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8
국경없는 인터넷에서 끊이지 않을 이슈가 바로 ‘말할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법적 규제이다. 미 콜럼비아대학교의 팀 우 교수가 ‘누가 인터넷을 통제하는가’라는 책에서 다룬 근본적 주제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말할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하는 권리이다. 미국 법에서 프라이버시 권리를 명시적으로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수정헌법의 여러 장전들에 이 권리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라는 기본권을 정언(定言)하는데 있어서 각 국가가 적용하는 법철학과 우선순위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니 판례가 다르게 나오는게 당연하다.

2006년 9월, 구글 비디오에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한 이태리 소년이 학교 애들에게 신체적 언어적으로 학대당하는 비디오가 올라왔다. 같은 해 11월 이태리 경찰은 구글에 비디오 삭제 협조 요청을 받아, 요청받은 후 ‘수시간내에’ 이를 삭제했다. 문제는 구글이 이를 끌어내리기 전까지 두달동안 이 비디오 사이트에는 수많은 항의가 저항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태리 경찰은 구글의 간부 네명을 기소한 것이다. 구글측 주장은 기소된 사람 누구도 그 비디오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그 비디오가 삭제되기 전까지는 심지어 그런 비디오가 구글 비디오에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태리 법원은 지난 주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기소된 구글 간부 세명에게 6개월 형을 선고했다. 이태리에서는 3년 미만의 실형은 자동으로 집행이 유예되기 때문에 구글 간부들이 감옥소에 갈 필요는 없다.

이번 형은 팀 우 교수가 ‘누가 인터넷을 통제하는가’ (인터넷 권력전쟁으로 번역출간) 첫장을 시작하는 중요한 판결을 연상케 한다. 바로 나찌 기념물을 판매한 야후 경매 사이트에 대해 프랑스 법원이 내린 폐쇄조치 판례다. 미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판결이지만, 프랑스에서는 규제가 된다. 그는 책에서 ‘EU는 오늘날 범세계적 프라이버시 법을 집행하는데 있어어서 가장 효과적인 주권주체이다’라고 썼다.
테크크런치의 마이크 부처는 “이 바보같은 이태리 판사들에게 그 비디오를 올린 것은 구글 중역들이 아니었다고 설명해 줄 사람 있나요?”라면서 “why”를 외쳤다. 아무리 벤처 자금을 끌어들이는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테크크런치 블로그라고 해도, 국경없는 인터넷을 규제하는 국가별 법의 철학과 정신에 영향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Adam Loptak가 전문가들 취재를 바탕으로 아주 멋진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인터넷판에 올라온 제목은 ‘When American and European Ideas of Privacy Collide‘이다.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 소개되는데, 이해를 돕는 몇가지 인용을 들어보자.
미네소타 대학에서 미디어 윤리와 법을 가르키는 제인 커틀리 교수의 말이다.
‘미국인들은 지금까지 유럽인들이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여기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유럽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라는게 현실이다”
유럽에서 이 프라이버시 권리는 그냥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권(human-dignity right)이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이 프라이버시 권리가 ‘소비자를 보호하는 권리’일 뿐이다. 미국인들은 권리장전에 표현의 자유를 맨 꼭대기에 올려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반해, 유럽에서는 프라이버시가 맨 위에 온다는 것이다: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의 article 8번은 “Everyone has the right to respect for his private and family life, his home and his correspondence.”이다. 그리고 article 10번에서 미국인들이 자부하는 ‘표현의 자유’가 온다.
내가 법철학자도 아니고 또 현재 극도로 시간에 쫓기고 있으니 일단 생각을 여기서 마무리 짓는다. 이 분야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께서 논의를 이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관심있는 분들은 James Q. Whitman가 The Yale Law Journal에 발표했다는 [유럽과 미국 두 서방세계간 프라이버시 문화의 긴장: '존엄성(dignity)'과 '자유(liberty)'] 논문을 읽어보시길.
Conversations
Twitter (23)
Tagged with: 구글
Feb 24
일전에 자기결정이론을 바탕으로 남을 돕는 행위가 자신의 심리적 만족을 늘이고 개인의 웰빙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When helping helps를 소개한 적이 있다. NIH의 Jorge Moll 박사등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뇌를 스캔할 결과, 먹을 때와 섹스할 때처럼 이기적 쾌락을 느끼는 뇌의 일부가 반응했다. 뉴욕타임즈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인용한 언챙이 수술을 돕는 비영리 조직인 Smile Train의 공동창설자인 브라이언 물래니의 말을 빌자면 “가장 이기적인 일이 남을 돕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생물학적 ‘costly signal”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관련 글: 무개념 루저녀와 공작새 꼬리효과]. 진화심리로 본 아이폰 열풍에서 Mu님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은 개인의 우수한 특질과 우수한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결정이론과는 다른 관점이지만 역시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 남을 돕는 것이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다.
미국 사회심리학계 최고 권위 저널인 JPSP 최근호를 보니 Mu님의 주장과 같은 이론적 토대위에서 사람들이 친환경제품을 사용하는 동기를 연구했다. Griskevicius, V., & Tybur, J. M. (2010). Going green to be seen: Status, reputation, and conspicuous conserv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8(3), 392-404.
다른 사람의 혹은 사회적 이익 (=공익)을 위해 기꺼이 친환경 제품을 사용할 의지가 있음을 과시하는 내재적 동기가 사람들이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미네소타대학교의 마케팅 교수인 Vladas Griskevicius와 뉴멕시코대학의 동료는 재미난 실험을 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을 실험 그룹과 통제 그룹으로 나눠, 실험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프라이밍(priming)을 걸었다. 실험 결과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프라이밍 조건에 놓여있던 실험 그룹의 참여자들은 통제그룹 피실험자들에 비해 조사대상이었던 친환경 제품들을 택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았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연구가 여기에서 끝나면 재미가 없다. 이 연구의 백미는 그 다음 실험에 있다. 두번째 실험에서 이들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신분상승 상태’에서 이들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행위가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costly singaling’(값비싼 시그널 보내기)의 일환인지를 측정할 수 있는 또다른 실험 조건을 걸었다. 바로 남들이 보는 공적인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 온라인 쇼핑을 통해 아무도 보지 않는데서 물건을 고르는 조건을 추가한 것이다.
실험 결과 아주 재미난 상호작용 패턴이 발견됐다. 사적인 공간(=온라인 쇼핑몰)에서 ‘사회적 지위상승 프라이밍’을 받지 않았던 통제 집단이 실험집단보다 친환경 제품 사용이 약간 더 높게 나온 반면, 남이 보는 공적인 공간(가게안)에서 구매를 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사회적 지위 상승 프라이밍을 받은 집단의 사람들이 통제그룹에 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한 것이다.

이 연구결과를 해석할 때는 물론 주의할 점이 있다. 실험실내부에서 프라이밍과 가상 시나리오를 써서 직접 구매가 아닌 구매 의도/선택 의지를 조사했기에 일단 이 연구 결과들이 현실 세계에서도 같은 결과를 보일 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아놓아야 한다. 관여(involvement)도 크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자동차 고르는 것과 냉장고 혹은 비누 고르는 것은 모두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연구가 주는 현실적 함의는 분명히 크다.
연구에서 친환경 제품과 비교한 다른 제품은 고가의 다른 일반 제품이었다. 예를 들어 토요타사의 하이브리드인 프리우스와 BMW를 대놓고 비교한 것을 예로 생각할 수 있다. 진화론적 과시측면에서 본다면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일단 BMW를 몰아야 한다. 돈이 있는데 BMW를 타지 않고 프리우스를 몬다면 이건 진짜 친환경주의자거나 검소하거나 아니면 환경의식과 후손들을 위해 환경을 염려하는 의식있는 지구인일 지 모른다. 예를 들어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는 국내에 몇 대밖에 없는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이건 분명히 성공한 목회사업가로서 자기 과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만약 그가 하이브리드차나 연비가 적게 드는 소형차를 타고 다닌다면 사람들은 분명 그자에게 다른 특질을 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고가의 일반 브랜드 대신 역시 고가의 친환경제품을 고르는 행위를 두루뭉실하게 ‘costly signaling’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 설명력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짝짓기 상대를 유혹하기 위한) ‘값비싼 시그널링’으로써 고가의 친환경 선택은 말이 안된다.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바빠서 여기서 중단).
Conversations
Twitter (11)