises his hand after every question and screams out the answer. He may not be smart or even right, but he makes it difficult to hear anybody else.

여기까지 제 글을 읽은 분중에 개발자분이 있다면 일단 “와우”라는 반응과 감탄사를 내실 수 있겠죠.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웹사이트가 얼마나 많이 글을 쏟아내는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며칠 전에 데이빗 카아의 비평을 GatorLog Review에 소개하면서 전 알고리즘 저널리즘으로 잃어가는 진짜 저널리즘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수많은 미디어랩들이 facts를 모아 내러티브 형식의 정보로 바꾸는 알고리듬을 테스트하고 있다. 여기엔 작가나 기자가 필요없다. 그리고 그 결과 나온 아웃풋은 문학적 저널리즘의 잣대에서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며, 순전히 웹 관점에서 보자면 꽤 좋다 — 아니 끔찍할 정도는 아니지만, 종종 충분히 괜찮다고 볼 수 있다.”[맨하탄 인쇄매체계의 올드보이와 뉴키드]

내가 읽고 싶은 글은 오디세우스에게 GPS가 있다면처럼 인류가 공유해온 문학, 예술, 문화적 전통에 기반한 지적 창작물이지, 컴퓨터 알고리듬이 조합해서 일초에 하나씩 토해내는 ‘막힌 변기 뚫기’ 노하우가 아니기 때문이죠. 막힌 변기 뚫기 잠깐 들여다보겠지만, 그런게 저널리즘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모르죠. 알고리즘 저널리즘에 대해 물었을 때, 최소한 이 듣보잡 블로그 글보다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글을 토해낼 수 있다면 그 땐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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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toRT 아, 좋은 글입니다. @gatorlog: 알고리즘 저널리즘 http://gatorlog.com/?p=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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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alo흥미로운 이야기. 문득 효율을 강조하는 시대에 어떻게 창의적 작업이 계속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됨 RT @gatorlog알고리즘 저널리즘 http://gatorlog.com/?p=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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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문화 코드 (The Culture Code)

November 22nd, 2009

2006년 7월 16일에 기록했던 글인데, wayback machine을 통해 오늘 다시 복원했습니다.

Clotaire Rapaille은 문화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인터내셔널 마케팅 (광고)을 접근하는 마케팅 컨설턴트이다. 마케팅에서 문화적 코드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그의 접근법은 참여관찰이다. 이번에 내놓은 “문화 코드 (The Culture Code)”라는 책에서 프랑스 태생인 그는 미국 (소비)문화의 기저에 자리잡은 미국인들의 문화 코드가 프랑스인의 코드와 어떻게 다른지, 그게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고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인과 미국인들이 치즈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데,프랑스인은 치즈를 구할 때 가게에 가서 쿡쿡 찔러보고 냄새를 맡아 치즈의 숙성기간을 알아본다. 치즈를 사가자고 집에 가서는 실내온도로 보관하는데 벌레가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클로쉬에 보관한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저온살균으로 치즈를 “죽인”다음에 이걸 미라처럼 랩으로 둘둘 말거나 혹은 플라스틱 백에 넣어 유통을 시킨다. (미국에서는 살균처리되지 않은 치즈는 유통될 수 없다).

그리고 남은 치즈는 다시 밀폐해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따라서 클로테어 라파유는 프랑스인들에게 치즈의 문화적 코드는 “Alive”인데 반해 미국인들은 “Dead”라고 주장한다. 한때 (브뤼셀의 관료들에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도 파스퇴르 살균된 치즈를 유통할 것을 명하는 법을 만들려는 때가 있었는데, 이때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데모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코드를 깨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문화에 각인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클로테어 라파이유는 마케팅 종사자들이 문화적 코드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렐 화장품을 컨설팅 하면서 참여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각국 여성들의 메이크업의 차이에서 유혹에 대한 문화적 코드를 분석한 것도 재미나다. 이를테면 프랑스 여인들은 자연미를 굉징히 중시여겨서, 화장대 거울앞에서 메이크업을 하는데 전혀 시간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메이크업을 하기 위해 두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네글리제 라는 단어의 어원 역시 “neglect”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반면 영국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아주 도발적인 노력들을 한다고 한다. 미국의 문화는 물론 영국과는 반대다. 반면에 이태리에서는 이런 seduction에 신경을 쓰는게 남성들이라고 한다.
라파유의 관찰에 따르면 섹스에 대해 미국인들이 갖는 문화적 코드는 무의식중의 의심이며 결국은 폭력과 맞닿는다고 한다. 따라서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Desperate Housewives에 나타난 섹스는 결국 살인과 연결이 되면서 높은 인기를 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소개페이지를 보면 정신분석학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에서 가끔 얼치기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시도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를테면 미국인들이 마이크 타이슨이나 마이클 잭슨, 톰 크루즈, 빌 클린튼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비정상적이고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점에서는 미국인들이 정말 마이크 타이슨을 좋아하는지, 탐 크루즈를 좋아하는지를 먼저 밝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다보면 자유와 구속이라는 개념에 대해 역시 프랑스 태생다운 사고가 보인다. 미국인들이야 미국이 자유의 나라라고 자랑하지만, 미국이 과연 자유스러운 나라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이 책의 예는 아니지만 9/11 이후 미국 땅을 휩쓸고 있는 이 미치광스러운 homeland security의 구속과 폐해에 대해 미국인들은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역시 이 책에서 나온 예는 아니지만 애연가들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자유를 억압하는 나라, 구속하는 나라가 된다. 비행기안에서도 흡연을 허용하는 프랑스야말로 신사의 나라, 선진화된 문화국이 되는 셈이다. 이 책에는 디즈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 디즈니 개장 초기에 미국식 규제 — 금연 및 애완동물 금지 등 — 를 했다가 결국 장사에 차질을 빚고 프랑스에 맞게 구속을 느슨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미국식 사고”의 모순을 지적하는 대목이 보인다. 이를테면 미국내 비만을 논의하는 대학 초청 심포지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공중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비만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데 대해, 저자는 자신의 순서에서 “만약 교육과 대공중 계몽이 문제라면 왜 여기 모인 대다수 (MD와 PH.D) 사람들은 자신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라고 꼬집었다가 다음부터 누구도 초청을 하지 않았다”라는 조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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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예술 박물관 (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 맨 위에는 오랫동안 영화 록키의 가상적인 복서 록키 발보아(Rocky Balboa)의 동상이 서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클로테어 라파이유는 이렇게 묻는다. “뉴욕양키스 스태디움에 잭슨 폴락의 동상이 서 있다고상상해 보세요.” 라파유가 이 이야기를 들고나온 이유는 미국인들이 숭상하는 것은 행동하는 사람들 (doers)이지 사상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나이키의 캐치프레이즈 “Just Do IT”은 이런 행동주의에 기반한 문화적 코드를 가장 잘 파고든 광고 카피가 되는 셈이다. 행동의 문화에서 태생한 미국문화는 결국 건강의 코드는 “움직이는것”이 된다. 차사고가 나서 보험회사에 전화하면 제일먼저 묻는 것은 (다친데 있습니까)가 아닌 “당신 움직일 수 있어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뭘 먼저 물을까? 누가 피해자입니까?)

라파유가 바라보는 건강코드에 동의할 수 없다면 동양의 예를 생각해 보자. 라파유는 중국에서 건강의 코드는 “자연과의 조화”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의무”이다. 아퍼서 학교못가면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죄의식을 느끼며 아파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일화와 인터뷰 증언들을 조합해서 몇가지 중요한 하부 문화에 담긴 코드를 해독하려고 시도한 이 책에서는 경험,실증주의 패러다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직관의 파워가 엿보인다. 그렇지만 각각의 하부문화들이 저자가 등치시킨 의미안에서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다민족 다문화에 기반한 미국에서는 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젊음을 숭상하고 젊음을 무언가 손에 잡히는 어떤 것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기기에 이걸 “마스크”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미국 특유의 성형과 피부관리 문화를 설명하려고 한다. 과연 미국에서 “젊음”에 담긴 문화적 코드를 “마스크”로 바꿀 수 있을까? 이처럼 결론이 삼천포로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말이 나온김에 이야기하자면 이처럼 젊음을 마스크로 여기는 경향은 우리가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사람들은 어찌보면 이런데 대범한 것 같다. 저자가 미국처럼 “젊음에 집착하는 나라가 없다”고 했지만 사실 이건 우리나라 문화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젊음은 언제나 갈아치울 수 있는 껍데기이며, 특정한 신체 모양을 향한 강박관념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 2세들이 학창시절 한인사회를 기피하는 이유가 바로 한인사회에서는 “너 살빠졌다” “너 키컸구나”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없어졌네”등 신체적 변화나 결함을 직접 언급하는 문화라는 점이다. “젊음”에 올인한 결과 우리 사회에서 젊음의 문화적 코드는 결국 “젊은피 수혈”같은 정치적 은어나 “영계”같은 성인남성들의 은어속에서 볼 수 있듯이 심하게 말하자면 “보신”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저자의 시각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모순은 저자는 미국인과 미국문화를 “극단”과 “비정상”을 향한 문화로 간주하면서도 그 하부문화중 섹스나 미에 대한 문화적 코드는 중용을 추구하는 문화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폭력에 맞닿아 있는 미국의 섹스 코드는 미국 여성들에게 미와 성적 자극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적당한 긴장을 갖게 한다고 주장한다.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 Secret)이라는 브랜드가 성공한 이유도 “빅토리아”에서 오는 억압된 본능과 숨겨진 옷장 속의 성적미라는 두 모순이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평가들이 극찬한 도브의 평범한 사람들속에 미가 있다는 광고에 대해 라파유는 그 컨셉은 코드를 깬 것이기에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적 개념의 미라는 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슈퍼모델의 절대미와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창녀들이 던지는 도발사이의 긴장인데, 여기서 숭배되는 미가 없다면 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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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중반부는 home(가정)과 일에 대한 문화코드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만큼 home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모든 것은 home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홈디포(Home Depot)가 미국에서 이처럼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던 것도 미국 문화가 home의 문화라는 것을 설명해주지 않을까 싶다.

가정을 중시 여기지 않는 나라는 없겠지만 미국인들이 home을 특별히 여기는 이유는 미국 개척사와 맥을 같이 한다. 꽤 설득력 있는 설명끝에 저자는 미국에서 가정의 문화적 코드는 “회귀”라는 접두사인 Re-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return, reunite, reconfirm, renew, reconnect 등 가정은 모든 것을 출발하는 원점이 된다. 추수감사절은 가정이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멀리 흩어진 가족이 재회하는 가장 큰 행사날에 가정은 따뜻하고 중심이 되는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래서 프랑스와는 달리 미국에는 부엌이 개방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부엌 구경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대부분 살롱이나 다이닝 룸에서 식사와 파티가 진행되지만,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에 부엌을 중심으로 가족과 친지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문득 우리나라 명절과 부엌문화가 생각난다. 따라서 미국의 식사 문화 코드는 가족을 이어주는 절대적인 구심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인들은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경우가 없으며, 결혼한 부부끼리 밥을 먹을 때에도 남녀가 따로 먹는 문화이다. 중국의 식사문화는 음식 자체를 즐기는 문화이며, 식사가 들어오면 하던 이야기도 중단하고 음식 자체에 몰두하는 문화라고 보고 있다. 저자의 이같은 조언에 기초해서 미국 거대 식품회사 크래프트사가 “gather aroun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택했다고 한다.

미국인은 일벌레?
프랑스를 강타한 베스트셀러 제목은 Bonjour Paresse (Hello Laziness)인데 반해 미국인들의 베스트셀러는 “The Seven Habit of Highly Effective People”이다. 미국인들에게 what do you do를 질문하면 그건 취미도 지금 집에서 하는 일도 아닌 바로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가”하는 대답이 나온다. 저자는 미국인들에게 일(work)의 문화적 코드는 바로 “내가 누구인가”인 존재의 의미로 다가간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없으면 내가 누구인가도 의미가 없어지는게 바로 미국이되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은 미국에서 건강에 대한 코드처럼 계속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일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결코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좋은 일이 아닌 셈이다.

2004년에 만들어진 가장 좋은 영화로 꼽을 수 있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매기 (힐러리 스웽크 분)는 낮에는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그 번 돈으로 복서의 꿈을 키워나가는 — 그것도 복서로서는 이미 노장의 길에 들어설만한 나이에 —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차고에서 시작해서 세계적 기업을 일군 미국인들이 바로 미국의 영웅이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미국에서 일의 대가는 돈이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을 좋아하고 유산 물려받아 잘 사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들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먹을 것 못먹고 코뿌러지면서 얻은 댓가는 돈이고 그 돈은 성공에 대한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돈의 문화적 코드는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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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코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인이 보는 미국의 코드는 “NEW”이다. 도시 이름에 숱하게 들어간 New는 미국인들이 새로움을 얼마나 갈구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 미국인은 미국을 풍요와 광활함으로 보고 있다. 협소한 땅에 수많은 인구를 먹여살려야 하는 일본이 마이크로컬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면, 미국은 거대 문화의 산실이다 (한가지 역설적인 것은 그 매크로 문화의 고수인 미국을 상징하는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icro + soft)인 것이다. ). 이걸 이해한다면 미국 구경을 와서 미국인들은 왜 지하주차장을 파지 않고 왜 아파트를 높게 짓지 않으며 왜 도심의 고층빌딩 옥상위에 도요타 식물원같은 것을 짓지 않는가, 건물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왜 쉴새없이 에어컨이 뿜어져 나오는가를 물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런 발상들은 미국의 문화적 코드에 어긋나는 것이기 떼문이다.

그리고 이 새로움과 풍요로움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문화적 코드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꿈”이다.

영화 시비스킷과 신데렐라 맨에서 볼 수 있듯이 대공황속에서도 미국인들은 젊음과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꿈을 믿지 않았던가? 그게 말이되었건 복서가 되었건 좌절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움직이고 결국 승리를 거머쥔다는 데서 사람들은 꿈을 발견하고 그 꿈의 상징이 영웅이 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흑인 운동의 한 축에 있던 마틴 루터 킹이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도 바로 ‘우리도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설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 가면 약간 슬퍼지는게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꿈이 있다. 그런데 그 꿈은 “우리“가 커나갈 수 있다는 꿈이 아니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살기에 좋은 나라를 물려주는 꿈“이 아니고 바로 내가 못 이룬 꿈을 내 아들이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무의식속의 강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잘못 시작하면 평생 그 인생이 그 인생이다. 꿈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손들이 모여 숱한 패거리를 낳고 대열을 만들고 줄을 세운다. 한 번 줄 잘못서면 신세 조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컴백이라는 것은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컴백 키드의 사회이다. 마이클 조단이 몇 번 은퇴를 했던가? 클린턴은 탄핵 위기까지 몰리지만 컴백했다. 마사 스튜어트는 감옥에 살고나와 다시 움직일 뿐만 아니라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컴백해도 받아주는 문화인 이유는 미국인들이 패배와 실패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뿐 아니라, ‘완전 무결점’을 오히려 ‘죽음’의 코드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처럼 품질 경영이나 무결점에 도전하는 것은 미국의 기업 코드가 아닌셈이다. 미국에 최초로 온 개척자들이 무결점의 매뉴얼을 들고 온 엘리트들이 아니다. 강한 바람과 혹한을 거치고 거치면서 강철과 같이 단련된 게 미국이다. 그러다보니 “작동하는 것”에서 시작해 “좀 더 나은” 것으로 이동하는게 미국인들의 사고가 되는 셈이다. 좁은 땅에서 수많은 인구를 먹여살려야 하는 일본의 코드가 효율성인것과는 비교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작동하는게 중요하고 새로운게 (NEW) 중요하다. 한 번 텔레비전 사서 평생 쓰는 것은 일본인의 코드다. 미국인들은 매 3년마다 차 바꿔야 하고 매 5년마다 텔레비전을 바꿔야 한다. 아이팟이 시판되고 약 3년 지나서 아이팟 배터리의 수명에 관한 비밀이라는 비디오가 나돌았고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여전히 아이팟의 수명은 보통 3년을 못넘긴다고 보면 될 것이다. [GatorLog관련 글: Built to last 시대에서 Built to change 시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아이팟은 공전의 히트 상품이 된 것도 모두 같은 이치이다. 1세대 아이팟을 지금까지 쓰는 것은 전혀 미국인들에게는 코드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아이팟 미니가 나오면 사줘야 하고 나노가 나오면 이전 것을 이베이에 내놓고라도 사야하는게 진짜 미국인인 셈이다. (물론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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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kalosGatorLog – Book Review: 문화 코드 (The Culture Code) http://gatorlog.com/?p=1681 ethnography와 같은 연구방법에 눈을 뜨는 요즘 유용한 책일듯 싶네그려.
kimcheez집에가서 읽어봐야지 찬찬히 RT @erehwonlab: 아거님 @gatorlog 이 정리해 주신 ‘문화코드’ 재미있다.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듯. http://bit.ly/8UqBI2
erehwonlab아거님 @gatorlog 이 정리해 주신 ‘문화코드’ 재미있다.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듯. http://bit.ly/8UqBI2
gatorlog혹시 非夢似夢을 無我之境 으로 잘못쓴게 아닌가요? 피노쿄님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할만큼 매혹적인 자태는 안드러났을텐데요. ;) RT @blographer: 취침전 잠깐 들어갔다 무아지경에 빠져 읽은 글 http://bit.ly/8UqBI2
blographer[취침전 잠깐 들어갔다 무아지경에 빠져 읽은 글...] http://gatorlog.com/?p=1681“문화 코드 (The Culture Code)” – ‘미국에 최초로 …http://dw.am/L93N
tuesdaymoonGatorLog – Book Review: 문화 코드 (The Culture Code) http://feedproxy.google.com/~r/gatorlog/~3/CfPraxcJG3Y/
minociBook Review: 문화 코드 (The Culture Code) :http://gatorlog.com/?p=1681성실하고, 주체적이며, 비판적인 관점이 잘 녹아 있는 서평. 비판근거가 좀더 상술되었더라면 훨씬 더 좋겠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muminds처음, 라파이유를 접한 것은 석사 1년 때 PBS Frontline (Nova였나?)의 Persuasion을 통해서였습니다. 라파이유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이 남아있습니다.
Coolpint내가 미국과 미국인과 미국문화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 http://gatorlog.com/?p=1681
gatorlog@muminds 정재승 교수의 기아자동차 컨설팅 프로젝트를 보고 예전에 기록한 Clotaire Rapaille의 “문화코드”가 생각나 오늘 복원했습니다. http://bit.ly/8UqB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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